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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과 합작해 먼저 항일투쟁에 나선다는 약속을 하고 풀려난 장개석은 1937년에 돌연 장학량을 구금한다. 장학량은 장개석의 고향인 절강성 봉화시 계구현 설두산(雪竇山)에 유폐되고, 상해에서 친 자매처럼 함께 거주하던 우봉지와 조일적은 한 달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설두산으로 가 장학량을 돌본다. 이때 조일적은 아들을 낳았고, 얼마 후 일본군은 장개석의 고향을 침공한다.

장학량이 하와이로 이주한 후 2000년에 조일적이 사망하고, 10개월 후 장학량도 사망하자 둘은 합장되었다. 장학량은 어린 시절에는 경비행기를 타고 만주벌판을 날아다녔고,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한때는 아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03세라는 장수를 누렸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에서 그 유래가 없을 만큼 장기간의 정치 보복을 당했지만 천수를 누린 이유는 조일적과 함께한 세월 때문인지도 모른다. 72년간의 사랑이다.

13억인과의 대화』 중에서...


현대사에서 설두산이 유명한 이유는 서안사변의 주인공 장학량의 구금지였다는 것이다. 13억인과의 대화에서는 ‘72년 간의 사랑에 나오는 장학량과 조일적 여사의 이야기 현장이기도 하다. 1934년 상해의 한 여행사가 초대소로 건축했는데 서안사변 후 1937년 1월 장학량이 이곳으로 구금됐다. 이곳에서 장학량은 약 7개월을 머물게 된다. 1988년 장학량 전시관으로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바깥 정원에 조일적 여사의 조각상도 있다.  


물론 장개석과 송미령의 여름 휴가를 즐기던 별장도 하나 있다.

 

해발 800미터에 불과한 산이지만 멋진 폭포가 많다. 특히 천장암千丈岩폭포는 장학량이 구금된 후 자주 오르내리며 무료함을 달래던 곳이다. 폭포는 낙차가 170미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