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와호장룡> 첫 장면을 수놓은 안휘고촌락

[최종명의 중국 산책] 황산과 안휘고촌락

 

오악을 다 합쳐도 황산보다 못하다.”라고 말하면 숭산, 태산, 화산, 형산, 항산은 모두 섭섭하다고 할지 모른다. 웅장하고 수려하고 험준하고 절묘하고 현란한 오악의 특징을 다 담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운무와 소나무, 기암괴석이 만든 절경은 최고의 명산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상하이에서 고속철로 3시간이면 황산북 역에 도착한다. 1시간이면 탕커우汤口에 도착한다. 황산 공항에서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12일 황산을 보기 위해 운곡사 케이블카로 오른다.

 

황산은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 사이에 운무로 휩싸인 공간을 바다라 부른다. 북해, 동해, 서해도 있고 천해도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북해로 간다. 시야가 좋아 첩첩산중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날카롭게 뻗은 바위에 소나무가 자란다. 바람 따라 운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석순강石筍缸에 이르면 죽순인지 바위인지 착각도 생긴다. 동해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시신봉始信峰에 오른다.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청량대清凉台를 지나 후자관해猴子观海에 도착한다. 사진 작가들이 둘러앉아 원숭이 모습을 기다리는지, 운무가 거치길 기다리는지 알 수 없다.





배운정排云亭을 지나 서해대협곡으로 간다. 운무가 살짝 사라지면 불쑥 하늘이 드러난다.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 있었다는 창세 신화는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 걸음을 멈출 때마다 변화무쌍한 풍광을 연출하는 황산이다. 갑자기 운무가 사라지더니 뭉게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가파른 협곡으로 내려가면 절벽을 뚫고 자란 소나무는 꿋꿋하고 꼿꼿하다. 강한 비바람에도 견디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보는 이에게 어찌 감동이 아니겠는가? 평지보다 일찍 밤이 온다. 중국에는 산 정상에 숙소가 많다. 여행객에게 행복한 일이다.

 

아침이 오면 맑은 공기를 가득 마시며 오어봉鳌鱼峰을 오른다. 천해에 펼쳐진 장관은 마치 서왕모가 산다는 신비한 곤륜산 같다. 솟구친 바위는 신이 창조한 솜씨라 해도 믿겠다. 거품처럼 요동치는 운무와 함께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까지 한 폭의 그림이다. 산수화 대가가 그려도 이렇게 멋지게 붓칠하긴 어려워 보인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듯 일선천线을 따라 하산한다. 능선을 따라 만든 백보운제百步云梯를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보면서 가자니, 걸음마다 조심스럽다.




황산의 상징 영객송迎客松과 인사하고 옥병루屏楼에서 잠시 쉬어간다. 병풍처럼 생긴 암반은 옥병와불이다. 꼭대기 부근에 마오주석의 초서 강산여차다교江山如此多娇가 새겨져 있다. 대장정 성공 후 옌안에서 쓴 심원춘·春·雪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대한 포부를 웅변하며 이처럼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했다. 마오주석의 시는 1959년 정부 수립 10주년에 맞춰 당대 화가인 푸바오스傅抱石와 관산위에山月의 공동 작품으로 승화됐다. 높이 5.65m, 너비 9m의 웅장한 명화에 마오주석이 친필 제자했다. 지금 인민대회장 영빈관에 걸려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강산에 어울리는 황산이다. 옥병루 케이블카 타고 내려와 황산 여행의 시작과 끝인 탕커우로 돌아온다.





와호장룡의 첫 장면, 안후이 고촌락


황산 부근에는 20년 전만 해도 주목하지 않던 고촌이 많다. 2000년 유네스코가 안휘고촌락을 주목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그러자 독특한 문화권인 휘주문화(徽州文化)가 외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안휘 남부와 강서江西 북부를 아우르는 공간이다. 천년 세월을 품고 있으며 유교와 상인문화도 담은 보물과도 같다. 건축물은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촌락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휘주문화를 대표하는 고촌 두 곳을 찾아간다.



 

탕커우에서 1시간 거리에 시디西递가 있다. 당나라 황제의 아들이 변란을 피해 성을 호 씨로 바꾸고 도주했다.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정착했다. 후대에 이르러 상업이 번창하고 부를 축적해 관리도 많이 배출했다. 명나라 시대 자사刺史를 역임한 호문광胡文光의 패방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 높이 12.3m, 너비 9.95m의 웅장하고 반듯한 자태도 아름답지만, 화려하고 세밀한 문양과 글자는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다.

 

회백색 담장과 검은 기와지붕의 외형은 운치 만점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골목은 화가지망생 학생들의 안방이다. 느리지만 은근하고 여유로운 스케치가 느껴진다. 휘주 건축문화의 백미는 삼조로부터 나온다. 목조木雕, 석조石雕, 전조砖雕가 기교를 뽐내는 저택이 200여 채에 이른다.

 

초록색으로 마을 이름인 서체西遞를 새긴 서원西은 청나라 도광제 시대 4품 벼슬에 오른 호문조胡文照의 저택이다. 마주보고 있는 저택은 동원东园이다. 원래 호문조 부친이 건축한 저택으로 청나라 옹정제 시대 유물이다. 문 위에 나뭇잎처럼 생긴 투각은 낙엽귀근落叶归根을 상징한다.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듯 인생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비유도 있다.



 

호씨종사胡氏宗祠는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가문의 영광이 지속되라는 성조영준盛朝英俊과 사세승은四世承恩 편액 아래 효절충렴孝節忠廉 필체는 휘상이야말로 유교를 숭상한 상인이라는 자부심이다. 경애당敬爱堂으로 들어가면 백대증상百代蒸嘗 아래 조종 신위神位가 있다. 정교하고 담백하게 그린 초상화 속 조상의 품격이 인상적이다.

 

거리의 간식도 눈길을 끈다. 마오더푸毛豆腐는 얇은 솜털이 있는 두부다. 발효 후 식물단백질이 변화해 아미노산을 생성하면서 생겼다. 그냥 먹지 않고 기름에 튀긴다. 검은빛의 밥도 판다. 까마귀 색깔의 찹쌀밥인 우츠乌糍. 모새나무 잎을 찹쌀과 함께 찌면 우츠가 된다. 우판수乌饭树가 모새나무다. 길거리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또 하나의 멋진 고촌으로 발길을 옮긴다.


 

북쪽으로 30분 거리에 훙춘宏村이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캔버스를 응시하는 학생들이 호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림 그리는 학생이 많은 여행지는 언제나 최고의 명품이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어디서 본 듯한 친근한 장면이다. 리안李安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臥虎藏龍>에서 장쯔이章子怡가 저우룬파润发에 쫓기는 모습이다. 영화처럼 봉긋한 다리, 호수와 수련, 하늘과 구름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진다. 돌다리를 넘어가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옷 색깔조차 그림이 된다. ‘중국 화가의 고향’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훙춘의 첫인상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다리를 넘어가는 나의 발걸음도 화폭 속으로 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호수를 건너면 남호서원이다. 1814년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서원으로 여섯 채의 사숙이 호수에 접해 있다고 해서 의호육원依湖六院이라 불렸다. 하나의 서원으로 통합해 이문가숙以文家塾이라 부르기도 한다. 목조 건물로 건축된 회벽 색 담장에 홍등이 걸려 있다. 사람들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려는 입구는 쇠창살을 설치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다 보니 복잡하기도 하고 서로 부딪힌다.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도 있고 공자에게 예를 올리는 곳도 있다.


 

처럼 설계된 골목을 따라 하천이 흐른다. 4개 정도의 골목과 1개 반 크기의 도랑이 졸졸 흐르는 한 지리학자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고이게 해 호수를 만들고 이를 골고루 나누는 수로를 만들었다. 명나라 시대인 15세기 초다. 골목을 따라가면 천연 호수보다 더 자연스러운 호수인 월소月沼와 마주한다. 장쯔이와 저우룬파가 다시 등장한다. 이 반달 모양의 호수를 사뿐하게 밟은 후 공중으로 날아올라 바깥의 호수를 지나 어디론가 사라진다. 온종일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가옥은 물론 하늘과 구름도 호수 안으로 들어왔건만 그저 고요하다. 호수 반영에는 오로지 여행객만이 움직일 뿐이다.





 

씨 집성촌 훙촌을 대표하는 승지당承志堂은 청나라 말기 염상 왕정귀汪定貴의 저택이다. 문을 들어서니 좁은 마당 한가운데 가로세로 3m 정도의 우물이 있고 물고기 몇 마리가 노닐고 있다. 마당 안을 비추기 위해 하늘과 뚫린 구조를 천정天井이라 한다. 거실로 들어서면 마름모꼴로 파란 바탕색에 복 자의 색감이 참신하다. 1m 높이의 물항아리는 화재를 대비하기 위한 필수품이다. 창문과 처마, 대들보에 새긴 조각이 화려하다. 연회를 하는 관리의 모습, 낚시하는 모습도 있다. 집 구석구석 문양들이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밤이 오면 다시 월소로 간다. 낮의 색감과 비교하려면 마을 안에 있는 객잔에서 잠을 자야 한다. 휘주 마을에 어울리는 가성비 좋은 객잔이 아주 많다. 성수기가 아니라면 고르고 골라 마음에 쏙 드는 하룻밤을 정해도 무난하다. 객잔을 정했으면 무조건 월소 옆 식당에 자리를 잡는다. 야경에 취하고 반영에 숨죽이며 술과 안주로 시인이 되도 좋다. 이백李白이어도 좋고 이하李贺라도 좋다. 누구의 장진주将进라도 다 어울린다. 술을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잔을 들게 된다. 밤이 깊어도 검은 호수는 홍등의 향연에 취해가기만 한다. 소리 없이 녹아드는 백주에 취해 비몽사몽이 되더라도 쉽사리 자리를 떠나기 어렵다.

 

최종명 중국문화 작가 및 강사

崔钟名 中国文化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