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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스트 지형에 부활한 장강의 거친 숨결

[최종명의 중국 산책] 천생삼교와 용수협지봉, 인상무륭 공연

 

인천공항에서 4시간이면 충칭에 도착한다. 충칭 동남부 무륭武隆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만든 자연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도시다. 다른 직할시인 베이징, 상하이, 텐진과 비교해 면적이나 인구가 가장 넓고 많다. 충칭 공항에서 무려 200km 떨어져 있어 3시간 더 걸린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천생삼교天生三를 먼저 찾아간다. 무륭을 유명 관광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지질 구조의 변화로 깊은 협곡이 생겼다. 하늘이 뚫린 듯 보이는 구멍이 셋이다. 그래서 대신에 이라고도 부른다. 천갱 셋은 모두 300m가 넘는다. 승천하는 용을 비유해 천룡교, 청룡교, 흑룡교로 이름을 지었다. 협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그만큼 깊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영화 트랜스포머形金에 등장하는 로봇 모형이 보인다. 검은색과 샛노란 색이 어우러진 모습인데 파란 하늘 아래 있으니 더욱 선명하다. ‘아바타에 장가계 절경이 등장하듯 트랜스포머 4’에는 천생삼교의 협곡을 배경으로 로봇의 질주가 펼쳐진다.

 

엘리베이터가 하강한다. 다시 계단 따라 내려가면 기나긴 협곡이 나타난다.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건물이 보인다. 영화 팬이 아니면 그저 평범한 건물이다. 왜 협곡에 있는지 의문만 생길 뿐이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초록의 나뭇잎에 둘러쌓인 천복관역天福官驿이다. 619년 당나라 시대 처음 생긴 역참이다. 예로부터 북쪽으로 장강과 이어지고 남쪽으로 구이저우로 가는 길 위의 거점이었다. 행정 업무로 이동하는 사람과 말을 위한 객잔이었다. 천룡교를 통해 내리쬐는 햇볕이 천복관역 깃발을 비추고 있다.




 

정면 2층 건물에 황금갑黄金甲 현판이 눈에 띤다. 마당에는 모형으로 만든 말이 당장이라도 질주할 듯하다. 전시관에는 천복관역에서 촬영한 영화를 방영하고 있다. 국화 향기 만발한 도성으로 진군하는 황금 갑옷의 물결이 연상되는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황후화라는 영화 제목으로 소개됐다. 세계적인 거장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이 베이징올림픽 직전 개봉한 영화다원래 제목은 ‘만성진대황금갑满城尽带黄金甲’이다직역하면 ‘도성 천지에 황금 갑옷으로 물드네’라는 뜻이다. 천복관역 뒷산에서 자객들이 밧줄을 타고 수직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협곡을 따라 질주하며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천생삼교의 진짜 모습을 적나라하게 잘 드러냈다.

 

중국에서 개봉 당시 엄청난 인기와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인기 배우인 저우룬파와 궁리, 류화와 저우제룬까지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주목받았다. 온통 국화 향기로 수 놓은 궁전이 기억에 남는다. 황금 갑옷을 입고 국화가 핀 도성을 향해 진군하는 저우제룬의 반란은 실패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다. 제목과 국화를 연상하면 떠오르는 시가 한 편 있다. 당나라 말기 황소가 지은 부제후부국不第后赋菊이다.

 

가을 오면 구월 파일 애써 기다리는데활짝 국화 피면 다른 꽃 모두 시드네.

눈부시도록 장안에 꽃향기 자욱하니도성 천지가 황금 갑옷으로 물드네.

待到秋来九月八我花开后百花杀冲天香阵透长安满城尽带黄金甲

 

시를 보면 영화와 사뭇 닮았다. 송나라 역사가 장단의张端义가 집필한 당송 시대 인물 기록인 “귀이집贵耳集에 따르면 황소는 어릴 때부터 시 짓는 재주가 뛰어났다과거에 응시했으나 거듭 낙방해 수도 장안을 떠나며 남긴 시라고 전해진다. 자신의 심정을 국화에 감정 이입했다. 자신의 운명을 예언처럼 노래했다. 황소 민란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중양절은 가을 국화가 한창일 때이며 성대한 축제 기간이다과거에 뜻을 이루지 못한 한탄, 국화만 활짝 피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져가는 존재라고 읊고 있다. 영화 황후화가 황소의 시와 연상되니 작은 비문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이 그려낸 멋진 동굴과 바위, 폭포가 환상적이다. 천룡교 지나 청룡교와 흑룡교까지 천천히 걷는다. 넓은 광장에 도착하니 트랜스포머 로봇이 하나 더 있다. 온통 새까맣다. 입구 쪽 로봇과 비교해 보면 아마 다른 주인공일 듯 싶다. 영화에서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 알리라. 협곡을 봤으니 영화를 보면 훨씬 실감 나지 않을까? ‘아바타본 다음 장가계 본 사람을 알리라. 몇 배는 더 생생한 풍경에 환호하지 않았던가?



 

카르스트 지형이 선사한 거대한 구멍은 협곡을 비추는 조명이다. 비가 내리거나 흐리면 어둠 속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흑룡교를 지나는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 줄 알았다. 워낙 높은 지점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라 마치 비가 오는 착각이 생긴다. 가랑비가 참으로 우아하다고 느꼈을 정도다. 도랑이 흐르고 자그마한 호수도 있다. 협곡을 뚫고 자란 이끼는 푸르고 바위를 뚫은 나무는 암석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용천동龙泉洞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도랑을 만든다.

 

천생삼교도 절경이지만 용수협지봉도 대단하다는 소문이다. 바로 옆 10분 거리다. ‘하늘로 오르는 구멍을 다리라 했듯이 땅이 갈라진 틈이란 뜻의 지봉도 동의어다. ‘용이 물을 뿜는 협곡에 있다니 대단한 칭찬이다. 여기도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래로 내려가면 먼저 지하암하地下暗河가 흐르는 동굴과 만난다. 동굴로 들어가면 점점 어둡고 바위 밑으로 물이 흐른다. 습기가 많아 초록 이끼가 동굴을 덮고 있다. 협곡을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양쪽으로 만든 잔도를 따라 이리저리 다 살피며 걷는다. 깊은 협곡이라 길마다 여기저기 온사방에서 작은 물방울이 얼굴을 살살 간지럽힌다.

 

선학목욕仙鹤沐浴, 은하비폭银河飞瀑, 공작개병孔雀开屏을 차례로 지나간다. 카르스트 협곡이 창조한 선물은 선학과 공작, 은하수를 상상하게 해준다. 옥천주렴玉泉珠帘에 가까이 갈수록 환호성이 점점 조금씩 크게 들린다. 엄청난 속도로 쏟아지는 폭포는 모든 소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폭포와 경쟁이라도 하듯 크게 소리를 질러야 후련해진다. 아무리 외쳐도 수만 년을 한 목청으로 쏟아내린 폭포를 이길 수 있으랴? 워낙 빠르게 쏟는 폭포는 물이 아니라 그저 하얀 커튼이다. 그렇게 어울리는 작명이다.



 

4km에 이르는 긴 협곡이다. 거의 전 구간을 이어 만든 계단을 따라 편안하게 구경한다. 기암괴석도 많아 나한罗汉, 玉龟, 정원과 연못도 있으니 도원桃园, 용담龙潭을 따라 신선놀음하듯 상쾌한 시간이 이어진다. 나한에 합장하고 보물 같은 거북이에게도 인사한다. 복숭아도 따 먹고 용이 사는 연못도 상상한다. 용수협은 신비롭고 다양한 풍광을 선보이는 협곡이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도원대협곡桃园大峡谷에서 아름다운 무대가 열린다. 장이머우 사단의 실경무대극 인상印象 시리즈 중 하나다. 바로 인상무륭이다. 천생삼교와 10분 거리니 가깝다. 인상 공연은 2004년 양숴阳朔에서 좡족 전설을 주제로 만든 인상유삼저印象三姐를 초연한 이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 자연을 배경으로 현지의 전설 등을 멋진 산수화로 창조했다. 현지 주민이 직접 무대에 참가하는 제작 방식은 중국적이고도 세계적인공연 문화를 창조했다. 윈난의 인상여강”, 저장의 인상서호”, 푸젠의 인상대홍포등은 지금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카르스트 협곡을 배경으로 제작된 인상무륭에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주축이다. 장강 지류에서 활동하던 뱃사공의 영치기를 뜻하는 하오즈가 대표적인 주제다. 충칭을 상징하는 맛인 마라훠궈麻辣火와 아가씨가 시집가는 출가出嫁도 있다. 20163월 첫 무대를 열자 기대 이상의 큰 호평을 얻었다. 배우마다 연기도 멋지지만, 단체로 등장하는 무용과 율동도 박진감 넘친다. 어두운 협곡를 거대한 배가 떠다니는 장면은 첨단 홀로그램으로 구현해 독창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무대가 열리면 연로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대화를 시작한다. 지금은 사라진 섬부, 밧줄로 배를 끌고 상류로 오르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담는다. 온힘을 다해 하류로 갔던 배를 다시 끌고 상류로 오르는 일로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다. 아버지의 회상이 시작된다. 거친 노동이며 치열한 전투다. 조명과 율동, ‘하오즈를 외치면 감동의 물결이다. ‘영치기 영차외치면 관객도 덩달아 소리를 지르게 된다.





맵고 얼얼해 한국 사람도 좋아하는 마라훠궈를 자랑하는 장면은 살짝 난타공연을 연상시킨다. 최신 음악을 반주로 요리 도구를 두드린다.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경쾌한 장면은 그야말로 땀 흘리며 마라훠궈 먹는 순간 그 자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타악기 리듬에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 그러다가 차분해지기 시작하는데 시집가는 아가씨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전날 밤 어머니와 애뜻한 시간을 보낸다. 부모의 마음을 지닌 관객을 곧바로 눈물을 훔친다. 효도는 미움도 사랑으로 바꾸는 가치를 지녔다. 시골 풍광을 연출하기 위해 소나 오리도 음메하고 꽥꽥거린다.

 

무대 마지막은 텔레비전이 장식한다. 배우는 머리에 화면을 쓰고 있다. 배를 끌고 오르는 아버지, ‘하오즈외치는 자료화면이 담겼다. 우리 모두 지난 세대의 고난을 기억하자는 사회자의 안내말이 흘러나온다. 공감과 감동으로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양숴, 항저우, 리장, 우이산 등에서 인상 공연을 봤다. 오히려 주제나 구성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 속 심금을 울리고 추억을 쌓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래 기억될 무대다.

 

최종명 중국문화 작가 및 강사

崔钟名 中国文化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