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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촌 용척 다랑논 보고 계림산수 우룡하 쪽배 유람

[최종명의 중국 산책] 용척제전과 계림산수

 

인천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면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 구이린桂林까지 4시간 조금 지나 착륙한다. 구이린 북쪽에 룽성각족자치현龍勝各族自治縣이 있다. 소수민족이 너무 다양해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이 없기에 민족연합 형태로 자치를 추구한다. 그래서 각각이란 뜻이다. 두 군데가 있다. 또 하나는 룽린각족자치현隆林各族自治縣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광시에 있다. 룽성에는 다랑논으로 유명한 산골 마을이 많다. 구이린에서 약 1시간 30분 가량 이동하면 용척제전脊梯田 입구다. 용척은 용의 등뼈를 말한다. ‘는 사다리, ‘제전은 다랑논이다.



 

관광 차량을 타고 20분 가량 오르면 황뤄 마을이 나온다. 장발로 유명한 야오족이 산다.  머리카락이 1m가 넘는 여성이 많다. 다랑논으로 가려면 꼭 지나야 한다. 도랑에서 머리를 감는 모습을 보려면 축제 때나 가야 한다. 이 마을에서 점심을 먹는다.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머리카락을 꽁꽁 묶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키만큼 긴 머리카락을 푼 아가씨 포스터가 벽에 걸려 있다.

 

곡예를 하며 산길을 30분가량 오르면 평안촌平安村이 나타난다.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은 좡이다. 2010년 인구조사 기준 1,700만 명이다. 좡족 마을이자 랴오() 씨 집성촌이다. 다랑논 풍광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찾아간다. 2013년에 처음 맺은 단골 객잔으로 간다. 매년 가지만 단 한번도 바꾼 적이 없다. 산 능선 마을 복판에 있는 객잔 용원각龍源에 도착한다. 주인은 언제나 친동생처럼 응석을 부린다.




서둘러 다랑논을 보러 나선다. 산골 마을인 데다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찾아가기 쉽지 않다. 초행자는 팻말을 잘 찾으면 된다. 골목에는 짐을 싣고 오르내리는 말이 많다. 빨간 바가지를 들고 뒤따르는 마부 덕분에 배설물이 바닥에 남지 않는다. 논 사잇길을 따라 오른다. 위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골고루 논마다 파고든다. 햇볕이 수면을 비추면 논은 반짝거린다. 아래로 시선을 두면 반대쪽 능선에 오밀조밀하게 살아가는 마을이 보인다. 땀이 조금 나고 호흡도 가쁘면 관망대에 도착한다.





 

구룡오호五虎, 누가 지은 이름인지 몰라도 100점이다. 용 아홉 마리, 호랑이 다섯 마리. 도대체 어디가 용이고 어디가 호랑이인지 일부러 찾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늘씬하게 뻗은 다랑논에 현혹돼 감탄사만 연발한다. 다랑논 사이를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이는 다랑논이 구룡이고 오른쪽 능선에 마을까지 보이는 다랑논이 오호다. 이소룡이 1970년 만든 영화 용쟁호투가 생각난다.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장면을 상상해보지만 신화에도 둘이 함께 등장하지는 않는 듯하다. 날씨가 좋고 다랑논에 물이 흥건하면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구룡오호에서 마을 뒷산에 있는 언덕길을 따라간다. 좁지만 평탄한 길이어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고개를 몇 개 돌아 20분 가량 걸으면 칠성반월七星伴月 다랑논에 이른다. 북두칠성이 보름달과 짝을 이룬 모양이다. 작명의 천재다운 발상이다. 한가운데 물에 잠긴 동그란 다랑논 하나는 달이다. 별처럼 생기지는 않았어도 볼록하게 솟은 다랑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모두 일곱 개다. 전체로 관망해야 다랑논의 장관이 보인다.



 

마을을 출발해 구룡오호를 거쳐 언덕을 따라 칠성반월에 이르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객잔을 찾아가는 길이 복잡하다. 계단처럼 집을 짓다 보니 골목도 여러 갈래다. 따로 시장이 없어서 골목에서 할머니가 채소를 팔기도 한다. 대나무 안에 밥을 넣고 불을 지핀다. 죽통밥竹筒 피우는 연기가 수북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온 마을에 대나무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통이 아주 굵어 아이들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다.

 

평안촌에 오면 죽통에 넣는 재료를 미리 알려준다. 쌀과 찹쌀이 기본 재료다. 현지인은 고기를 넣어야 맛있다고 한다. 무조건 돼지고기는 뺀다. 버섯과 연근, 옥수수만 넣는다. 주인은 언제나 그렇게 준비한다. 저녁은 토종닭 샤부샤부다. 마당에 돌아다니던 닭 중에 하나다. 손질된 닭에 버섯과 생강만 넣고 푹 삶는다. 닭고기를 먼저 먹고 골목 할머니에게 산 채소를 넣는다. 죽통밥과 함께 먹으면 꿀맛이다. 주인은 죽통밥을 내주고 먼저 집으로 들어간다. 밤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워도 좋다. 졸리면 2층으로 올라가 꿈나라로 가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청정구역이 따로 없다. 운무가 서서히 거치면서 다랑논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침에도 죽통밥을 먹는다. 상큼한 대나무 향내가 난다. 주인과 작별 인사를 한다. 언제나 내년에 보자고 인사한다. 주인은 언제나 아무 말없이 웃는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시조전始祖田을 만난다. 원나라 시대 처음 개척했다. 650여 년 전 다랑논을 만든 조상의 피와 땀을 담은 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 800년 전 남송 시대부터 유행한 말이다. 구이린 풍광이 천하제일이라는 극찬은 지금도 유효하다. 구이린 여행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계림 산수에 가면 언제나 양숴陽朔에서 대나무 뗏목을 타고 유람을 즐긴다. 굵은 대나무 10개를 엮어 만든 배를 주파竹筏라고 한다. 으로 흘러드는 지류인 우룡하는 낭만적인 유람에 최적화돼 있다. 43km에 이르는 강은 이강만큼 넓지 않고 잔잔하다. 카르스트 봉우리도 많아 계림 산수분위기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룡하에는 주파가 출발하는 부두인 마터우碼頭가 많다.

 

2007년에 처음 탔을 때는 위룽허 하류 쪽인 차오양朝陽 마터우를 출발해 궁농챠오工農橋까지 탔다. 8월이라 더웠지만 한가한 분위기였다. 젊은 연인은 수영복을 입고 타고 레프팅을 하듯 물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사설로 운영할 때 가능한 일이었다. 강물 위에서 수상 포장마차가 있어 옥수수나 생선을 구워 팔고 맥주도 팔았는데 지금은 보기 어렵다. 물에 빠져도 수심이 깊지는 않아 위험하지 않다. 그런데 사고가 나려면 접시물에도 코 빠트린다는 말도 있다. 1년에 한 명꼴로 사망 사고가 난다. 홍수가 나면 위험하다. 이제는 정부가 뱃사공과 부두, 주파까지 관리한다.




 

정부가 관리하면서 요금도 통일이 됐다. 뱃사공은 수입이 줄어들자 단체로 불만을 표시했던 듯하다. 뱃사공은 고유번호가 있고 명찰도 패용한다. 최근에는 진룽챠오 마터우에서 출발한다. 표를 받아 입장하면 뱃사공이 지정된다. 뱃사공을 따라가서 주파 위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으면 된다. 21조다. 혼자 타면 2배 요금을 내야 한다. 부두에 다리를 걸친 주파가 진풍경이다. 구명조끼를 입으니 울긋불긋하다. 덥거나 비가 오면 커다란 우산도 펼친다.

 

서서히 출발한다. 카르스트 지형인 봉우리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기대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고요한 강물 위를 유유히 흐른다. 그저 노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가끔 뱃사공은 노래를 불러준다. 물총으로 아이들이 장난도 친다. 물총을 당겨 물을 가득 담아 쭉 쏘면 뻗어나간다. 하나씩 가지고 타는데 옆사람과 물싸움도 하고 누가 멀리 물을 뿜는지 내기도 한다. 강변에 있는 나무를 표적으로 쏘기도 한다.

 

뱃사공은 힘이 들지도 않나보다. 긴 노를 강바닥을 이용해 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의자에 앉아 신선처럼 그저 몸을 맡기면 된다. 몇 군데 강둑이 있다. 경사가 제법 가파른 지점을 통과하기도 한다. 뱃사공의 주의사항을 듣자마자 풍덩 빠진다. 이때 신발이 젖지 않으려면 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놀라는 모습이 제각각 재미있다. 멀리서 표정을 찍어서 사진을 판다. 자기가 모르던 표정이 나오면 구매한다. 사지 않아도 무방하다. 거꾸로 오르는 배도 있다. 자동으로 대나무를 흡착해 올려주는 컨베이어 장치를 타고 넘어간다.

 

우룡하는 끊임없이 반영을 선보여준다. 빨래하는 아주머니, 강변에 노는 물오리와 나무, 가끔 보이는 집도 물속으로 들어온다. 가깝거나 멀어도 봉우리도 여지 없이 등장한다. 긴 노를 젖는 뱃사공도 여행객과 함께 스치듯 지나는 모습도 반영된다. 그야말로 자연이 주는 데칼코마니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까지 유람할 수 있다. 도착 지점이 다소 다르지만 보통 주센舊縣 마터우에 내린다.



 

여행객이 내리자 뱃사공도 웃통을 벗고 부두에 따로 모이는 장소로 이동한다. 주파를 다시 상류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긴 주파를 강에서 끌어올려 차에 싣는다.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는 일이 보통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차에 올린 다음 다시 노를 이용해 여러 명이 영차 소리 내며 밀어올린다. 힘겨워 보인다. 그래도 다시 주파가 이동해야 또 일당을 받을 수 있으니 모두 힘을 합친다.

 

한국에는 없는 풍광이다. 구이린에 가면 가장 여행다운 맛이 나고 계림 산수가 주는 낭만을 제대로 즐기자. 대나무 쪽배 타고.

 

최종명 중국문화 작가 및 강사

崔钟名 中国文化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