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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에서의 하룻밤, 서태후와 광서제는 서로 돌리는 사이?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70> 허베이 서부 ① 장자커우 계명역과 난천고진

 

1421년 명나라 영락제가 베이징 천도를 선언했다. 수도 방위를 공고히 하고 몽골 민족의 남하를 방어할 목적으로 경사북방선(京師北防線)을 구축했다. ‘경사’는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 ‘수도’라는 뜻이다. 만리장성 관문인 거용관(居庸關) 바깥으로 요새, 보루, 봉화대를 세웠다. 북방선 남쪽으로 자연스레 군사도로이자 무역로가 생겨났는데 경사북로(京師北路)라 부른다. 이 길을 따라 이자성 민란 군대가 하늘을 찌를 듯 깃발을 펄럭이며 수도로 진군했고 몽골계 오이라트 부족을 정벌하러 청나라 강희제의 전마(戰馬)가 출정했다. 1900년 8월 15일 새벽, 서방 8개 연합군이 침공하자 자금성을 다급하게 떠난 서태후와 광서제의 도피 노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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