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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59] 리장 고성의 낮과 밤, 설산 승마

따리(大理)에서 리장(丽江)까지는 버스로 약 3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터미널에서 세계문화유산인 리장고성(丽江古城)까지는 택시로 10분이면 도착한다. 고성에 도착하자마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독특한 모습에 우선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8월 2일, 서양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세계여행지 중 하나라는 리장에 도착했다. 낭만적인 정서가 묻어나고 이국적이라는 말이 저절로 뱉어 나오는 곳. 성곽도 없이 고성이라 하는 거리마다 그야말로 공예품이 풍요롭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충분하며 여행자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소수민족인 나씨족(纳西族)의 터전으로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나씨쪽은 장족(羌族)에 속하는 계파로 서기 3세기 경에 리장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무교(巫教)인 동바교(东巴教)를 신봉해 동바경(东巴经)이 전해지며 고유한 상형문자인 동바문자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예전에 리장을 여행한 후배가 티셔츠에 동바문자를 새겨 선물로 줬는데 너무 예뻤기에 나씨족의 아름다운 문자를 직접 볼 기회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고성에 있는 한국인 숙소를 찾아 방을 잡고 바로 나들이에 나섰다. 아침, 오후, 밤 모두 아름답다는 고성. 여행자들로 넘쳐나는 고성의 오후를 먼저 만났다. 쾌활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좁은 골목길에 볼거리, 먹거리도 많고 사람도 많아 진풍경이 많아서 일 것이다. 남쪽에서부터 걸어서 고성의 중심지이기도 한 쓰팡제(四方街)까지 찾아가는데도 지도를 몇 번씩 봐야 할 정도로 복잡하다.

리장(丽江) 고성의 쓰팡제는 넓은 광장이고 중심이기도 하다. 고성 골목과 거리가 아주 좁은데 비해 넓은 공간이니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여행을 만끽한다. 나씨족 복장을 입고 사진 찍는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애교 넘치는 포즈로 사진을 찍은 중국사람들이 많다. 아가씨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남자들. 중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다 똑같다. 게다가 원을 그리고 남녀노소, 중국인 외국인 함께 어울려 제기를 차면서 노는 모습도 아주 진풍경이다.

  
리장고성의 공예품들
ⓒ 최종명
리장

하루 종일 감상해도 모자랄 공예품과 지역 특산품

해가 지고 저녁 무렵이 되니 식당과 레스토랑, 술집은 호객에 여념이 없다. 여행객들을 유혹하려는 몸짓과 노래도 이곳에서는 귀찮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움이다.

동바(东巴) 문자를 캐릭터로 만든 물건뿐 아니라 이국적인 공예품과 지역 특산의 먹거리도 재미있다. 눈이 가는 곳마다 공예품 가게가 빛이 난다. 색감도 은근하고 채색도 포근하다. 아기자기한 모양도 예쁘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독창적인 구성도 대부분이니 눈 돌릴 틈이 없다. 이러다가는 하루 종일 감상해도 모자랄 듯하다.

밤이 되면 어둠과 하늘, 하천과 홍등이 어울려 환상적인 데이트 코스가 되기도 하는 곳. 원래 이 고성은 약 800여 년 전 구축된 곳인데 당시 통치자의 성이 목(木)이었기에 사방으로 성곽을 쌓게 되면 곤(困)자가 되니 길한 모양이 아니었기에 성곽 없는 고성이 되었다 한다.

이 곳은 당송(唐宋) 시대 이래 차마고도(茶马古道)의 윈난성 서북지역의 상업 중심지로 각광 받았다. 고성의 모습이 푸른 빛이 도는 벼루(砚)의 형상을 닮아 따옌(大研)이라 하는데 ‘研’과 ‘砚’은 동음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래서 이 고성을 따옌 고성이라고도 한다.

  
불타는 듯한 리장고성 마을의 모습
ⓒ 최종명
리장고성

촛불을 태운 종이배에 소원을 담아 보내고

리장을 말하지 않고는 여행자들이 왜 여행을 하는지 진정 알기 힘들다. 이곳 리장 고성이야말로 아무리 오래 있어도 질리지 않는 묘한 기운이 숨쉬고 있다고 느껴진다. 비록 인공적이긴 해도 그 생기를 북돋우는 것은 홍등이다. 고성 안에는 아주 작은 하천이 흐르는데 홍등은 졸졸 흐르는 물에 반사돼 더욱 화사하게 사람을 흥분시키는 매력을 발산한다.

스팡제에서 북쪽으로 난 길 씬화제(新华街)를 따라 걸었다. 가운데 흐르는 하천 왼편이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성 저수지(水库)에 또 하나의 광장이 있다. 나무로 만든 풍차와 홍등 빛이 만발해 더욱 빛나는 집들이 불이 난 듯 장관을 이룬다.

다시 하천 오른쪽 길인 동따제(东大街)를 따라 내려오면 촛불을 태운 종이배를 띄우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10위엔 주면 종이배에 소원을 담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둠 속에 영롱한 불빛을 담아 하천을 흐르는 수많은 종이배는 어디에선가는 멈추겠지만 영원히 흘러갈 듯한 마음을 담은 것처럼 선명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리장고성을 흐르는 작은 하천 주변으로 홍등이 걸려있다. 이 하천에 종이배도 띄워보낸다. 주변에는 식당과 술집이 즐비하다
ⓒ 최종명
리장고성

낭만 가득한 아름다운 밤은 그렇게 지나고

솔로로 와서 연인이 되기에 충분한 낭만적인 여행지로 책자마다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동행에게 말하니 "혼자 올 걸 잘못했다"고 한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술집마다 기타 소리를 빌려 사랑을 담으려는 듯하다. 서양인들이 아주 많다. 그들은 이런 낭만을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서 이곳까지 온 것일 터이다. 점점 밤이 깊어가지만 홍등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그렇게 리장의 첫날, 아름다운 밤이 지나간다.

숙소에 와서 혼자 여행 온 여대생과 셋이서 이곳에서도 역시 싸고 맛있는 사과, 망고를 안주로 맥주를 마셨다. 왜 혼자서 중국여행을 하는가. 이것이 화제였는데 나야 그렇다 치고 혼자 여행 오는 여자들이 참 부럽기도 했다.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8월 3일, 리장(丽江) 고성에서 서북쪽으로 15킬로미터 거리에는 적도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의 설산이 있다. 위룽설산(玉龙雪山) 최고봉은 해발 5596미터에 이르고 멀리서 산 정상을 보면 하얀 눈이 일년 내내 덮여 있다고 한다. 아열대부터 한대에 이르는 기후조건을 다 갖춰 온갖 식물자원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3시간 가까이 말을 타고 올라가야 정상 부근 평원에 도착할 수 있다. 가파른 길을 승마로 오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신난다. 마침 날씨도 쾌청했다. 마부가 앞에서 줄을 잡고 끌어주기는 하지만 말들도 이미 수없이 올랐을 것이니 저절로 잘 오른다.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오르니 자꾸 몸이 앞으로 숙여지는데 허리가 꽤 아프다. 말들은 질퍽한 길에도 스스로 만들어둔 발자국을 따라 차분히 그러나 가끔은 껑충껑충 오른다. 말을 타고 있으니 높이 열리는 잣나무 열매가 손에 닿기도 한다.

저 배고픈 말을 다시 타야 하다니…

  
설산을 오르는 말, 고원의 한 초원에서 쉬고 있는데 입을 마개로 가렸다
ⓒ 최종명
설산

산 중턱에 있는 호수도 낭만적이다. 치마창(骑马场)에서 출발해 1시간 30분 가량 올라가니 잔잔한 호수인 까오위엔후(高原湖)가 나타난다. 호수 물을 막아 저수지이니 아마도 식수원이지 싶다. 호수에 비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U자의 산 능선을 따라 서로 대칭인 모습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다시 1시간 정도 숨가쁘게 올라가니 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실제로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는 곳은 해발 4680미터 지점이다. 가파른 산길을 힘차게 오르는 말 위에 앉아 약간 힘이 들지만 색다른 풍경이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윈삔린(云彬林)을 거쳐 윈삔차오핑(云彬草坪)에 당도한 것이다. 평지인 초원에서 1시간 정도 휴식했다. 작은 간이 식당에서 파는 계란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초원에는 예쁜 꽃밭이 있다. 연분홍 빛깔의 꽃이 녹색 초원에 한점 한점 붓 칠을 한 듯하다. 옆에는 개와 닭들이 졸음에 겨워 졸고 있고 힘들게 올라온 말들도 잠시 힘을 비축하고 있다.

그런데, 불쌍하게도 말들은 모두 입 주둥이를 마개로 가려놓았다. 밥도 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물어보니 이름 모를 독초들 때문이라고 한다. 허망하게 풀을 뜯고 있는 말의 모습이 가련해 보인다. 저 배고픈 말을 다시 타고 내려가야 하다니.

승마 트레킹 온 사람들에게 버섯 류의 고산 약초를 파는 소수민족 아주머니 손을 보니 참으로 촌스럽다. 동행이 손을 잡아보고 싶다고 하니 스스럼 없이 손을 내준다. 예부터 리장은 약초 생산지로 유명하다.

  
설산 정상 부근 고원 초원의 약초 파는 나씨족 아주머니의 손
ⓒ 최종명
설산

다시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말들이 더 힘들어 보인다. 힘이 좀 들 법도 한데 역시 말들의 마력은 정말 가상하다. 하산 길에 만난 작은 동굴 쏀런똥(仙人洞)에서 본 하늘, 그리고 햇살과 나뭇잎이 조화를 부린다. 설산을 내려가면서 바라본 하늘, 구름, 호수도 볼 만하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현존 상형문자

다시 리장(丽江) 고성으로 돌아왔다. 나씨(纳西)족의 언어인 동바(东巴) 문자를 본격적으로 찾아볼 생각이다. 동바 문자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현존하는 상형문자 체계를 지니고 있다. 사람의 행동이나 자연의 여러 형태를 형상화한 독특하고도 아름답기 그지 없는 문자이다.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이 문자는 이보다 더 세련된 폰트디자인이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티셔츠에 동바 문자로 '행복' '사랑' '장수' 등을 새겨준다. 게다가 이름도 써주기도 한다. 고르고 골라 한 가게에서 '행복한 가정'이란 의미를 담은 글씨와 그 아래 '여우위에'(有约)라는 닉네임도 새겼다.

파란 바탕색 옷에 나씨족을 상징하는 세가지 색, 마치 암호 같기도 하고 원초적 느낌을 구현한 듯한 글자다. 아무 배경이 없는 옷에 물감을 묻혀 붓칠을 하고 드라이기로 말리고 하면서 30분 만에 훌륭한 '나만의 옷'이 탄생했다. 자주색 옷에 아들 이름을 새긴 것도 하나 샀다. 티셔츠와 새기는 것 포함 각각 30위엔.

  
리장 고성에서 동바문자로 새긴 아들 옷
ⓒ 최종명
리장

'여우위에 13억과의 대화'

옷을 새긴 후 찾아간 곳은 종이를 만드는 제지 공장인 동바즈팡(东巴纸坊)이다. 공장이라 하기에는 작은 가게인데 직접 종이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종이의 재료를 끓이면서 나는 연기가 자욱하다. 입구에는 직접 제지한 종이로 만든 제품들을 판매한다. 지도, 사전, 책, 엽서 등 종이로 된 제품들이 다양하다.

10장 묶음으로 된 아름다운 리장고성의 사계절 풍광을 담은 우편엽서를 하나 샀다. 그랬더니 나씨족 할아버지가 엽서에 이름을 써주겠다고 한다. '여우위에 13억과의 대화(有约 十三亿对话)'를 동바문자로 멋지게 써준다. 이어 날짜를 쓰고 자신의 관인까지 찍어준다.

  
직접 제지한 종이로 만든 우편엽서에 쓴 닉네임 '여우위에'와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동바문자
ⓒ 최종명
동바문자

동바문자 쓸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고

동바문자는 1867년 프랑스 선교사가 처음으로 서방세계에 알렸다. 이후 이 아름답고 지극히 직관적인 상형문자가 유명해졌다. 동바문자연구소(东巴文化研究所)에서는 지금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리장 고성에서 북쪽 10여 분 거리에 있는 헤리룽탄(黑龙潭)에는 연구소와 함께 동바문화박물관이 있다. 동바문자와 동바화(画), 동바조형물들이 전시돼 있다.

아쉬운 것은 나씨족 인구가 채 30만 명 정도로 소수인데다가 점점 이곳 리장에서도 한족의 입김이 거세져서인지 고성 내에서도 진짜 직접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족들은 사전을 펴놓고 그야말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동바 문자를 직접 써주는 나씨족 할아버지. 다른 가게처럼 동바문자 사전을 보고 한족들이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원조 동바문자를 받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동바궁(东巴宫) 부근에 있는 2층 찻집에서 차를 한 잔 마셨다. 멀리 산자락 위로 파란 하늘이 있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가옥들 지붕이 보인다. 창문 밖 경치가 사뭇 고풍스럽다. 창 틀에 한 쌍의 동그란 펑링(风铃)이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

  
리장고성 2층 찻집에서 바라본 고성 모습, 작은 펑링 한쌍이 바람이 부니 뎅그렁 정다운 소리를 낸다
ⓒ 최종명
리장고성

한달 이상 체류해야 둘러볼 수 있는 있는 주변 볼거리들

고성 내에는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옛 궁전이나 관청, 옛집도 있고 돌다리와 석방(石坊), 연못도 있고 누각도 있으며 객잔(客栈)도 많다. 다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게다가 고성 남쪽에는 서민들의 재래시장인 쭝이시장(忠义市场)도 있다. 골목 이름도 있고 거리 이름도 있다 좀 큰 거리는 광이제(光义街)처럼 ‘제(街)’가 붙었고 골목 사잇길은 원화샹(文华巷)처럼 ‘샹(巷)’자도 붙는다. 거리를 오후 내내 둘러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리장 부근에는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 많다. 다 둘러볼 시간이 없어 너무 아쉬웠다. 동북쪽으로는 가면 해발 2600미터의 아름다운 호수인 루구후(泸沽湖)와 진사강(金沙江) 주변에 모계씨족 사회의 모습을 탐험할 수도 있고, 북쪽으로 가면 슈허꾸쩐(束河古镇)에 있는 동바계곡과 동바왕국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북쪽으로는 만리에 이르는 창장(长江)의 그 첫 번째 협곡이라는 후탸오샤(虎跳峡)와 장족(藏族) 자치주의 낙원 샹거리라(香格里拉)가 있고 연평균 기온 15도의 아름다운 호수 슈두후(属都湖)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놓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아예 한달 이상 체류하면서 소수민족의 정취와 풍부한 자연 속에 푹 빠져봐야겠다는 꿈을 꿔도 좋으리라 싶다.

다음날 오전 버스 출발시간이 약간 남아 자전거를 빌렸다. 고성에서 북쪽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수에 갔다. 아이들이 발가벗고 헤엄을 치며 놀고 있다. 푸른 하늘과 어울린 파란 호수가 산뜻하다. 맑은 하늘만큼 호수도 맑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고성 숙소로 돌아왔다.

마침 소수민족 나씨족 아주머니들이 동바무용을 추고 있다. 한꺼번에 둘러서서 빙빙 돌며 살짝 발을 내밀기도 하는 춤인데 낮이라 전통복장과 춤사위가 더 돋보인다. 마치 하늘과 구름을 품은 듯 옷 색깔이 참으로 맑다. 해맑게 웃는 아주머니들의 미소도 오래 기억될 듯하다. 독창적인 상형문자인 동바 문자 외에도 전통적인 춤사위인 '동바우(东巴舞)' 동바 무용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리장 고성이 아닐 수 없다.

  
전통복장을 입고 동바무용을 추는 나씨족 아주머니들
ⓒ 최종명
동바무용

볼수록 멋진 그림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동행이 한 그림가게 앞에서 걸음을 떼지 못하고 망설인다. 리장 고성의 4계절을 그린 조그만 그림이 꽤 정갈한 솜씨로 문 밖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살까 말까 망설이며 밤새 고민하더니 사기로 했나 보다.

좀 싸게 깎아 100위엔에 샀는데 볼수록 멋진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아주머니가 직접 오랫동안 그렸다는데 예술품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고성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취를 화폭에 잘 담은 수채화로 기념이 될 만하다.

밤에는 졸졸 흐르는 하천가에서 홍등의 화려한 불빛 아래 맥주를 마시고 낮에는 파란하늘 아래 고성과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 좋다. 거리에서 동바문화가 그윽한 공예품 가게에서 눈요기를 해도 좋고 길거리 음식 하나쯤 사서 입에 물고 거리를 활보하다가 광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제기를 차도 좋고 함께 사진을 찍어 인연을 만들어도 좋다.

  
리장고성 거리 벽면에 그려져 있는 다양한 문양의 동바문자
ⓒ 최종명
동바문자

여행의 참맛이란?

숙소에서 쿤밍에서 만났던 교감선생님 부부를 다시 만났다. 후탸오샤에서 방금 돌아온 길이라 한다.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찬이 자자한 사모님과 작별하고 우리는 다시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쿤밍으로 돌아가야 한다.

두 분은 함께 외국 여행이 처음이라 하는데 조금이라도 젊을 때는 좀 어려운 지역을 여행하고 더 나이가 들면 유럽을 여행하겠다고 했다. 내년에는 브라질 등 남미를 여행할 계획이라는데 함께 다정하게 다니는 모습이 너무 정겹다.

여행은 꼭 혼자 다니는 게 좋지도, 그렇다고 여럿이 다닌다고 꼭 즐겁지도 않은 것 같다. 여행의 참 맛은 역시 여행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가슴 속에 인생의 지혜를 담고 오는 것이 아닐까. 리장을 벗어나 국도를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낯선 풍경도 가슴에 묻으면 그것이 곧 여행의 행복이 아닐지 생각했다. 그렇게 서서히 밤이 깊어갔고 10시간을 달려 새벽까지 기나긴 여행의 꿈을 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