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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 고액권 지폐가 올해 상반기에 유통될 전망이다. 10만원권은 발행이 보류됐다고 한다. 도안이 문제가 되고 있는 모양인데, 혹시라도 좌우의 정치적 편향과 관련된 문제라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이니 잠시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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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한국은행)

지금의 고액권 발행 계획 당시에도 느낀 점이긴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여전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중국 실생활에서 광범위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20위엔이나 2위엔 지폐처럼 2천원권이나 2만원권을 발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던 것이다.

중국 출장을 갔을 때에도 그랬지만, 2007년 6개월 동안 중국을 취재여행하면서 중국의 인민폐, 그중에서도 우리와 색다르게 2위엔(元), 20위엔 지폐의 씀씀이가 꽤 편리했던 기억이 난다. 왜 우리에게는 2백원, 2천원, 2만원의 '개념'이 없을까.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하는 지폐(물론 동전도 있다) 중에는 20위엔, 2위엔, 2쟈오(角)가 있다. 각각 1/10의 가치이다. 이 지폐들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지만 실생활 거래에서 참 요긴하고도 편리했다.
 
1만원과 5만원 사이에 2만원이 있다면(또한, 1천원과 5천원 사이에 2천원이 있다면) 지폐 발행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 지도 모른다. 1만원과 2만원을 각각 사용하려면 지폐 한 장이면 된다. 3만원과 4만원은 모두 두 장이면 될 것이다. 5만원 한 장, 6만원과 7만원은 두 장, 8만원과 9만원도 기껏해야 세 장으로 해결될 수 있다. 2만원권이 없으면 4만원과 9만원은 모두 네 장을 지갑에 넣고 다녀야 한다.

거스름돈을 받을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단순히 지폐 한두 장이 유통에서 줄어드는 것외에도 '2'의 지폐가 있으면 유리한 점도 많다. 중국사람들은 돈을 유통할 때 2위엔이나 20위엔을 기가 막히게 잘 사용하고 있다. 그 사용 실례를 한번 보자.

10위엔 20위엔 1위엔 2위엔이 각각 한 장씩 모두 33위엔이 수중에 있다고 해보자. 이때 시장에 가서 1근에 7위엔 하는 과일을 샀다면 10위엔을 내고 거스름돈으로 1위엔과 2위엔 한 장씩 3위엔을 받게 된다. 그런데, 10위엔과 2위엔 두 장을 한꺼번에 주고 5위엔을 거슬러 받는다. 즉 12위엔을 주고 7위엔을 빼고 5위엔 한 장을 받는 것이다.

이제 20위엔, 1위엔과 5위엔이 남았다. 이번에는 야채를 12위엔 어치 사고 20위엔을 주면 주인이 5위엔, 2위엔, 1위엔 짜리 세 장을 거슬러 주면서 툭 던질 것이다. 중국에서는 돈을 던지는 경우가 많은데 곧바로 1위엔과 5위엔 지폐를 같이 던져주면 바로 주인이 10위엔과 2위엔을 되돌려준다. 이 과정이 거의 순간적으로 재빠르게 일어나는 것으로 봐서 오랫동안 익숙해진 행동이고 약속인 듯하다. 그래서, 수중에는 10위엔 한 장과 2위엔 두 장 모두 14위엔이 남았다.

이런 방식의 돈거래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 꼭 2위엔이나 20위엔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사람들은 우리가 10진법으로 빼는데에만 익숙한 데 비해, '2'를 기준으로 더하고 빼는데 모두 아주 능수능란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처음에 중국에 간 한국사람들이 이런 더하기 빼기에 익숙하지 않아 쓸데없이 상인들과 다투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돈을 던져서 주고받는 것에 자존심까지 상해 서러움을 느끼는 경우도 자주 있다.

사실, 중국사람들에게는 돈을 던지는 행위가 무례(우리가 보기에는 무례하다고 당연히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액수가 정확하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면 된다. 즉, 속이지 않는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또한, 물건을 빠르게 팔아야 하는 중국 상인들 입장에서 손님이 거스름돈을 받으러 오거나 하는 시간도 아까운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 앞의 예가 다소 작위적이긴 해도 2위엔이 있고 없고에 따라 돈의 흐름이 아주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사고 파는 회전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아마 이렇듯 더하고 난 후 거슬러 받는 형식이 아니라면 주머니에 온통 1위엔짜리 열네 장이 수두룩 할 지도 모른다.

중국사람들의 셈이 매우 빠르고도 정확한 것에 자주 놀라는데 아마도 그 이유가 이 2위엔짜리에 숨어있는 오랜 습성, 어릴 때부터 '2'를 고려한 셈 계산 비법이 아닐까 하고 상상한 적이 많다.

2위엔 두 장과 1위엔 네 장은 엄연히 다르다. 8위엔이 10위엔에서 1위엔 두 장을 빼는 것과 2위엔 한 장을 뺀다는 것과도 다르기 때문이며 4위엔이 5위엔에서 1위엔을 뺀다는 것과 6위엔에서 2위엔을 뺀다는 것과도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답은 같지만 푸는 과정이 다른 수학문제처럼 말이다.

장황하게 숫자 이야기를 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5만원권과 10만원권을 만들기 보다는 같은 값이면 2만원권과 2천원권도 만들면 좋겠다. 5만원권의 유통은 소비를 촉진해서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과소비를 조장하는 물건이 될지는 모르겠다.

요즘 음식점을 비롯해 수퍼마켓 등에서 몇천원도 카드로 결제가 가능한 판국에 사실 2만원권도 그 실제 활용이 어떤 화폐정책의 철학이나 경제운용의 고려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물며 5만원권 지폐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공연한 부담만 줄 지도 모른다.

기왕에 5만원권이 10만원 자기앞수표를 대신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하는데(실제로 그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10만원권 발행계획을 굳이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니 대신에 2만원권과 2천원권 발행을 추진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오늘 담배 한갑 달라고 하면서 5천원과 5백원 동전을 줬다. 3천원을 거슬러준다. 낯설어 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가끔 있다. 이렇게 하면 주머니도 가벼워지고 동전도 사라진다.

주머니 속에 5만원 지폐를 수두룩 지니고 다니기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은 아닐 지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의 '부유한' 정책들에 반감(고액권 발행계획은 이미 오래전 수립된 것으로 현 정부와는 무관)이 드는 요즈음 5만원권 발행 및 유통 예정 소식을 듣고 2만원권이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액권 지폐가 유통된다고 하니 심통인 지도 모른다. 중국사람들의 빠른 셈놀림이 오랫동안 부러웠던 것인 지도 모른다. '2'의 지폐가 있으면 실 생활에서 아주 편리할 뿐 아니라 더하고 빼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효율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차라리 2만원권(2천원권과 함께)을 발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