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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4 장쑤 2 4대 미인의 허리로 머리 빗을 만들다


 


 5) 양저우 州 대나무가 많은 중국 4대 정원에 있는 인공 돌산 


난징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양저우를 찾아갔다. 양저우는 서양 사람들이 창장(長江) 하류를 '양저우에 있는 강'이라는 뜻으로 양즈강(揚子江)이라 부르게 된 곳이기도 하다. 볶음밥의 대명사인 '양저우 차오판(炒飯)'으로도 유명하다. 


대나무와 돌산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정원인 거위엔(個園)으로 들어선다. 정말 정원 입구부터 각종 대나무들이 많이 심어 있다. 죽간이 곧게 뻗어 있는 대나무는 대체로 비슷해 보였는데 대나무의 종류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야말로 대나무 식물원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넓은 광장과 대나무로 그늘이 진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청나라 시대 염상(鹽商)이던 황지균(黃至筠)이 중건한 정원이자 사택이다. 이 정원의 이름은 죽엽의 모양을 딴 것이며 주인의 이름 중 균(筠) 역시 대나무 껍질이란 뜻이다. 


중국 옛말에 '고기를 먹지 못할지언정, 대나무 없는 집에서 살 수 없다'고 했고 '고기를 먹지 못하면 수척해지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저속하다'고 했다. 그러니 거위엔은 운치와 격조가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현판 글씨가 깔끔한 도서관인 총슈러우(叢書樓) 2층 창문을 온통 나무넝쿨이 감싸고 있다. 넝쿨이 창틀 사이를 헤집고 다니니 아담하면서 예쁜 건물이다. 책을 모아둔 곳에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기까지 넝쿨들은 힘찬 성장을 했을 듯하다. 


돌 벽돌로 쌓은 높은 담벼락을 따라 들어간다. 양쪽으로 열린 문을 따라 들어서면 두루 주거공간이다. 처마 밑에 걸린 와당(瓦當)에 녹(祿)자와 꽃 사슴 문양이 새겨 있다. 특히 녹자는 관리가 돼 돈을 벌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손님을 접대하기도 하고 집안 대소사를 논의하는 방인 칭메이탕(清美堂)을 지나 집안의 아이들이 공부하던 한쉬에탕(漢學堂)에 이른다. 이곳 와당에는 박쥐(蝙蝠)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아이들을 위해 복(福)을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 높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좁은 골목길이 보인다. 


이렇게 가옥을 사이에 두고 공간을 나눈 것을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훠샹(火巷)이라 한다. 골목에는 우물이 있고 앞 담은 벽돌을 반원형으로 쌓았다. 오랫동안 물을 긷게 되면 지반이 내려갈 위험이 있는데 아치형 반원으로 쌓으면 힘을 분산해 안전하다. 


칭쑹탕(清頌堂)은 집안 사람들이 다 모여 연회를 하거나 제례를 올리던 곳이다. 이곳 와당에는 복숭아가 새겨져 있는데 가족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다. 거위엔의 각 건물 와당은 모두 썩지 않는 녹나무(楠木)로 만든 것이다. 


좁은 복도를 지나 가니 대나무가 푸릇푸릇 자란 정원이 나오고 빙 둘러 담벼락이 둘러 있는데 그 사이로 둥근 문이 하나 있다. 문 위에는 연한 초록색으로 ‘거위엔(个園)’이라고 써 있다. 바야흐로 멋진 정원에 다다른 것이다. 


정원 입구에 있는 이위쉬엔(宜雨軒)은 손님들의 숙소이기도 하고 민속 악기 연주를 하던 곳이다. 옆에는 인공으로 만든 작은 돌산과 연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연못이 있으니 연주를 들으며 풍류를 즐기던 곳인가 보다. 



화재 방지 훠샹(왼쪽), 총슈러우(오른쪽 위), 거위엔 홍등(오른쪽 가운데), 가짜 산(오른쪽 아래)


중국 정원에는 대체로 인공으로 만든 자산(假山)이 있다. 꽃과 나무를 보면서 햇살을 맞으며 산책하는 곳이다. 돌들을 쌓아서 만들어 비록 높지는 않더라도 구불구불 미로처럼 곡선으로 연결해 놓아 걸어서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된다. 매일 집안에만 갇혀 살던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다이어트 방법인 셈이다. 


바오산러우(抱山樓) 누각에는 병천자춘(壺天自春)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병천을 직역하자면 '술 단지 속의 하늘'이니 연못에 비친 하늘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며 술 한잔 하기 좋은 정원으로 제격이다. 연못 가운데 맑은 물놀이라는 뜻의 칭이팅(清漪亭)이 있는데 물놀이가 곧 풍류를 즐긴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도로 길게 연결된 누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과 연못, 나무와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정원은 봄여름가을겨울 사철마다 그 풍광이 다 다르다고 해 쓰지자산(四季假山)이라 부른다. 


높지 않은 작은 인공 산을 내려온다. 이 아담한 정원은 계절이 바뀌면 모습도 바뀐다니 적어도 계절마다 한번을 와 봐야 진면목을 알 듯하다. 봄여름가을겨울 다 풍광이 다르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진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6) 양저우 州 처녀 뱃사공 노랫가락 들으며 5개의 정자로 만든 다리를 지나 


양저우 셔우시후(瘦西湖)를 찾았다. 약간 덥지만 쾌청한 날씨라 호수 공원으로 들어서니 기분이 상쾌하다. 이 호수는 수당 시대부터 커다란 정원이었는데 청나라 초기 강희, 건륭 두 황제의 순행 당시 다녀간 것으로 유명하다. 


다섯 개의 정자가 동그랗게 모여 있는 다리인 우팅챠오(五亭橋)로 올라간다. 호수는 그리 커 보이지는 않고 멀리 보이는 정자와 유람선이 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정에는 학 두 마리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하늘을 배경으로 누각 처마마다 풍경이 매달려 있다. 다섯 개의 정자가 서로 엉켜 붙어 이루어진 이 다리는 건륭제가 방문했을 때 이 지방 소금 운송업자가 지었다. 


이 다리를 중심으로 'ㄴ' 자와 'ㄱ' 자가 서로 연결된 형태로 길게 뻗은 호수로 4.3킬로미터에 이르는 호수 한 가운데 있다고 해서 호수의 허리띠(腰帶)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 산책로를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수 건너에서 본 우팅챠오는 멀리서 볼수록 그 멋이 더욱 빛나 보인다. 


멀리 얼스쓰챠오(二十四橋)가 수면 위에 떠오른 듯 보인다. 다리 길이가 24미터, 너비는 2.4미터, 난간 무게는 24근, 위 아래로 24개의 계단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치 형으로 난간은 모두 백옥처럼 하얗다. 


지그재그로 난 호수 위 산책로를 따라 걸어간다. 배들이 호수를 오고 가는 모습이 사뭇 서정적인 풍광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면 무료로 탈 수 있는 배를 탔다. 배 바닥은 오렌지 색이라 화사했으며 기분도 좋다. 여러 사람이 함께 타서 서로 균형을 잡느라 분산해서 자리를 잡았다. 노 젓는 여자 뱃사공은 20대 중반의 용모가 순박한 시골 아가씨 모습이다. 


예부터 셔우시후를 날씬한 미인의 대명사인 조비연(趙飛燕)에 비유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날렵한 손놀림으로 노를 젓고 있다. 건륭제의 축수를 올렸다는 시춘타이(熙春台)를 지나간다. 시춘이라는 말은 노자가 한 말로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이 모인다는 뜻이다. 


아가씨는 열심히 노를 젓더니 손님들에게도 저어 보라고 한다. 우팅챠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점점 우팅챠오 밑 아치형 문을 배가 지나간다. 다시 뒤돌아보니 정말 멋지고 독특한 모양이 중국 온 동네 돌아다녔어도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보기 힘들다. 


노를 젓던 아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 이 ‘처녀 뱃사공’이 부르는 지역 민가는 지역방언을 섞어서 도저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흥겨우면서도 재미있는 멜로디다. 노래를 듣자 신이 났던지 함께 탄 사람들이 박수 소리가 이어진다.



얼스쓰챠오(왼쪽), 우팅챠오(오른쪽 위), 뱃사공(오른쪽 가운데), 호수 위 배(오른쪽 아래)


호수 속 작은 섬에 향긋한 기운이 솟아나는 듯한 귀엽게 생긴 댜오위타이(釣魚臺)가 반듯하게 떠 있다. 개나리꽃 색깔로 칠을 한 벽면이 둥글게 뚫려 있는 정자다. 연인 한 쌍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다시 뱃사공 아가씨가 노 젓는 박자에 맞춰 노래 한 곡을 더 부른다. 노래가 끝나자 어느덧 배가 멈춰 섰다. 한 20여분 정도 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했는데 아주 정겨운 분위기였다. 모두들 차례로 조심스레 배에서 내렸고 뱃사공 아가씨는 서둘러 배를 돌려 되돌아간다. 


배에서 내리니 당나라 시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이 고목은 봄이 되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고목봉춘(枯木逢春)의 전설처럼 푸른 줄기를 뻗고 있다고 한다. 그 옆에는 나무줄기가 온 사방을 수놓고 있는 굴피나무가 멋진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조그만 위반챠오(玉版橋)를 건너 가니 이번에는 수양버들이 보인다. 옆에는 빨갛게 핀 꽃이 다리와 예쁘게 어울리고 있다. 호수를 따라 걸어가는데 비둘기 떼가 광장에서 열심히 모이를 찾아 다니고 있다. 비둘기들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수양버들 사이로 드러난 댜오위타이의 둥근 원이 호수에 비쳐 또 하나의 원을 만들어내고 있다. 호수를 따라 멀리 우팅챠오로 향해 가는 배는 볼수록 멋진 셔우시후 최고의 앙상블이다. 다섯 개 정자가 똑바로 서서 만든 웅장한 다리로 배는 느리게 떠가지만 이 한 폭의 멋진 인상은 아련하게 오래 남을 듯하다. 


7) 창저우 常州 4대 미인의 허리로 머리 빗을 만들다니 


난징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창저우에 도착했다. 시내 숙소에서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는 명나라 시대인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운하가 있다. 운하를 따라 형성된 조그마한 골목길 비지샹(篦箕巷)을 찾았다. 


운하 옆으로 고층 아파트가 솟아 있고 그 앞에 조그만 황화팅(皇華亭)이 보인다. 정자 이름에 황제가 들어간 것이 심상치 않다. 청나라 건륭제가 창저우에 왔을 때 이곳에서 내려 성으로 들어갔다. 역참 이름인 피링이(毗陵驛) 비석이 세워 있다. 언덕에 인접해 있다는 뜻의 피링은 한나라 시대부터 창저우의 이름이었다. 


운하 위로 고가도로가 연결돼 있고 증기선이 다닌다는 룬촨(輪船) 표지판이 붙어 있다. 시내를 가로지르며 폭이 30미터는 돼 보이는 운하를 따라 짐을 싣고 긴 화물선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어찌나 길던지 물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다. 


부두가 있던 자리인지 붉은 글씨로 다마터우(大碼頭)라고 써 있으며 밤에는 야시장이 열린다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운하를 끼고 있는 비지샹 골목은 머리 빗을 파는 가게가 몇 군데 있다. 담벼락에 옌링슈비(延陵梳篦)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 옌링은 창저우의 옛 지명으로 오나라의 영토이기도 했으며 중국의 10대 성 중 하나인 오(吴)씨의 군망(郡望)이다. 군은 군현제 행정구역이고 망은 명문 귀족이라는 뜻이다. 전주 이씨, 경주 최씨와 같은 의미다. 


‘소(梳)’는 얼레빗이고 ‘비(篦)’는 참빗이다. 이미 1,6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빗들이 운하를 타고 여러 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은 민간 전통공예로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생활필수품일 뿐 아니라 여인들이 마음을 달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얼레빗은 우각(牛角)과 양각(羊角)이나 대추나무, 배나무 등도 있지만 주로 황양목(黃楊)을 재료로 쓰고 참빗은 대나무 죽순으로 만든다. 


중국 4대 미인의 자태 그대로 허리 동선에 맞춰 만든 빗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온다. 왕소군과 서시, 초선과 양옥환을 그려놓고 허리춤으로 머리 빗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재미있는 발상이다. 


예전에는 번성했겠지만 지금은 그저 평범한 골목길이다. 밤이 되면 술집으로 변할 것 같은 배로 만든 룽청(龍城) 수상식당만이 보란 듯이 서 있을 뿐이다.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저 이방인이나 옛 향수를 더듬으려고 오는 정도다. 


창저우 부두(왼쪽), 4대 미인 빗(오른쪽 위), 운하(오른쪽 가운데), 시잉먼(오른쪽 아래)


운하를 따라 배들이 아주 빈번하게 다닌다. 거대한 화물선 뱃머리에 아주머니가 보란 듯이 서 있다.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배 갑판 위에도 아주머니가 깃발을 든 채 서 있다. 아마도 앞에서 다른 배와 부딪힐 상황이 되면 신호를 보내려는 것인가 보다. 


30층이나 되는 고층빌딩이 도시를 뒤덮고 있는데 시내를 흐르는 운하를 따라 낡은 화물선들이 생업의 수단으로 움직이고 있다니 낯설어 보인다. 한참 동안 배들을 봐서 그런지 오히려 빌딩들이 생경해 보인다. 


운하를 따라 성벽이 이어져 있고 중간에 시잉먼(西瀛門)도 보인다. 이 성벽은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600년이 훨씬 지난 것이다. 나중에 계속 성벽의 돌들을 새로 쌓아서 보완했겠지만 여전히 아주 튼튼해 보인다. 


큰 배가 다니는 길과 작은 배가 다니는 길로 물줄기가 갈라졌다. 조그만 통통배가 얕은 다리를 지나가는데 가만 보니 하천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고 있다. 다리를 따라가니 하천 옆으로 공원이 있고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운동회를 보게 됐다. 신호탄과 함께 이어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다. 선수들은 열심히 뛰고 다른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자여우(加油)를 외치며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과 다름 없이 신나게 달리며 흥겨운 경주를 하는 모습이다. 계주봉을 들고 친구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자세도 아주 익숙하고 진지하다.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아이들 해맑은 응원 소리가 아직도 귀가에 생생하다. 운하 위를 오가는 화물선의 뱃고동 소리도 메아리처럼 들리는 듯하다. 그러다가 불현듯 중국미인들이 그려진 참빗을 사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중국을 다니면서 짐이 될까 봐 물건을 사지 않는 습관 때문에 미처 사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창저우에 가게 되면 꼭 예쁜 빗을 사야겠다. 


8) 창저우 常州 기원전 춘추시대의 동상으로 고사성어를 배운다  


장쑤 성 창저우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가면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인 기원전 춘추시대의 흔적이라는 옌청(淹城)이 있다. ‘명청 시대는 베이징을 봐야 하고 수당 시대는 시안을 봐야 하며, 남송 시대는 항저우를 봐야 하고 춘추시대를 알려면 옌청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중국춘추옌청(中国春秋淹城)’ 현판이 걸린 회색 성곽이 보이고 양쪽으로 흐르는 하천을 따라 멋진 다리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다리 이름을 보니 옌쥔챠오(淹君橋)다. 


엄군(淹君)은 산둥 취푸(曲阜)의 엄(奄)나라 군주였는데 주(周)나라에 쫓겨 남쪽으로 이주한다. 오(吴)나라와 월(越)나라가 쟁패를 겨루던 시절이라 이곳에 온 후 침략에 대비해 난공불락의 수성을 쌓았으며 연못을 만들어 수호신인 백옥귀(白玉龜)를 키웠다. 


아리따운 공주가 있었는데 서예와 무용도 잘하고 용모도 예뻤다고 한다. 어느 날 공주는 성밖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하는데 그는 은밀히 잠입을 시도한 이웃 국가의 왕자였다. 엄군은 미사여구가 뛰어난 그를 신임해 공주와 결혼을 시키려고 한다. 


엄군이 외출하자 왕자는 공주의 명의를 도용해 백옥귀를 훔친다. 엄군은 백옥귀가 사라진 것을 알고 흥분해 공주를 죽이게 된다. 왕자는 백옥귀를 오나라 왕에게 보내고 군대를 빌어 화공으로 옌청을 점령한다. 엄군을 죽이고 엄족을 멸망시킨다. 이 큰 대(大)와 거북 귀(龜)에 물 수를 더한 한자를 쓰는 엄족은 비참하게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성 안으로 들어서니 길 옆으로 문화 거리가 조성돼 있다. 두 마리 사자가 비단방울을 가지고 노는 석조 원판과 명나라 시대의 수호신 석상이 보인다. 진품이어서 많이 낡았지만 긴 칼을 앞에 차고 서 있는 모습이 늠름하다. 


돌로 만들어진 예사롭지 않은 패방이 있다. 맨 앞에 있는 충의방(忠義坊)은 청나라 건륭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현란한 조각으로 동물과 사람, 강산과 나무를 새겨놓았다. ‘아래로는 강과 산을 위하고 위로는 해와 별을 위한다(下則為河岳上則為日星)’는 말에서 따온 하악일성(河岳日星)이 새겨 있다. 높이는 7미터이고 너비는 6.1미터이며 3층 4기둥으로 만들어졌으며 죽림칠현과 사자, 봉황이 음각돼 있다. 


바로 뒤로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절효방(節孝坊)은 청나라 광서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일편빙심(一片冰心)이 새겨 있다. 당나라 시대 시인인 왕창령(王昌齡)의 7언 절구 중에 나오는 ‘일편빙심재옥병(一片冰心在玉壺)’에서 따온 말로 옥으로 만든 술병에 담긴 변하지 않는 순결하고 청렴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맨 뒤에 있는 공덕방(功德坊)은 청나라 함풍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황제의 은덕을 찬양한다는 뜻의 용덕포가(龍德褒嘉)가 새겨 있다. 그래서인지 돌 사자가 지키고 있으며 황제를 상징하는 용 문양이 아주 많다. 


다리를 건너가니 넓은 광장이 나온다. 카이청(開城) 의식이 오전에 열렸다고 한다. 꽃가루가 행사장 곳곳에 뿌려져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전체적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라 그런지 어수선하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니 배 한 척이 보인다. 이 옌청에서 2,900년 전에 만들어진 통나무 배가 출토됐다.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배라고 해서 천하제일주(天下第一舟)를 상징하는 배 한 척이 서 있다. 


‘옌청(淹城)’ 글자가 강렬한 인상을 풍기고 있는 무대를 지나니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관심은 ‘서시가 옷을 빤다’는 서시완사(西施浣紗)다. 강가에 나와 빨래하는데 수면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도 잊고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고사다. 


서시뿐 아니라 춘추시대의 고사와 관련된 동상들이 서 있다. 역사 공부를 하기에 좋은 것들인데 어렵고 처음 듣는 이야기도 많다. 모두 사자성어이고 고사이니 한번쯤 공부해 볼 만하다. 


춘추시대에 좋고 나쁜 말을 잘 알고 그림만으로 천리마를 찾아낸 것으로 유명한 손양(孫陽)을 소재로 한 안도색기(按圖索驥)는 실마리를 따라서 잘 찾는다는 말이다. 피리를 불 줄 모르면서도 연주하는데 끼었다는 남곽(南郭)의 고사에서 유래하는 남우충수(濫竽充數)는 쥐뿔도 모르면서 능력 있는 체 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시대에 초나라 대신인 장신(莊辛)이 양을 잃어버린 후에 우리를 고쳤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소 잃고 외양간 고쳤다는 말과 같다. 춘추시대 오나라 공자 계예(季禮)가 사신으로 가는 길에 서(徐)나라 임금에게 마음 속으로 스스로 주기로 다짐한 보검을 돌아오는 길에 죽은 임금의 무덤에 걸었다는 계례괘검(季禮掛劍)은 약속을 귀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담겼다. 


옌청 패방(왼쪽 위), 카이청식(왼쪽 가운데), 공사중 엄군전(왼쪽 아래), 서시 조각상(오른쪽)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이야기로 방울을 훔치기 위해 자기의 귀를 막으면 방울소리가 남들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엄이도령(掩耳盜鈴)은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뜻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의 자화자찬인 자상모순(自相矛盾)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을 말한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염파가 자신의 옹졸함을 뉘우치고 형장(荊杖)을 짊어지고 인상여 집을 찾아와 죄를 청했다는 부형청죄(負荊請罪)는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사과한다는 뜻이다. 


광장을 지나니 진한 갈색 빛이 도는 나무로 축조한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려면 입장권을 사야 한다. 다시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외청(外城)을 둘러싼 하천을 지나 다시 수풀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가니 내청(内城)을 둘러싼 하천이 또 나온다. 


좁은 다리를 건너 가니 가장 안쪽에 자성(子城)을 둘러싸고 있는 하천에는 곳곳에 수련이 뿌리박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공사 중인 다리를 건넜는데 자성 안에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마당을 가꾸고 있다. 앞에 있는 건물이 엄군전(淹君殿)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 


옌청의 핵심에 들어가보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다. 후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안내판에 2003년에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했다고 적혀 있다.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독특한 구조의 성곽이 오랜 세월 자취를 유지하고 있다니 놀랍다. 3천 년이나 지난 춘추시대의 성곽이니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더욱 빛나길 바란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