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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2011년 7월 23일 캐나다에서 베이징으로 압송돼 온 레이창싱 / 신화망)


중국, 지금  성장 못지 않게 정치개혁 급선무
12년만에  공개 법정에 선 밀수왕  레이창싱


[AAP News Beijing, China=최종명특파원]4월 6일 샤먼 시 중급법원은 밀수집단 수괴 전 위안화(遠華) 그룹 레이창싱(賴昌星)의 밀수와 뇌물공여 혐의로 공개재판을 열었다고 신화망이 보도했다. 역대 최고 금액인 530억 위안(약 9조5천억 원)의 밀수, 300억 위안(약 5조4천억 원)의 탈세뿐만 아니라 성 및 중앙 고급공무원들에게 광범위한 뇌물공여 혐의까지 있으니 가히 메가톤급이다.


1999년 4월 중앙기율위원회와 해관총서(세관)에 레이창싱에 대한 우편 제보가 있었다. 곧바로 특별수사팀이 파견돼 300여명의 고급관리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으며 당시 천밍이(陳明義) 서기가 좌천되는 등 133명의 간부들이 구속되고 낙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샤먼 앞바다에 배를 띄워 식용유, 자동차 등 온갖 물품에 대한 밀수와 탈세로 돈을 벌었으며 ‘붉은’ 술집 훙러우(紅樓)를 운영하면서 흥청망청(?)하는 공무원들을 불러내 불법 로비한 ‘유사이래 최대의 밀수꾼’ 레이창싱은 홍콩을 거쳐 캐나다로 도주해버렸다.


이 사건이 주목 받는 이유는 사건이 발생한 당시 베이징 서기이던 현 정협 주석 자칭린(賈慶林)이 푸젠 성장과 서기로 재임할 당시 벌어졌던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자 주석의 부인 린여우팡(林幼芳)이 당시 사건에 연루됐다는 루머는 장쩌민 당시 주석까지 동원돼 사건을 덮었으며 축소했다는 비판도 있다. 린여우팡이 위안화 그룹의 이사였고 자 주석도 당시 위안화 회사를 방문했다는 팩트까지 있다. 장쩌민은 공개적으로 자칭린과 동행해 건재함을 과시했으며 캐나다로 도피한 레이창싱을 사주했을 것이라는 혐의도 남아있다.


2011년 7월 23일 푸젠의 푸저우로 가던 고속열차가 전복한 날, 난민신청을 반복하며 연명하던 레이창싱은 12년 만에 캐나다로부터 압송돼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밀한 조사를 거쳐 드디어 1심 재판정에 등장한 것이다.


재판 과정과 무관하게(사형 판결 예상) 레이창싱 위안화 사건은 정치적이다. 전 충칭 시 서기 보시라이의 낙마처럼 이 사건 역시 2012년 10월 당 중앙정치국 지분 확보와 관련한 이전투구를 바닥에 깔고 봐야 한다. 푸젠(福建)은 상하이방의 든든한 지원세력이자 공청단의 반대파 실세들인 자칭린, 허궈창, 시진핑 등이 거쳐간 자리이다.


위안화 사건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가진 자칭린은 후진타오와 특별히 관계가 나쁘지 않았지만 곧 물러나게 되며 후일을 보장받기 위한 안배를 도모해야 한다. 하지만 위안화 사건으로 인해 계파인물들을 적극적으로 요직에 배치하는 일에 한계를 갖게 될 것이다.


더불어 개혁개방의 성과와 상하이방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푸젠 출신들이 중앙요직에 진출하던 관례도 완전 사라질 전망이다. 이미 위안화 사건 직후인 2000년 공청단 출신 쑹더푸(宋德福)가 푸젠으로 내려와 푸젠 지방조직을 정리했으며 2009년부터 재임하고 있는 장춘란(孙春兰) 서기(여성)도 비교적 파벌 색깔이 없는 전국총공회(노동조합) 출신이다.


레이창싱 사건은 당분간 언론에 지속적으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당 중앙은 엄벌정책을 통해 상대 파벌에 대한 견제 및 부패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하겠다는 원칙을 견지할 것이다. 여론을 형성해 후진타오 정부의 개혁논리와 자기 파벌 확충을 동시에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정부의 반 부패 공무원 비리에 대한 치열한 검열과 활용은 매우 치열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드러나는 온갖 부정부패의 고리는 쉽게 끊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10조원 밀수, 정경유착에 인민들은 충격!


식당, 안마실, 사우나, 가라오케, 호화 침실을 두고 온갖 비리와 성 접대가 이뤄지는 레이창싱의 훙러우가 TV화면에 공개되고 있다. 일반 인민들의 눈에는 10조원이 넘는 밀수와 탈세가 정치지도자들의 비호 아래 저질러졌다는 사실에 경악과 박탈감을 느낀다.


한 유명 여가수와 하룻밤을 보내는데 ’100만 위안(약 1억8천만 원)을 지불하기도 했다’는 레이창싱은 무학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나름의 통찰(?)이 풍긴다. 초대형 밀수꾼답게 “나는 간부가 두렵지 않다. 다만 간부가 취미가 없다는 게 두려울 뿐이다.(我不怕干部,只怕干部没爱好)”라고 말했다. 참으로 현장(?) 경험이 풍부하지 않으면 터져나오기 힘든 언급이다. 중국을 보면 부정부패와 관련해 우리 대한민국 MB정부 관료와 새누리당, 재벌이 연상되는 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성장, 그 노동력을 제공한 일반인들의 눈에는 호화판 비리와 정경유착이 어떻게 보일까? 부패와 공직비리를 척결하려는 여론작업이 오히려 패배감, 배반감과 함께 사회적 비판의식으로 발로하는 것은 아닐까?


중국식 사회주의를 통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확대, 문화의 개혁을 추구하는 현 정부의 노력은 레이창싱 사건과 같은 여론 조성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부동산, 교육, 실업, 지역격차, 민족문제 등 사회문제뿐 아니라 부정부패를 구조적으로 척결할 정치 개혁을 선행하지 않는다면 내부 질곡은 더욱 깊어져 갈 것이다. 활화산으로 터져 나오기 전에 적극적 대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중국 정부의 넓은 바둑판 위, 무겁고 긴 장고이기도 하다.


  • 참고 : 중국 법원은 기층인민법원, 중급인민법원, 고급인민법원, 최고인민법원의 4단계로 나눈다. 가벼운 1심 민사는 ‘기층’에서 1심 형사와 민사는 ‘중급’에서 심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체적으로 일반 현 이하는 ‘기층’, 시 단위는 ‘중급’, 성 단위는 ‘고급’이라고 보면 된다. 1심 판결에 대해 피의자는 상소(공소권을 지닌 인민검찰원은 ‘항소’라 표현)해 2심 재판을 받을 수 있다. 군사법원, 해관법원, 철도수송법원의 3개 전문법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