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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5 장쑤 3 베고니아 향기 먹고 설탕으로 그림 그리다



 

9)   쑤저우 蘇州 세계문화유산 정원의 연꽃들이 아름답다


쑤저우는 '동방의 베니스'라 불리는 수향이며 예로부터 항저우와 함께 '쑤항저우메이런(蘇杭州美人)'이라 했다.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이자 상하이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 받은 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쑤항’이라고도 한다.


깔끔하고 청결한 거리를 지나 가장 대표적인 정원인 줘정위엔(拙政園)을 찾았다. 명나라 시대인 어사 왕헌신(王獻臣)이 낙향해 만든 정원이다. 중앙무대에서 못다 이룬 정치에 대한 꿈을 접고 여생을 보내는 마음으로, 겸허한 사람의 일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연꽃이 핀 연못 옆에 푸룽세(芙蓉榭) 정자가 반겨 준다. 정자와 호수 그리고 수련과 나무의 조화가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꽃 화분이 매달린 길이 아주 예쁘다. 등이 밝게 켜져 있는 슈샹관(秫香館) 앞에서 꼬마아이 둘이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람 키만큼 커 보이는 수련이 연못에 비치니 물빛이 더욱 영롱해 보인다. 연못 주변에는 사방이 둥근 원으로 확 트인 정자가 있으니 경치를 구경하기 좋다. 키 큰 나무들도 길게 제 가지를 아래로 늘어놓았으니 연 잎에 닿을 듯하다.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말로 별천지와의 경계를 나누는 비에여우둥텐(別有洞天)은 나무판자에 선명한 연두색으로 새겨 있어 더욱 감칠맛 나는 느낌이다. 둥근 문을 경계로 서로 다른 세상이 열리는지 모르겠다.


별다른 것은 없는데 건물 옆으로 뻗은 나무 잔가지들이 하늘을 다 가릴 듯 서 있다. 그 많던 수련들이 다 사라진 연못 주변으로 정자가 몇 채 있다. 연꽃들이 사라진 연못에는 원앙들이 활개를 치며 노닐고 있다. 물 위를 떠다니는 원앙들은 정자 아래에 숨어서 넓은 곳으로 나오지 않고 마냥 숨어 있다.


이 정자는 1877년 당시 염상(鹽商)이던 장이겸(張履謙)이 건축한 싸류위엔양관(卅六鴛鴦館)이다. ‘싸’는 30을 뜻하는 말로 원앙 서른 여섯 마리를 길렀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지 이곳에 앉아 연못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원앙들을 보며 여유를 즐기면 좋겠다. 유리에는 파랗고 연한 보랏빛이 감도는 문양이 있어서 더욱 고급스럽고 화사하게 보인다.


그 옆에는 스바만퉈뤄화관(十八曼陀羅花館)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붙어 있다. 만퉈뤄는 독말풀이라고 불리며 열대아시아의 한해살이 풀로 약용으로 쓰고 차로도 마신다. 열여덟 포기를 심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람들이 많아서 다리를 건너기가 아주 복잡하다. 제 나름의 모양새를 갖고 자라난 나무들 운치는 고스란히 연못 속으로 들어간 듯 수면이 아주 예쁘다. 늘어진 나뭇가지와 호흡하려는 듯 바위에 걸터앉은 사람들도 있다.


천둥소리를 듣는다는 레이팅거(雷聽閣) 뒤편 휴게소에는 그림을 팔고 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거북이와 대화하고 있는 그림이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며 음료수를 마시기도 한다. 정말 커다란 정원이라 피곤할 만도 하다.


한 아가씨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줄줄이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들이 연못 속에 비친 환상적인 모습에 하염없이 쉬고 싶다. 연못 속에 담긴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연인들이 다소곳하게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도 보인다.


줘정위엔 입구(왼쪽 위), 정원 모습(왼쪽 가운데), 쑤저우 하천 야경(왼쪽 아래), 연못 연꽃(오른쪽)


정원을 따라 걸어 나오는데 연못 위에 활짝 펼쳐진 커다란 수련 하나가 시선을 끈다. 다들 어디 가고 홀로 자리잡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고독하지 않다는 듯 당당해 보인다.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계속 줄줄이 들어오니 점점 밀도가 높아진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지극히 동양적인 정원을 보러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온다.


커다란 수련 위에 놓인 동전이 보인다. 사람들의 적선이거나 장난이겠지만 동전이 연못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끄트머리를 접은 수련이 안타까워 보인다. 이미 생명이 다 한 수련이건만 동전에 얻어맞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계속 동전을 얻어맞았는지 중간 중간 구멍도 뚫렸다.


수련 사이로 빨간 새끼 잉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수면 위에는 소금쟁이 한 마리가 갈 곳을 찾으며 앉아 있다. 계속 매미 소리가 짖어대고 햇살은 서쪽하늘로 넘어가려는 지 나무 사이로 강한 햇빛을 비추고 있다.


정원 앞쪽에 자그마한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유람선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하천 옆을 따라 흰색 집 벽들이 있으며 멀리 작은 돌다리 너머에 유람선이 휘저어 오고 있다.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살짝 수면 위로 노을이 지려 한다.


삼륜차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나뭇가지 앙상한 가로수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됐다. 가로등 불빛이 휘영청 밝은 줘정위엔 앞 거리를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빠르게 지나가고 사람들 발걸음도 조금 빨라졌다. 밤이 되니 '창장 남쪽의 수향(水鄉)의 정서'를 담고 있는 쑤저우가 점점 정이 들기 시작한다.


10) 쑤저우 蘇州 베고니아 향기 먹고 설탕으로 동물 그리고 


쑤저우는 10월 초인데도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다. 국경절 연휴라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며 더욱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다. 좀 시원한 곳을 찾아가보려고 수향 정취가 가득한 산탕제(山塘街)를 찾았다. 당나라 시대부터 쑤저우에서 가장 번화했던 거리이며 문인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산탕제 거리로 접어든다. 멀리서 하천을 따라 배 한 척이 빠르게 질주해 오고 있다. 강남 수향에는 대체로 하천이나 인공수로가 흐르고 양 옆으로 가옥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물살을 퍼트리며 빠르게 지나간다.


골목길은 대부분 문화거리로 공예품 가게나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먹거리 마차들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눈요기가 되기도 한다. 하천에는 독특한 형태의 배들이 떠다니고 있다.


중국 옛 거리에 오면 빨리 동화되고 신기한 공예품이나 먹거리가 있다면 이름이 무엇이고 용도가 어떤 것인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린다. 다른 지방에는 없는 것이라면 금상첨화다.


특산품과 가게 이름이 적힌 깃발이 휘날리니 걷는 발걸음이 신 난 듯 가볍다. 구름이 조금 오락가락하지만 파란 하늘이라면 미치도록 기분이 좋다. 홍등이 펄럭이면 정말 중국이구나 생각이 들지만 이런 날에는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빵처럼 생긴 것을 먹고 있다. 메이탕가오(海棠糕)라고 하는데 가오는 떡이고 메이탕은 재료 이름인 듯하다. 알고 봤더니 생긴 모양이 메이탕, 즉 베고니아 꽃처럼 생겨서 생긴 이름이다. 원래 쑤저우에서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 우시(無錫)에서 청나라 시대부터 만들어 먹던 간식이라 한다.


호두, 쌀 떡, 해바라기 씨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붉은색, 녹색, 검은색 빛깔이 감도는 씨가 재료다. 깨와 잣도 팥소와 함께 밀가루 반죽을 작은 홈에 넣고 5분 정도 익힌다. 젓가락으로 걷은 후 하나씩 종이에 싸서 팔고 있다. 5위엔을 주고 두 개 사 먹었는데 아주 달콤하고 쫄깃한 것이 간식으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향긋한 꽃 내음이 풍겨 날 듯한 베고니아 모양새가 침부터 돌게 만든다.


바로 옆에는 마이야탕(麥芽糖)을 팔고 있다. 밀과 찹쌀을 재료로 만든 엿인데 둥근 원판을 탁탁 치더니 반으로 나눠 비닐 종이에 담아 판다.


차량통행금지 구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앞에 경비원인 바오안(保安)이 지키고 섰다. 다리 밑에는 산탕제의 옛날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시돼 있는데 옛날 모습과 형체는 비슷해도 분위기는 아주 달라 보인다.


산탕제(왼쪽), 메이탕가오(오른쪽 위), 산탕제 하천(오른쪽 아래)


산탕제는 역시 하천 풍경이 최고다. 봉긋한 다리 위로 올라가니 길게 뻗은 수로를 달리는 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행객들을 기다리며 배들이 정박해 있고 길가에는 차나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물 빛깔이 약간 황토 빛이라 아쉽다.


한 줄로 연결된 홍등이 서너 개씩 줄줄이 발처럼 내려 있다. 흰색 벽에 검은색 지붕 그리고 나무로 만든 창문과 함께 어울린 모습이 서민들이 살아가는 물의 고향답다.


하천 한 쪽에는 사람이 오가는 길이 있고 한 쪽은 집 담과 이어져 있다. 담에는 문도 있고 몇 개의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하천에 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로 붙어 있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 반대쪽 하천 길을 따라 걸어간다. 배들이 오고 가는 모습이 아주 평화롭다. 살짝 파도를 출렁이며 직선으로 뻗은 수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떠나는 배를 보니 그늘에 앉아 차라도 한 잔 하고 싶다.


또 하나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났다. 녹인 설탕 물을 국자로 퍼서 판자 위에 흘려가면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는 탕화(糖画)다.


먼저 새의 몸통을 만들고 머리 부분을 예쁘게 그리더니 동그랗게 설탕 물을 흘리면서 날개를 만든다. 작대기를 붙이고 난 후 얇은 칼로 바닥부터 긁으니 완성이다. 귀여운 아가씨가 하나 사서 만족스러운 듯 가지고 간다. 원래 쓰촨(四川)지방 민간예술로 이어온 것이라 하는데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감상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먹을 수도 있다. 용, 봉황, 물고기, 사자,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순식간에 생겨난다. 한 꼬마아이가 마음에 드는지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는 매정하게 돌아선다.


둥근 판을 돌려 지정된 동물에 당첨되면 그 동물을 주기도 한다. 한가운데 못으로 박은 나무조각을 돌리면 빨갛고 노랗고 파란 그림 중에 하나에 가서 당첨된다.


철사공예품을 즉석에서 만들어 팔기도 한다. 철사를 구부리는 펜치만으로 다양한 형태를 만드는데 다른 한 손으로는 철사를 돌려 감는다. 동물도 있고 사람 얼굴도 있으며 한자나 자연 경관도 만들고 총이나 악기도 연출한다. 흰색 철사도 있지만 구리 빛 철사도 있다.


철사를 구부리더니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다. 어느새 모양을 잡더니 끄트머리를 싹둑 잘라내고 자투리 철사를 이어 붙이고 긴 철사를 덧붙여 걸으니 드디어 완성이다. 옆에서 아이가 뭐냐고 물으니 워뉴(蝸牛)라고 하는데 바로 달팽이다.


천 년 역사를 넘어 머리 속에서 혼자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기행을 하는 묘미가 베고니아 향기처럼 달콤하다. 혼자만의 상상을 즐기려면 역사와 문화를 몸소 느끼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홀로 문화체험 하는 것도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산탕제를 나오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연휴라 사람들도 많고 날씨도 여전히 덥다. 거리를 정처 없이 걷다가 번화가에 이르렀다. 옛 문화거리와 현대식 거리가 얼마나 다른 지 금새 판가름이 날 듯하다.


게다가 국경절이라 백화점마다 할인 행사로 떠들썩하다. 큰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공연을 하고 있다.


백화점 건물에 수십 개가 넘는 빨간 현수막이 길게 걸려 있다. 황금연휴가 되면 백화점들은 바야흐로 갖가지 세일을 진행한다. 가격할인을 다저(打折)라고 하는데 우저(五折)라 하면 50%로 잘라 판다는 뜻이다. 치저(七折)라고 하면 70%로 파는 것으로 30%를 할인해 주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는 가격 할인 대신 얼마 이상 구매하면 상품 쿠폰을 주기도 한다.


북과 꽹과리, 징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아주머니들이 쉼 없이 악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힘들지도 않나 보다. 길 가던 한 아가씨가 신기한 듯 바로 앞에서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다.


거리 한가운데 인공으로 만든 하천이 흐르고 있다. 비록 배가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닐 정도는 된다. 커다란 풍차도 있는데 시원한 물줄기가 상쾌하다. 하천을 건너가는 구름다리도 있고 육교도 있다. 쇼핑을 하다가 잠시 쉬기도 하고 약속 장소로도 딱 좋아 보인다.


거리 복판을 막고 간이 연못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장난감 배를 타고 노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장사를 하다니 대단하다. 아이들이 물놀이 하는 것이 즐거워 보인다.


요즘 도시 곳곳에 유행하는 행사 중 하나가 바로 결혼 사진 촬영이다. 직원들이 나와서 길거리를 점령하고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춥고 있다. 사진 촬영을 하면 신부에게 공짜로 무려 18가지 선물을 준다고 한다. 한국 노래를 시끄럽게 틀어 놓고 있는데 브랜드도 아예 ‘서울의 사랑(漢城之戀)’이다.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다. 역시 도로 한복판을 만국기로 막아놓고 있는데 정말 이렇게 영업을 해도 되는 동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헬멧과 보호대까지 완전무장하고 10여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이들이 잔뜩 모여서 노래자랑 대회를 하고 있다. 한 아이가 노래하러 나왔다가 가사를 까먹었다. 그래도 선물을 받으려면 끝까지 노래를 불러야 한다. 아이들을 불러모아 놓고 유행가인 라오슈아이다미(老鼠愛大米)라는 노래를 부른다. '쥐가 쌀을 좋아하듯 사랑해' 뭐 그런 노래인데 아이들이 끝까지 따라 부른다. 경품을 받으려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10월 초 국경절 연휴의 날씨가 거의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다. 하루 종일 문화거리와 번화가를 두루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그래도 베고니아 향기와 동물로 되살아나는 설탕을 생각하니 입맛이 돈다. 달콤하게 잠을 잘 수 있을 듯하다.


11) 쑤저우 蘇州 소림 무공 4대 절기를 연마한 스님의 사리탑


중국에서 3번째로 큰 담수호인 쑤저우의 타이후(太湖)를 찾아가려 한다. 시내버스는 거의 1시간 30분을 달려서야 조금씩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타이후는 면적이 거의 2,250평방 킬로미터에 이른다.


타이후 다챠오(大橋)를 건너가니 마치 바다라는 착각이 든다. 4.3킬로미터가 넘는 긴 다리 창사다오(長沙島)를 지난다. 다시 예산다오(葉山島)를 지나는 창사루(長沙路)를 건너 섬 끝자락인 시산진(西山鎮) 스공춘(石公村) 종점에 도착했다.


스궁산(石公山) 앞 호반을 바라보며 한 바퀴 돌아도 좋은 산책길이다. 산길을 따라 가니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온 구름이 머문다는 운치 있는 이름의 구이윈둥(歸雲洞)이라는 조그만 동굴이 나타난다. 3억년 전에 생겨난 석탄암 동굴로 아기불상을 안고 있는 불상이 있는데 민간신앙 냄새가 많이 난다.


동굴 옆으로 난 둥근 문이 운치가 있어 보인다. 빨간 꽃과 리본을 매단 나무들이 문과 어울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문을 지나 가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호수에는 쾌속정들이 쏜살같이 떠다니고 있다.


산자락에 라이허팅(來鶴亭)과 돤산팅(斷山亭) 정자가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이 정자를 세운 명나라 시대 학자 왕오(王鏊)가 지은 시가 적혀 있다. '산과 사람이 만나니(山與人相見),하늘은 물과 함께 떠오르네(天將水共浮)'라는 문구가 정말 적절해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산 정상에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선 두 개의 괴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 돌들은 부부 석으로 하나는 꼽추와 닮은 할아버지처럼 생겨 스공(石公)이라 했고 하나는 할머니 돌 스포(石婆)라 한데서 유래했다.


산모퉁이를 넘어 가니 크고 길고 높은 암석 위에 윈티(雲梯)라 적혀 있다. 구름 사다리라니 정말 낭만적인 이름이다. 한칼에 깎인 모양의 바위 위로 올라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조금 불안해 보인다.


바위 하나로 만들어진 밍위에포(明月坡)라 불리는 돌 비탈에 정자가 있고 아래로 미끄러지듯 긴 복도가 있다. 그 옛날 오 나라 왕 부차와 4대 미인 서시가 물놀이 하면서 호수를 감상하던 곳이라 한다.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니 무공을 수련한 해등법사(海燈法師)가 창건한 사원인 스궁쓰(石公寺)가 나타난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불(佛)’자가 새겨진 벽 뒤로 사람들이 향을 피워놓고 예를 올리고 있다.


해등법사는 본명이 판우빙(范無病)으로 스촨 서북부 사람인데 어린 시절 지역 악질 토호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며 출가해 무공 수련을 했다. 고승을 찾아 다니며 무공을 연마하던 중 1930년대 두 명의 소림사 고수를 만나 악전고투 끝에 소림사 4대 절기를 완성했다.


달마조사(達摩祖師)가 면벽했던 동굴에서 7일 낮과 밤을 정좌한 채 수련해 면벽좌선(面壁坐禪)을 익혔으며 두 손가락으로 땅을 딛고 2분 동안 서 있는 이지선공(二指禪功)과 머리를 허리 아래로 집어넣는 등 온몸이 면화처럼 유연한 동자유공(童子柔功), 나무 위에서도 마치 평지에 있는 듯 가벼운 몸놀림과 균형감각을 지닌 매화춘권(梅花椿拳)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전한다. 그의 4대 절기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소설로 발표되기도 했다.


10년 동안 수련했던 곳으로 골귀석공(骨歸石公)의 유언에 따라 7층 사리탑이 조성돼 있다. 사리탑을 둘러싸고 무술 동작들이 새겨져 있어 무림 고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탑 중간에는 수많은 작은 불상들이 새겨져 있어 뛰어난 무공을 지녔던 승려에 대한 격식을 잘 갖췄다.


타이후 윈디(왼쪽), 스궁산(오른쪽 위), 스궁쓰(오른쪽 가운데), 타이후 연꽃과 배(오른쪽 아래)


사원을 나와 호수 쪽으로 걸어가니 낡은 배 한 척이 조용히 호수에 걸쳐 있다. 수련들이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어 배가 떠나가지 못하는 듯하다.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니 왠지 스산한 느낌이다. 바람에 쉼 없이 나무들이 스르르 소리를 내고 있는데 한적한 분위기를 깨고 쾌속정이 달려간다. 호수 바람이 세차게 부니 물 속에서 자라는 나뭇가지들이 마구 흔들린다.


한가로이 산책로를 걸어가는데 승마장이 나타난다. 엄마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백마를 다독거리며 걷고 있다. 아빠랑 말을 탄 아이도 즐거운가 보다. 혼자 떨어져 있는 말 한 마리가 오줌을 싸고 있는데 약간 보기가 민망하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산책 길을 걸으며 호수 위를 질주하는 쾌속정들을 바라본다. 여기저기서 난데 없이 계속 배들이 나타난다.


출구로 나와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여러 개 노선 버스 중에서 69번 버스를 타야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를 타고 마을도 지나고 다리도 지나갑니다. 사람들도 모두 호수를 담으려고 합니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호수 위로 햇살이 마지막 남은 강렬한 빛을 뿌리고 있다.


다리 셋으로 이어진 세 개의 섬(三橋三島)을 지나며 타이후를 쉼 없이 쳐다봤다. 끝도 없이 넓은 호수다. 백거이를 비롯해 수많은 문인들이 다녀갔다고 하는 시산, 그 옛날에는 배를 타고 왔을 것이지만 다리도 있고 버스도 다니니 편하게 다녀온 셈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