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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7 베이징 1 백 년 넘는 가게와 서민들의 먹거리가 수두룩하다

7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베이징원인(北京猿人)이 발견된 곳이며 춘추전국 시대 이전 서주(西周)의 봉국이던 계(蓟)나라가 베이징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며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영토였다.

계성(蓟城)이라 불리다가 서기 938년 거란(契丹) 요(辽)나라가 처음 도읍을 정한 후 금(金), 원(元), 청(请) 등 북방민족이 중원을 통일하고 수도로 삼았다. 한족의 명(明)나라도 초기 도읍인 난징(南京)을 떠나 베이징으로 천도하기도 했다. 마오쩌둥의 신중국 역시 수도로 정했으니 천년 이상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1)   세계 최대의 천안문광장과 궁궐 속으로  

수도 베이징 한복판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늘 혼잡하고 산만하다. 1년 내내 관광객들로 복잡한데다가 정치 행사라도 있으면 긴장감이 감돌고 검문과 검색이 강화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이 중국의 중심지에 온 감회를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구궁(故宫) 방향을 따라 바라보면 마오쩌둥 주석의 얼굴이 1년 사시사철 변함 없이 걸려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오성홍기가 우뚝 걸려 있는데 아침 저녁으로 국기를 게양하고 하강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감동적인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광장을 지나 구궁(故宫)으로 향했다. 학생들이 여행을 왔는지 떼를 지어 지나갑니다. 정문인 뉴먼(午門) 앞에는 황제나 황후의 복장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한 10분이면 현상된 사진을 받을 수 있다.

구궁이 건립된 명나라 시대인 1420년에 이 문도 처음 세워졌으니 높이 12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자태가 육백 년을 이어 왔다. 이 앞에서 입장권을 사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복잡한 곳이다.

문을 들어서면 구궁에서 가장 큰 문인 타이허먼(太和門)이 보이고 그 앞에 돌다리인 진쉐이챠오(金水橋)가 보인다. 다섯 개로 갈라진 이 돌다리 아래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도록 조성된 궁(弓)형의 인공 하천이 흐른다.

양쪽으로 두 곳의 문이 있는데 그 중 전두먼(貞度門)으로 들어섰다. 문을 지나니 고궁에서 가장 큰 타이허뎬(太和殿)은 공사 중이었다. 중국 최대의 목조건축물로 황제가 등극하는 즉위식이나 결혼, 황후의 책봉, 전쟁 출정과 같은 공식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중허뎬(中和殿) 앞에 앞다투어 내부를 보려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안에는 윤집궐중(允執厥中) 편액이 걸려 있다. 불편부당 없이 정도를 걷는다는 의미다. 황제가 타이허뎬 행사 전후에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내각을 접견하며 신하들을 알현하던 곳이다.

바오허뎬(保和殿)에도 황건유극(皇建有極) 편액이 걸려 있는데 황제가 불편부당 없이 중용을 지킨다는 의미이니 중허뎬 편액과 비슷한 뜻이다. 바오허뎬 앞에는 맹수의 얼굴문양이 손잡이인 항아리가 있다. 대부분이 목조 건물이라 화재를 대비해 빗물을 담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 반들반들하다.

바오허뎬 뒤쪽에는 거대한 암석이 하나 등장한다. 길이가 16.57미터, 너비가 3.07미터, 두께가 1.7미터로 200톤이 넘는 암석에는 구름을 뚫고 날아가는 용의 형상이 새겨 있다. 이름하여 윈룽석조(雲龍石雕)인데 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옮겨 가져온 것이다.

황제 침궁(왼쪽), 텐안먼광장(오른쪽 위), 물항아리(오른쪽 가운데), 인공수로(오른쪽 아래)

황제의 대전을 지나면 황제와 황후가 거처하던 곳으로 이어진다. 쳰칭먼(乾清門) 앞에는 동과 금으로 제작된 사자 한 쌍이 지키고 있다. 왼손으로 새끼사자를 누르고 있는 쪽이 암컷 사자이고 둥근 공을 오른손으로 누르고 있는 쪽은 수컷 사자라고 한다.

쳰칭궁(乾清宫)은 침궁(寝宫)으로 외국사신을 접견하기도 했다. 가로 9칸, 세로 5칸 크기인데 처마 아래 화려한 지붕받침에는 황제의 상징인 용 무늬 채색이 세월이 흘렀음에도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과 금빛 용이 휘감고 있다.

황제와 황후의 침실을 지나면 황궁 후원에 이른다. 1만2천 평방미터 규모의 땅에는 많은 정자와 나무와 풀, 연못 그리고 인공 산으로 이뤄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입구인 톈이먼(天一門)은 세상의 만물은 물로 이뤄져 있다는 역경(易經)의 천일생수(天一生水)에서 따온 듯 하다. 파란 하늘이 모두 비치는 연못 속에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아주 예쁘다.  

고궁 북문을 나서면 붉은 성벽이 길게 뻗어 있다. 인공 하천이 흐르니 난공불락의 성벽이다. 명나라 이래 이 황궁은 전쟁으로 함락된 적이 한번도 없다. 세계 최대의 황궁답게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2)   백 년 넘는 가게와 서민들의 먹거리 

베이징의 첸먼다제(前門大街)는 5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거리로 최근에 공사를 끝내고 새롭게 단장했다. 쳰먼이라 불리는 정양먼(正陽門)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면 패방이 높다랗게 서 있는데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린다.

패방을 지나면 차 없는 거리가 펼쳐진다. 카오야(烤鴨) 식당인 췐쥐더(全聚德)도 완전 탈바꿈했다. 유명인사를 비롯 많은 관광객들에게 오리 고기를 먹으려고 이곳을 찾는다. 1864년에 개업했으니 백 년이 훌쩍 넘는다.

바로 옆에는 두이추(都一處)라는 식당이 있다. 만두인 바오즈(包子)의 일종인 샤오마이(燒麥)를 파는데 1738년에 개업했다니 정말 오래된 곳이다. 청나라 건륭제가 식당 앞을 지나다가 백성들과 줄을 서서 맛을 보고는 입이 닳도록 칭찬한 후 친필 편액을 하사했다.

북으로 장식하고 곳곳에 벽화를 그려 옛 풍취를 한껏 살렸지만 골목으로 통하는 길이 막혀 있다. 두이추 맞은 편 다스랄(大柵欄) 거리만 열려 있다.

다스랄은 원래 다자란이라 해야 하지만 현지 사람들은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다스랄(大石爛兒)로 발음하고 있다.

한 사람은 모자를 들고 또 한 사람은 앉아서 신발 수선을 하는 조각상이 있다. 모자를 든 조각상은 1817년 개업한 모자가게 마쥐위엔(馬聚源)이고 앉아 있는 조각상은 1858년 개업한 신발 가게 부잉자이(步瀛齋)다.

네이롄셩(內聯升)은 1853년에 개업했는데 가게이름의 내(内)는 궁궐 안을 뜻하며 연승(聯升)은 ‘조정의 신발’이라는 뜻이다. 현판글자는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이며 공산주의자였던 궈모뤄(郭沫若)가 직접 쓴 것이다.

맹자 후손인 맹락천(孟洛川)은 고서에서 파랑강충이(青蚨)의 피를 돈에 묻히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뜻의 청부환전(青蚨還錢)을 상호에 써서 1893년 루이푸샹(瑞蚨祥)을 열었다. 1층 현관을 지나 비단 파는 곳으로 가니 의외로 사람들이 많다. 알록달록한 옷을 보고 있자니 비단이 이렇게 예쁜 줄 미처 몰랐다.

다스랄에는 1669년에 문 연 약국인 퉁런탕(同仁堂)과 1908년에 만든 찻집인 장이위엔(張一元)도 있다. 1858년 톈진에서 문을 연 만두 브랜드인 거우부리(狗不理)도 있다.

위안스카이(袁世凱)는 만두를 서태후에게 바쳤는데 너무 맛이 좋아 ‘그 어떤 음식도 거우부리의 맛에 미치지 않는다’고 극찬했다고 전한다. 서태후 옆에서 만두를 들고 콧수염을 기른 위안스카이 표정이 코믹해 보인다.

1905년에 중국 최초의 영화인 정군산(定軍山)을 상영한 다관러우(大觀樓)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현대식 영화관으로 변했는데 영화제작자 임경태(任慶泰)의 조각상이 있다.

다스랄 거리 중간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토속 음식들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휘황찬란한 거리를 조금 벗어나면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맛깔 나는 동네가 있다.

졘빙(煎餅)도 부치고 옥수수도 찌고 감자도 볶고 러우빙(肉餅)도 튀겨 판다. 동그랗게 생긴 마퇄(麻團兒)이 있다. 찹쌀을 반죽해 깨를 입혀 기름에 튀긴 것이다.

골목 구석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민적 음식점인 바오두펑(爆肚馮)이 있다. 바오두는 소와 양의 내장을 재료로 만든 요리로 청나라 말기부터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양고기는 주로 서역에서 온 회교 무슬림의 전통 음식이다. 펑씨가 만든 바오두 가게도 회교의 상징인 칭전(清真) 두 글자와 함께 바이녠라오뎬(百年老店), 중화밍샤오츠(中華名小吃)라고 선명하게 써 있다.

바오두펑(왼쪽), 정양문(오른쪽 위), 서태후와 위안스카이(오른쪽 가운데), 왕푸징 야경(오른쪽 아래)

다하이(大海)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베이징자장면도 팔지만 주 종목은 루주훠샤오(鹵煮火燒)다. 토속 음식인데 청나라 말기 광서제 때 궁중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큰 통 속에 갖가지 내용물을 하나씩 끄집어내더니 묵직하고 둔탁해 보이는 주방 칼로 잘게 썰고 있다. 두부도 있고 창자와 허파, 비계나 속살도 있다. 훠샤오라는 말이 불에 굽는다는 말이니 두부나 고기를 구운 후 국물에 푹 담근 듯하다. 약간 연갈색 빛깔이 도는 국물이 토속적인 냄새가 풍긴다.

두부나 고기를 끄집어내더니 빠르게 자르는 솜씨가 예술이다. 그릇 속에 같은 양과 개수로 정확하게 재빨리 배분한다. 혹시 양고기냐고 했다가 주인에게 혼 났다. 어떻게 양을 돼지와 비교하냐는 것이다. 고기를 다 썰어 넣자 그릇에 국물을 붓는다. 한 그릇에 12위엔 하는 요리를 먹으려고 기다렸던 사람들이 서로 받으려고 한다.

베이징에는 진귀한 먹거리가 많은데 왕푸징(王府井) 포장마차 거리가 대표적이다. 전국 각지의 다양하고 독특한 먹거리가 집합해 있는데 딱 보면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전혀 낯선 것도 많다.

너무 맛 있어 스님도 담을 넘어간다는 포탸오챵(佛跳牆)이 있으며 과일로 만든 사탕과자인 탕후루(糖葫蘆)도 있다. 얼음처럼 차게 해서 먹는 젤리인 빙라오(冰酪)에도 군침이 돌고 구운 옥수수인 카오위미(烤玉米)도 먹음직스럽다.

소나 양의 내장을 섞어 탕으로 만든 자쑤이탕(雜碎湯)이나 발효시킨 두부인 처우더우푸(臭豆腐)는 왠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전갈, 번데기, 잠자리까지 꼬치에 꼽아서 만들어 파는데 역시 만만하지 않다.

궁중 간식인 검은 쌀로 만든 죽인 구이화즈미저우(桂花紫米粥)나 팥으로 만든 홍더우샤(紅豆沙)는 한 그릇 맛 봐도 무난하다. 신선한 우유를 뜨거운 불에 익혀 응고시킨 후 설탕을 넣어 만든 자셴나이(炸鮮奶)는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양고기나 소고기, 오징어를 불에 데친 꼬치도 입맛을 당긴다. 구운 빵 속에 고기를 햄버거처럼 넣어서 만든 샤오빙자러우(燒餅夾肉), 문어를 넣고 익혀낸 장위샤오완즈(章魚小丸子), 녹두를 묵으로 만든 챠오먼즈(炒燜子), 구운 만두인 졘자오(煎餃), 하얗게 생긴 중국식 소시지인 관창(灌腸)은 부담 없어 보인다. 후식으로 먹기 좋은 쌀국수인 궈챠오미셴(過橋米線)이나 거품 차라고 부르는 파오파오차(泡泡茶)는 입가심으로도 좋다.

생굴을 구워 파는 카오셩하오(烤生蠔)이나 오줌싸개라는 이름이 붙은 소고기 완자인 싸뉴뉴완(撒尿牛丸)에 이르니 한자도 어렵고 맛도 분간하기 어렵다. 마라탕(麻辣燙)은 매운 양념국물에 완자, 야채, 버섯, 두부 등을 넣어 만든다.

파인애플 속에 쌀밥을 넣고 쪄서 만든 보뤄판(鳳梨飯)은 색깔이 예뻐서 탐이 난다. 오리 피로 만들었다는 야쉐탕(鴨血湯)은 쳐다보기도 싫다.

왕푸징 둥화먼(東華門) 음식거리가 갈수록 깔끔하다. 가게마다 홍등이 걸려서 분위기도 돋우고 있고 요리사들도 모두 깨끗한 옷을 입고 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다. 밤이 되면 이곳은 신기한 먹거리를 눈요기하고 가끔은 용기를 내 맛도 보는 낭만적인 관광지로 점점 변할 것이다.

3)   길고 좁고 짧고 넓고, 별의별 후퉁 다 있네 

베이징에는 무수히 많은 옛 골목길인 후퉁이 있다. 골목길의 정서가 많이 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수천 개의 후퉁이 있다. 원나라 시대 도읍이 되면서 마을이 조성되면서 골목이 형성된 것이다. 몇 군데 재미난 후퉁을 찾아 가보자.

톈안먼 광장 남쪽에는 마오주석기념당(毛主席紀念堂)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양 옆 동서방향으로 길게 뻗은 후퉁이 있으니 쟈오민샹(交民巷)이다. 신중국 후 광장 한가운데 기념당이 들어섰지만 원래는 총 길이가 3킬로미터가 넘는 가장 긴 후퉁이다.

둥(東)쟈오민샹은 청나라 시대 외국 귀빈을 위한 영빈관이 있었고 서양 열강이 진출한 후에는 대사관저와 은행들이 들어섰던 곳이다. 몸통이 검고 줄기는 푸른 가로수 나무들이 있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 한적하다.

둥쟈오민샹이 끝나는 곳에서 계단을 내려서면 톈안먼 광장이다. 광장으로 나서서 마오주석기념당을 가로질러 다시 서쪽으로 가면 시(西)쟈오민샹이다.

청나라 때에는 행정부서가 있었고 민국 초기에는 중국은행들이 있던 곳이다. 비교적 서민적인 주거지역으로 변했으며 골목 사이사이로 조그만 골목들마다 별의별 이름의 골목이 연결돼 있다.

돌아가는 길 골목에 자전거, 오토바이, 삼륜차와 자동차가 나란히 세워 있다. 집집마다 오성홍기가 나부끼니 사람은 없지만 복잡해 보인다.

이번에는 가장 거리가 짧은 후퉁을 찾아간다. 쳰먼을 마주 보고 옛 상가거리인 다스랄을 지나 양메이주세제(楊梅竹斜街) 골목을 지나간다. 너무 짧아 결국 양메이주세제에 편입됐다는 이츠다제(一尺大街)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류리창(琉璃廠) 동쪽 끝과 연결돼 있다는데 도무지 이츠다제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세 갈래 길에 있는 골동품 가게 화루이자이(華瑞齋) 앞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단 한번에 찾게 됐다.

이곳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유명한 후퉁이었지만 지금은 바뀐 지 오래됐다고 하면서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스싼부쥬다오러(十三步就到了), 어른 걸음걸이로 13보만 걸으면 된다고 한다. 전봇대까지가 가장 거리가 짧은 후통, 이츠다제인 것이다.

단 한 자 정도로 짧은 후퉁 이름인데도 큰길이라는 다제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해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골목의 구조를 보니 13보만의 거리만큼 절묘하게 세갈래 길 사이에 남겨졌으니 사람들은 기발한 이름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샤오라바(왼쪽), 쟈오민샹(오른쪽 위), 이츠다제(오른쪽 가운데), 거리에서 본 샤오라바(오른쪽 아래)

골목길이 가장 좁다는 샤오라바(小喇叭)로 찾아간다. 첸먼다제를 지나 융안루(永安路)에 있다는 정보만 알고 갔는데 금방 찾았다. 빨간 바탕에 흰색 글씨로 다라바(大喇叭) 간판이 보인다. 라바는 나팔이라 뜻으로 한쪽은 넓고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큰 나팔이 있으니 작은 나팔도 있을 것이다.

오밀조밀한 골목을 들어서니 복잡한 미로 같은데 조그만 골목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어서 물었더니 한 발자국만 더 가라고 한다. 과장이 약간 심한 듯 했는데 몇 발자국 들어서니 전봇대 하나가 우뚝 서 있고 바로 사람 한 명 간신히 통과할 좁은 길이 보인다.

전봇대 굵기의 두 배 정도인 약 60센티미터 너비이니 한 사람 겨우 갈 정도다. 전봇대가 바로 나팔 부는 작은 구멍쯤 되나 보다. 입김 따라 나팔 속으로 빨려들 듯 조심스레 걸어간다. 이 좁은 곳에 집 한 채가 있다.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먼당후두이(門當戶對)가 있고 복과 이익이 백년(福益百年) 지속되라는 부적이 붙어 있다.

큰길로 나와 되돌아보니 오성홍기가 좁은 골목을 가리고 펄럭인다. 서민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후퉁 중에서도 이다지도 좁은 샤오라바 후퉁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신통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후퉁이란 말은 몽골어가 기원이고 원나라가 도읍을 정한 후 도시 계획을 하면서 조성됐다. 비록 몇 군데만 둘러봤지만 후퉁 속에 담긴 서민들의 향기를 맛 본 시간이었다.

4)   경극 전문극장 후광회관의 오리지널 경극 

베이징 후팡루(虎坊路)에는 경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장인 후광회관'(湖廣會館)이 있다. 청나라 가경제 때인 1807년경에 만들어진 이 회관은 근대화의 선구자인 쑨원이 수 차례에 걸쳐 정치 강연을 했던 곳이다.

경극 공연 관람료는 조금 비싼 편이다. 좌석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3~4만원부터 10만원이 넘기도 한다. 좀 일찍 갔더니 배우들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차와 과자를 먹으며 잠시 기다리니 악기 소리와 함께 경극이 시작된다.

첫 번째 공연 제목은 스위줘(拾玉鐲)인데, 번역하면 ‘옥 팔찌를 줍는다’는 뜻이다. 소년 푸밍(傅明)이 소녀 쑨위쟈오(孫玉姣)를 사모한다. 일부러 소녀의 문 앞에 옥 팔찌를 떨어뜨린다. 이를 본 류매파(劉媒婆)는 소녀에게 온 증표라 여겨 중매를 한다는 내용이다.

전통 악기 소리에 맞춰 코믹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화장이나 복장, 동작들을 자세하게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다. 30분 정도 이어진 공연인데 지루하면 차도 마시고 과자도 먹고 여유 있게 보면 금방 시간이 흘러간다.

한편이 끝나자 10분 정도 휴식인데 대나무로 만든 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대나무를 소재로 동물들을 만든 공예품이라 관심이 갔다. 몇 번씩이나 깎아서 50위엔 하는 매미 한 마리를 10위엔 주고 겨우 샀다.

후광회관(왼쪽 위), 경극 공연장(왼쪽 아래), 대나무 공예품(오른쪽)

두 번째 공연 제목은 다오션차오(盜仙草). 신성한 풀을 훔치다 정도로 번역하면 될 듯하다. 허선(許仙)이 부인 백소정(白素貞)에게 술을 마시게 한다. 뱀의 정체를 드러내 허선이 깜짝 놀란다. 인간으로 변한 백소정은 남편 허선에게 도움을 청하니 산으로 들어가 신성한 풀을 훔쳐 온다는 내용이다. 중국의 4대 민간 전설 중 하나인 백사전(白蛇傳)을 배경으로 만든 경극이다.

배우들의 동작이 코믹하기도 하고 칼 싸움이나 창 던지기도 표현하니 흥미진진하다. 서커스 묘기도 곁들이고 노래도 잘 한다.

이렇듯 전설이나 소설에서 경극의 소재가 나온다. 경극은 원래 안후이(安徽) 성에서 발생한 것인데 청나라 건륭제 생일 잔치에 초대돼 공연한 후 베이징에 머물게 돼 점차 베이징을 대표하는 무대극으로 발전했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