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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8 베이징 2 베이징 외곽에 아직 미개발 장성이 많다



5)   베이징 외곽에 아직 미개발 창청이 많다


베이징 외곽은 해발 2천 미터에 이르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아직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은 창청(長城)의 흔적이 많다. 잘 찾으면 미개발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는 창청과 만날 수 있다. 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달려 미윈(密雲)현 신청즈(新城子) 진에 있는 창청을 찾았다. 서서히 산 정상으로 창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 모를 나무에 열매가 열렸고 이방인의 방문에 산새가 놀라 날아가고 꽃도 피어 있다.


수풀을 헤치고 점점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돌들이 무너진 내린 길을 따라 길게 뻗은 창청에 올랐다. 가파른 창청 돌을 딛고 올랐는데 다시 내려갈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창청 벽에 기대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멀리 능선을 이어가며 창청은 끝도 없이 펼쳐 있다. 망루는 우뚝 솟았으며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파란 하늘을 가리기도 한다. 전혀 개발되지 않고 자연상태로 방치된 창청을 바라보니 길도 없고 이름도 없지만 수천 년 혹은 수백 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늠름해 보인다.


다시 오던 길을 내려갔다. 산을 내려와 멀리 조금 전에 올랐던 제일 꼭대기 망루를 보니 정말 멀게만 느껴진다. 나뭇가지들에 가린 듯 아스라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창청의 위용이 느껴진다. 산길을 내려오는데 색다른 빛깔의 과일이 있어서 하나 땄다. 사과처럼 보이기도 하고 배처럼 보이기도 하는 핑궈리(蘋果梨)라 부르는 과일이다. 해발 2천 미터 가량 되는 산골 마을에 이 사과배가 있다니 신기했다. 살짝 옷에 문지르고 맛을 보니 사과 맛보다는 더 시원하고 배 맛보다는 달콤하다.


길가에는 창청 돌을 가져다 만든 창고가 보인다. 다 쓰러져 넘어가는 나무와 멀리 창청의 모습을 뒤로 하고 마치 보물 창고인 양 버티고 섰다. 창고 너머로 나무가 수놓은 파란 하늘이 정말 멋진 곳이다. 다른 곳은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는데 비해 이 산골자락은 창청이 있지만 여느 다른 지역처럼 전혀 혜택을 보지 못하는 동네다.


하늘이 새파랗게 그림을 그리면 늘 창청으로 가고 싶어진다. 이번에는 시내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시자즈(西柵子)를 찾았다. 농가식당이 있어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마당에는 말린 옥수수를 대롱대롱 걸렸고 호박도 넝쿨째 매달린 산골 농가가 토속적인 분위기다. 마당에서 바라보니 능선마다 창청이 이어져 있고 봉우리마다 망루가 봉긋하게 솟아 있는 명당 자리다.


‘나로부터 창청 보호’라는 말과 함께 ‘미개발창청 등산금지’라고 써 있다. 옥수수 밭을 지나 계곡 물이 졸졸 흐르는 길을 따라 가니 한 사람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등산로가 있다. 길게 자란 풀들이 계속 팔과 다리를 긁는다. 갑자기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독거미가 나타났다. 새까맣고 흉물스럽게 생긴 거미가 길을 막아 섰으니 등골이 오싹하다. 연한 하늘색 빛깔이 살짝 감도는 엉겅퀴처럼 생긴 꽃에는 벌이 대롱 매달려 꿀을 빨고 있다.


1시간이나 오르막 길을 걸어 올랐다. 나무에 가려 어두침침했는데 햇살이 보이기 시작하니 정상에 다 왔나 보다. 창청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잠시 땀을 닦고 주위를 살피니 그야말로 감동적인 모습이 펼쳐 있다. 길을 따라 가파른 능선으로 옮겨 갔다. 절벽을 따라 벽돌이 그대로 잘 보존된 상태이고 풀과 나무들이 키만큼이나 높이 자라 있다.


창청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산하이관에서 시작된 창청이 베이징 외곽으로 오면서 서북방향과 서남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창청도 보인다. 이곳은 ‘매도 날아오르다 나자빠진다(鷹飛倒仰)’는 졘커우(箭扣) 창청의 북쪽 자락이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창청 사잇길을 따라 갔다. 산 능선을 내려갔다가 가파르게 오르기를 반복한다. 길이 제 멋대로라 망루 가운데를 통과하기도 하고 옆길로 우회하기도 했다. 망루에는 벽돌들이 부서져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지만 서로 잘 엮여 있어 탄탄해 보인다. 군데군데 보이는 낙서는 눈엣가시인데 미개발창청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보다.


멀리 산 아래를 굽어보면 망루와 망루를 연결해주는 성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살아난다. 다른 곳과 달리 사람의 손이 타지 않고 자라난 나무들과 벽돌, 화강암을 뚫고 자라는 거센 풀들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생명의 신비를 보여 주고 있다. 내려가는 길은 꽤 위험하다. 각도가 높으니 벽돌이 무너져 귀퉁이에 있는 나무를 잡고 내려와야 한다.



사과배(왼쪽 위), 젠커우 장성(왼쪽 가운데), 사향하늘소(왼쪽 아래), 신청즈 장성(오른쪽)


배낭을 메고 내려가려고 할 즈음 성벽을 타고 오르는 징그러운 벌레 하나가 보인다. 수십 개의 가는 발을 움직이며 살살 벽돌을 타더니 성벽 너머로 쏙 사라진다. 스멀스멀 기어가는 모양이 징그럽기도 하지만 이런 높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소름이 돋을 정도다.


와르르 무너진 성벽이 보인다. 무너진 채로 방치됐으니 대포를 맞은 듯 잔해가 나뒹굴고 있다. 언제 이렇듯 폐허가 된지 모르나 일일이 다 보수하지는 않는 듯하다. 등산로를 사뿐사뿐 내려가는데 선배가 장수하늘소가 있다고 소리친다. 장수하늘소는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인데 실물로 본 적이 없으니 신기했다. 크고 작은 발이 8개이고 다른 곤충에 비해 날씬한 편으로 머리 쪽으로 빨갛게 왕관을 쓴 모습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장수하늘소가 아니라 벚나무사향하늘소였다.


생전 처음 보는 거미가 1미터는 넘는 거미줄을 쳐 놓고 있다. 수백 개의 다각형이 서로 얼키설키 엮여 있다. 거미줄 한가운데 딱 자리를 잡고 바람에 날리는 먹이들을 기다리는 거미도 한적한 창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별 사탕처럼 앙증맞은 흰 꽃잎이 움큼 채 피었다. 열 움큼이 한꺼번에 자라 반짝이는 별빛처럼 빛나고 있고 숨은 듯 벌 하나가 붕붕 휘젓고 다니고 있다. 성벽 아래 나무 그늘과 함께 살아가는 벌레와 꽃을 따라 서서히 내려온다. 파란 하늘이 있는 가을이 오면 미개발창청으로 여행을 떠나도 좋다.


6)   베이징의 별미 당나귀, 민물 가재 그리고 비둘기


베이징에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별미와 만난다. 혐오스럽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소에 보지도 듣지도 못한 요리를 먹을 때면 호기심이 발동한다. 코리아타운인 왕징(望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다오(蟹島)라는 공원이 있다. 세(蟹)는 게이니 게섬이라는 곳이다. 세다오에서 가장 큰 식당 2층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중국 역사를 전공한 친구가 '하늘에는 용 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天上龍肉, 地上驢肉)'가 제격이니 당나귀 고기를 먹어 보라고 한다. 하늘에 용이 살 리 없지만 용 고기에 비교하니 엄청난 찬양이다. '당나귀를 끌고는 못 가지만 배에 넣고는 간다'는 속어도 있다는데 맛이 좋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오향장육과 비슷한 형태로 썰어 나온 당나귀고기는 씁쓸한 맛이 감돌긴 하지만 나름대로 향긋했다. 육질이 쫄깃하면서도 씹을수록 뒷맛도 살아나니 먹을 만하다. 고단백 저지방으로 음허를 보양하고 양기를 북돋우는 음식으로 중의에서도 손꼽는다.


홍등이 붉게 빛나고 있는 구이제에 마라롱샤(麻辣龍蝦)를 먹으러 간다. 이곳 민물가재요리는 시민들의 야식으로 손색 없고 인기도 최고다. 원래 명칭은 ‘제사 지낼 때 담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구이제(簋街)인데, 쓰기도 복잡해 발음과 성조가 같은 귀신 귀(鬼)를 쓰니 사람들이 귀신 나오는 거리라고도 한다.


양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민물가재는 청결에 문제가 있다고도 하는데 여전히 즐겨먹는 야참이다. ‘마라’라는 말이 너무 매워 입이 다 얼얼하다는 뜻인데 쓰촨 요리에 많이 쓰는 말이다. 똑 쏘고 매운 맛이 강렬하니 맥주와 함께 먹으면 맛 있다. 한 마리에 2위엔에서 5위엔까지 하는데 주문하기 전에 미리 살펴보고 크기를 알아두면 좋다. 크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싱싱한 지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갈수록  비싸고 크기도 작아지는 것이 안타깝지만 마라룽샤의 맛은 때때로 생각나는 별미다. 


구이제 한 모퉁이에 개구리 요리를 파는 곳이 있다. 식용개구리를 뜨거운 기름에 넣고 맵고 쏘는 듯한 향료와 재료를 넣어 만든 찬쭈이와즈(饞嘴蛙仔)다. 찬쭈이라는 말은 식탐을 뜻하고 와즈는 개구리이니 이름조차 요상하다. 진구이샤오산청(金簋小山城) 식당이 찬쭈이와즈 요리를 처음 개발한 본점이다. 점심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고추와 야채도 맛 있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구리다리는 마치 닭고기처럼 쫄깃하고 씹는 맛이 좋다. 그래서 밭에서 나는 닭고기라는 톈지(田雞)는 개구리를 뜻하는 말이다.



비둘기요리(왼쪽), 당나귀고기(오른쪽 위), 민물가재(오른쪽 아래)


이번에는 창핑구(昌平區) 양팡진(陽坊鎮)으로 비둘기요리를 먹으러 간다. 바로 장거즈(醬鴿子)를 파는 식당이다. 된장 맛이 약간 나면서 바삭 구운 비둘기 요리가 아주 고소하다. 통째로 비둘기 형체가 그대로 다 드러나는 것은 처음 본다. 상추 위에 담겨 적나라하게 나오니 약간 놀랐다. 한 마리 가격이 26위엔이니 가격도 싼데다가 맛도 정말 바삭바삭하고 살 맛도 고소한 것이 아주 훌륭하다.


베이징에 갈 때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독특한 별미를 맛 보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지만 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새로운 요리가 나오면 언제나 스스럼 없이 맛 보면서 중국 문화에 대한 체험을 늘려 가려고 한다.


7)   천년 고찰 안에 들어선 가장 예쁜 찻집에 가다


서점에서 우연히 베이징에서 가장 예쁜 찻집인 밍후이차위엔(明慧茶院)을 알게 됐다. 책 제목도 저자도 잊었지만 찻집 이름만은 또렷이 노트에 적었던 것이다. 베이징 서북쪽을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양타이산(陽臺山) 남쪽자락에 있는 천년고찰 다쥐에쓰(大覺寺)에 있는 찻집을 찾았다. 이 사원은 요 나라 시대인 1068년에 거란족이 처음 세운 사원이다. 다쥐에쓰에 들어서니 고목들이 하늘까지 치솟아 햇살을 가리고 있다.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들이 헤엄치고 있는 연못 위 다리를 지나면 중러우(鐘樓)와 구러우(鼓樓)가 자리를 잡고 있다.


톈왕뎬(天王殿) 마당에는 서까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미륵불이 자리잡고 있다. 좌우에는 수호신인 사대천왕이 각각 자리를 잡고 있는데 손바닥에 탑을 들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처마 밑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풍경이 고즈넉하게 걸려 있다. 다슝바오뎬(大雄寶殿)과 우량셔우포뎬(無量壽佛殿)에 걸린 황제 친필 편액은 그 필체가 묵직하기도 했지만 휘감고 있는 용 문양이 예사롭지 않다. 벗겨지고 너덜너덜한 청색의 편액 바탕은 오랜 세월을 지나온 탓에 은근한 색채를 띠고 있다. 비늘 사이로 살아있는 듯 반짝거리는 빛깔에는 연한 붉은색이 여전히 묻어 있다.


무거래처(無去來處)는 이름처럼 300년을 한 자리에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듯하다. 석가모니 불상을 비롯 삼존불이 나란히 앉아 있다. 마당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우량셔우포뎬 편액 동정등관(動靜等觀)은 비슷한 나이일 터이지만 용의 연붉은 빛깔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군데군데 약간 파란 색조가 드러나는 것으로 봐서 처음부터 청룡을 표현한 듯 보인다. 문과 창살 무늬도 매우 아름답다. 수많은 원이 서로 고리를 엮어 이뤄진 문양도 기하학적으로 절묘하고 유리창에 비친 나무를 보는 재미도 있다.


천년 고찰 한구석에 열린 조그만 문을 지나 골목을 따라 간다. 밍후이차위엔 간판이 단정한 필체로 걸려 있다. 문을 따라 조용히 들어가니 마당 곳곳에 차 탁자들이 놓여있고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투명한 유리 탁자에 홍등과 나무가 비친 모습이 이 찻집 분위기를 더욱 산뜻하게 만들고 있다. 문에는 노란색 등 초롱이 걸려있고 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으며 연꽃이 화분 안에 넓은 잎사귀를 드러내고 있다. 사각형 홈을 따라 물길을 만들었으니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새소리와 매미소리도 지저귀니 자연 그대로 어우러진 찻집이라 할만하다.


화장실조차 고급 레스토랑보다 더 깔끔한 모습이다. 둥글고 흰 항아리에 꽃무늬를 넣어 화사해 보이며 거울도 맑은 차처럼 투명하기 이를 데 없으니 정말 ‘가장 예쁜 찻집’의 이름값을 한다. 아가씨들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방마다 지키고 있다. 고양이가 의자 위에서 졸음에 겨운 듯 앉았다. 정면 큰 방인 쓰이탕(四宜堂)에는 전통악기인 구정(古箏)소리가 흘러나오고 벽이나 탁자마다 예쁜 다구(茶具)들이 진열돼 있다.



용 문양 편액(왼쪽 위), 사원 찻집(왼쪽 가운데), 샤오싱 술 항아리(왼쪽 아래), 찻집 마당(오른쪽)


선(禪)과 어우러진 차(茶)를 표방하는 멋진 찻집으로 항저우의 룽징(龍井)차로 유명하다. 차 잎이 주는 색(色), 향(香), 미(味)를 이르러 이넌싼센(一嫩三鮮)이라 합니다. 어리고 부드러운 찻잎으로 세가지 맛을 낸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멋진 환경,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분위기이니 풍(風) 하나는 더 보태야 할 것입니다. 한 아가씨에게 언제 생긴 찻집이냐 물으니 1997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생각보다 오래된 찻집은 아니다.


맞은편 샤오싱차이관(紹興菜館)은 저장(浙江)요리를 파는 식당이다. 샤오싱의 유명한 황쥬(黄酒)인 뉘얼홍(女兒紅) 항아리가 처마 밑에 줄줄이 놓여 있다. 뉘얼홍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 중 하나로 루쉰(魯迅)의 고향 샤오싱 특산이다. 서산을 넘어가는 강한 햇살은 대문과 처마, 항아리와 창살의 붉은 빛 감도는 색깔에 진하게 녹아 있다. 나뭇가지 그림자로 흑백의 조화를 이루니 천년 고찰 안에 자리잡은 찻집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부처의 열반을 상징하는 나무가 있다고 해서 찾았다. 부처는 무우수(無憂樹)에서 태어났으며 보리수(菩提樹)에서 득도했고 두 그루의 사라수(娑羅樹) 사이에서 열반했다. 다쥐에쓰의 사라수는 수령이 오백 살이 넘는다. 잎이 7개라 칠엽수라고도 불리는데 밝은 빛을 받아 잎사귀 모양이 잘 드러난다. 잎새 사이에 귀여운 알맹이 같은 열매가 한 줄 수염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는 모습이다.


베이징 서편에 있는 천년 고찰의 은근한 분위기를 보니 아침나절에 와 보고 싶다. 저녁을 먹고 한밤에 다시 와도 좋겠다. 햇살과 그림자도 멋지지만 등불에 도취하고 전통 악기에 심취하며 맛깔스런 차를 마시면 시와 노래를 읊을 지도 모른다.


8)   라오서 차관의 전통문화 버라이어티 공연 


베이징 첸먼(前門) 시다제(西大街)에 있는 라오서(老舍) 차관에서는 매일 저녁 7시 40분부터 변검을 비롯해 잡기, 마술, 경극, 샹셩(相聲) 등 버라이어티 공연이 벌어진다. 차를 마시며 중국의 전통공연과 민간기예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청나라 말기와 민국 시대를 거치며 이곳 차관에서는 길거리에서 토론도 하고 강연도 하는 찻집이다. 거리에서 라오얼펀(老二分)의 가치로 큰 사발에 차를 팔던 곳이다. 그 옛날 향수, 즉 서민들의 한잔 차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당시 금액 그대로 맛 있는 뜨거운 차를 팔고 있는데 거의 무료 서비스에 가깝다. 얼펀이면 2위엔의 10/1 가격이니 굳이 우리 돈으로 따지면 40원 정도다. 라오서는 중국 현대 문학계에 유명한 소설가이면서 극작가다. 본명은 서경춘(舒慶春)이며 만주족인데 베이징 태생으로 1888년에 태어나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6년까지 살았다. 지금의 차관은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1988년에 문을 열었는데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방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공연은 1시간 30분 가량 쉼 없이 진행된다. 입장료는 100위엔을 기준으로 더 비싼 자리도 있고 싼 자리도 있다. 중국의 전통악기들이 모두 나와 분위기를 돋우는 합주 연주로 시작한다. 이어 고음을 내뿜는 악기로 날라리라고 하는 쒀나(嗩呐) 독주를 한다. 높은 소리를 내다보니 새소리를 자연스럽게 흉내 내기도 하는데 입 속에서 조그만 피리를 혀를 이용해 자유롭게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나팔 악기를 불며 연주하는 카씨(卡戲)라고 부른다.


차관의 숟가락에도 경극 가면이 새겨 있다. 이곳에서 경극을 관람할 수 있는데 깃발을 꼽고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 영화 <패왕별희>를 떠올릴 수 있다. 경극은 삼국지, 백사전, 수호지, 손오공, 양문여장 등 옛날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는 긴 무대극인데 그 중 일부를 토막극으로 만든 것을 저즈씨(折子戲)라고 한다. 청나라 건륭제 및 가칭제 시대에 만주족 아이들에게서 유행하던 팔각고(八角鼓)와 현악기를 반주로 노래한 것이 유래하는 단셴(單弦)이다. 촛불을 입에 물고 노래하니 더욱 색다르다.  서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노랫가락과 리듬에 맞춰 민속무용을 추는 무희 3명이 나온다. 무희들의 춤사위는 궁중 무용 같기도 한데 긴 옷을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귀여운 춤이다.



라오서 차관 입구(오른쪽), 다완차(왼쪽 위), 소림무공 공연(왼쪽 가운데), 변검 공연(왼쪽 아래)


손으로 하는 그림자 놀이 셔우잉시(手影戲)로 중국에서 역사가 꽤 오래 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그림자 놀이를 하는 것에 묘미가 있다. 귀에 익은 팝송에 맞춰 코믹한 그림자 손길이 정말 신이 난다. 새가 부화하는 장면이나 오리와 강아지가 서로 싸우는 그림자도 재미있다. 아주머니 마술사의 마술 공연도 열린다. 헝겊을 이용한 마술인데 현란하지는 않아도 차관의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린다. 외국인 손님을 무대로 올려 함께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


대머리 아저씨의 항아리 돌리기다. 커다란 항아리를 자유자재로 이리저리 머리카락 하나 없는 머리 위에 올렸다가 몸을 움직여 돌리는 모습은 영 코믹하다. 박수 쳐 달라고 외치니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소림무공을 볼 수 있는 곳은 아주 많지만 이곳 라오서 차관에도 볼만한 소림 무공 시연을 만날 수 있다. 칼과 창으로 하는 무공도 있으며 이마로 쇠를 토막 내는 내공도 선보인다. 차관을 떠나갈 정도로 기합 소리가 우렁차다.


말로 사람들을 웃기는 만담인 샹셩도 제법 인기가 있다. 말로 먹고 사니 사람들을 웃기는 것은 아주 쉽다. 다만, 까다로운 베이징 말로 하니 외국인들은 알아듣기 쉽지 않다. 익숙한 노래에 맞춰 코믹한 연기가 분위기만으로도 재미있다. 마지막에 웃기는 한 대목은 파이피구(拍屁股)라고 하는데 피구는 축구선수 이름이 아니라 바로 엉덩이를 말합니다.


순식간에 얼굴, 즉 표정이 바뀌는 변검(變臉)이야말로 이곳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공연이다. 표정 변화의 무기는 역시 열 가지가 넘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가면이라 할 수 있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 흥미진진하고 폭소도 자아내는 공연에 목이 타면 차를 마시게 되는데 열 잔 이상은 마셔야 할 것이다. 베이징의 다양한 문화공연을 한군데 다 모아놓았으니 관람료가 아깝지 않는 좋은 공연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