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안후이 2 오악을 다 합쳐도 황산만 하랴4) 황산 黃山 오악을 다 합쳐도 황산보다 더 멋질 순 없다 황산 아래 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겼다. 큰 배낭에 모든 짐을 넣고 작은 배낭에는 카메라와 캠코더 그리고 두꺼운 옷 하나만 넣었다. 그리고 탕커우(湯口)터미널 앞 식당에서 다음 행선지 버스표를 예매하고 짐을 맡겼다.황산 지도를 폈다. 너무 볼 곳이 많아서 1박 2일로 다 볼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올라가는 코스와 내려오는 코스만 정하고 터미널에서 윈구쓰(雲谷寺) 가는 버스를 탔다. 황산 아래 동네를 한 바퀴를 돌아 사람들을 잔뜩 태우더니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간다. 입장료 200위엔, 케이블카 65위엔. 참 비싸다.케이블카를 타고 가파르게 날아올라 간다. 한국 관광객들..
41 안후이1 와호장룡처럼 등장하는 낭만적인 옛 촌락 속으로안후이 성은 춘추전국시대 오월초(吳越楚) 세 나라의 부용(附庸), 즉 속국이었는데 원래 상(商)나라 후예들이 세운 환(皖)나라의 근거지였다. 그래서 안후이의 약칭은 완(皖)이다.청나라 강희에 이르러 강남성(江南省)이 장쑤(江蘇)와 안후이(安徽)로 분리된다. 이때 창장 북쪽의 안칭(安慶)과 후이저우(徽州)의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당송 시대를 거쳐 명나라에 이르러 휘상(徽商)은 중국 3대 상방으로 성장한다. 청나라 말기에는 호설암과 성선회를 비롯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등장하는 화폐이론가이자 상인인 왕무음(王茂蔭), 중앙 정치권력을 장악한 좌종당, 이홍장 등 안후이 출신들이 득세한다.안후이의 수도는 창장 북쪽의 허페이(合肥)이고 오악을 합친 ..
40 저장2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간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5) 항저우 杭州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많은 아름다운 호수저장 성 수도 항저우에는 낭만적인 호수인 시후(西湖)가 있다. 시후는 치엔탕장(錢塘江) 하류에 있다고 해서 치엔탕후라 부르기도 한다. 동파거사(東坡居士) 소식(蘇軾, 1037~1101)은 은은한 화장과 짙은 화장 모두 어울리는 서시(西施)와 같은 호수라고 했는데, 그래서 시즈후(西子湖)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시후가 아름답다는 비유다.시후는 하나의 동그란 원과 같다. 호수로 시선을 두면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간다. 바람이 부니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노 젖는 뱃놀이 모습이 보인다. 두둥실 떠다니는 조각배도 있고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 유람선도 있다. 어디에서 보더라도 넓은 ..
39 저장1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서관에 잠입한 책 도둑저장 성은 춘추전국시대에 오나라와 월나라가 영토 분쟁을 하던 곳이며 삼국시대 손권 정권의 기반이었다.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지금처럼 성의 경계가 만들어졌으며 청나라 강희제에 이르러 저장 성이 됐다.저장은 신안장(新安江)과 쳰탕장(錢塘江)을 비롯 많은 강들이 구비구비 흘러가는 지리적 특성에 빗대어 지어진 이름으로 약칭으로 저(浙)라고 한다.수나라 때 지명인 위항(余杭)의 이름을 딴 항저우는 남송의 수도이었으며 중국 어느 곳보다 애향심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호수인 시후(西湖)가 있으며 샤오싱은 중국 20세기 초 민족주의자이며 문학가인 루쉰이 태어난 고향이다.저장상인들은 수완이 뛰어난데 특히 ‘돈이 있는 곳에 반드시 있다’는 원저우 상..
38회 푸젠 기네스북에 오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불교사당푸젠 성은 당나라 시대 푸저우(福州)와 젠저우(建州)를 합쳐 관찰사를 파견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고대에 칠민(七閩) 또는 팔민 부락의 근거지였기에 성의 약칭이 민(閩).오대십국 시대에는 관찰사의 동생인 왕심지(王審知)가 민나라를 건국하기도 했으며 명나라 말기에는 가뭄과 반청운동에 실패한 정성공(鄭成功)이 타이완으로 도피하기도 했다.푸젠 남부의 민상(閩商)은 예부터 4대 상방으로 꼽히며 지금도 푸젠의 수도인 푸저우를 비롯해 샤먼, 원저우는 상업과 무역도시로 유명하다,1) 장저우 漳州 너무 예뻐 징그럽기까지 한 희한한 사당장저우 시내를 걸어서 쥬룽장(九龍江) 방향으로 갔다. 동서로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있는 웨이전거(威鎮閣)을 보기..
37 장시 2 중국의 유태인, 커자 부족의 흔적1) 간저우 贛州 남방으로 이주한 손님이 주인이 된 까닭은커자(客家)부족은 중원으로부터 남방으로 이주했다. 북방민족이 중원으로 진입하자 남쪽으로 도피한 것인데 남방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등 독자적인 문화 양식을 지녔다. 상업에 능수능란해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동남아, 홍콩을 비롯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 그 영향력이 세계적이다. 중국계 사업가들 중에서 커자 출신이 유난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중국의 유태인이라 불리기도 한다.장시(江西)성 남단 도시 간저우 우룽춘(五龍村)에 있는 커자풍경원(客家風景園)을 찾았다. 공사 중이라 그런지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 가니 룽쥐웨이(龍居圍)라는 집이 한 채가..
36 장시1 마오쩌둥이 앉았던 자리, 사진 찍는데 돈 내라장시 성은 한나라 시대 예장군(豫章郡)이었으며 서진 시대에 강주(江州)라고 하다가 당 현종이 강남서도(江南西道)를 설치한다. 장시 성을 흐르는 간장(贛江)의 이름을 따서 약칭으로 ‘간’이라 한다.장시 성의 수도는 난창봉기로 유명한 난창이며 북쪽으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한 루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북방에서 내려온 커자 부족의 근거지가 된 간저우가 있다. 장시 문화체험을 시작한다.1) 루산 廬山 서양열강의 별장 마을 아침의 비둘기 합창장시 성 최북단 도시 쥬장(九江)으로 향했다. 쥬장에서 다시 세계문화유산인 루산으로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루산의 중심인 구링(牯嶺)까지는 산을 구비구비 돌아 2시간을 간다.구링은 해발 ..
35회 후베이 삼국지 요새에서 학을 타고 날아간 사람 후베이 성은 둥팅후(洞庭湖) 북쪽에 위치하며 기원전부터 제후국인 악(鄂)나라가 존재했으며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영토이고 수나라 이래 악주라 불립니다. 지금 후베이 성의 약칭이 바로 ‘어(鄂)’이다. 성 수도인 우한(武漢)은 1927년 중화민국이 우창(武昌), 한커우(漢口), 한양(漢陽)을 합쳐 만들었다. 한커우는 당나라 이후 이름난 상업도시였으며 우창은 삼국시대 손권이 적벽 전쟁에서 승리한 후 건설한 도시다. 싼샤(三峽) 댐이 있는 이창(宜昌) 서쪽은 소수민족인 투자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소수민족 생활터전과 세계 최대의 댐 그리고 창장을 바라보고 있는 멋진 누각으로 찾아가보자. (1) 이창 宜昌 거대한 물줄기를 내뿜어 어디로 가는가 후베이 성 이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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