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기 민란 영웅 이자성, 대장정을 이끈 마오쩌둥과 닮았다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산시 ④ 이자성 고향 미즈 사마천 고향 한청에서 이자성행궁(李自成行宫)이 있는 미즈(米脂)로 간다. 북쪽 직선거리로 260km 떨어져 있다. 두 도시 동쪽에는 거대한 황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해 대중교통이 아주 불편하다. 황하를 경계로 두 성이 나뉘어 있어 성을 넘나들어야 한다. 산시(陝西) 고도용문(古渡龍門)을 지나 산시(山西) 우문구(禹門口)로 가는 길이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이자성이 수도를 향해 황하를 건넌 지점이다. {계속}
'하루 두 끼' 먹는 습성, 황하 따라 상업으로 성장한 마을[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산시 뤼량 치커우고진 ② 시완촌과 헤이룽먀오 리자산촌(李家山村)에서 만난 가오보(高波) 선생 부부 자가용을 타고 고진으로 내려왔다. 굽이굽이 흐르는 황하, 구곡황하제일진(九曲黄河第一鎭)이라 자랑할 만큼 치커우고진(磧口古鎭)은 예부터 상업이 발달했던 마을이다. 황토가 가라앉은 모래톱 '치(磧)', 황하를 따라 오가는 배들이 부두에 닿을 때마다 왁자지껄했으리라. 동북쪽에서 흘러온 초수(湫水)가 황하와 만나는 강변마을은 상업이 번성했다. {계속}
유가협에서 동인(퉁런)까지 약 5시간 걸린다. 탕카의 고향이자 다양한 티베트불교 문화와 예술이 경이로운 땅이다. 퉁런을 가자면 황하를 따라 강변과 협곡을 지나야 한다. 누런 강물 대신 깨끗하고 맑은 황하가 이어진다. 마침 노을이 지는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다. 티베트 말로 '희망의 금빛 골짜기'라는 뜻을 가진 도시로 티베트 화가의 고향이며 불교사원에 걸린 족자그림인 탕카唐卡의 본고장. 러궁热贡 예술이라 부른다. 러궁이 바로 통런을 뜻하며 청해성 황남장족자치주에 속한다.
란저우에서 2시간 거리의 유가협에서 쾌속정 타고 다시 50분, 현장도 지났고 달라이라마도 법회를 열었던 병령사석굴, 자연대불 만나고 돌아왔다. 린샤(临夏)회족자치주에 포함된 황하 상류 골짜기 협곡으로 유람선을 타고 양쪽 기암절벽의 경관과 유유히 흐르는 황하의 위용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 장강삼협에 빗대어 ‘황하삼협’이라 불립니다. 유람선을 타고 가면 유가협 중간에 위치한 북위 시대 석굴이자 감숙 성과 섬서 성을 잇는 실크로드 지류에 위치한 병령사는 와불을 비롯 180여 곳의 천연동굴 속에 만들어진 수많은 불상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병령’이란 말은 티베트 말로 ‘십만불’의 음역입니다. 벽화와 불상이 은근히 매력적이다.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6] 원나라 말기 홍건군 백련교의 민란 ① 중국민란 역사에서 원, 명, 청 시대를 아우르는 코드는 피지배계급의 질곡을 줄기차게 담아낸 민간 종교결사 백련교(白莲教)를 주시해야 한다. 서기 4세기 동진 시대 강서 여산(庐山)의 동림사(东林寺)에서 발원한 대승불교 정토종(净土宗)의 한 계파로 남송 시대 모자원(茅子元)이 창립한 백련종(白莲宗)이 민란의 염원을 담아내며 백련교로 발전했다. 송나라에 이르러 중국 불교는 아미타불을 숭상하고 '살생, 절도, 음란, 망언, 음주'를 행하지 않는 지계(持戒)를 염불해 서방정토로의 왕생을 기원하는 결사가 성행하던 시기였다. 모자원은 1069년 강소 곤산(昆山)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19세에 출가했다. 동림사에서 정토종을 창건한 ..
16회 간쑤 1 실크로드 위에 있는 만리장성 서쪽 끝자락에 올라 간쑤 성은 길게 동서로 뻗어 있는데 우웨이(武威), 장예(張掖), 쥬취엔(酒泉), 자위관(嘉峪關), 위먼(玉門), 둔황(敦煌)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상의 주요도시들이 연결돼 있다. 유명한 허시저우랑(河西走廊)은 남쪽으로는 치롄산(祁連山), 북쪽으로는 허리산(合黎山)과 룽셔우산(龍首山)을 장벽으로 좁고 긴 평야 지대로 우챠오링(烏鞘嶺)에서 시작된 길이 위먼관(玉門關)까지 장장 1000km에 이른다. 신장(新疆)과 중앙 아시아를 왕래하는 실크로드 주요 통로이었으며 지금도 우루무치로 가는 철로와 국도가 이어져 있다. 간쑤 성의 수도인 란저우는 실크로드 길을 따라 우루무치(烏魯木齊)로 가거나 칭장(青藏)고원을 거쳐 티베트 라싸로 가는 기차가 반드시..
황하에 놓인 철교는 1907년 서양사람들이 건설했다고 합니다. 총 길이 233.33미터, 넓이 7미터인 이 철교는 처음에 란저우 황하철교라고 불리다가 1942년에 중산교로 이름을 바꿨다 합니다. 중산교 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러 나와 있습니다. 해가 지자 란저우시 중심을 흐르는 황하의 모습이 점차 변합니다. 흙탕물이던 색깔이 노을에 비쳐 점점 붉어지더니 어느덧 사라지고 맙니다. 황하를 질주하던 쾌속정들도 조용해지니 멋진 밤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