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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아웃사이드-13] 다쥐에쓰에 있는 밍후이차위엔


- 천년고찰 다쥐에쓰의 은은한 퇴색과 사라수


- 천년고찰 안에 있는 '가장 예쁜 찻집' 모습 


신화서점에서 베이징에 있는 전통찻집을 소개하는 책을 찾았다. 차 마시며 한담하는 곳도 많지만 민속공연을 겸하기도 하고, 술을 함께 팔기도 한다. 그 중 환경이 ‘가장 예쁜 찻집’을 꼽으라면 밍후이차위엔(明慧茶院)이라 했다. 책 제목도 저자도 잊었지만 찻집 이름만은 또렷이 노트에 적어둔 채 며칠이 지났다.

 

올림픽이 막바지로 접어들 즈음 갑자기 찻집이 생각났다. ‘얼마나 예쁠 길래?’ 지도를 보니 베이징 시내에서 한참 멀다. 상디(上地)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릴 듯하다. 마침 하늘도 파랗게 변한 어느 날, 선배에게 ‘가장 예쁜 찻집 가지 않으실래요?’라며 꼬셨다.

 

찻집은 천년고찰(千年古刹) 안에 있다. 10킬로미터는 될 듯한 길고 지루한 베이칭루(北)를 지나 베이징 서북쪽을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양타이산(台山) 남쪽자락에 있는 다쥐에쓰(大)가 바로 그곳이다. 철길 앞에서 잠시 내려 오후 햇살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는 절벽을 바라보기도 했다.

 

()나라 시대인 1068년에 거란(契丹)족이 처음 세운 사원으로 처음에는 청수원(水院)이라 불렀다. 금(金)나라 6대 금장종(金章宗) 시대에 이르러 베이징 서쪽 산자락에 조성한 8곳의 행궁(行)이자 서산 8대수원(八大水院) 중 하나이기도 했다. 베이징 서쪽 방향에는 그만큼 산도 높고 물도 깊은 지형인 것이다.

 

다쥐에쓰에 들어서니 고목(古)들이 하늘까지 치솟은 듯 햇살을 가리고 섰다.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들이 헤엄치고 있는 방생 연못 위 다리를 지나면 종루(钟楼)와 고루()가 좌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천왕전(天王殿) 앞 마당에는 서까래의 그림자가 조용히 수 놓듯 새겨져 있고 미륵불이 오른 무릎에 염주를 쥔 오른손을 올려놓고 앉아 있다. 좌우에는 수호신인 사대천왕이 각각 자리를 잡고 있는데 비파를 들고 있거나 손에 탑을 들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천왕전을 지나니 풍경 모습과 소리가 은근한 자태와 성조를 띠고 흔들리고 있다. 커다란 고목 두 그루가 좌우에 대칭으로 뿌리 박고 있는데 그 연륜이 세월을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돼 보였다. 게다가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가 햇살을 가로막으니 군데군데 가지 사이로 새어 나온 그림자만이 한낮임을 알려주고 있다.


 

다쥐에쓰는 청나라 건륭제에 이르러 새로 중건했는데, 특히 대웅보전(大雄殿)과 무량수불전(无量寿佛殿)에 걸린 황제 친필 편액은 그 필체가 묵직하기도 했지만 둘레에 휘감고 있는 용 문양이 예사롭지 않은 권위를 담고 있다. 벗겨지고 너덜너덜한 청색의 편액 바탕은 오랜 세월을 지나온 탓에 은근한 색채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이 편액에는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용이 조각돼 그 세월의 빛깔을 담아 은은하게 퇴색됐지만 비늘 사이로 살아있는 듯 반짝거리는 빛깔에는 연한 적색이 여전히 묻어나 있다. 대웅보전의 ‘무거래처(無去來處)’는 이름처럼 300여 년을 한 자리에 그 불가의 뜻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듯하다. 석가모니 불상을 비롯 삼존불이 나란히 앉았는데 불그레한 빛깔의 조각상이 여느 불상과는 사뭇 달랐다.


 

무량수불전의 편액은 ‘동정등관(動靜等觀)’은 비슷한 나이일 터이지만 용의 그 연붉은 빛깔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군데군데 약간 파란 색조가 드러나는 것으로 봐서 처음부터 청룡을 표현한 듯하다. 대웅보전에는 붉은 용을 세우고 무량수불전에는 파란 용을 세운 뜻이야 알 바 없지만 편액의 뜻에 따라 서로 다른 색조가 여전히 살아있으니 보는 이들의 눈에는 색다른 맛의 빛이 보이는 듯하다.

 

불전의 문과 창살의 무늬도 매우 아름답다. 수많은 원이 서로 고리를 엮고 엮이어 이뤄진 문양도 기하학적으로 절묘하고 그 좁은 사이사이마다의 유리창에 비친 나무와 하늘을 새겨보는 재미도 즐겁다. 불상을 붉은 천으로 가린 채 보수하는 중인데 불상을 중심으로 앞 뒤편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나무 조형물들이 보인다.



 

사실 예쁜 찻집을 찾아 왔는데 다쥐에쓰의 독특한 구조와 색채가 너무 마음에 든다. 오죽하면 지난 해 6개월 동안 참 많은 사원을 다녔건만 ‘다쥐에쓰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을 정도다. 아마도 천년고찰의 은근한 세월과 일반인의 손이 덜 타는 산자락에 위치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게다가 해가 지는 서산의 햇살이 수백 년 된 나무들과 어울린 고즈넉한 연출이 포근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년고찰 한구석에 열린 조그만 문을 너머 골목을 따라 갔다. 오른편으로 밍후이위엔 간판이 단정한 필체로 써 있다. 문을 따라 조용히 들어가니 마당 곳곳에 차 탁자들이 놓여있고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문에는 노란색 등 초롱이 양쪽에 걸려있고 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으며 커다란 연꽃이 화분 안에 넓은 잎사귀를 드러내고 있다. 사각형의 홈을 따라 물길을 만들었으니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새소리와 매미소리도 지저귀니 자연 그대로 어우러진 찻집이라 할만하다.


 

일 하는 아가씨들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3곳의 방마다 두세 명씩 지키고 있다. 아직 한낮이라 방에는 차를 마시는 손님이 없다고 한다. 각 방마다 밝은 뜻, 밝은 생각이라는 이름들인 밍즈쉬엔(明志), 밍쓰쉬엔(明思) 현판이 걸려 있다.

 

한 가운데 가장 큰 방인 쓰이탕(四宜堂)에는 올림픽 시즌이라 텔레비전 한 대가 놓여 있다. 이 조용한 찻집에도 올림픽은 비켜가기 힘든 것인가 보다. 쓰이탕 안에는 전통악기인 구정(古)소리가 흘러나오고 벽이나 탁자마다 예쁜 다구(茶具)들이 진열돼 있다.



 

한 아가씨에게 언제 생긴 찻집이냐 물으니 1997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찻집은 아닌 듯하다. ‘선(禪)과 어우러진 차(茶)’를 표방하는 멋진 찻집이라 할만하다. 이 찻집은 룽징() 차로 유명하다고 한다.

 

차 잎이 주는 색(), 향(香), 미(味)를 이르러 ‘이넌싼센(一嫩三)’이라 한다. 어리고 부드러운 찻잎으로 세가지 맛을 낸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이곳은 멋진 환경,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분위기이니 풍(風) 하나는 더 보태야 할 듯하다.

 

이곳은 화장실도 참 예쁘다. 둥글고 흰 항아리에 꽃무늬를 넣어 화사해 보일 뿐 거울도 맑은 차처럼 투명하기 이를 데 없으니 정말 ‘가장 예쁜 찻집’의 이름값을 한다.

 

문을 나서는데 마당에 놓인 유리 탁자 중 하나가 얼핏 보니 햇살도 들어오고 노란 등, 붉은 대문과 함께 나뭇가지 그늘도 살포시 함께 비친다. 맞은편 샤오싱차이관(绍兴)은 찻집과 식당을 겸하는 곳으로 밍후이차위엔과 한집이다. 샤오싱의 유명한 황주()인 뉘얼홍(女儿红) 항아리가 처마 밑에 줄줄 서있다. 뉘얼홍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 중 하나로 샤오싱의 특산이기도 하다.

 

서산을 넘어가는 강한 햇살은 대문과 처마, 항아리와 창살의 붉은 빛 감도는 색깔에 진하게 녹아있다. 더불어 나뭇가지 그림자로 흑백의 조화를 이루니 천년고찰 안에 자리잡은 찻집만이 지닌 인상이 아닐까 싶다.




 

선배가 부처의 열반을 상징하는 나무가 있으니 가보자고 한다. 부처는 무우수(无忧树)에서 태어났으며 보리수(菩提)에서 득도했고 두 그루의 사라수(罗树) 사이에서 열반했으니 3대 성수 중 하나가 이 사원에 있다.

 

다쥐에쓰의 사라수는 수령이 오백 살이 넘는다 한다. 잎이 7개라 칠엽수라고도 불리는데 밝은 빛을 받아 환하게 잎사귀 모양이 잘 드러난다. 잎새 사이에 귀여운 알맹이 같은 열매가 한 줄 수염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는 모습이 문득 눈에 띤다. 나무 몸체는 에스(S)자로 휘어서 지팡이 2개가 의지해야 하는데 나뭇가지들은 지붕까지 뒤덮고 있는 형세이다.


 

해가 점점 더 멀어지고 서산을 넘는다. 키가 2배나 커진 긴 그림자가 갈 길을 재촉하는 듯하다. 뜻밖에 베이징 서편에 있는 천년고찰의 은근한 분위기를 만나게 됐는데 꼭 다시 한번 아침나절에 와보고 싶어졌다. 늦은 오후와는 또 다른 멋을 연출하지 않을까 싶다.

 

찻집은 저녁을 먹고 한밤에 다시 와보고 싶다. 햇살과 그림자도 멋지지만 등불에 도취하고 전통 악기 연주에 심취하고 맛깔스런 차를 마시면 만취된 가슴 때문에 시와 노래를 읊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