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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금은화 재배단지 산골마을을 찾아서

 

하얗게 피다 노랗게 바뀌는 꽃. 은색과 금색이 번갈아 가며 꽃에 색깔을 입힌다. 그래서 중국말로 진인화(), 금은화라 부른다. 이 꽃을 재배하는 중국친구가 있다. 재배한다는 것은 그냥 들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약초로 인기가 있으니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한때 허베이(河北) 성도(省都, 중국은 성회省라는 말을 사용한다)이던 바오딩(保定) 시가 있다. 다시 약간 서북쪽으로 30킬로미터 거리에 만청() 현이 나온다. 가던 방향으로 20킬로미터 지방도로를 달려가면 류자타이(家台) ()에 이르고 다시 산골 길을 4킬로미터 더 들어가면 창쟈오타이(角台) ()에 이른다. 지난해 8월 말, 여섯 시간을 투자해 도착했다. 바이차오구(百草谷)란 이름의 금은화 재배단지이다.

 

 

산골 밭에 줄을 맞춰 핀 금은화부터 찾았다. 1~2미터 높이로 자라난 줄기 사이에 꽃들이 폈다. 겨울을 버티고 봄부터 서서히 피어난다는 금은화이지만 해발이 높은 산골이라 5~6월부터 핀 꽃이 한여름에도 지지 않고 있다. 매일 꽃과 꽃술을 따서 말리고 약재와 차로 만든다고 한다.

 

들에 피건 산에 피건 예쁘지 않은 꽃은 없겠지만 볼수록 모양새가 우아하다. 길쭉하면서도 약간 넓은 꽃잎 몇 개가 한꺼번에 피지만 가느다란 꽃술도 덩달아 자라난다. 동그랗게 오므라든 꽃이 산들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양은 정말 여인네 한복저고리 같기도 하다. 하얗게 폈으니 순결한 자태가 느껴진다.

 

 

하얗게 폈다가 노랗게 바뀐다는 꽃이라고 했는데 군데군데 노랗게 핀 꽃도 많다. 그냥 노랗다기 보다는 조금 진한 빛깔이다. 오히려 호박꽃이 활짝 폈을 때처럼 주홍빛이 돈다. 이래서 금은화라고 불렀지 싶다.

 

이리저리 밭을 거닐며 꽃 향기를 맡아본다. 기대와 달리 진한 향이 스며들지 않는다. 향내가 날 듯 말 듯 예민하지 않으면 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무취다. 아무래도 코보다는 눈이 즐거운 꽃이다.

 

갑자기 한 줄기에서 하얀 꽃과 노란 꽃이 함께 핀 모습이 보였다. 꽃을 따는 일꾼들에게 물어보니 금은화라는 이름이 괜히 붙었겠냐 하는 반응이다.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건 2관왕 같아 보인다. 금빛과 은빛이 한데 어우러져 피어있는 꽃을 보니 가슴까지 뭉클해진다. 꽃말조차 우애, 헌신적 사랑, 사랑의 굴레가 아니던가.

 

 

꽃을 보고 꽃말을 떠올리면 정말 기 막히게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에서 나온 피붙이가 우애가 없지 않을 것이다. 서로를 헌신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또한 그만한 굴레도 있을 것이다.

 

금은화는 별명이 아주 많다. 그 중에 인동(忍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동초로 더 알려져 있다. 금빛과 은빛을 함께 머금은 이 금은화가 바로 인동인 것이다. 겨울을 버텨 봄부터 핀다는 생각이 담겨있나 보다.

 

그래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난을 이겨낸 인물이라는 존경,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겠지만 금은화를 보노라니 좀더 깊은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겨레붙이에 대한 사랑, 서민들에 대한 우애이자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굴레가 한없이 마음 속에 와 닿는다.

 

 

금은화는 꽃을 부르는 이름으로 이보화(二寶花), 쌍화(雙花)라고도 한다. 덩굴이름으로는 금슬을 떠올려 원앙초(鴛鴦草), 늙은이의 수염 노옹수(老翁鬚), 백로 같다고 해 노사등()으로 불린다. 단 맛이 많다고 해서 첨등()이라 불린다. 일본말로는 스이카즈라(すい-かずら), 영어로는 하니서클(honeysuckle)이라 하는데 칡이나 꿀처럼 단 맛을 내포하고 있다.

 

금은화 차로도 마시고 약재로도 쓴다. 마루에 앉아 기다리니 차후()에 가득 차를 담아온다. 보통 뜨거운 물을 붓는데 여름에는 찬물에 우려도 좋다고 한다. 산골 무공해 냉수를 넣고 5분 정도 지나니 맑은 꿀물 정도의 빛깔로 변한다.

 

물론 꿀맛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밴 맛이 달면서도 뒷맛이 아주 상쾌하다. 꿀보다 훨씬 몸에 좋다고 자랑이라 쉼 없이 마셨다. 약효가 다양하지만 이뇨 작용도 활발해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몸 안의 독소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약재로도 긴요하게 쓰인다. 중의를 전공한 후배의사에게 물어보니 항균, 항염, 항독 작용이 탁월한 필수 약재라 한다. 이곳 산골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재배에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차와 약재로 매일 많은 물량을 내다파는데 평범한 공장 하나 운영하는 것보다 수입이 좋다고 한다. 40대 중반에 이르러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돌아와 금은화 재배와 함께 전원생활을 즐기는 친구가 한없이 부럽다.

 

 

20여 가구가 몰려 사는 한적한 산골이다. 차를 마시며 산세를 감상하고 있는데 마당을 주섬주섬 부리로 더듬으며 닭들이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여느 닭과는 좀 다른 오골계라고 한다. 그런데 까맣지 않고 하얗다. 온 사방에 떨어진 금은화 찌꺼기를 주워먹어서 그런 것인지 물었더니 원래 흰 오골계라고 한다. 온몸이 새하얀데 부리와 다리는 새까맣다. 금은화 꽃과 줄기를 먹고 자란 오골계, 은근히 한 마리 푹 고아먹으면 싶다는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질 않는다.

 

 

 

 

 

이 산골은 해발 1,000미터가 조금 넘는 위황퉈(玉皇坨)을 끼고 있다. 옥황상제 이름의 산이란 이야기는 산세와 경관이 신비롭다는 선입견을 풍긴다. 산골 길을 따라 가면서 보니 급하게 가파른 산세가 예사롭지 않은데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촌부락이 많다. 넝쿨째 담벼락에 피어난 나팔꽃이나 샛노란 호박꽃도 산골이어서인지 더욱 진한 색깔을 담았다. 잠자리도 빨갛고 뜻밖에도 무궁화도 있다.

 

 

 

한 마을 입구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란히 앉아 나뭇가지에서 열매를 따서 바구니에 담고 있다. 바로 산초나무 열매이다. 중국에서는 화자오(花椒)라 부르는데 그냥 먹으면 엄청나게 아릴 정도로 맵다. 마비될 정도로 맵다고 마라(麻辣)하다고 하는데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에 꼭 들어가는 재료이다. 식용뿐 아니라 약재로도 쓴다. <본초강목>에서도 식욕을 돋우고 통증을 멈추게 하고 구충에도 도움이 된다고 적혀있다.

 

 

돌담을 따라 이어진 골목길도 참 정겹다. 돌담을 비집고 나온 나팔꽃 하나가 길을 열어주는 듯하다. 철조망에 흐드러지게 핀 나팔꽃 넝쿨 앞에는 토종 닭이 반듯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적한 산골마을의 닭들은 도망칠 생각조차 않는다. 작은 기와로 촘촘히 지붕을 덮은 집들이 아담하다. 기와 지붕 너머로는 나무들이 높이 솟았고 그 뒤로는 산봉우리가 능선 따라 이어져 있다.

 

 

꽃들이 많은 마을이라 양봉 집도 있다. 마당에 핀 무궁화 꽃이 오히려 낯설다. 꽃 잎 안에 있는 벌이 앉았다. 손님에게 사진촬영을 선물하려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무궁화는 중국말로는 무진화(木槿花)라 한다. 꿀 파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이 산골에 유난히 무진화가 많이 핀다고 한다.

 

 

이 집을 찾은 것은 펑왕장(蜂王)이 있어서이다. 바로 로열젤리이다. 많지는 않지만 펑왕장이 조금 남았다며 1(500그람) 150위엔( 27,000)에 판다. 일벌의 분비물로 여왕벌 유충이 먹고 자라난다는 펑왕장을 동행들이 두루 샀더니 아주머니가 선물을 주겠다며 주섬주섬 봉지에서 뭔가를 끄집어내 보여준다.

 

물컹거릴 듯 보였는데 만져보니 굳어서 딱딱한 편이다. 펑자오()라고 한다. 바로 벌의 배설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똥이라는 말이다. 벌이 배에 넣어온 것은 저장해 만든 것이 꿀인데 배설물을 따로 팔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게다가 1근에 500위엔이나 한다니 로열젤리보다 3배 이상 비싸다.

 

 

조금 잘라준다. 술에 넣어 담근 후 매일 공복에 한 잔씩 마시면 좋다고 한다. 특히, 위장병에 특효라고 자랑한다. 전문의에게 물어보니 허약체질, 상습감기, 만성피로에 효과가 있고 내분비질환이나 위장병, 당뇨병에고 효험이 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알코올도수 56도 얼궈터우(锅头)를 붓고 한 보름 담았다가 가끔 마셨다. 아침에 한 잔 마시면 온몸이 후끈거리면서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과연 듣던 대로 몸에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산골 마을을 나와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바오딩 기차 역까지 나와 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금은화의 밝은 빛깔이 주렁주렁 머리 속을 아른거린다. 금메달과 은메달을 달고 귀환하는 느낌도 든다. 물론 목에 걸진 않았지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겼다. 희고 노란 꽃, 한꺼번에 피기도 하는 금은화가 우리 몸의 나쁜 기운을 씻어주는 고마운 꽃이고 덩굴이라는 것도 잊을 수 없다.

 

꽃말을 담는 인간의 마음과 지혜도 생생하다. 우애와 사랑을 꽃 피우는 금은화를 보면서 한 핏줄에서 났지만 하나처럼 살지 못하는 겨레도 슬쩍 떠올려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