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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古城), 말만 들어도 흥분된다. 중국문화를 즐겨 찾아 애지중지취재해 알리는 일을 천직으로 여긴지 13년이다. 고성에는 역사와 문화, 서민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공존하는 그리운고향 같다. 중국에 갈 때마다 고성이 부근에 있으면 반드시 찾는다. 꼭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여러 번 다시 찾기도 한다. ‘엄마의 품인 양 기분 좋은 공간이다.

 

중국의 고성은 셀 수 없이 많다. 발을 밟아본 곳만도 30여 군데가 되고 가보고 싶은 데도 아직 그만큼 더 많다. 일일이 다 보여주고 싶지만 4대 고성만으로도 중국여행의 묘미를 맛볼 만 하다. 기나긴 역사와 풍부한 전통의 중국에서 ‘4대 고성의 위상이라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끈끈한 비교우위가 있다.

 

핑야오(), 후이저우(徽州), 리장(), 랑중(阆中)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설명해야 좋겠지만 서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산시(山西), 안후이(安徽), 윈난(云南), 쓰촨(四川)으로 흩어진다. 중국여행에 낯선 사람에게는 오리무중이다. 지도를 찾아 성까지만 찾아보라. 굳이 지도를 샅샅이 훑지 않아도 된다.


산시의 낭만 핑야오고성



핑야오는 2006년 처음 간 이후에도 3번 더 찾았다. 2,700년의 역사를 품은 고성이다. 무엇보다 중국 최초의 은행일승창(日升昌)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염직으로 돈을 벌어 전국적으로 30여 곳에 은행지점을 갖춘 대부로 성장한 진상(晋商) 이대전(李大全)이 주인이다. 입구는 은행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저택이다.

 

청나라 시대 전국을 주름잡던 상인집단을 진상이라 한다. 은행은 표호()라 부른다. 전국 유통을 하게 되면서 호위무사이자 운송집단으로 표국()이 함께 성장하는데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고성 곳곳에 있는 표호와 표국은 사무공간이자 주거공간, 훈련장이기도 하다. 고성 안을 모두 둘러보는 표를 사서 이틀을 봐도 다 보기 힘들 정도다.

 

고성은 대체로 군대와 행정기관이 위치했으며 서민이 살았고 지금도 거주한다. 현아(县衙)와 함께 사당이 함께 자리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교사당인 성황묘(城隍)와 공자사당인 문묘()를 함께 볼 수 있다. 종횡으로 뻗은 거리와 72개나 되는 골목을 자전거를 타고 한가로이 두루 돌아다녀도 좋다.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조명과 함께 드러나는 누각이 인상적이다. 표호를 개조한 객잔에서 하루 묵어도 좋다.

 

휘주문화의 보고 후이저우고성



진상과 함께 양대 상방인 휘상(徽商중심지는 후이저우고성이다. 2011년과 2016년 두 번 다녀왔는데 후이저우 문화답사와 황산을 보기 위해 자주 다닐 예정이다지명을 따서 서센()고성이라고도 부른다. 5년 만에 찾았더니 새롭게 단장한 부아(府衙)가 너무 깔끔해 오히려 아쉽다시간이 흐르면 옛날 분위기에 맞게 다시 어울릴 것이다.


고성의 상징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허국석방(许国石坊)이다. 명나라 시대인 16세기 국자감 제주(祭酒)와 예부상서, 대학사(学士)를 역임한 허국의 금의환향을 기념해 세웠다. 보기 드문 팔각패루(八脚牌)의 형태로 건축됐으니 343(间四柱三楼)가 앞뒤로 쌍을 이룬 모습이다. 문인의 품격과 자부심을 잘 담은 외형도 웅장하지만, 목조인지 착각할 정도로 문양이나 제자의 구현은 8등신 미녀처럼 유연하다. 용과 봉황, 물고기와 기린, 구슬과 모란, 학과 구름의 조화와 상징은 부드러움을 넘어 신묘하다. 세밀한 조소가 드러낸 은유의 미학을 보노라면 심호흡에 이어 탄성을 지르게 한다.

 

서민들이 함께 호흡하며 사는 고성이다. 휘상의 고택이 남아있는 골목을 걷다 보면 시간 여행이 가져다 주는 공감과 만나게 된다. 두산가(斗山街)를 들어서면 집집마다 석조예술을 자랑하고 있어 눈 돌릴 찰나도 없다. 공동체의 상징인 우물과 패방도 인상적인 거리다. 그 옛날 휘상이 바쁘게 지나다니던 시절의 추억이 파노라마를 그린 듯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빛이 바랜 대문 위에는 귀신을 쫓는 거울이 걸렸고 건물 벽에는 문화대혁명 시대의 붉은 페인트가 여전하다.


옥룡설산의 나시족 리장고성



이제 리장고성으로 가보자. 처음 찾은 2007년 이후 다섯 번이나 다녀왔으니 인연이 꽤 깊다. 최근에는 문화여행 인솔로 1년에 한 번은 간다. 해발 5,596m의 옥룡설산(龙雪山) 정기를 이어받은 나시족(纳西族) 문화의 보고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판타지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하는 야경 앞에 서면 누구나 평생 잊지 못할 장면으로 뇌리를 잡는다. 날이 저물면 서서히 산자락부터 온 동네를 밝히는 조명은 낭만적인 연출이자 추억의 꽃이다. 그래서 혼자 왔다가 둘이 손잡고 나간다.’고 했던가?

 

사자산(狮子山) 중턱의 만고루(万古) 주변의 찻집에 앉아 고성을 내려다보면 만사를 잊는다. 상형처럼 직관적이면서도 친근한 동파문화(东巴文化)는 캐릭터이자 징표이고 예술이다. 벽화, 불경, 무용, 음악, 글자, 회화에 골고루 새긴 나시족 문자는 리장 최고의 자랑이다. 사방가(四方街)를 중심으로 사통팔달이지만 골목과 도랑을 따라 마냥 걸어도 좋다. 마을을 다 둘러보려면 하루 만에 어림도 없다.

 

리장에 가면 꼭 봐야 하는 공연인 인상리장(印象丽江)”이 있다. 설산을 배경으로 세계 최고의 높이 해발 3,100m에서 열리는 무대극이다. 붉은 토양과도 같은 무대와 구름과 하늘 그리고 설산은 소수민족 현지인의 헌신적인 연기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천지를 진동시키고 심금을 울린다. 장이머우(张艺谋) 사단의 인상시리즈연출은 계림산수’, ‘항주서호를 비롯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핑야오의 인상무대극은 그들의 8번째 작품이다.


삼국지 장비의 영혼 랑중고성


 

랑중고성은 2016 5월에서야 인연을 맺었다. 2010중국 춘절의 고향이라고 발표했는데 삼국지의 영웅 장비(张飞)가 우리에게는 더 유명하지 않을까? 조조의 부하 장합이 군대를 이끌고 오자 랑중을 지키게 됐지만 결국 애주가 장비는 부하에게 살해된다. 민간에서는 장비를 도살의 창시자로 숭상하는데 랑중에는 장페이뉴러우(张飞牛肉)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장비의 소고기와 함께 만든 국수 한 그릇 먹지 않으면 후회한다.

 

다른 고성처럼 관청이나 유불선의 사당도 있지만 장비묘 한환후사(汉桓侯祠)가 핵심이다. 환후는 사후 받은 시호다. 장비는 부하들이 목을 베 강물에 버렸기에 몸만 남았다. 장비 사당은 모두 세 곳인데 랑중에는 몸이, 장강 도시 윈양()에는 목이, 고향 줘루(涿鹿)에는 영혼이 봉공되고 있다사당에는 장비를 죽인 장달(张达)과 범강(范疆)이 무릎 꿇고 있는 처량한 모습은 교훈적이다. 배신은 이렇게 영원히 사죄의 엄벌을 받게 된다.

 

고성 남쪽을 흐르는 강 건너편 난진관고진(南津关古镇)에는 매일 밤랑원선경(阆苑仙境)”이라는 공연이 열린다. 랑원은 신선이 거처하는 곳, 정말 선녀처럼 예쁜 아가씨들과 듬직한 총각들이 많이 출연한다. 공연의 특징은 무대와 관객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삼국지, 풍수사상, 과거문화, 먹거리, 비단 직조, 부두 생활 등이 장소가 바뀌면서 계속 이어진다. 관객도 언덕을 내려가면서 시작부터 잠시도 시선을 놓치지 말고 순식간에 바뀌는 무대에 집중해야 한다.

 

4대 고성을 차례로 소개하고 나니 다시 배낭을 꾸리고 싶어진다. 고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비행기를 타고 싶다. 아쉽게도 4곳은 모두 수천km 떨어져 있다. 역사적으로도 시공을 완전히 달리한다. 직항 기준으로 핑야오는 베이징, 후이저우는 상하이, 리장은 쿤밍, 랑중은 충칭으로 가면 된다.

 

벌써 7년 가까이 78일 기준의 중국문화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어디 지방을 가도 고성은 근처에 있기에 반드시 하룻밤 묵는다. 온종일 설명하고 나면 입이 부르트고 다리도 아프지만, 그날 밤이 가장 보람 있다. 고성에 담긴 역사와 문화에는 낭만과 추억이 봄에 내리는 이슬비처럼 살포시 스며들기 때문이다.

 

최종명, 작가 및 중국문화여행 동행 www.youyue.co.kr

「꿈꾸는 여행, 차이나」 「13억 인과의 대화」 「민,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