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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53] 청두 판다 공원과 싼씽뚜이

중국 스촨(四川) 청두(成都)에는 ‘세계 최대’라고 하는 판다 생태공원이 있다. 중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국보(国宝)로 취급하고 있으며 그 행동이 아주 귀여워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다. 그런데, 그 게으르기가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7월 16일, 한창 더운 계절이었지만 마침 이슬비가 내려 날씨가 서늘했다. 그래서 날씨가 더우면 꼼짝하지 않는다는 판다를 볼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숙소에서 사람들이랑 일행을 짰다. 절약을 할 수 있으니 아주 좋다. 택시를 타고 시 중심에서 동북 방향의 싼환루(三环路) 밖 쓩마오따다오(熊猫大道)의 예터우산(爷头山) 자락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고 크다는 판다 동물원이면서 번식연구기지(繁育研究基地)가 있다.

보통 쓩마오(熊猫)라 부르는데, 다른 종류와 구분을 위해 따쓩마오(大熊猫), ‘자이언트 판다’와 몸 빛깔이 붉은 샤오쓩마오(小熊猫)인 ‘레드 판다’로 구분하고 있다. 이 공원에는 따쓩마오를 유아기(幼年), 준 성인기(亚成年), 성인기(成年)에 따라 각각 분류해 놓기도 했다.

동물원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레드 판다’를 만나게 되는데, 다람쥐보다는 덩치가 크지만 우리가 보통 상상한 판다와는 몸짓도 작고 하는 짓도 빠르고 귀엽다. 털도 붉은 빛과 갈색 빛이 서로 엉켜 있고 코와 눈썹, 앞부분 귀만 하얀 것이 정말 깜찍하게 생겼다.

  
청두 판다 생태공원에 있는 레드판다
ⓒ 최종명
청두

판다, 얼마나 게으른 동물인지 참...

갓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 판다는 정말 안타깝다. 살짝 일어나려는지 몸을 들어보지만 이내 쿵 앞으로 쓰러진다. 신생 판다는 털도 아직 나지 않았다. 해발 2천 미터 이상의 고원에서 서식하며 대나무와 조릿대만 먹고 사는 동물이라 양육과 번식이 아주 까다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천혜의 조건인 셈이다. 오죽하면 판다를 주쓩(竹熊)이라 부를까. 오로지 대나무과만 먹는 동물이다. 주변이 온통 대나무 숲으로 이뤄져 있고 조릿대는 온 천지에 널려 있으니 말이다.

  
식사 중인 자이언트 판다
ⓒ 최종명
자이언트

역시 최고의 인기는 ‘자이언트 판다’이다. 사육사들은 먹이도 주고 운동도 시키고 한다. 하도 게을러 여러 가지 방법으로 판다들을 움직이게 하려고 사육사들이 오히려 살이 왕창 빠질 듯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판다들의 느릿하고 귀여운 몸짓을 보는데 정신이 없다.

판다는 잠을 자고 짧게 움직이는 게 전부다. 그 외에는 심지어 하루에 14시간을 먹기만 한다. 왕성한 식욕으로 손에 잡히는 대나무나 조릿대를 먹는 것이다.
 
그렇게 먹는 양이 12킬로그램에서 많게는 38킬로그램이나 먹는다 한다. 싱싱한 먹이가 없으면 정말 살아남기 힘든 동물인 것이다.

‘세계 최대’의 판다 자연생태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넓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판다 곰들을 볼 수 있었다. 판다는 주로 대나무 과의 식물들을 먹고 자란다.

판다가 가장 즐겨먹는 것은 쭈쑨(竹笋)이다. 청두(成都) 시 북쪽 자그마한 산에 위치한 이 야생 공원에는 싱싱한 대나무가 자연 그대로 자라고 있고 새소리가 지저귀고 공기가 맑아서 판다를 기르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어찌나 귀한 몸이신지. 한 자리에 누워 꼼짝달싹 않고 풀을 뜯어 먹는다. 누운 자리에서 손에 닿는 것만 먹는다. 그렇게 포식한 후에는 나무 위에 온몸을 던져 엎드려서는 잔다. 만사가 귀찮다는 듯.

멀리서 보면 귀여운 판다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눈과 코, 입을 보면 매서운 야생의 모습도 띠고 있다. 그런데, 워낙 게을러서인지 그렇게 무서울 것 같지는 않다. 저렇게 느릿느릿하고 ‘동물 만사’ 잊은 듯한 모습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무 위에서 누워 자고 있는 자이언트 판다
ⓒ 최종명
판다

무려 300~800만년 이전부터 지구상에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런 천성으로 어떻게 버티고 살았을까 싶다. 물론 야생이지만 생태공원이라 그런가. 하여간 게을러도 죽지 않을 만큼 먹거리가 천지인 곳이다.

  
판다를 보며 즐거워 하는 아이들
ⓒ 최종명
판다

외국 아이들 몇 명이 판다를 보고 정말 귀엽다고 소리 친다. 역시 아이들은 다 똑같나 보다. 생태공원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으면 아이들에게 야영을 할 수 있도록 개방하기도 한다. 물론 비용을 내야 하긴 하지만, 귀여운 판다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일 듯하다.

판다를 본 후 우리는 다시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 광한(广汉)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간단하게 국수로 끼니를 해결했다. 터미널 주위는 온통 과일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사과를 사서 후식으로 깎아 먹으니 그런 대로 쓸만했다.

청두(成都)에서 동북쪽으로 1시간 20분 가량 가면 더양(德阳) 시에 포함된 자그마한 도시인 광한(广汉)이 있다. 다시 시내버스로 약 15분 거리에 난씽쩐(南兴镇)이란 곳이 나온다. 이곳에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적지인 싼싱뚜이(三星堆) 박물관이 있다.

싼싱뚜이(三星堆) 박물관, 5천년 전 유물들이 잔뜩

  
광한시에 있는 싼씽뚜이 박물관 입구
ⓒ 최종명
스촨

1930년대 이래 독특한 유물들이 간혹 발견되긴 했지만 1980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유물들이 튀어나왔다. 거의 5천년 이전 시대, 중국 역사로 보면 하나라 다음인 상(商)나라 시대까지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정말 위상에 걸맞게 입장권도 참 예쁘게 만들었다. 우울하게도 이슬비가 내려 온몸이 좀 젖긴 했지만 최신 첨단 박물관을 방불케 하고 실내에 들어서니 젖은 몸이 금세 마를 것처럼 경외심이 엄습했다.

촬영금지 표시가 곳곳에 있고 감시원이 졸졸 따라 다녀서 처음에 촬영이 영 부담스러웠다. 대신 따라다니며 눈치는 주지만 제재하지 않아서 나중에는 드러내놓고 찍었다. 아예 입구부터 당당하게 찍었다면 아마 종일 따라다녔을 감시원.

이곳 박물관에는 5천년 전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잔뜩 있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그 수준과 내용이 새롭고도 독창적이라 새로운 문명이라고까지 평가된다.

4대 문명 발상지인 황하문명의 교집합에 전혀 들어가 있지 않으니 중국학자들도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촉(古蜀) 문화’ 또는 ‘고촉 문명’이라고 부른다. 이 지방이 바로 촉나라 땅이니 그 이전 문명인들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른다.

  
멋지게 디자인된 싼씽뚜이 박물관 입장권
ⓒ 최종명
싼씽뚜이

엄청나게 크고 아주 섬세한 청동 새 조각상, 청동 가면, 예술적 감동을 한껏 품은 옥기 및 석기, 품격 있는 청동 검, 반듯한 도자기에다가 상아, 조개, 금으로 만든 유물 등 헤아릴 수 없다. 게다가 크고 작은 사람의 머리 동상은 물론 동으로 만든 새나 사슴 등 동물들까지 그야말로 완전 새로운 문명의 탄생이며 발견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계가 뒤죽박죽인 듯하다. 그리고 생각해 볼만 수수께끼(未解之谜)가 있다. 뒤집어보면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중국의 고민을 담고 있으니 한 번 연구해 볼 만하다.

  
싼씽뚜이에서 출토된 유물들, 좌로부터 청동얼굴상인 동인두, 새다리와 얼굴의 조합인 청동조각인상, 사람 머리와 새의 몸의 조합인 인수조신상
ⓒ 최종명
싼씽뚜이

이 문명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싼씽뚜이의 출토 유물인 황금 가면을 쓴 청동 조각상인 <대금면조청동인두상>으로 만든 포스터
ⓒ 최종명
싼씽뚜이

이곳은 5천년 전에 형성된 문명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기존 중원문명과는 비슷한 점이 없는 이 방대한 양의 청동인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청동기 어디에도 단 한글자의 문자도 남기지 않았으니 정말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출토된 사람의 모습도 코가 높고 눈도 깊으면서도 안구가 돌출돼 있으며 넓은 입과 큰 귀는 중국인과 전혀 닮지 않은 외국인의 형상인 것이다. 그래서, 중국학자들은 다른 대륙에서 온 잡종(杂交) 문명일지 모른다고 한다.

이 문명은 약 1500년간 존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2천년 이상 역사에서 사라지고 멸망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이곳 북쪽에는 두 개의 강이 성 가운데를 흐르고 있었는데 홍수로 인해 사라졌다는 가설과 유적지에서 발견된 도구들이 불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봐서 전쟁으로 인해 멸망했다는 가설, 별다른 증거는 없지만 다른 곳으로 천도했을 것이라는 가설 등이다.

청두 부근 평야는 토양이 비옥하고 풍부한 자원도 있으며 기후도 비교적 온화한데 도대체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는 정말 무엇인지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출토된 청동기 중 대부분은 생활용품은 없고 절대다수가 제사용품들로 당시 고촉국의 원시종교는 대단히 체계적이었던 듯하다. 게다가 이 용품들은 서로 다른 지역적 특징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청동조각상이나 금장 등은 마야(玛雅) 문명이나 이집트(埃及) 문명과도 아주 비슷하다. 이를 토대로 이곳이 어쩌면 세계의 종교 성지의 중심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5천여 개에 이르는 바닷조개는 인도양에서 온 것으로 판정됐으며 성지 순례를 온 사람들이 가져 온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또한, 60여 개의 상아(象牙)는 학자들 사이에서 외래에서 온 것인지 본래부터 이곳의 것인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물건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다.

  
싼씽뚜이에서 출토된 유물들, 왼쪽부터 꽃 모양의 화형동, 청동 새인 청동조, 큰 기의 사람인 청동대립인상
ⓒ 최종명
싼씽뚜이

왜 문자는 발굴되지 않았을까?

세계 최초의 금장(金杖)인 것에는 모두들 동의하지만 거기에 새겨진 물고기(鱼)나 화살촉(箭头) 같은 도안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문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보통 민족이 자신의 문명을 이룩했다면 문자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문화임에도 이곳에서는 문자가 발견되지 않은 것이 정설이다.

  
싼씽뚜이에서 출토된 유물로 만든 상품들
ⓒ 최종명
싼씽뚜이

그 도안이 어떤 부호인 것은 사실이나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소통했을지도 엄청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지 70여 년, 14차례에 걸친 대규모 발굴이 진행됐지만 여전히 그 비밀은 오리무중이다.

싼씽뚜이는 12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인데 겨우 일부만 발굴됐으며 지속적으로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기원전에는 뤄씨엔(雒县)이라 했고 그 이후 한저우(汉州)라고 했던 광한에 이처럼 놀라운 유물이 발견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에 열린 관련 세미나에서 이 고촉문명인들이 윈난을 거쳐 동남아시아로 이주했으며 그 영향은 청두(成都) 지역의 문명과 관련이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 측도 1984년 이래 연구보고를 총괄해 2008년도에 자료집을 발간한다니 기대해볼 일이다.

싼씽뚜이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그 모양새가 독특해 공예품이나 캐릭터 상품으로 개발돼 많이 팔리고 있다. 생각보다 비싸서 사지는 못했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린다. 겨우 버스를 타고 다시 또 시외버스를 타고 청두로 돌아왔다. 약간 비에 몸이 젖긴 했지만 서늘한 날씨 덕분에 판다도 보고 싼씽뚜이도 보고 정말 즐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