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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아웃사이드-10] 베이징전람관에서 이허위엔 쿤밍후까지



베이징 서쪽 시즈먼(西直)에는 멋진 베이징전람관이 있다. 많은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고 8월 18일 올림픽기간 올림픽박람회 마지막 날이었다. 정문에서 검색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마터우(码头)가 어디냐고 물으니 잘 모른다. 전람관 뒤쪽에 작은 나루터가 있다고 하니 옆길로 난 길을 따라갔다. 진짜 황제선(皇帝船) 간판이 보였다.

 

황자위허여우(皇家御河游), ‘황가의 뱃길 유람’에 현혹된 외국인들과 중국인들이 10여명 배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 시내에 이런 뱃길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신기하기조차 하다. ‘황제가 타던 배’ 나루터에는 생각보다 꽤 수량이 많은 하천이 있고 주변을 빙 둘러 고층 빌딩 숲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베이징전람관 뒤편에 있는 나루터인 황디촨 마터우


사용자 삽입 이미지창허완 나루터에서 보니 주변이 고층빌딩 숲

 

쾌속정이 빠르게 지나며 물살을 출렁인다. 강변 식당 위허룽완(御河龙湾) 앞에 세워둔 작은 배가 함께 찰랑거린다. 이허위엔()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 뱃길 여행이다. 40위엔. 10여 분 기다리니 정말 강희(康熙)황제의 화상이 그려진 배가 주르륵 밀려온다. 갑판이 없고 앉은 채 창문만 겨우 열고 갈 수 있어서 아쉽다.

 

이미 원나라 시대부터이니 700년이 넘는 시대에 하천을 조성했고 그 강 이름을 가오량허(高粱河)라고 했다가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위허(玉河)라 불리던 창허()이다. 청나라 건륭제에 이르러 황제의 전용 뱃길이 됐다. 배 뒷좌석에도 강희제의 초상화를 붙였다.

 

늠름하고 위엄 어린 황제의 옛 그림은 낡을 대로 낡아 처량한 느낌까지 준다. 중국 역대 황제 가운데 가장 오래 집권한 강희제야말로 중국인들에게는 존경 그 자체이니 황제 뱃길 여행 상품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붙여둔 것이리라.

 

뱃길 왼편으로는 베이징동물원이 있다. 놀러 나온 사람들이 나무 그늘을 따라 걷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한다. 그런데 배가 서서히 저어가자 하천에서 그다지 향기롭지 않은 냄새가 난다. 물살이 빠르지 않고 거의 고인 상태라 할 수 있으니 맑은 수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에 언덕길이 이어져 있어 햇살에 비친 실루엣이 볼 만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황제의 뱃길 따라 가는 유람선


사용자 삽입 이미지베이징동물원의 나무들

 

조금 더 가니 사람들이 모두 내린다. 이 강물은 아쉽게도 이허위엔까지 곧장 뚫려 있지 않다. 즈주위엔(紫竹院)공원에서 다시 다른 배로 갈아타야 한다. 서태후도 피서를 위해 이허위엔까지 이 뱃길을 이용하면서 이 즈위완(紫御) 나루터에서 소형 증기선을 타고 이동했다고 한다. 서태후야 이곳까지 가마를 이용했겠지만 관광객들은 모두 배에서 내려 걸었다. 새로운 배는 더 크고 사람들도 더 많이 탔다.

 

외국인들이 절반 가까이나 된다. 안내하는 아가씨는 이 뱃길의 역사나 주변에 있는 명소를 안내하느라 아주 시끄럽다. 20세기 초 만든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가도서관이나 명나라 시대 만들었다는 완셔우쓰(万寿)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중국어로 떠드는 것을 제대로 알아들을 외국인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즈주위엔공원에서 한번 갈아타야 하는 즈위완 나루터

 

예부터 ‘톈탄에서 소나무 보고, 창허에서 버드나무 본다(天看松,)’는 말이 있듯이 이곳 뱃길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황제가 다니는 뱃길 주위로 구세의 상징인 버드나무를 심은 뜻은 쉽게 짐작이 간다. 게다가 심심하고 밋밋한 뱃길에 나무마다 서로 다르게 자라난 모양새라도 보면서 가야 했지 않을까. 그렇지 않았다간 이허위엔까지 가는 시간이 황제나 신하나 다 지루했으리라.

 

그러나 뱃길은 고작 30분이다. 몇 개의 다리 아래를 지나고 몇 척의 배들도 비켜갔다. 어느덧 배가 종점을 향해 달려간다. 선상에서는 안내 아가씨가 이허위엔 표를 팔고 있다. 이 배가 곧장 쿤밍후로 들어가니 입장권을 파는 것이다. 갈 사람과 가지 않을 사람으로 나누더니 가지 않을 사람은 쿤밍후 코 앞에서 내려준다. 이허위엔 볼 생각이 없어 배에서 내려서 보니 일직선으로 쭉 뻗은 뱃길이 잔잔하고도 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뱃길의 종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서태후의 여름별장 이허위엔 쿤밍후 남쪽 호수


배는 다시 쿤밍후를 향해 큰 아치형 다리 밑으로 떠나가는데 배가 지나간 흔적 뒤로 하천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헤엄은 여기에도 여지 없다. 아치 위로 올라가니 멀리 쿤밍후가 보인다. 바로 뱃길의 종점인 이허위엔 난루이먼(
南如意)이다.

 

마치 징처럼 생겼다 해서 뤄궈챠오(锣锅桥)라고도 하는 슈이챠오()가 멋지다. 슈이라는 말도 물결을 수 놓는다는 뜻이니 이름도 걸작이다. 이허위엔을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포샹거(佛香)를 중심으로 관람하고 기껏해야 스치콩챠오(十七孔)를 건너 난후다오(南湖)를 보는 정도인데 서쪽 제방에도 다리가 많고 이렇게 남쪽 초입에도 이렇게 멋진 앙상블이 있는 줄 잘 모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쿤밍후 남쪽 입구에서 헤엄치는 사람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징을 닮은 슈이챠오

  

이허위엔 쿤밍후에는 6곳의 다리와 3개의 섬이 있다. 이 난루이먼 입구에 사람들이 이 편에서 저 편으로 헤엄쳐 왔다 갔다 한다. 입구 좌우에 글자들이 써 있어서 자세히 봤더니 왼편에는 ‘6곳의 다리는 시후와 원래 다르지 않다(六橋原不異西湖)’고 써 있고 오른편에는 ‘3개 섬이 이곳에서 갑자기 옮겨간 것일지 모른다(三島忽疑移此地)’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누가 언제 썼는지 알 수 없으나 배를 타고 이곳에 다다르면 쿤밍후에 깃든 낭만을 기대하게 하는 칠언대구가 아닐 수 없다. 항저우 시후의 다리들과 비교되는 멋진 쿤밍후는 서태후의 여름 별장답게 멀리서도 운치가 있다.

 

뒤돌아보니 뱃길 옆으로 시내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있고 도로와 하천 사이에는 헤엄(游泳)과 물고기 낚는 것(捕)을 금지하는 팻말이 버젓이 꽂혀 있다. 게다가 스케이트(滑冰) 타는 것도 적혀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 겨울에 오면 또 다른 진풍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허위엔난루이먼 남쪽 입구

 

이허위엔 못 미쳐 있는 이 곳은 류랑좡시커우(六庄西口)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를 타고 뱃길 따라 되돌아갔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베이징 젊은이들의 상가인 시단(西)에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번화가 길가에 개인소총으로 무장한 무장경찰 3명이 나란히 서 있어서 놀랐다. 그 옆에는 무장경찰 버스도 한 대 정차해있는 것이 삼엄한 느낌을 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단 상가거리의 무장경찰들


하지만 시단 상가는 자유롭고 쾌활하게 활보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곳곳에 ‘퉁이거스제(同一世界), 퉁이거멍샹(同一个梦)’ 현수막과 간판이 수두룩하다. 이제는 너무 익숙하고 지겹기까지 한 이 말이 이제 앞으로 ‘어떤 세계에서 어떤 꿈’을 꾸는 말로 바뀔 지 두고 볼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활기찬 시단 상가거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간 거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단 거리


시단에 있는 투슈다샤(
图书大厦) 신화(新)서점을 들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책을 고르고 때로는 읽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형서점보다는 크지 않지만 그래도 베이징에서 가장 큰 서점이다. 옛 베이징 지도와 베이징 도심 곳곳을 누빈 여행기인 <황청구윈(皇城古韵, 王杰저)>을 한 권 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투슈빌딩의 신화서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신화서점 내부

 

그리고 목이 말라 거리 매점에서 홍차를 한 병 샀는데 반쯤 꽝꽝 언 것을 줬다. 한 모금 마시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려는데 가만 생각하니 음료수를 들고 탈 수 없지 않은가. 거리 벤치에 앉아 한편으로는 책을 읽고, 또 한편으로는 지나는 사람구경, 그리고 홍차가 녹기를 기다렸다. 여행기 한 편 읽으니 음료수 한 모금 할 만큼 녹는다. 그렇게 30분 정도 소일하는 것도 심심하지 않은 독서법인 듯하다.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들이 음료수 병을 들고 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거 참, 날씨가 더우니 테러 방지를 위해 강력하게 통제하던 초기와 달리 약간 느슨해진 모양이다. 오늘은 배도 타고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탔다. 황제들이 다니던 뱃길, 베이징 시내에서 타고 가는 배, 한번쯤 타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