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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중국영화캐기-05] 6세대 감독 왕샤오솨이의 최신작 <줘여우>

 

<북경자전거(十七單車)>와 <상하이드림(靑紅)으로 우리나라에도 다소 알려진 왕샤오솨이 감독의 2007년 최신작. 어버이날에 한번 볼만한 영화 <줘여우(左右, In Love We Trust, 2007)>이다.

 

라오세(老)와 재혼한 메이주(枚竹)는 5살 난 딸 허허(禾禾)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라오세도 친딸 이상으로 허허를 사랑한다. 메이주는 아파트 부동산중개를 한다. 방 보러 온 손님을 택시에 태우고 아파트를 들어서며 영화가 시작된다. ‘왼쪽으로(左)’ 하니 택시가 좌회전한다. 다시 ‘오른쪽으로(右)’ 하니 우회전한다.

 

‘새는 좌우로 날개로 난다’는 것은 이념의 문제만은 아니다. 목표를 향해 가려면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인생 항로와 다르지 않다. 영화 제목이 ‘좌우’인 것은 ‘날개’처럼 날아오르려면 ‘부’와 ‘모’의 유전인자가 모두 필요하다는 암시이다.


 

메이주는 아무도 없는 병원 복도에서 비틀거린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말 없이 한숨을 쉰다. 라오세는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낸다. 그리고 ‘큰 일이 생겼으니 전 남편에게 연락하라’고 한다. 허허가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이혼한 지 4년, 전 남편이자 허허의 생부 샤오루(肖路)는 조그만 건설업체를 경영하며 2년 전 젊은 스튜디어스 둥판(董帆)과 재혼해 살고 있다. 둥판은 아이를 갖고 싶어하나 샤오루는 사업이 부진하고 체력도 달려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샤오루는 친딸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병원비도 넉넉하게 주고 자신을 아빠인 줄 모르는 친딸이지만 가슴이 아프다. 라오세는 좀더 크면 친 아빠를 알려주겠다고 하며 서로 담배를 나눠 피기도 한다.


 

골수(骨髓)를 이식 받지 않으면 길어야 3년을 살기 힘들다는 통보를 받는다. 검사 결과 생모도 생부도 골수가 모두 적합하지 않다. 의사는 가장 확률 높은 기증자는 동일 부모에서 낳은 아이의 형제자매뿐이라고 한다.

 

메이주는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다.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점점 미쳐간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지 고민한다. 결국 어린 딸을 살려야 하지 않을까. 방법은 하나. 허허의 형제자매가 있어야 한다. 그녀는 시험관 아기를 낳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전 남편을 찾아간다.

 

“아이 하나 더 낳을 생각이야. (我想再生孩子)”

“라오세 좋은 사람이지. 당연히 그래야지. (老人不应该)”

“라오세와 말고, 너랑. 우리 둘의 아이 말이야. (不是跟他,是跟,咱们两再生一)”

“우리 둘이 아이를 낳는다고 한 거야? (你说咱们两再生一)”

“이게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치야. (是目前能想到的最好的)”

“상식적으로 말이 안돼. (太离)”

 

어려운 부탁 또는 의무에 대한 그들의 대화는 조용하면서도 긴장이 넘친다. 샤오루는 둥판과의 관계를 생각해 받아들일 수 없으며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 집에 돌아온 샤오루는 둥판에게 사정을 설명한다. 둥판은 ‘농담하냐?’ 말도 되지 않는다고 펄쩍 뛴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아이 엄마를 만나야겠다고 한다.

 

메이주는 지금의 남편도 이해시켜야 한다. 라오세 역시 쉬운 일이 아니라며 ‘걱정이 태산’처럼 긴 한숨을 쉰다. 새로 태어날 ‘아이의 장래도 생각해야 한다’며 걱정도 한다. ‘이 세상에서 몇 명이나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조하면서도 마음씨 착한 라오세는 마음을 다스리며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인다.

 

샤오루는 어린 딸 허허가 보고 싶어서 다시 병원을 찾는다. 허허는 본능적으로 아빠라고 생각한다. ‘아빠인 줄 알아요’, ‘그래, 아저씨와 아빠도 다 아빠란다’ ‘그래서 나 구하러 오셨군요’ 딸의 말을 듣고 나온 샤오루는 말 없이 눈물을 흘린다.

 

둥판은 연락 없이 메이주 집을 찾는다. 외출한 메이주를 만나지 못했지만 아이를 돌보고 있는 라오세의 배웅을 받는다. 라오세는 아이를 안고 오랫동안 서서 바라본다. 친딸처럼 살갑게 아이를 키우는 모습에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착잡한 마음에 방황하던 둥판도 자조 섞인 투로 ‘재미난(有意思) 일’이라 했던 아이 낳는 일에 동의한다. 대신에 자신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고 한다.

 

이혼과 재혼이 점점 늘어가는 때에 서로 남남으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지만 아이가 있는 한 언제라도 그들의 인생이 뒤얽힐 수 있는 현실과 그에 따르는 갈등이 진지하게 그려지고 있다. 좌우에 보이는 ‘부모’란 무엇인지, 사랑과 결혼, 그리고 포용에 관한 이야기로 현대인의 이기심과 도덕적 한계에 영화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허허를 살리기 위해 아빠와 엄마는 함께 병원을 갔다. 하지만 예전 낙태 경험 때문에 생긴 습관성 유산도 문제지만 인공 수정을 하기에 정자의 활동력도 미약하다. 3차례에 걸친 인공 수정은 실패하고 만다. 병원도 규정상 더 진행하기 어렵다고 한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절망하는 메이주, 급기야 최후의 방법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는다. 다시 샤오루와 만났다.

 

“실제로 하자는 말이야?”

“100분의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해봐야지.”

“한다고 치자, 가서 둥판에게 대체 뭐라고 해.”

“말하지 마. 그냥 병원에서 했다고 하면 되잖아”

 

실제로 둘이서 동침 하는 것. 어쩌면 엽기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아이를 살리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적 관계 때문에 대화가 잘 될 리가 없다.

 

샤오루는 잠자리에서 둥판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한다. 둥판은 극렬히 반대하고 짐을 싸서 나가버린다. 자신이 아이의 일로 인해 방해가 될 뿐이라며 결국 이혼을 통보한다. 샤오루는 친딸을 살리기 위해 이혼이라는 선택밖에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갈등한다. 끝없는 갈등 속에 허허의 엄마 메이주와 전 남편 샤오루는 동침하기로 한다. 이들 둘 사이에서 새로이 태어날 아이만이 딸에게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메이주와 샤오루는 택시를 함께 타고 간다. 영화 도입부에서 ‘좌’회전과 ‘우’회전을 해 갔던 그 아파트에 도착한다. 한달 동안 임시로 빌린 둘만의 어색한 공간이다. 메이주는 겉옷을 벗는 과정에서 잘못해 핸드폰 송신 버튼을 누르고 만다. 라오세에게 통화가 연결됐다. 둘이 함께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게 된 라오세는 조용히 핸드폰을 닫는다.



 

핸드폰이 울린다. 집을 나간 둥판에게서 걸려온 것이다. 비행기 고장으로 항공편이 취소됐는데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뜻밖에도 허허의 얼굴이었다는 말을 남긴다. 동침을 해도 좋다는 뜻이다. 샤오루의 ‘나도 사랑해’ 라는 말에 담긴 둥판의 슬픈 마음이 진하게 묻어난다.

 

둘은 이상하고 서먹서먹하면서도 당황스런 성 관계를 맺고 난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둥판은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메이주 역시 저녁을 준비한다. 두 집의 사람들은 어색한 재회이고 몇 마디 말도 없다. 별다른 대화도 나눌 수 없으나 서로는 이미 포용하고 이해했고 사랑하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허허의 새 아빠 라오세는 ‘새로 아이가 태어나면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아이니 내년에는 아이 데리고 고향 가서 명절을 지내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맺는다. 결국 두 부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으며 임신이 됐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이 영화에는 중견배우 4명이 열연을 펼친다. 백혈병에 걸린 허허를 살리기 위해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마음씨 착한 캐릭터 라오세를 연기한 청타이션(成泰)은 프랑스언론이 ‘물 흐르듯 진지한 연기력’이 돋보인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허허의 생모로 딸을 살리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하는 복잡한 심경을 잘 드러낸 메이주 역할은 류웨이웨이(威葳)가 맡았다.

 

허허의 생부로 딸을 살리기 위해 생모의 제안을 거부하지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입장을 잘 그려낸 샤오루는 중견배우 장자이()가 연기했다. 남편의 친딸을 살려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감정과 이성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젊은 스튜디어스 둥판은 위난(余男)이 맡았는데 그녀는 2006년 왕취엔안(王全安) 감독의 <투야의 결혼(雅的婚事)으로 시카고영화제 등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백혈병에 걸린 딸 허허는 아역배우 장추치엔(楚倩)이 맡았으며 유치원 선생 역할로 인기여배우 가오위엔위엔(高圆圆)이 깜짝 출연했다. 왕샤오솨이의 영화 <상하이드림>에서 타이틀롤 칭홍(青红)을 맡았는데 이 영화에 우정 출연하기도 했다.

 

왕샤오솨이 감독은 “인종, 환경, 지리적 장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닥쳤을 때, 서로 얽혀있는 사람들 사이의 사랑, 의심, 믿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선입견으로 영화를 본다면 소재는 엽기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약 2시간의 러닝타임이 끝나면 그 뒷맛은 결코 엽기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영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자문하게 만드는 영화다.

절제된 카메라와 수준 높은 연기, 독특한 이야기 구조가 어우러져 좋은 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젊은 6세대 감독들이 갈수록 그 수준이 향상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왕샤오솨이(王小) 감독은 66년 상하이 출신으로 베이징전영학원 85학번이고, 졸업 후 독립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해 <북경자전거>로 제51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 영화로 7년여 만에 또다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재회

In Love We Trust 
6.9
감독
왕샤오슈아이
출연
류위위, 장가역, 첸타이셍, 위난, 장초천
정보
드라마 | 중국 | 115 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