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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북쪽 지방 핑구(平谷)는 과일의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이징, 텐진, 허베이성의 경계에 있는 핑구는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곳입니다. 엄청나게 큰 호수이자 관광지인 진하이후(金海湖)를 가는 길가에는 풍성한 가을을 맞아 과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핑구지방에는 많은 과일이 생산됩니다. 그 중에서도 '핑구의 스얼궈(平谷12果)'는 이 지방의 자랑거리인 과일들을 말합니다. 계절마다 '제 철 과일'이 있듯이 가을에 익는 과일이 길거리에 등장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징핑(京平)고속도로를 달려 핑구 시내를 지난 후 순핑루(顺平路)를 거쳐 핑지루(平蓟路)를 달립니다. 도로 양 옆으로 과일을 파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핑구의 진하이후나 경동대협곡(京东大峡谷) 등으로 가고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지의 싱싱한 과일이니 싸기도 하지만 정말 먹음직스럽습니다.


핑구의 12과일은 복숭아(다타오,
大桃), 대추(다자오, 大枣), 살구(홍싱, 红杏), 아가위(홍궈, 红果), 포도(푸타오, 葡萄), 호두(허타오, 核桃), 앵두(잉타오, 樱桃), 사과(핑궈, 苹果), 감(스즈, 柿子), 자두(리즈, 李子), 밤(리즈, 栗子), 배(리, 梨)입니다. 모두 핑구를 대표하는 과일들인데 '제 철'을 맞아 도로로 나온 과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 배입니다. 사실 중국 배는 우리의 배에 비해 당도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종류는 다양한 편입니다. 위의 동그랗고 조그만 배는 징바이리(京白梨)라 부릅니다. 핑구는 물론 허베이 지방에서 결실을 맺는 배입니다. 이 징바이리는 다른 중국 배에 비해 약간 당도가 높아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징바이리보다는 약간 더 백색에 가까운 이 배는 쉬에화리(雪花梨)라고 합니다. 눈꽃배인 셈인데 맛은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당도는 떨어지지만 기침 등 호흡기에 좋고 감기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배입니다.



그래서 베이징을 비롯 허베이 사람들은 포도주와 꿀을 넣고 1주일 가량 삭혀서 먹기도 합니다. 이것을 홍쥬미리(红酒蜜梨)라고 부릅니다. 2010년 10월 허베이의 한 지방도시에서 먹었던 붉으스레하면서 달콤한 배 요리입니다. 약간 밋밋한 배 맛을 포도주와 꿀 맛으로 범벅을 했습니다. 베이징에서도 전통식당에 가면 간혹 맛볼 수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핑구의 대표적인 과일은 대추입니다. 다른 지방보다 유난히 커서 다자오(大枣)라고 부릅니다. 손으로 먼지만 털어내고 먹어도 맛 있습니다. 싱싱하고 달콤한 맛으로 몇개 먹으면 배가 부를 정도입니다.



거리에서 무게를 달아서 즉석에서 팝니다. 저울에 달아서 1근에 5위엔에 팝니다. 한사람이 2~3개씩 집어먹어도 좋습니다. 연신 맛 보라며 권하는데 아마도 반근 정도는 그 자리에서 먹었을 겁니다. 그래도 여유만만 무게를 달고 있는 할아버지는 신이 납니다.



옆에 있던 호두와 비교해 보니 정말 큽니다. 한 주먹에 많아야 5개 집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대추는 핑구의 명물로 알려져 있는데 대추 축제를 할 정도로 지방특산물입니다.



우리말로는 아가위라 부르는데 붉은 색이라 홍궈라고도 부르지만 보통 산자(山楂)라고 합니다. 산에서 나는 조그만 사과같지만 맛이 신 편입니다. 약재로도 쓰이는데 항암효과가 있다고 하며 탕으로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합니다.



<산자나무의 사랑(山楂树之恋)>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장이머우(张艺谋)감독 작품으로 문화혁명 시기 한 여고생이 농촌활동을 하러 간 곳에서 젊은 오빠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 마을 입구에 커다란 산자나무가 있는데 영화 속 애절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나무처럼 보이지만 가을이 되면 사랑이 이뤄지듯 붉은 산자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아주 슬픈 영화이면서 서정적인 장면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어쩌면 초기 장이머우의 진솔한 인간미가 담겨져 있는 영화입니다. 산자를 보니 이 영화 생각이 났습니다.


호두도 있습니다. 한바구니 담아두니 먹음직스럽습니다. 몇 개 까서 먹으니 정말 싱싱합니다. 건과류를 대표하는 것으로 창셔우궈(长寿果) 또는 완수이즈(万岁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건강식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호두(胡桃)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원산지 유럽으로 중국 서북을 통해 들어온 것이어서 그렇게 불렀던 듯합니다. 직역하면 '오랑캐 복숭아'인 것입니다.



이 호두는 사실 잣처럼 껍질을 두번 벗겨야 먹을 수 있습니다. 이 호두껍질을 둘러싼 껍질이 또 있습니다. 얼마전 한 마을에 갔을 때 호두 바깥껍질을 벗기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잣 열매를 벗겨먹은 경우는 있지만 호두껍질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사과도 핑구를 대표하는 과일입니다.  핑구 사과는 열매가 작아서 한 손아귀에 딱 쥘 수 있습니다. 옆자리에 칼이 있어서 한 깎아 먹었더니 생각보다 맛 있습니다. 이것도 3근 샀습니다. 3근에 10위엔.



그런데, 사과와 배를 접붙인 과일이 있습니다. 핑구의 산골에서 만나게 됐는데 사과와 배가 접붙인 과일
핑궈리'(苹果梨)입니다. 이 핑궈리는 중국 북방지방인 동북, 화북, 서북지방 산천에서 재배됩니다. 그 원산지가 지린(吉林) 옌볜(延边) 조선족자치주라 하는데 1920년대에 북한의 함경남도에서 그 종자를 가져와 재배에 성공했다고 전해집니다.

예전에 봤을 때는 붉은 빛의 사과와 잔 점이 밝힌 배의 독특한 모습이었는데 아직은 설 익었습니다. 하나 따서 맛을 봤더니 아직은 시큼합니다. 하지만, 베이징 대형마트에 가면 이미 잘 익은 사과배를 사서 맛 볼 수 있습니다.



12대 과일에는 속하지 않지만 해바라기와 호박도 길가에 나왔습니다. 지름이 30센티미터가 넘어보이는 이 해바라기 하나가 10위엔입니다. 몇 알 빼내서 먹었더니 그런대로 고소합니다. 가격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호박도 10위엔이면 하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좌판 맨 앞에 깔려 있는 감도 핑구 12대 과일 중 하나입니다. 이미 익어 홍시가 됐습니다. 아직 감이 저렇게까지 익을리가 없으니 아마 인공적으로 만들었을 듯합니다. 1개에 1위엔 내라고 해서 하나 사서 먹었습니다. 달고 맛 있습니다.


이날 핑구 산골마을에서 본 감과 밤입니다. 여름 밤과 가을 감이 한꺼번에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밤과 감 사이의 계절인 셈입니다. 산골마다 이렇게 매달린 과일들을 지나는 사람들이 하나 따 먹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온 사방이 과일천지입니다.

싸고 맛 있으며 나름대로 재미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핑구의 12과일"입니다. 한 철에 다 보고 맛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을이면 가장 많은 과일이 등장하는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