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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50 베이징 4 공장의 불빛 사라지고 예술의 혼으로 살아나다



12) 이다지 빛나는 유교의 향기를 느껴본 적이 있을까 


원, 명, 청 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궈즈졘(國子監)을 찾아간다.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융허궁(雍和宮) 역 부근에 있다. 청셴제(成賢街) 패방을 지나면 홰나무들이 높이 자라 그늘지고 시원한 거리가 나온다. 공예품가게가 몇 군데 있고 번잡하지도 않다. 궈즈졘과 담을 마주하고 있는 공자 사당인 쿵먀오 벽은 구궁(故宫)에 있는 벽과 색깔이 같다. 검붉지만 퇴색된 채색이 고상한 담을 끼고 투명한 햇살 속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주머니와 아이가 보인다.


궈즈졘은 1961년에 국무원이 공표한 전국 문물보호 문화재이다. 이곳은 1306년 이래 최고학부로서 명성을 지키고 있다. 두 곳의 대문을 지나면 인공으로 만든 수정으로 천연의 채색감을 지닌 류리(琉璃)로 만든 아름다운 패방이 나타난다. 베이징에서 하나뿐인 이 류리패방은 청나라 건륭제 시대에 만든 것이다. 세 칸과 네 기둥, 일곱 누각으로 만들어진 찬란하고 유려한 자태이다. 자주색과 연두색과 군데군데 황금색으로 치장된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건륭제는 한족 융화정책과 통치이념으로 유교를 존중했다. 궈즈졘에 비융(辟雍)을 건설하고 바로 앞에 휘황찬란한 패방을 세운 것이다. 하얀색 바탕에 친필로 환교교택(圜槁教澤)과 학해절관(學海節觀)을 앞뒤로 나란히 새겼다. 비융 주변은 도랑을 내 호수로 빙 둘렀고 다리를 지나 들어갈 수 있도록 연결돼 있다. 유일한 황가의 학궁인 비융 안은 늠름한 황제의 자태와 잘 어울린다. 청나라 시대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이나 벽돌, 창문, 장식은 유일하게 유교학당이나 공자와 관련된 건축물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비융이 건설되기 전에는 이룬탕(彝倫堂)이 학당 역할을 했다. 비융 뒤편에 붉은 빛이 감도는 이룬탕 앞에 공자의 행교상(行教像)이 서 있다. 당나라 화가인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공자의 전신 그림이다. 건물 양쪽으로는 길게 복도가 이어져 있고 과거 관련 박물관이 있다. 복도를 따라 가니 천장까지 높다. 복도 끝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최고학부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밀랍 인형으로 꾸며 놓고 있다. 시대별로 문관과 무관의 복장을 한 모습도 있다. 신라인인 최치원이 18세에 진사에 급제해 장쑤(江蘇)의 한 현(縣)에서 근무했다는 기록도 있다.


황제가 주관하는 뎬스(殿試)의 모습을 진열했으며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명단을 붙인 방(榜)도 붙어 있다. 청나라 말기 동치제 때의 방으로 장원한 사람의 출신 지역과 이름도 보인다. 마당을 한 바퀴 도는데 푸쑤화이(復蘇槐)라는 나무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높게 자라 있다. 원나라 시대 처음 심었고 이미 고사된 나무였는데 건륭제 모친의 생일에 때맞춰 푸른 잎이 다시 돋아났다고 한다.


공자 사당인 쿵먀오(孔廟)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다청먼(大成門) 앞에는 공자 조각상이 서 있고 관광객 한 무리가 시끄럽게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다. 재빨리 만세사표 편액이 걸린 다청뎬(大成殿) 안으로 들어갔다. 공자 사당은 대체로 어디나 비슷한 분위기이다. 정면에는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죽자 총통이 된 리위엔훙(黎元洪)이 1917년에 쓴 도흡대동(道洽大同) 편액이 걸려 있다. 아래로는 공자의 신위가 있는데 주변에 전통악기들이 전시돼 있어서 눈길을 끈다. 한 일본 방송국 취재진도 열심히 악기들을 담고 있다.



류리패방(왼쪽 위), 과거박물관 방(왼쪽 가운데), 찻집 종(왼쪽 아래), 공자사당 안 전통악기(오른쪽)


현악기인 구정(古箏)이 있고 화려한 용머리를 좌우로 틀고 길조 5마리가 서 있는 모양으로 위 아래 8개의 얇은 쇠 판이 걸려 있는 악기는 편경(編磬)이다. 쇠로 만든 판이 엄청 크고 무거운 것은 특경(特磬)이다. 편경과 비슷한 형태로 종 16개가 달린 편종(編鐘)이 있고 크고 무거운 종을 받치고 있는 박종(鎛鐘)도 있는데 아래 쪽에 강아지처럼 생긴 장식이 이채롭다. 큰북인 건고(建鼓)도 보이고 제례음악이 시작될 때 울리는 축(柷)과 마칠 때 치는 어(敔)를 본 것도 즐거운 수확이었다.


거리로 나와 걷다가 골목 속에 있는 찻집 하나가 보여서 들어갔다. 찻집 이름이 단순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날 듯한 이청(一承)이다. 경극 가면 그림이 열매와 함께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햇살에 비친 찻잔 속 찻잎이 사뿐하게 가라앉고 찻잔 받침대의 복(福)자가 선명하다. 창살 밖에서 들어온 그늘이 차의 향기를 더욱 은은하게 해주고 있다. 차 한잔 마시고 일어나니 어딘가에서 고풍스런 악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7줄 현악기인 구친(古琴) 소리이다. 구친은 공자 시대부터 생겨난 악기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궁(宫), 상(商), 각(角), 우(徵), 우(羽)의 다섯 줄이다가 나중에 문(文)과 무(武) 현이 추가됐다. 여주인이 음계를 뜯는데 부드러운 손길 따라 잔잔하게 느린 음률이 퍼져 나간다. 오후 내내 유교의 향기에 흠뻑 젖었다. 게다가 공자도 들었을 악기소리도 듣고 보니 기분이 아주 좋다. 가끔 이렇게 배우고 익히는 느낌이 있는 곳을 들러 보는 것도 좋다.


13) 황제의 뱃길 따라 유람해 황후의 여름 별장에 이르다 


베이징 서쪽 시즈먼(西直門)에서 이허위엔(頤和園)까지 가는 뱃길이 있다. 베이징전람관 뒤쪽에 작은 나루터가 있고 황제선 간판이 보인다. 황자위허여우(皇家禦河游), 즉 황가의 뱃길 따라 유람하는 여행이다. 외국인들과 중국인들이 10여명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 시내에 이런 뱃길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조차 하다. 황제가 타던 배 나루터에는 생각보다 꽤 수량이 많은 강물이 있고 주변을 빙 둘러보니 고층 빌딩 숲이다.


쾌속정이 빠르게 지나며 물살을 일으킨다. 강변 식당 위허룽완(禦河龍灣) 앞에 세워둔 작은 배가 함께 찰랑거린다.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뱃길 여행이다. 강희제의 초상화가 그려진 배로 승객들이 타기 시작한다. 갑판도 없고 앉아서 창문만 겨우 열려 있어서 아쉽다.


원나라 시대에 조성된 하천으로 가오량허(高粱河)라고 했다가 명나라 시대에 위허(玉河)라 불리던 창허(長河)다. 청나라 건륭제에 이르러 황제의 전용 뱃길이 됐다. 배가 출발하자 강물이 출렁인다. 옆으로 쾌속정이 빠르게 속도를 내고 지나간다. 배 뒤에 낡은 모습의 강희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뱃길 왼편으로 베이징동물원이 있다. 놀러 나온 사람들이 나무 그늘을 따라 걷고 있으며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한다. 물살이 빠르지 않고 고인 상태라 다소 냄새가 나는 것만 빼고는 재미있는 뱃길이다. 안내하는 아가씨는 뱃길의 역사나 주변 명소를 소개하느라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옛 말에 톈탄에서 소나무 보고 창허에서 버드나무 본다(天壇看松, 長河觀柳)’는 말이 있듯이 이 뱃길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 있다.


조금 더 가니 사람들이 모두 내린다. 이 강물은 아쉽게도 이허위엔까지 곧장 뚫려 있지 않아서 즈주위엔(紫竹院)공원에서 다른 배로 갈아타야 한다. 서태후도 피서를 위해 이허위엔까지 뱃길을 이용했는데 이 나루터에서 증기선을 타고 이동했다. 새로운 배는 더 크고 사람들도 더 많이 탄다.



이허위엔 쿤밍후(왼쪽), 나룻터(오른쪽 위), 황제유람선(오른쪽 가운데), 환선(오른쪽 아래)


다리 아래를 지나가니 반대편에서 운행하는 유람선이 비켜 간다. 어느덧 배가 종점을 향해 달려간다. 점점 뱃길이 넓어지기 시작한다. 앞자리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수줍은 듯 바라본다. 창 밖을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본 것이다. 배가 물살을 튕기며 마지막 속도를 내고 있다.


선상에서는 곧장 이허위엔 쿤밍후(昆明湖)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판다. 이허위엔으로 가지 않는 사람은 쿤밍후 바로 앞에서 내려야 한다. 배에서 내려서 보니 일직선으로 쭉 뻗은 뱃길이 잔잔하고도 길게 이어져 있다.


배는 쿤밍후를 향해 아치형 다리 밑으로 떠나가는데 뱃길 뒤로 하천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강물을 수영장 삼아 놀고 있다. 다리 위로 올라가니 멀리 쿤밍후 앞에 배들이 정박해 있다. 뱃길 종점인 난루이먼(南如意門)이다.


저 멀리 쿤밍후 앞을 가리고 버티고 서 있는 다리가 멋지다. 마치 징처럼 생긴 솥이라는 뜻으로 뤄궈챠오(鑼鍋橋)라고도 하는 슈이챠오(繡漪橋)다. 슈이라는 말도 물결을 수 놓는다는 뜻이니 이름도 걸작이다. 황금색 유람선이 정박해 있고 파란 호수 앞을 봉긋하게 가린 다리가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다. 다리 밑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


이허위엔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 포샹거(佛香閣)를 중심으로 관람하는데 이렇게 서쪽에도 봉긋한 다리가 있는 멋진 앙상블이 있는 줄 모를 것이다. 서태후의 여름 별장답게 멀리서 봐도 운치가 있다. 황제처럼 또는 황후처럼 기분을 내며 뱃길 따라 유람한 보람이 있다.


14) 공장의 불빛 사라지고 예술의 혼으로 살아나다 


다산즈(大山子) 798예술구는 냉전시대에 군수품을 만들던 공장지대가 어엿한 갤러리 촌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이곳을 철거하려던 당국에 맞서 젊은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던 곳이다. 798이란 말은 이곳 공장지대 주소였는데 예술구 이름으로 굳어졌다. 온통 공장의 흔적이 자욱하지만 서서히 젊은 예술가들의 정서와 혼이 깃든 작품과 작업실의 땀내가 짙어 가고 있다.


희망공정을 불러일으킨 세하이룽(謝海龍)의 유명한 사진이 걸려 있는 갤러리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위대한 영도자 마오주석 만세 구호가 있던 공장이다. 길가 유리 창문에 비정상적으로 신체 사이즈가 긴 아가씨와 옆에서 재롱 피며 엎드려 있는 아이가 보인다. 거울 속에 갇혀 있지만 주변 공장 굴뚝이 담겨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파이프라인과 수평선을 만들어낸 벽 속에 붓 칠한 모습이 섬찟하다. 벽화 앞에 자란 나무들을 따라 낙엽을 쓸고 있는 청소부조차 예술적으로 어울린다. 벽마다 이렇게 뜻 모를 '자기 멋대로'의 그림들이 수도 없이 많다. 공장 담벼락마다 불조심을 알리는 문구가 그려 있다. 예술가들의 재치 있는 붓 칠이 더해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화랑이 하나 있다. 마침 승덕대왕 동종을 전시하고 있다.


중국을 상징하는 경극 가면들도 예술 작품으로 승화됐다. 화랑 앞 사자조각상에 덧칠한 모습도 있으니 매우 상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주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작가의 작품인가 보다.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소재로 만든 조형물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붉은색만으로 만든 기형적으로 긴 사람의 표정이 재미있다.


좁은 골목 안에 진시황 조형물이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도교의 삼청신 중 하나인 듯 보이는 복숭아와 지팡이를 든 조각상이다. 진시황과 병사들이 있고 12지지의 동물도 있다. 한쪽 구석에 처음에는 손바닥이라 생각했던 긴 혓바닥 위에서 춤 추는 댄서가 있어서 놀랐다. 세치 혓바닥 위에서 농락 당하는 모습과 각진 턱과 커다란 얼굴, 반질반질한 머리이니 중국 고위 간부를 떠올리게 된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빚은 작품인 듯하다.


공예품이나 책, 캐릭터 옷 등을 파는 노점이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섞여 혼잡하면서도 활기가 넘친다. '798'이라는 숫자를 멋지게 도안한 티셔츠를 판다. 한 창고로 들어서니 주사위 모양으로 꼭지점이 바닥에 있는 정육면체가 나타난다. 각 면마다 16개의 정사각형 속에 특이한 모양의 그림들이 그려 있다. 온몸이 묶인 채 연한 파란색의 고뇌하는 인간이 서 있다.


투명 유리와 빨간색의 공중전화 박스가 있다. 요즘 핸드폰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공중전화 박스는 사진을 찍으면 예쁜 배경으로 제격일 듯싶다. 공중전화 옆 커피숍 문이 재미있다. 커피 원두가 쌓여있고 흰색의 잔으로 된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고 한다.



군수공장에서 예술거리로 변한 베이징 798예술구 모습


좁은 골목 안으로 조소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무사 시리즈 작품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주로 동을 소재로 만든 작품인데 머리에 쓴 금색 덮개가 인상적이다. 한나라 시대의 번마(奔馬) 조각상이 한가운데 놓여 있다. 번마란 '달리는 말'이라는 뜻인데 국가 유물로 지정된 기와의 내림새인 마구리 문양 중에 말에다가 상상력을 발휘해 무사를 함께 만들어 형상화했다.


귀여운 팬더를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있는데 어린 소녀의 얼굴도 있다. 둥근 원 속에 들어간 팬더들이 무슨 의미인지 한참 봐도 모르겠다. 한 꼬마 소녀가 약간 수줍은 듯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머니는 연신 이런저런 주문을 하며 소녀의 사진을 찍는다. 아이도 귀찮지 않은 듯 착한 모습이다. 웃기도 하고 약간 재롱을 피우는데 이목구비도 또렷하고 인상도 좋다.


젊은이들이 해학적이다 못해 약간 흉물스럽기조차 한 조형물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조형물 뒤편에 웃기는 캐릭터들이 앉아있는데 발가락과 손가락이 아주 귀엽다. 흰옷을 입고 빨간 머플러로 매듭을 짓고 있는데 그 표정도 다 제 각각이다.


거리 한곳에 위치한 윈난 성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 상형문자인 동바문자 캐릭터 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동바문자 상품을 진열하고 그 문자들로 벽도 꾸몄다. 하얀 벽에 중국(中国)이라고 흰색 칠을 하고 그 사이에 세계 각국의 국기들을 그려 넣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중국 속에 세계가 있다'거나 '하나의 꿈(同一個夢想)'을 표시하려고 그려 놓은 듯하다. 거무튀튀한 벽에 도토리(?)같은 녀석이 앙증맞게 그려 있다.


전통의상을 파는 가게 앞인데 어딘지 중국답지 않은 모습의 인형이 있다. 아프리카 느낌도 나는데 익살스럽고 귀엽다. 중국인민복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의 조각상이 일렬로 서 있다.


젊은 예술인들의 작업현장이면서 동시에 전시공간인 이곳이 자본의 힘에 의해 상업화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된다. 군수공장이던 798예술구가 예술과 문화, 그리고 상업까지 결합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있는 그대로의 공장에서 작업하던 곳에서 공장을 때려부수고 현대식 건물을 짓고 자본이 침투한다면 더 이상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서 남지 못할 것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