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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여행을 떠났습니다. 오랜만에 주말 문화투어 인솔을 하지 않아서...


개척여행 2013년 그 첫번째 코스를 허베이 남쪽 옛 도시 한단邯郸과 스자좡石家庄에 있는 창암산苍岩山, 룽궈푸荣国府를 취재하고 왔습니다. 


허베이 남쪽에 늘 가고 싶었던 한단은 전국칠웅 조나라의 수도였으며 진시황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합니다. 한단지몽 고사가 있는 곳이자 조선의용대 석정 윤세주 열사가 잠들어 있기도 합니다. 


먼저...베이징에서 가오테高铁를 타고 2시간여 만에 한단동 역에 도착 후 다시 약 4~50분 거리의 황량黄粱 진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는 송나라 시대에 건축된 도교사원인 한단고관邯郸古观이 있습니다. 한단지몽, 황량몽이라고 불리는 재미난 고사를 딴 황량몽뤼센츠黄梁梦吕仙祠 또는 루셩먀오卢生庙라고도 불립니다.



고관 입구 바깥 조벽입니다. 최근에 만든 벽이지만 나름대로 시골스러운 낡은 색이 푸근합니다. 



한단고관 입구입니다. 중국사람들에게 도교사원은 향을 피우고 염원하는 장소라 그런지 계속 향을 사라고 난리였지만 눈 하나 꿈벅하지 않고 입장권을 사고 들어갔습니다. 30원이나 하는 입장료, 이 먼 시골 구석 사원도 비싼 편입니다. 



황량이란 누런 수수를 말하며 고량주를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며 먹기도 합니다. 어느 날 노생盧生이라는 사람이 한단 땅에서 도사인 여몽呂翁을 만나게 되는데 베개를 베고 한바탕 긴 인생의 꿈을 꾸고 일어났더니 아직도 황량이 덜 익었다는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일장춘몽의 의미를 뜻하는 고사를 비석에 새겼네요! 황량몽이라고도 하고 황량미몽黄粱美梦이라고도 합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그다지 높지 않은 석회암 4각 벽에 봉래선경(蓬莱仙境)이라고 흘려쓴 초서체가 써 있습니다. 더 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세계, 신선이 사는 세상을 뜻하는 도교용어이기도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팔선 중 가장 으뜸이라 할만한 여동빈이 쓴 글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동빈의 글씨가 불분명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을 정도로 멋진 글입니다. 다만, 앞 세글자는 오롯이 한사람의 것이지만 닳아 없어진 경(境)은 청나라 건륭제의 글씨를 가져다 보완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필체의 미미한 차이가 있는데 그저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잔잔한 호수 렌츠(莲池)가 꽝 얼었습니다. 팔각정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최근에 지은 팔각정 건물인 듯한데 용마루에 잡상이 4마리이네요!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신선동부(神仙洞府) 편액이 걸린 아담한 문 우차오먼(午朝门)을 지납니다. 류리(琉璃)로 만든 용 문양이 있는 지붕도 산뜻합니다. 



도교의 팔선 중 한명인 정양제군(正阳帝君) 한중리(汉钟离)라고도 불리는 중리권(钟离权)의 사당입니다. 오대(五代) 시대 대장군이었는데 토번(지금의 티베트) 정벌에 실패한 후 심산에 들어갔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종리전 뒤에는 믿고 복종하고 보호한다는 뜻의 부유제군(孚佑帝君) 여동빈의 사당입니다. 


한단고관에서 가장 유명한 여동빈(吕洞宾) 사당인 뤼주덴(吕祖殿)입니다. 여동빈은 당나라 사람으로 본명이 여암(吕岩)이며 도교 전진파의 조사(祖师)로 역시 팔선 중 한명입니다.  


도교에서는 당송이래 일반 서민들의 추앙을 받던 사람들로 팔동신선(八洞神仙) 사상이 널리 퍼지며 팔선을 섬기게 됩니다.  여동빈을 비롯 철괴리(铁拐李), 앞서 말한 한종리(汉钟离), 남채화(蓝采和), 장과로(张果老), 하선고(何仙姑), 한상자(韩湘子), 조국구(曹国舅)를 팔선이라 부릅니다. 그중 여동빈이 가장 유명하며 팔선의 우두머리로 꼽습니다. 




노생 사당 안에는 석회암으로 만든 노생의 와불상이 있습니다. 한단고관의 3대 보물 중 하나로 명나라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벽에는 꿈 꾸는 동안 일어난 일생에 대한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한단지몽이란 말은 당나라 심기제(沈旣濟)가 쓴 <침중기(枕中記)>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전각 부근 벽으로 많은 비석이 새겨져 있지만 그 중 단연 눈에 번쩍 띠는 것이 바로 이 르르스하오르(日日是好日)라는 문구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두번째 글자가 좀 이상합니다. 일(日)자가 아니고 앞의 글자랑 같은 글자라는 표시일 뿐입니다.  '매일매일이 좋은 하루'라는 뜻인데 불교 선종에서 나온 말입니다. 


어느날 운문이란 선종 대사가 제자들을 불러놓고 15일 전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고 15일 후의 상황은 어떨까 라고 묻자 의아해하는 제자들에게 했던 말이라 합니다. 매일 매일이 서로 다른 생로병사의 세상에서 그저 하루 하루 좋은 일을 축원하며 살라는 의미가 담긴 선종의 의미라 합니다.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개념입니다. 



연꽃 위에 앉은 조롱박 위에 태극 문양이 있고 아래에는 어려운 두 글자가 나란히 착할 선(善)을 향하고 있습니다. 후투(糊涂)와 런전(认真), 어리석음과 진심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뜻 글자건만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인생 삶이 진심이 깃들여 있어야 시비(是非)를 가릴 수 있고 어리석은 세상사에 빠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심은 신앙이나 학습을 통해야 가능한데 어느 정도 진심을 배워도 다시 어리석어 지는데 지속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세상사 이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어야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선에 다다를 수 있다는 도교적 가르침을 드러내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황량미몽의 꿈 몽(梦)자가 새겨진 탁본입니다. 상품을 파는 가게 벽에 걸려 있네요. 바깥에 있는 비석에서 가져온 것으로 몽 글자 사이에 4등분해서 각각 인생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도교의 설법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한겨울 한단지몽의 본 고장 사원의 모습입니다. 마른 나뭇잎이 살짝 걸린 모습이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운치가 넘칩니다. 



둥근 벽돌이 사이사이 끼어 있는 벽입니다. 



본전 양 옆으로 두 곳의 행궁이 있습니다. 하나는 서태후와 광서(慈禧)제가 다녀갔다는 자희(慈禧)행궁과 광서행궁이 나란히 위치해 있습니다. 재미난 곳은 바로 이곳 광서행궁에 눈이 넷 달린 창힐(苍颉) 사당이 있습니다. 그는 신화에서 황제 시기에 문자를 발명했다는 사람입니다. 얼핏 눈이 침침해서 눈이 넷으로 보이나 착시를 일으킬 정도로 요상하게 생긴 모습입니다. 중국 수없이 다녀도 눈 셋은 많지만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볼수록 섬찟한데 꿈에 나올까 무섭습니다. 행궁 내에는 도교의 수많은 창조자들, 관리자들이 수두룩 등장합니다. 



역시 천후전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천후(天后) 또는 마조(妈祖)라 부르는 도교의 드문 여성 인물로 복건 성 출신의 임묵(林默)이란 사람입니다. 바다를 지키는 신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행궁을 나오는데 햇살이 비쳐 환해지는 모습이 마치 도를 다 깨친 느낌이 들었습니다. 후후~




한단고관에는 꿈 박물관이 있습니다. 벽화마다에는 중국에서 유명한 꿈이란 꿈은 다 그려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꿈을 연구하는 역사가라면 한번 와도 좋을 정도입니다. 고대 사람에게 꿈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중국의 고대 3대 꿈은 바로 이곳 황량몽과 함께 나비가 등장하는 호접몽(蝴蝶梦)과 남가몽(南柯梦)입니다. 


호접몽은 장자가 꿈에 나비와 만나 물아일체에 대해 깨닫는다는 꿈이며 남가몽은 당나라 순우분이 나무 아래에서 꾼 꿈으로 허망한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황량몽 역시 비슷하지만 그 배경은 사뭇 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 홍루몽 (红楼梦)소설에서도 신선의 세계, 돌과 꽃의 환생을 빗대기도 하고 그것이 어쩌면 춘몽같은 인생을 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꿈을 모티브로 재미난 이야기와 삶의 철학을 만들어온 역사의 유산이라 할만 합니다. 



중국 꿈 박물관 옆에 있는 가짜 산인 자산(假山)에 올라서 보니 사당 모습이 한눈에 보입니다. 



고관을 한바퀴 돌아 나왔습니다. 그냥 나가기 아쉬워 연못으로 들어가는 문인 단방(丹房) 앞에서 사진을 남겼습니다. 단방이란 도교에서 단전을 수련하던 곳이나 신선이 사는 세계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은 도교사원이라는 곳입니다.  


이곳 입구가 삼진(三进)의 시작이라 보면 됩니다. 삼진이란 문을 세개 지나야 한다는 뜻이나 앞에서 본 종리전, 여조전, 노생전을 두루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꿈으로 보는 도교. 소설의 주인공 노생까지 모시며 꾸민 사당이니 정말 도교는 역사와 신화, 종교를 두루 한 솥에 담아내는 탁월한 소질을 가진 게 분명합니다. 하여간 즐거운 꿈나라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