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최후의 비경’과 산소 도시의 고언화향과 하양고촌 중국기상국이 2016년부터 ‘천연산소카페(天然氧吧)’를 선정해 발표했다. 말은 카페인데 지역을 뜻한다. 조건이 꽤 까다롭다. 1cm3 당 산소 이온이 1,000개가 넘어야 한다. 1년 중 쾌적한 날이 3개월 이상, 공기의 품질이 우수한 날이 70% 이상으로 생태 환경이 특별해야 한다. ‘쾌적’과 ‘우수’의 기준이 나름대로 있을 터다. 수질 또한 3급수 이상이어야 한다. 생태 보호 대책도 완비해야 하니 여행지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오지가 많은 현(县)이 대부분인데 최초로 시 전체를 선정했다. 저장성 리수이(丽水)다. (계속)

차마고도에서 가장 높은 5,130m ‘생명 금지 구역’을 넘어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차마고도 ④ 옌징에서 쭤궁까지 천년 염전을 일구고 살아온 나시족 80%가 천주교를 믿는다. 나시족 전통 종교인 동파교(東巴教)도 아니다. 티베트 땅이니 불교를 믿지 않을까 싶다. 놀라 자빠질 일이다. 19세기 중반에 두 명의 프랑스 선교사가 왔다. 티베트 중심부에서 쫓겨난 도망자 신세였다. 병을 치료해 주며 주민과 사이가 좋았다. 포도 생산이 많자 와인 제조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포교에 성공했고 지금껏 살아남았다. 옌징에 티베트에서 유일무이한 천주교당(天主教堂)이 있다. {계속}

강 동쪽과 서쪽에 서로 다른 소금이 생산되는 천년 염전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차마고도 ③ 백마설산에서 옌징까지 10만 년이나 지속된 빙하기가 끝났다. 불과 1만 년 전이다. 지구가 따뜻해지자 빙하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은 흔적이 있다. 샹그릴라를 벗어나 더친(德欽)으로 들어서니 백마설산(白馬雪山)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해발 5,640m 주봉은 여전히 빙하기를 살고 있다. 구름이 잔뜩 가리고 있다. 구름이 줄줄이 봉우리를 넘나들고 일년 내내 눈 쌓인 풍광이 마치 말이 질주한다고 생각했다. {계속}

화재로 불타버린 ‘이상향’, 차마고도의 티베트 첫 동네 샹그릴라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차마고도 ② 샹그릴라에서 동죽림까지 영국인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이 1933년에 소설 을 발표한다. 히말라야 깊은 산속 어딘가에 비행기가 불시착하더니 티베트의 ‘이상향’에 들어간다. 상상으로 그린 마을이 현실로 등장할 줄 생각지도 못했다. 2001년 12월 중국 국무원이 행정 지명 변경을 허락했다. 윈난 북부의 작은 마을 중덴(中甸)이 돌연 샹그릴라(香格里拉)가 됐다.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마방이 티베트로 진입하는 첫 동네다. {계속}

마방이 다니던 차마고도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차마고도 ① 호도협 트레킹 윈난의 유명 관광지 리장에서 북쪽으로 1시간 30분을 달리면 호도협(虎跳峡)이다. 장강 상류인 금사강이 세차게 흘러간다. 남쪽과 북쪽에 가파르게 솟은 두 산이 너무 가깝게 붙었다. 주봉 해발이 5,596m인 옥룡설산이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5,396m인 합파설산이 가로지르고 있다. 수직으로 최고 3,900m나 차이 난다 하니 그냥 우리가 아는 골짜기라기에는 상상을 불허한다. 협곡은 17km나 이어진다. 더 깊고 기나긴 협곡을 쉽게 보기 힘들다. {계속}

마오쩌둥 사도적수의 현장 토성고진과 병안고진 맹렬히 추격해 오는 적군을 피해 대군을 이끌고 똑같은 강을 4번이나 건넜다. 1935년 장제스 국민당 군대의 추격을 기상천외한 전술로 돌파했다. 역사에서 사도적수(四渡赤水)라 부른다. 적수를 건넜다가 되돌아오고 다시 건너고 또 되돌아 건너는 작전이었다. 국민당 군대를 낙동강 오리 알로 만들었다. 장제스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구이저우 북부를 흐르는 적수 강변에 있는 마을을 찾는다. (계속)

약재에서 찾아낸 한자의 기원, 갑골문을 창제한 나라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허난 ⑨ 상추와 안양 세계사 시간에 ‘하은주춘추전국진한(夏殷周春秋戰國秦漢)’이라 외웠다. 지금 학생들도 그렇게 배운다. 중국 고대 왕조의 순서다. ‘은’이라 외우는 까닭은 사마천의 은본기(殷本紀) 때문이리라. CCTV 방송프로그램인 백가장단(百家講壇)에서 난징대학교 후아샹(胡阿祥) 교수가 은(殷)은 별명이고 상(商)이 국호라 했다. 덧붙여 은은 중원 동쪽에 있는 오랑캐를 뜻하는 이(夷)와 동의어라 했다. 상족(商族) 부족장인 탕(汤)이 기원전 16세기에 나라를 세우고 ‘박(亳)’에 도읍을 정했다. 지금의 허난 동쪽 끝 상추(商丘)다. {계속}

소 걸음으로 함곡관에 이르러 늘그막에 도덕경을 남기다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허난 ⑧ 루이 노자 고향, 링바오 함곡관 사마천은 ‘사기’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노자를 소개했다. ‘초고현여향곡인리(楚苦縣厲鄉曲仁里人)’이라 기록했다. 초나라 영토인 고현은 지금 허난 루이(鹿邑)로 알려진다. 기원전 571년에 노자가 태어났다. 대략 2천5백 년 동안 이견이 없었다. 1990년 6월에 타이완의 중화도교학원 교수인 마빙원(馬炳文)이 방문했다. 도교학회가 초청했다. 타이베이로 돌아가 노자 고향의 건축물을 중건하기 위해 100만 달러를 모금했다. 후원하겠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도관이 지명인 타이칭궁진(太清宮鎮)으로 간다. {계속}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