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 고향 설두산과 황산보다 아름다운 신선거 [최종명의 중국 산책] 설두산과 신선거 저장성 닝보寧波 시내에서 약 1시간 떨어진 시커우진溪口鎭은 장개석 고향이다. 아치형 대문인 무령문武嶺門이 입구다. 하천을 따라가면 장씨종사蔣氏宗祠가 나온다. 멀리서 봐도 지붕 위에 용 두 마리가 화려하다. 구슬을 가지고 노는 모습은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였다면 반역죄로 다스렸을 조각이다. 1930년대 새로 지은 사당이다. 황제에 버금가는 국민당 최고 지위에 있던 장개석은 거침이 없었으리라. 영사당永思堂에 들어서면 세밀하게 치장한 목조 예술도 돋보인다. 충의忠義와 인용仁勇의 상징인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들고 용마루를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듯하다. 사당 옆에 장씨고거蔣氏故居인 풍호방豐鎬房이 있다. 두 마리 용이 빠지지 않고 관우..
설두산雪窦山 옆에 있는 불교사원 설두사雪窦寺는 미륵보살의 성지입니다. 오대산五台山, 보타산普陀山, 구화산九华山, 아미산峨嵋山에 뒤이어 5대 불교 성지로 선정돼 최근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높이 33m나 되는 미륵불이 멀리서도 한 눈에 보입니다. 설두산 천장암 폭포에서 나와 설두사로 가는 길에 작은 또랑을 건넙니다. 유채가 아직 남아 있어 잔잔한 호수가 돋보입니다. 설두사는 최근에 대웅보전을 웅장하게 지어서인지 매력이 좀 덜합니다. 예전에는 정문에서 뻥 뚫려 미륵보살이 바로 코 앞에 보였는데 다소 아쉽습니다. 동서남북으로 위치한 사대천왕이 자리를 잡고 있는 광장에서 잠시 미륵보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미륵은 미래불이자 중국 민란의 중심사상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합니다. 설두사 바로 옆에는..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6] 원나라 말기 홍건군 백련교의 민란 ① 중국민란 역사에서 원, 명, 청 시대를 아우르는 코드는 피지배계급의 질곡을 줄기차게 담아낸 민간 종교결사 백련교(白莲教)를 주시해야 한다. 서기 4세기 동진 시대 강서 여산(庐山)의 동림사(东林寺)에서 발원한 대승불교 정토종(净土宗)의 한 계파로 남송 시대 모자원(茅子元)이 창립한 백련종(白莲宗)이 민란의 염원을 담아내며 백련교로 발전했다. 송나라에 이르러 중국 불교는 아미타불을 숭상하고 '살생, 절도, 음란, 망언, 음주'를 행하지 않는 지계(持戒)를 염불해 서방정토로의 왕생을 기원하는 결사가 성행하던 시기였다. 모자원은 1069년 강소 곤산(昆山)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19세에 출가했다. 동림사에서 정토종을 창건한 ..
#중국문화여행 설두산2 장개석가 가마 타고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등산대회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길 중간에 민국시대 옷차림의 아가씨와 를 붓글씨로 쓰고 기념사진을 찍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사진은 현지 언론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장개석와 송미령의 별장 묘고대妙高台 근처의 높이 186미터의 천장암千丈岩폭포를 케이블카를 타고 찍기도 했습니다. 설두산의 미륵보살 성지 설두사雪窦寺를 들렀습니다. 높이 33미터의 미륵보살이 웅장한 자태, 배 불룩하게 앉은 모습이 멀리서도 보입니다. 설두사의 창건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까지 역사가 거슬러올라가나 당나라 시대 본격적으로 건축됐으며 1932년 민국 시대에 이르러 중국 5대 명산의 불교사찰로 꼽히게 됩니다. 오등회원五镫會元 편액이 걸린 작은 사당에는 문수보살의 성..
공산당과 합작해 먼저 항일투쟁에 나선다는 약속을 하고 풀려난 장개석은 1937년에 돌연 장학량을 구금한다. 장학량은 장개석의 고향인 절강성 봉화시 계구현 설두산(雪竇山)에 유폐되고, 상해에서 친 자매처럼 함께 거주하던 우봉지와 조일적은 한 달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설두산으로 가 장학량을 돌본다. 이때 조일적은 아들을 낳았고, 얼마 후 일본군은 장개석의 고향을 침공한다.장학량이 하와이로 이주한 후 2000년에 조일적이 사망하고, 10개월 후 장학량도 사망하자 둘은 합장되었다. 장학량은 어린 시절에는 경비행기를 타고 만주벌판을 날아다녔고,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한때는 아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03세라는 장수를 누렸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에서 그 유래가 없을 만큼 장기간의 정치 보복을 당했지만 천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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