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주문화촌 시디西递에는 호씨종사인 경애당을 중심으로 또랑이 두 개 흐른다. 종사 앞이나 뒤 또랑 모두 그림 그리는 학생이 군데군데 많다. 한적한 뒷골목 집 담벼락에 낙엽 모양의 문양이 투각돼 있는데 "사람이 죽어 땅으로 돌아가듯" 낙엽이 뿌리로 돌아간다는 '낙엽귀근'의 의미라고 동행하신 교수님이 설명해주신다. 골목을 돌아나오는 곳에 수루绣楼가 있다. 2층으로 올라가 좀 높은 곳에서 볼 수 있었다. 보통 젊은 처자가 자수를 하는 곳이며 '미인이 기대어 앉는 곳'이란 뜻으로 메이런카오美人靠라는 공간도 있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여전히 아쉽다. 마을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푹 빠져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룽촨촌龙川村 호씨종사胡氏宗祠는 목조예술박물관木雕艺术博物馆이자 민족예술전당民族艺术殿堂이라 불린다. 지붕을 따라 내리는 비가 인상적인다. 사당 바로 동쪽에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정가사당丁家祠堂이 자리잡고 있다. 지붕에 마치 도깨비처럼 생긴 독특한 문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호씨 촌락에 정씨가 함께 사는 이유는 풍수지리 관념과 관련이 있다는 전설이 있다. 나중에 기사 등으로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룽촨촌은 이번 여행에서 꼭 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도로시설이 좋아서 다녀올 수 있었다.
안휘성 지시绩溪는 후진타오 전 주석의 고향(출생지 아님)이다. 이곳 룽촨촌龙川村은 호씨 집성촌으로 호씨종사胡氏宗祠가 있고 맞은 편에는 멋진 혁세상서방奕世尚书坊이 자리잡고 있다. 종이 공장도 예전에 있었나보다. 이 지역은 우리 한지처럼 유명한 종이가 생산된다. 명나라 병부시랑을 역임한 호종헌胡宗宪의 저택을 지나 종사가 지닌 위엄을 느껴본다. 향현사乡贤祠에는 고향을 빛낸 역대 성현을 봉공하고 있기도 하다. 후진타오는 주석 임기를 모두 마친 2013년 9월 부인과 함께 고향의 호씨종사를 방문한다. 방문 당시 재미난 이야기가 좀 있다. 이건 나중에 다시 담아야겠다.
중국 4대고성 중 한 곳인 서현歙县 휘주고성徽州古城을 찾는다. 수많은 고성 중 관청이 있으면 꽤 큰 마을이다. 새로 건축한 관청이라 옛 맛은 없다. 휘주고성의 상징은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대학사 패방인 허국석방许国石坊이다. 보통 팔각패루八脚牌楼라고도 부른다. 명나라 시대의 학자로 대학사, 국자감 제주(교장)를 역임한 허국의 금의환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돌에 새긴 문양과 글씨 등이 예사롭지 않다. 관광객의 주목을 끄는 패방 거리는 서민의 주거지이기도 하다. 사람들과 마주치며 거리를 거닐어본다.
창쟝(长江)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들은 대체로 창쟝따치아오(大桥)가 있다. 우후시 역시 멋진 다리가 있는데, 꽤 멋있다. 우후시는 안후이 성에서 경제규모로는 가장 큰 도시에 속한다. 일찍부터 도시 개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후시 기차 역 주변 허름한 동네, 나름대로 화려한 식당거리 등을 둘러봤다. 안후이 성도인 허페이(合肥)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우후로 가는 길이다. 마침 하늘과 구름이 잘 어울려있어서 보기 좋다. 중국은 고속도로를 까오쑤꽁루(高速公路)라 한다. 국도는 궈따오(国道), 같다. 장강대교가 머지 않아보인다. 양옆 도로 변으로 조명등이 길게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이 아주 수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여기만 그렇지는 않겠지만 ...
며칠 전 갑자기 라면, 그것도 한국라면이 먹고 싶어 사서 먹었다. 한국에서도 신라면을 주로 먹었고, 중국에서도 '라면은 우리라면을 먹어야지'하면서 좀 비싸도 가끔 사먹었다. 라면을 끓이다가 중국을 공부할 겸 포장지를 열심히 훑었다. 그래서, 오늘은 라면 봉지 속에 들어있는 것들의 중국이름은 무엇인지 공부하기로 했다. (이거 홍보성 글로 오해? 하나? 홍보 더 안해도 이미 아는 사람 다 아니...) 더불어, 이 라면을 만드는 회사가 '중외합작' 기업이라니 외국기업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즉 투자를 하는 3가지 방식에 대해서도 아는 만큼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국과 똑같은 컨셉의 포장이지만 그 속의 글자들은 다 중국어이다. 다만, 우리나라 옥편이 배경으로 들어간 곳에 정겨운 우리말이 있다. '辛'은 '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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