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화청지华清池는 이화원颐和园, 원명원圆明园, 피서산장避暑山庄과 더불어 중국의 4대 황가원림皇家园林이다. 시안에 오면 반드시 봐야 하는 6곳의 관광지 육간六看(병마용兵马俑, 종루钟楼, 성장城墙, 대안탑大雁塔, 공연) 중 하나다. 이번 여행에서 이 육간을 모두 다 봤다. 두 사람의 만남과 죽음 그리고 환생을 노래한 백거이의 시도 화청지 부용호芙蓉湖 앞에 새겨져 있다. 온천 목욕탕은 양귀비 및 황제가 사용하던 곳이 다 다르다. 바깥에는 태자가 사용하던 온천탕도 있다. 양귀비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불행인지 행복인지 그 평가도 다르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하얀 몸을 드러낸 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화청지 뒷산에는 1936년 12월 12일 서안사변西安事变의 현장으로 장제스가 거..
1936년 '쌍십이사변'이라고 불리는 12월 12일 새벽, 장쉐량은 서북군 양후청과 공모해 시안사변을 일으켰다. 장쉐량은 당 현종과 양귀비(양옥환)가 놀았다는 화청지 뒤쪽 얕은 산자락에 기거하던 장제스를 체포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시안사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장제스의 독려로 서북군과 동북군은 마오쩌둥의 연안 홍군을 향해 진격했을 것이며 산베이(섬서성 북쪽) 일대는 포화가 난무했을 것이다. 대장정을 거쳐 안정적인 근거지를 확보한 공산당은 엄청난 피해를 입은 후 아마 다시 감숙성이나 내몽골로 쫓겨났을 것이다. 제2차 국공합작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며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중국공략은 훨씬 손쉽게 진행됐을 것이 분명하다. 정말 장쉐량과 양후청의 ‘기습’은 ‘신의 한 수’라 할만했다. 적어도 당시 인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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