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원 담장 위의 용머리 앞에 보일 듯 말 듯 두꺼비 한 마리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상하이 ③ 난징루, 예원, 와이탄 난징에는 난징루(南京路)가 없다. 서울에 ‘서울로’가 있다면 웃길 테니. 부산이나 광주에 ‘서울로’가 있어도 이상할 듯하다. 중국은 도시를 도로 이름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난징루가 단연 인기가 많다. 상하이를 비롯해 텐진, 칭다오, 광저우, 허페이, 쉬저우, 쭌이, 웨이하이, 진창, 린이, 푸닝, 마카오에 있다. 타이완도 많고 일본 고베에도 있다. 1865년에 영국 조계 당국이 난징루라 지었다. 아편을 팔고도 전쟁을 일으켜 청나라를 굴복시켜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그 기념이었다. {계속}
46 상하이 작은 어촌이 중국과 세계를 움직이다 상하이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의 봉토였다. 동진(东晋) 시대에는 후두(扈瀆)라고 했는데 후(沪).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상하이 진이 된다.명나라 학자이자 과학자로 기독교선교사와 교류한 서광계(徐光啟)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과 함께 개항한다. 어촌에 불과하던 곳이 일약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의 금융과 3차 산업, 운송의 중심지이자 경제 수도로 발전한다.해외지향적이며 애향심이 강해 지극히 배타적인 상하이 사람들은 실용과 실리추구가 강한 대단히 이성적인 성향을 지녔다.천안문사건 이후 장쩌민(江澤民)이 중앙무대에 진출하면서 공산당 내 비공식그룹인 상하이방 출신들이 정치세력화 했으며 시진핑(..
[중국발품취재88] 상하이, 중국과 세계를 움직이다 중국 6개월 발품취재 중 상하이(上海)를 두 번 갔다. 물론 전에도 출장으로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늘 엄청난 성장 속도에 감탄하게 된다. 9월 15일 오후 난징루(南京路)는 주말이어서인지 더욱 붐볐다. 19세기 중엽 외국 열강이 상하이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래 가장 번성한 상업 거리로 '따마루(大马路)'라 불리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중국에서 현대적(摩登)인 백화점인 셴스(先施), 융안(永安), 신신(新新), 따신(大新) 등 4곳이 상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지금도 패션 문화거리로 외국인들이 단골로 방문하는 곳으로 마치 우리나라 명동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세계인들이 활보하는 거리답게 외국인들이 참 많다. 사람들도 모두 활기차고 패션 감각도 화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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