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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모옌을 뛰어 넘는 이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 최고의 젊은 작가"인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인세 수입만으로 1년에 3~4백억원을 번다는 한한(韩寒)은 1982년 생이다. 그래서 중국 '바링허우(80后)' 세대의 아이콘이자 신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대접 받고 있다. 그저 대접 받는 정도 수준은 아니고 전업작가로서, 음악앨범을 내고 영화 제작에 참여하며 프로 수준의 카레이서이기도 하다. 그의 블로그를 다녀간 클릭수만도 2억이 훨씬 넘는다.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자 중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상징이기도 한다. 사실 한한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그의 책 삼중문(三重门)에 대해 말하려 한다. 중국대중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2000년, 겨우 17세(1982년생)라는 어린 나이에 발표한 이 장편소설은 그야말로 화두 이상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독일, 일본, 싱가폴 등에서 번역되기도 했다.

처음 이 번역본을 사고 나서, 바쁜 일(강의 준비 등) 때문에 손을 놓고 있다가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다 읽었다. 줄거리를 따라 책장을 한장 넘길 때마다 무덤덤했지만 마지막 쪽을 넘길 때에 이르러 어느덧 이 책이 왜 중국에서 그렇게 '천재의 등장'이라 했는지 공감해도 좋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비교해, 또는 중3이 되는 아들을 둔 입장에서 참으로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지고 이유 없이 슬퍼지는 느낌을 받았다.

책의 줄거리는 다소 단순하다. 그의 자서전적인 소설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 린위샹(林雨翔)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 잡지사에 근무하는 아버지의 열성으로 독서를 통해 중국 고전을 두루 섭렵한 빼어난 감수성과 지적 능력을 지닌 주인공은 중학생이 되면서 대학진학, 미래의 행복 또는 성공의 보증수표를 꿰차기 위한 가정과 사회, 학교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게 된다.

개혁개방의 사회에서 학교에 남기보다 기업으로 떠나간 선생들 대신에 자비로 책을 출판한 사실만으로 어문교사가 된 마더바오(马德保) 선생은 위샹의 창작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고문(古文) 인용이 곧 문학의 능력이라 높이 평가하며 '전국대회' 문학상 수상을 조작하기도 한다.

문학반 친구인 뤄톈청(罗天诚)과 함께 위샹은 문학반 소풍을 간 곳에서 역시 문학반 대표인 선시얼(沈溪尔)의 단짝 친구로 외국(캐나다) 유학을 다녀온 수잔(Susan)을 만나 서로 연정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멍에 앞에서 '칭화清华대학(중국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을 위해 서로의 시간과 감정을 아낀다.

어머니는 매일 밤 마작으로 집을 비우고 만나기만 하면 이유 없이 다투는 것이 싫은 아버지 또한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위샹은 수잔처럼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실력이 모자라 결국 시험에서 떨어지지만 부모는 뒷돈을 내고 위샹을 고등학교에 진학시킨다. 그런데, 뜻밖에 수잔 역시 시험에 떨어져 위샹과 함께 진학하지 못하게 된다.

뒷돈으로 체육특기생으로 진학한 위샹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더욱 왜곡된 학교제도와 형편 없는 생활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성문을 쓰는 등 지쳐간다. 특히, 잘 생기고 똑똑하며 방송반으로 뽑히게 된 첸룽(钱龙)에게 경쟁심과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의욕을 가지고 들어간 문학반에도 소속감이나 창의적인 에너지가 솟지 못하는 가운데 수잔에게 새로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위샹은 더욱 침통해 기숙사 규칙을 어기고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첸룽과 더욱 서먹한 관계가 된다. 기숙사를 나가 방황하는 도중에 우연하게 산 녹음기가 학교 불량 선배의 소행인 것을 고발하게 되면서 도리어 첸룽에 의해 규칙을 어긴 것이 들통나 학교로부터 처벌통지를 받기 직전이다.

이때, 원래 위샹의 장래를 걱정해 뤄톈청과 선시얼의 도움으로 거짓으로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소문을 낸 수잔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 결국 위샹을 위해 한 행동이 고등학교에서 공부나 문학에 의욕이 상실된 채 낙심하며 살던 위샹을 더욱 추락하게 한 것이다.

삼중문은 학교 건물의 문 구조를 보면서 3인칭 시점의 위샹을 통해 작가 한한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이다. 한한은 오늘날 중국 사회의 학교 그리고 학교에 대한 가정의 고민을 상징적인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이 지닌 문제의식에 평가를 한다. 삼중문으로 상징되는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춰간다. 주인공 위샹은 '학교로는 다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독백처럼 고뇌하고 있는 것은 이 소설이 학교와 사회에 대한 통렬하고도 놀라운 비판이 녹아 있다는 평가에 수긍한다.

하지만, 나는 비슷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좀더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 내내 나는 작가의 문체에 집중했다. 수많은 고전을 인용하고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고문과 인물들은 작가가 줄거리를 전개하면서 적절한 비유법으로 곳곳에 나타난다. 공자를 비롯해 춘추전국시대는 물론이고 진, 한, 당, 송, 명, 청나라 등 그의 붓 아래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중국의 모든 학자, 소설가, 정치가 등이 출몰한다.

그뿐이 아니라 루쉰을 비롯 근현대 작가의 작품이나 마오쩌둥을 비롯 클린턴 미국대통령, 헤르만헤세도 등장하고 외국소설, 사상과 철학도 다소 무분별하다 할 정도로 소개된다. 대중가수도 등장하고 배우도 등장한다. 정말 아는 것도 많고 독서량이 장난이 아닐 정도이다.

물론, 직유와 은유 등으로 구사된 수많은 내용들이 다 소설의 긴장감을 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국 평론가의 말처럼 '고전의 걸출한 메뉴'와 '외국의 명인들이 나열된 이색 식단'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때로는 생경하기도 하지만 불과 17살의 나이에 쓴 장편소설이라고 과연 믿어야 할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문장 틈틈마다 녹아있는 고전의 향기야말로 이 소설이 '그저 그런' 천재작가의 작품이 아닌 진정 '신이 빚어낸' 작품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한한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독서의 양을 지녔을까? 하는 의문. 그리고 그의 성공을 보면서, 어쩌면 그의 성공이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때문에 마음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도 요즈음은 참 많은 독서를 하는 듯하다. 어린이와 청소년 권장도서도 많아서 많은 책을 읽고 열성적인 부모 아래에서 독서가 곧 '논술'이라는 등식조차 성립되는 현실이라고 보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는 어떻게 되는가. 삼중문의 위샹, 위샹에 숨은 한한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17세 아니 20세 이전에, 또 20대에라도 진지한 성찰을 지닌 문제작을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논술을 위한 글짓기' 그리고 '청소년이 꼭 봐야할 한국소설'과 같은 '꼭 봐야할' 시리즈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역사 속 문헌과 인물, 철학과 문화는 다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그러니까 1970년대 중반경, 어머니를 졸라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세계문학전집을 밤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아버지 집에 가면 보이는 그 전집을 보면서 늘 꿈을 꾸던 때가 그립다. 방학 때가 되지 않으면 그나마 읽을 시간조차 없어, 곧 그 풍부한 낭만의 초콜릿을 맡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한한은 참 대견(?)하게도 학교 제도를 탈출하고도 더 높이 성공(?)한 것일까? 대학 문턱도 밟지 못한 그가 20세기 최고의 작가 루쉰(鲁迅)과 비교되고 21세기 최고의 작가로 떠오른 것은 오히려 학교 탈출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우리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문제의식을 지니도록 하고 그것을 표현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을 쓰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가장 미래지향적인 교육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책 읽기도 중요하고 책의 내용도 천편일률이 아닌 다양해지고 폭과 깊이가 더 확장되면 좋겠다. 이를 위해 영어권, 중국어권, 일본어권 등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번역돼 출판되면 더욱 좋겠다.

그렇게 하려면 아마도 너무도 많은 것이 변화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교육제도도 바뀌어야 할 터이고 관련 문화산업 전반의 혁명이 없다면 도저히 되지 않을 듯하지만 그래도 희망해 본다. 방송미디어산업구조 개편으로 고용창출 같은 제 정신 못차린 아이디어로 5년 헤매지 말고, 미래의 100년을 위한 철학을 세울 수는 없는 것인가.

틀에 얽매인 글이 아니라 자신만의 상상력과 관찰력으로 하늘을 날 듯 담아내는 능력을 지니길 바라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쓴 글 속에 (물론 아이들이 자라서) 전 세계인들이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창의적인 메시지가 담기는 날을 소망해본다.


원문으로 읽고자 하는 분은  http://www.tianyabook.com/03413/0013scm/index.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