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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사교과서의 편향문제가 화제가 됐다. '좌와 우'라는 갈래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면 뭐 대수롭지 않을 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또다시 말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역사는 우리 민족이 걸어온 수많은 경험과 창의력의 산물이니 당연히 미래와도 긴밀할 것이다.

중학교 다닐 때 배웠던 국사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선사시대와 단군조선을 선두에 세운 국가의 성립으로 시작되는 것이야 대동소이한 듯하다. 인류가 기원하고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문명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그런데, 국가의 성립에 이르러 한가지 아쉬운 점, 그렇지만 중국의 역사와 비교해 살펴볼 때 더욱 불안하고도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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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학교 1학년 역사책, 제1단원 <중화문명의 기원>

중국의 중학생들은 초중(初中) 1학년 때부터 역사를 배우는데, 우리와는 다소 다른 면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부터 사회와 함께 포함돼 배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역사(中国历史) 교과서(人民教育出版社, 2006년)를 살펴보면 제1단원 '중화문명의 기원(中华文明的起源)'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단원 내에는 3개의 세부 과(课)가 있다. 제1과 '조국(중국)경내의 원고주민(祖国境内的远古居民)', 제2과 '원시적 농경생활(原始的农耕生活')에 이어 제3과에 '화하의 조상(华夏之祖)'을 배운다.

'화하'는 지금의 중국을 이루고 있는 민족 중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한족(汉族)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에 따르면, 기원전 5천년 당시 대홍수로 황하가 범람한 이후 허난(河南) 일대의 화족과 섬서(陕西) 북쪽의 하족이 생성하고 발전했는데 그 두 부족을 합친 것을 말한다. 중국 중원지방의 본래 부족을 통칭하는 말이다가 지속적인 민족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포괄적 개념의 한족으로 탈바꿈한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화하의 조상' 편에는 무슨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을까. 위 그림에서 황제능이 나타나더니 아래 그림 왼쪽 페이지(12p)에는 청명절에 황제의 능원에 모여든 사람들 사진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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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고도인 서안과 혁명성지인 연안 사이에 화하족의 조상 황제(黃帝)의 능묘가 있다'고 하면서 '매년 청명절에 많은 민중들과 해외의 적자(赤子)들이 경배(敬拜)하고 경앙(景仰)의 마음을 나타낸다(表达).'고 한다. '적자'는 고국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 즉 동포라는 뜻이니 화교들일 것이다. 13억 중국사람과 전 세계 화교인들에게 중국의 조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1937년 항일혁명 시기에 마오쩌둥(毛泽东)과 주더(朱德)가 사람을 파견해 능묘에 <제황제문(祭黃帝文)>'을 쓰고 존경의 뜻을 표했다는 언급까지 등장한다. 신중국의 중국공산당이 황제를 조상 중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현 정권의 목표의식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과를 공부하면 왜 많은 사람들이 황제를 존경하는 지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교육의 목표'까지 제시한다.

그 바로 아래 등장하는 내용은 '염황이 치우와 싸움(炎黄战蚩尤)' 편이다. 좀더 내용을 살펴보자.

'지금으로부터 근 4~5천년전 황하와 장강 유역에 수많은 부족(部落)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부족 간에는 수많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염제와 황제는 연합하여 동방의 강력한 부족으로서 이미 청동병기로 무장하고 용맹이상(勇猛异常)한 치우 부족을 탁록(涿鹿)에서 일전을 벌여 격퇴시켰다. 이때부터 염제와 황제는 부족연맹을 결성하고 오랜 기간이 흐른 후 훗날의 화하족이 형성된 것이다.'

부락 또는 부족은 원시사회 시대의 씨족공동체(및 공동체연맹)를 의미하고 있으며 '용맹이상'은 용맹해서 이상한 것이라기 보다는 용맹하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다. 중요한 점은 중국이 동이족(东夷族)이라고 부르는 치우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화하족이 성립됐으며 치우를 비롯한 동이족을 화하족 속으로 복속시켰다는 뉘앙스가 포함돼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논의 의제가 된다는 것이다.

오른쪽 페이지(13p)에는 '황제 헌원(轩辕)이 지남차(指南车)를 발명해 치우의 난을 평정(平定蚩尤乱)'했다는 내용을 담은 중국의 국부로 추앙 받고 있는 쑨중산(孙中山)이 쓴 제문을 담고 있기도 하다. 남쪽 방향을 가르키는 수레바퀴의 성능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이 지남차가 방향을 알게 해줘서 치우를 물리쳤다는 아주 신화적인 내용조차 버젓이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것을 발명하고 기여해 '중화문명(中华文明)의 공헌'했으며 인간의 문명을 최초로 만든 조상이라는 뜻으로 '인문초조(人文初祖)'로 정의하기조차 한다.
 


중국역사 교과서의 시작이 언제부터 황제와 치우가 등장했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국의 변강(边疆)정책은 동서남북과 바다에 이르기까지 영토와 민족을 다 아우르는 정책이니 역사 교과서에 그 원칙이 중용됐음직하다.

'문제'는 우리의 국사 교과서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문제에 등한시하고 일본 잔재이니 아니니, 또는 좌편향이니 우편향이니 하며 싸우고 있을 것인가. 물론 잔재의 철폐와 편향이 그 원인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축구국가대표 서포터스 '붉은 악마'의 상징물로 거듭 우리들 마음 속에 각인되고 있는 인물이 중국역사 책에 등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난감하다.

중국역사 책 각 단원마다에는 '역사찾기(寻找历史)'라는 일종의 토론과제가 있다. 각 단원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을 서로 발표하고 토론하기도 한다. 중국 교실에서 황제와 염제, 치우를 아울러 힘차게 연설하는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물론 우리나라 교실에서도 역사 문제와 관련해 토론이 진행되기도 할 것이다.

때 아닌 걱정이 앞선다. 3년 전에 중국어를 배울 때 박사과정에 다니던 한 중국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희 나라 국기에 왜 태극이 있는 거지? 그러니 한국은 중국에 종속됐던 나라야!' 당시에 서툰 중국어로 '누가 만들었던지 우리의 것이 된 지 오랜,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의 것이야!'라고 항변하며 싸웠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중국 아이들과 만나서 우리말이나 중국말로 혹은 영어로 자기 민족의 기원을 가지고 대화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아이들이 고조선과 고구려 그리고 치우천황에 이르기까지 당당하게 이야길 할 수 있을까. 중국 아이들이 이렇게 말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우고 토론했어. 너는 무슨 근거로 말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