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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8] 태산 등산과 하산

 

지난 밤(4월26일) 오랜만에 인터넷이 되니 두루 메일도 체크하고 블로그도 보고 취재기와 동영상 편집하느라 새벽 3시가 넘어서 잤다. 좀 심했다. 역시 낮에 취재하고 밤 시간에 작업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애초의 계획을 포기할 수 없다.


알람소리를 좀 늦춰 9시 30분에 일어났다. 씻고 체크아웃하니 10시. 택시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러 갔다. 11시 20분에 출발하는 타이안(泰安) 행 버스다. 지난(济南)에서 가까운 거리이고 태산을 올라 정상에서 하루를 묵을 예정이니 적당한 시간인 듯하다.


▲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주치는 일천문

오후 1시에 터미널에서 내려 기차역으로 갔다. 짐을 두 개로 나눠 노트북과 옷, 자료 등은 큰 배낭으로 몰아 넣고 작은 배낭에는 취재장비만 넣었다. 그렇게 13kg은 기차역에 하루를 맡겼다. 내일 찾으러 오기로 하고, 6위엔을 주고 수령증을 받았다.

호객꾼들이 계속 붙어 다닌다. 특히 택시들이 난리다. 태산 입구까지 10위엔이라는데, 시간 여유도 있고 짐도 가벼워 1위엔 동전 하나 넣고 버스를 탔다. 기차 역 바로 앞에서 3번 버스가 자주 있으니 편하다. 20분여 만에 태산 입구 티엔와이춘(天外村)에 도착했다.

태산은 티엔와이춘에서 쭝티엔먼(中天门) 사이와 쭝티엔먼과 난티엔먼(南天门) 사이를 나누면 그 오르는 시간이 대체로 비슷하다. 각각 2시간 30분에서 3시간이 걸린다. 티엔와이춘과 쭝티엔먼 사이는 버스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쭝티엔먼과 난티엔먼 사이에는 쒀다오(索道)가 사람들을 올리고 내리고 한다. 그래서 꼭 등산을 하지 않고도 가볍게 태산 정상에 오를 수 있기는 하다.

▲ 공자가 오른 것을 기리는 문 앞에 써 있는 비석 '제일산'
버스를 포기하고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티엔먼(一天门)이 등정의 시작이다. 무수히 많은 문을 지나야 하는데 문의 이름들이 재미있다. 띠이산(第一山)이라 멋지게 쓰인 비석을 지나고 티엔지에(天阶) 문도 넘었다. 샤오타이산(小泰山)이란 자그만 사원에서 잠시 쉬기도 했다. 완시엔루(万仙楼) 앞에서 입장권을 사야 한다. 80위엔인데 5월1일부터 오른다고 한다.

태산 초입 부근에는 사원과 사당, 비석, 기념비 등이 있어 구경거리가 많다. 모두 다 보려면 등산을 포기하는 게 낫다. 몇 군데 들러 눈요기를 했지만 태산을 오르는 일에 신경이 쓰여 스쳐 지나는 게 아쉽다. 싼관먀오(三官庙) 앞에 이르니 가파른 계단이 보였다. 드디어 태산의 지옥 같은 계단과 만나는구나 걱정했는데 좀 지나니 다시 완만한 길이 나온다.

찡스위(经石峪) 부근에서 좀 쉬었다. 좀 쉬어가야 할 터. 6위엔하는 컵라면 하나 끓여먹고 6위엔으로 황과(黄瓜, 오이) 두 개와 3위엔으로 물 한 병 샀다. 결국 오이는 먹지 못했는데 괜히 샀다 싶다. 계속 기념품 가게와 길거리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이제 한눈 팔지 말고 산 오르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라면 먹은 곳에서 물어보니 1시간 정도면 쭝티엔먼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3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니 4시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서서히 계단이 나온다. 정말 산을 오르면서 계단을 타는 것이야말로 지옥이다. 고생해 계단을 쌓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계단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태산을 오르려나.

등산에는 쉬어가는 전략이 필요한데 이번에는 취재가 목적이어서 사진 찍고 촬영하는 시간이 곧 쉬는 시간이다. 물론 나중에는 카메라와 캠코더 모두 가방에 다 넣고 묵묵히 올라갔지만 말이다. 너무 자주 쉬니 태산 전체를 찍거나 담겠다 싶었다. 정말 진땀 나게 힘든 산행이다. 20년 전 지리산 노고단 산행은 거뜬히 날아갔는데 이젠 그때가 아닌가 보네. 중국 취재 오기 전에 산행으로 체력 비축을 좀 해둘 계획이었는데 하지 못한 게 조금 후회된다.

건륭 황제와 공자도 밟은 정상

태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역시 젊은 것인지 시끄럽게 떠들면서 잘도 내려온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산 아래에서 정상 쪽으로 짐을 실어 나르는 짐꾼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른다. 정말 대단한 체력이다. 저 일로 생계를 유지하니 고역이다 싶다.

▲ 중천문 광장

4시가 조금 넘어 쭝티엔먼에 도착했다. 더 이상은 계단 못 오른다고 할 즈음이다. 팻말이 보이지 않았으면 과연 끝까지 올랐을까 모르겠다. 참 힘든 등산이다. 그래서 온몸에 땀이 배였지만 그만큼 기분도 상쾌하다. 이제 반 올랐을 뿐인데 말이다. 쭝티엔먼에는 조그만 평지다. 차이션먀오(财神庙)가 있고 그 앞에는 소원을 비는 열쇠가 주룩주룩 달려 있다.

▲ 중천문에 있는 재신묘

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중국발품취재 하면서 태산을 버스와 케이블카만 타고 오르면 좀 체면을 구겼을 것이다. 케이블카 취재도 한다는 명분이 있으니 이제 케이블카를 타러 가자. 편도 45위엔이니 비싸다. 태산 값어치를 하는 것이지. 케이블카는 고공비행하며 하늘 아래 뫼 가까이 오르고 또 오른다. 10분만에 가볍게 난티엔먼에 올랐다.

▲ 남천문에서 바라본 가파른 계단

난티엔먼에서 바라본 등산길이 가파르다. 내일 저 길로 내려갈 예정이다. 고민이다. 내일 생각하자. 일단 정상으로 가자. 태산의 정상은 위황띵(玉皇顶)이다. 그곳까지는 다시 30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데 그렇게 힘들지 않다. 청나라 건륭 황제가 열한 번이나 올랐고 공자도 밟았던 정상이다.

쭝티엔먼에도 여관과 식당이 있긴 하지만 훨씬 넓은 난티엔먼에는 정말 많다. 난티엔먼은 모두 일출과 관련된 것이다. 이곳 정상 부근에서 자야 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중국친구는 야간산행을 해서 일출을 보고 내려왔다고 한 적이 있다. 아마도 가난한 학생들이 비용문제로 선택한 방법이겠지만 진정한 산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암석벽이 서예전시장을 방불하는 대관봉

티엔지에(天街)와 쭝셩(中升), 위엔펑(元逢), 씨션먼(西神门)과 똥션먼(东神门)을 지나 암석벽이 온통 서예 전시장인 따관펑(大观峰)을 지나는 계단에 이르면 해발 1,510m라는 표시가 있다. 그리고 해발고지로 35m를 더 오르면 최정상이다. 태산 정상 표지판은 바로 위황띵이라는 사원 마당 한복판에 서 있다.

사원을 돌아보면서 '아 여기가 바로 태산의 최정상'이라는 감회가 많지 않은 것은 아마도 여느 산과 다른 곳에 정상 표시가 있어서 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열쇠를 잠그고 예를 갖춘다. 아, 나도 정상에 올랐다는 티를 좀 내야 하는 게 아닌가. 불교신자도 아니고 기원할 내용도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옆에 살짝 비켜서서 캠코더 앞에 서는 것으로 대신했다.

▲ 해발 1,545m 최정상 표지

산 부근은 참 아름다웠다. 일출 전망하는 곳도 그렇고 산 약간 아래 가파른 절벽인 쭈좡지에리(柱状节理)도 보고 나니 어느덧 해가 서서히 질 시간이다. 게다가 약간의 산비가 내린다. 빨리 숙박할 곳을 찾아야 한다. 산 정상에 몇 개의 호텔이 있는데 4성급 호텔 하나가 최근에 문을 열었다고 해서 가보니 800위엔을 받아서 포기했고 10분의 1 가격인 곳은 너무 지저분하고 귀신 나올 듯해서 포기했다. 또 한 곳은 소개꾼이 장난을 쳐서 흥정 실패다. 다시 내려가자.

다시 난티엔먼 부근으로 내려오니 식당도 많고 방도 많다. 독방 달라니 침대가 3개 있는 방을 내준다. 80위엔을 줬다. 바로 옆 식당에서 추위를 녹이며 음식을 시켰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 빨리 자는 게 상책이다 싶어 얼궈터우(二锅头) 한 병을 같이 주문했다.

한참 먹는데 옆자리 일행이 말을 건다. 자기네들도 혼자 왔다가 둘이 산행친구가 됐는데 혼자 식사하는 게 고독해 보인다 하면서. 동북에서 온 직장인과 산둥 동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 똥잉(东营)에서 국제무역을 전공하는 학생이 어울렸던 것이다. 셋이서 술을 꽤 마셨다. 학생 친구는 술을 못하니 둘의 술 동무가 되면서 연신 나에게 술을 따라 준다.

태산 정상 부근에서 외로운 셋이서 즐겁게 많은 대화를 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술값과 밥값을 다 지불했다. 내일 새벽 일출을 같이 보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러고는 쌀쌀한 방에 들어가 이불 3개를 모두 모아서 덮고 잤다.


새벽 4시에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일출 보러 가야지 하면서. 재빨리 이빨만 닦고 짐을 챙겨 나왔다. 컵라면 하나 끓여 달래서 먹고 가려는데 사람들 모두 이상하게 생긴 군용 윗옷들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주인에게 물으니 정상이 매우 추울 것이라 한다. '너 이대로 가면 죽는다' 그런다. 10위엔으로 빌려서 입고 긴 사람들 행렬을 따라 올랐다.


줄잡아 만 명은 넘을 듯한 일출 보러 온 사람들 

 

▲ 일출 직전의 정상 부근

▲ 태산 일출

정상에서 해를 맞이할 만한 곳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해를 봤다. 떠오르는 붉은 해. 소원을 빌어야 하나. 그저 중국발품취재가 무사히 끝맺을 수 있게 빌었다.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줄잡아 만 명은 넘어 보인다. 13억 중국인 중에 일부이지만 오늘 그들과 함께 해를 맞이했으니 참 인연이고 많은 대화를 한 셈이다. 무언의 대화이겠지만 일출의 느낌이 통했다면 그것이 바로 소통일 것이니.

▲ 일출 후 정상 부근


이제 내려가자. 아침 몸 상태도 좋고 떠오르는 해도 맞이했으니 충분히 계단을 타고 내려갈 수 있겠다. 내려가는 데는 자신이 있으니. 그렇게 빠르게 내려가고 있는데 앞에서 어제 술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멀리서 나를 보고 기다려 준 것이다. 셋이서 천천히 이야기하면서 가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쭝티엔먼에서 헤어졌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그들은 선물가게에 들러 뭔가 사겠다고 했다. 아쉬운 건 버스를 타고 나서 그들과 사진이라도 찍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타이안 역에 도착해 짐을 찾았다. 그리고 역 앞에서 취푸(曲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제 공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후기

 

태산 계단 수에 관심 가진 분들이 있어 찾아봤다. 태산 공식홈페이지 접속이 안되고 있고 별로 신빙성 없는 책자인 '론리플래닛'에는 6,660개가 있다고 써있다. 중국인터넷에 찾아보니 다 제각각인데, 6,290개가 약간 신빙성이 있을 듯. 정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중요하지도 않다.

 

오히려 중국사람들은 전체 계단보다는 소위 '십팔반(十八盘)' 계단을 중시하는 듯하다. 오르기 시작해(중국어로 '开山'부터라 하는데 아마 용문과 중천문 사이 대송산(对松山) 문 부근이 아닌가 생각됨) 용문(龙门)까지를 '완만한 십팔(慢十八)', 승선방(升仙坊)까지를 '완만하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십팔(不紧不慢又十八)', 남천문까지를 '가파른 십팔(紧十八)'이라 하고 1633개(?)의 계단이라 한다. 

 

'십팔(18)'은 아마 인생을 빗대고 있으니, 인생을 고행의 계단이라 비유하는가 보다. 용문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남천문 쪽으로 뒤돌아  십팔반 전체 경관을 보라'는 문구와 함께 '십팔반'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팻말이 있다. 태산 등산코스가 다른 곳도 있는데, 이 '십팔반'을 태산의 주요 등산로라 하고 가장 숨차다. 내려오는 길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