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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명 '학교에 가고 싶어요' 포스터  


베이징 담배 쭝난하이(中南海)가 있다.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애연한다. 싸면서도 우리 입맛에 맞다.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담뱃갑에 아주 재미있는 문구가 있다.

 

每消一盒中南海香烟,就向希望工程份爱!

당신이 쭝난하이 담배 한 갑을 사 필 때마다 희망공정에 사랑의 마음을 전하게 됩니다.

 

담배 홍보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희망공정’을 이야기하려 한다. 공정(工程)은 일종의 국가프로젝트라고 보면 되는데, 우리는 이미 ‘동북공정’을 통해 ‘공정’이란 말에 익숙하기도 하다. 중국 국가주석이 거주하는 곳을 이름으로 할 정도로 유명한 이 담배는 왜 희망공정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중국에 ‘동북공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공정'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 사진작가가 보여준 작은 실천, 희망공정(希望工程)의 불꽃을 이야기하려 한다.

 

2005년 가을, 베이징 왕징(望京) 부근 따산즈(大山子) '798 예술구'에서 씨에하이롱(解海)의 사진전을 본 적이 있다. <따옌징더샤오꾸냥(大眼睛的小姑娘)> '커다란 눈망울의 소녀'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는 순간, 온정의 눈길이 없다면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진한 감동이 피어 오른다. 이 사진 한 장이야말로 전 중국을 사랑의 마음, 즉 ‘아이씬()’ 운동을 불러 일으킨 계기가 된 것이다.


ⓒ 최종명 사진작가 씨에하이롱 '희망공정' 전시회


1992년, 씨에하이롱이 발표한 이 사진은 중국 국내는 물론 해외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희망공정'의 상징이 되었다.

 

‘학교에 가고 싶어요’라는 말, ‘워야오샹쉬에(我要上)’는 '희망공정'의 하이빠오(海), 포스터가 된 것이다. 도대체 씨에하이롱는 누구일까. 왜 ‘ 소녀의 눈’이 그의 카메라 속에 담기게 된 것일까.

 

1991년, 베이징 숭문구문화관(崇文文化)의 평범한 간부이던 그는 '희망공정'의 자원봉사자가 된다. 1989년부터 중국청소년발전기금회(中国青少年展基金)가 시작한 빈곤퇴치사업이면서, 경제적 혜택이 전무한 시골이나 산골 아이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운동이 바로 '희망공정'이다. 그는, 70년대부터 개인적으로 사진을 배웠고 1986년에 이르러 중국사진작가협회(中国摄影家协会)에 가입했다.

 

그는 1년 이상 중국 12개 성의 28개에 이르는 시와 현을 두루 다니며 100여 개의 학교를 찾아 다녔다. 그의 발자취(足迹)와 카메라 렌즈(镜头)는 실의에 빠진 아이들의 슬픈 일상을 수 천장의 앵글 속으로 끌어 담았다. 그저, 아이들과 같이 몸부림 치고 웃고 울면서 셔터를 눌렀던 그는 당시 이 사진들이 전시가 되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이야 중국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공익사업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여전히 ‘희망공정’이 주목 받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확산되지 않던 시기이므로 '희망'을 담게 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씨에하이롱은 자신이 발로 뛰며 찍었고 '희망'을 담고 있던 사진들을, 다음해 1992년 베이징(北京), 타이베이(台北), 홍콩(香港)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게 됐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보고 아이들을 위한 기부금(捐款)을 내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사진은 큰 눈망울로 응시하던  ‘따옌징(大眼睛)’을 비롯 까까머리가 빛나던 ‘샤오징터우(小光), 그리고 코 흘리던 ‘따삐티(大鼻涕)’ 3장이다. 희망공정의 상징이던 사진 속 아이들은 15년이 지나 성인이 됐다. 이 사진 속 아이들은 ‘희망공정’의 상징이 됐고 오랫동안 중국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씨에하이롱 '큰 눈망울의 소녀'


ⓒ 씨에하이롱 '까까머리'


ⓒ 씨에하이롱 '코흘리개'

 

씨에하이롱은 중국의 시골마을 아이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켰지만 더불어 자신이 담았던 이 시골 아이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중국언론은 성인이 된 3명의 아이들에 주목하고 있다.

 

1991년 5월 당시 ‘따옌징’의 쑤밍쥐엔(明娟)은 안휘성 진짜이(金寨) 현 짱완(张湾) 촌의 가난한 시골 농부의 딸로 태어나 부모처럼 고기잡고, 누에 치고, 돼지 기르며, 밭 가는 일이 인생의 전부이던 아이였다. 씨에하이롱은 하천의 다리를 건너던 그녀의 맑고 커다란 눈망울을 발견하고 다 쓰러져가는 학교를 찾아 쫓아가 그녀를 앵글에 담았다. 그녀를 보자마자 단번에, 정면을 조용히 응시하며 학교에 가고 싶다는 갈망이 두 눈 가득 담고 있는 이미지를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2005년 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 안휘성 허페이(合肥)의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 신화망 '따옌징'의 쑤밍쥐엔

 

1991년 4월 ‘샤오징터우’의 짱톈이()는 허난성 씬() 현 왕리허(王里河) 초등학교 학생으로 가난에 찌든 얼굴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담담하고 울적한 표정으로 수업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해 아이들 모두 수업에 대한 열의는 매우 착실(认真)해 보였다고 한다. 최근 그는 머리카락도 만발하고 흑발의 청년으로 변모했으며 대학 시절 이미 영어 4급을 따는 등 자신감도 넘치는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쟝쑤() 성에 있는 한 공업원을 졸업한 후 5년 계약으로 한 기업에 취업했다.


ⓒ 신화망 '샤오징터우'의 짱톈이

 

1991년 4월 ‘따삐티’의 후산후이(胡善)는 허베이성 홍안(宏安) 현 저우치지아(周七家) 초등학교 학생으로 한바탕 비가 온 후 교실은 진창으로 변했는데도 코가 흘러내리는 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담기게 됐다. 당시 선생님의 글자를 따라 읽는 시간이었는데 입을 벌린 채 큰 소리로 읽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한다. 그는 현재 산둥성 지난()에 있는 후방 병참부대의 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 신화망 '따삐띠'의 후산후이

 

15년 전 흑백 사진 속 ‘큰 눈망울’,  ‘까까머리’,  ‘코흘리개’이던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됐듯이, 천안문사태 이후 부의 불균등을 해소하고 사회 불안을 치유하려는 중국정부의 ‘희망공정’ 역시 개혁과 개방 정책에 따라 중국의 ‘희망’이 됐다. 중국은 사회공익사업의 형태로 진행되는 빈곤퇴치 사업이 몇 가지 된다. 가난한 어머니들을 위한 공익사업은 ‘행복공정’이라는 이름도 있다. 중국의 공익성 사업의 기폭제가 됐던 아이들. 그들의 눈과 머리와 코를 감동의 컷으로 만들어낸 작가 씨에하이롱.


ⓒ 중국광보망 씨에하이롱

 

그는 ‘희망’의 사진전 이후 유력 일간지 <북경청년보>의 사진기자가 됐으며 중국국영방송인 CCTV(中中央电视)를 통해 소개되어 유명인사가 됐다. 그의 사진집 <워야오상쉬에(我要上)>는 중국 도서상을 받기도 했으며 각종 사회단체로부터 공헌상을 받았으며 ‘개혁개방 20년 20인(改革20年20人)’에 선정되기도 했다.

 

‘희망공정’은 이제 중국의 상징적인 사회공익사업이 됐다. 담배 회사도 공익마케팅에 활용하고 있으며 중국 기업뿐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도 앞다투어 ‘희망공정’에 기부하고 있다. 이는 중국 현지화를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중국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한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삼성은 광고를 통해 아예 중국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고 있다고 자랑했으며 40개 이상의 ‘삼성 Anycall 희망초등학교’를 세우기도 했으며 학생들의 과학기술 여행을 지원하기도 한다.


ⓒ 소후닷컴 삼성Anycall 희망초등학교 과학기술 여행

 

사실 우리나라 사람으로 가장 먼저 ‘희망공정’에 참여한 사람은 이장수 감독이다. 현재 베이징궈안(北京) 팀 감독이며 충칭(重) 명예시민이기도 한 그는 2003년 1월에 ‘희망공정’에 10만 위엔을 기부(捐)‘리장주(李章洙) 희망초등학교’가 세워졌다. 또한, ‘대장금’의 주인공 배우 이영애씨 역시 2005년 12월 30만 위엔을 기부하고 ‘이영애 희망초등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 신화망 '이장수선생 희망공정에 기부' 2003.1.20


ⓒ 중국신문망 '저장성 랑촨 향민들이 이영애를 보러 왔다' 2006.3.20

 

최근에는 중국 사이월드()가 ‘희망공정’ 주관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행복의 날개(幸福之翼)’ 행사에 원더걸스를 비롯 신화의 멤버 등 인기 가수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한류가수와 인터넷 사이트가 연합으로 중국 현지화를 위한 마케팅에 ‘희망공정’과 손을 잡은 셈이다. 원더걸스는 동영상을 통해 '우리는 광주에서 벌어지는 사회공익 행사에서 정말 귀여운 tell me 춤곡을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我们在赛我 广州的公益晚会上会表演非常可爱的舞曲tell me)'라고 했지만 멤버들의 비자 문제 등으로 실제 공연에 참석하지 못했다.


ⓒ 싸이워 희망공정 행복의 날개 공연 참가홍보 중인 원더걸스

 

이처럼 개인적인 참여에서 시작한 ‘희망공정’ 기부는 점점 기업과 한류 스타, 인터넷 포털 등 중국 진출의 마케팅 차원으로 발전해가는 추세로 보인다. 여전히 중국 시골 오지 마을에서 고사리 손을 호호 불며 공부하려는 아이들을 위해 ‘희망공정’은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씨에하이롱이 보여준 따뜻한 시각과 마음씨로 인해 ‘희망’이 타오른 것처럼 온정이야말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예전에 한 중문과 교수 몇 분이 ‘희망공정’의 취지에 공감해 서로 돈을 모아 조용히 기부한 적이 있다. 신문에 떠들썩하게 ‘온정’이 자주 보도된다면 그것이 어찌 ‘온기’일 것인가. 게다가, 화려한 댄스로 무장한 한류가수들까지 너도나도 ‘희망공정’에 참여하는 것이 혹 위화감을 조성해 역효과를 낳을 지 우려된다.

 

씨에하이롱은 성인이 된 3명의 아이들과 나란히 앉았다. 얼마나 뿌듯할까. 자신이 담은 사진 속 아이들이 어느덧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성장해 이렇듯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커다란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최근에 블로그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진들을 보게 된다. 예술적 감흥은 없지만 따뜻한 시선과 포근한 내용을 담은 사진들이 추운 계절에 손을 호호 불어주는 입김 같았으면 좋겠다. 씨에하이롱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