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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15] 소림사와 소림무공 공연

▲ 숭산 소림사 관광지 입구에 서 있는 동상
ⓒ 최종명
5월 4일. 호텔에서 예약한 하루 여행코스는 소림사다. 짐을 카운터에 맡기는데 직원이 영 곤혹스러워한다. 너무 무거우니 직접 가지고 들어오라네. '13kg 정도인데'라고 했더니.

어제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준 대로 택시 타고 허난판뎬(河南饭店) 난먼(南门)으로 가니 벌써 사람들이 시끄럽다. 오전 8시 10분, 예정보다 30분 늦게 버스가 출발했다. 늦은 건 역시 늦게 나타나서도 태연하고 당당한 중국사람들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정확한 편이다. 대형버스 4대가 도심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2호 차 뒤편에 앉았는데 주변은 연인 팀들이 엉겨 붙은 분위기다. 앞쪽은 어린이들이 차지했고 중간쯤은 노인층, 그리고 뒤는 젊은 층이다.

다오여우(导游)가 빠르고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날씨도 덥고 사람도 많다. "오늘 정말 정말 사람 많으니 반드시 시간 지키세요" 수차례 반복이다. 출석도 부른다. 다시 빠진 사람이 없나 챙기는 것이다. 연한 카키색 바지에 빨간 윗옷을 입은 다오여우는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하라고 한다. 40여명이나 되는 일행이니 혹시 길을 잃으면 연락하라며. 재빨리 저장했다. 그리고 처하오(车号)도.

1시간가량 서남쪽으로 달려 덩펑(登封)현에 도착했다. 소림사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작은 도시다. 다시 16km만 가면 바로 쏭산(嵩山) 소림사다.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차도 많다. 입구에서 주차하는 데만 거의 30분 걸렸다.

다오여우는 노란 깃발을 들고 소형마이크로 연신 소리친다. 오늘 저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만 잘 따라 다니면 되겠다. 빨간 옷에 노란 깃발이니 찾기도 쉽겠다 싶다. 쏭산 전체 입장료는 100위안이다. 소림사를 포함해 이곳저곳 다 관광이 가능하다.

▲ 소림사 입구 길에서 훈련(?) 중인 무공 수련생들
ⓒ 최종명

사람이 너무 많아 짜증이 날 정도다. 또 얼마나 시끄러운가. 주변은 온통 깃발 든 다오여우의 마이크에서 뿜어 나오는 고함과 열기로 산만하다. 집중해야 한다. 소림사까지 오르는 길옆으로 무술 학원생들이 소림무술 연마하고 있다. 일종의 관광상품인 것이다. 학원마다 10살 전후의 아이들 수십 명이 관광객들을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소림사 주위에만 언뜻 보기에도 10개 이상의 학원이 있다.

소림사는 불교사원이다. 약1시간 정도 참관하게 되는데 다오여우를 따라가면 내가 원하는 취재를 하기 힘들다. 12시에 출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갔다. 소림사를 구경하는 것인지 관광객을 구경하는 것인지 모르게 사람들과 연신 부딪혔다.

▲ 불교사원 소림사 입구 문
ⓒ 최종명

소림사는 북조의 첫 번째 국가인 북위시대인 서기 496년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발타(跋陀)가 세운 사원이다. 소승불교의 허상(和尚)인 그는 불교를 숭상하는 효문제의 신임을 받아 이곳 쏭산의 서편에 소림사를 세운 것이다.

▲ 달마조사(达摩祖师)의 동상
ⓒ 최종명

발타 입적 후 제자들이 흩어졌다가 수십 년이 지나 남송 시대에 이르러 달마(达摩)가 다시 소림사를 복원시키게 된다. 이때 소림사는 달마의 대승불교 사원으로 바뀌게 되다. 이렇게 중국 선종(禅宗)의 주류가 된 소림사는 남송의 무림도장이 되었고 이후 지금에 이르렀다.

무공을 연마하는 소림사는 당나라를 건국한 이세민이 주도한 전쟁에서 공을 세워 더욱 번성했다. 송나라에 이르러 5천 칸이나 되는 큰 사원이 되었고 2천 명에 이르는 스님들을 보유하게 된다. 청나라에 이르러 옹정제는 소림사의 반란을 견제해 방화단을 보내 불을 질렀고 건륭제 이후 다시 복구했다. 1928년에도 군벌인 석우삼(石友三)이 다시 방화를 했고 이때 많은 유산이 소실됐다고 한다. 중국 건국 후 여러 차례의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는 3만 평 규모이다.

'소림사'에 들어가면 첫 번째 만나는 건물이 바로 샤오린쓰(少林寺)다. 원래 덩펑 현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 건물 내에는 미륵불상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 천왕전 앞에 운집한 사람들
ⓒ 최종명

천왕전(天王殿), 방이원(方丈院), 달마전(达摩殿) 등을 차례로 보는데, 전쟁이다. 사진을 찍는 것도 그렇지만 촬영할 때마다 사람들의 간섭이 심하다. 무의식적으로 부닥치는 것이니 참을 수밖에 없다.

▲ 소림사 옆에 있는 무공 모형들
ⓒ 최종명

소림사 바로 옆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소림무공들의 연마 장면 앞에서 아이들이 그 모습을 따라 한다. 귀엽다. 부모들은 아이들 모습을 찍어두려고 또 열심히 소리친다.

시간에 맞춰 나오니 다오여우가 먼저 기다린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괜히 뺀다. 조금 예쁘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안 찍으려고 숨는 것은 여자들의 본능인가. 옆에 있던 남자 다오여우가 끌어 잡고 사진 찍으면 어떠냐고 얼굴을 잡아끈다. 그러게 사진 찍는데 얼굴이 닳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 무수히 많은 탑이 있는 탑림 앞
ⓒ 최종명

타린(塔林)은 온갖 탑을 다 모아둔 곳이다. 각각 그 역사적 배경이 다 있을 터이다. 날씨가 더워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30분 이상 혼자 떠들던 다오여우가 케이블카 표를 사라고 한다.

왕복 30위안이다. 그래 시원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르자. 표를 사서 케이블카 타러 입구에 갔더니 줄이 엄청 길다. 후회했지만 별 수 없다. 1시간을 기다려 1.3km를 밋밋하게 오르는 케이블카를 탔다.

▲ 이조암 암자 마당
ⓒ 최종명

산 정상 가까운 중턱에 이조암(二祖庵)이 있다. 가운데 사당이 있고 양 옆에 영험한 기운이 뿜어 나오는 샘이 두 개 있다. 1위안을 내니 종이컵 하나를 주고 마시게 해준다. 스님 하나가 물을 퍼 올려 따라주는데 그 맛이 약수 같기도 한데 시큼하다. 양쪽 샘물의 맛이 다른 것은 정말 야릇했다. 이조암이 있으면 일조암도 있을 것이다. 이곳은 선종의 시조인 달마의 산상 수련을 위해 세운 암자인 초조암(初祖庵)이 바로 그렇다. 4km나 떨어진 산 중턱에 있어 가보지 못했다.

산 정상까지 오르려니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딸린다. 숭산 팻말 앞에서 취재를 마치기로 했다. 더 이상 올랐다가는 암자에서 머리를 깎아야 할지도 모른다.

배가 고팠다. 먹을거리를 찾는데 말들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3위안을 주고 지단삥(鸡蛋饼) 하나를 사서 먹었는데 아무 맛도 없다. 계란 맛도 없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서 요기를 더 해야겠다 싶었다. 소림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케이블카. 아니 리프트라고 해야 한다. 사실 숭산의 절경은 삼황재인데 시간도 그렇고 또 등산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간단히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무공 시연이 있는 곳을 찾았다. 무대 앞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기다렸다. 1000여명을 수용하는 공연장에는 이미 인산인해였다. 다행히 무대 앞줄이 약간 비었기에 체면 불구하고 헤집고 들어가 앉았다. 중국에서는 중국사람처럼 좀 체면을 깎여도 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화면을 담기가 힘들기에 말이다.

▲ 무공 시연 중
ⓒ 최종명

무공 시연은 나름대로 재미있다. 게다가 영화에서 자주 본 모습이니 낯설지도 않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터질 때마다 아이들도 고함을 지른다. 공연은 30분 정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관객 3명을 나오라고 해서 무공을 따라 하는 장면이다. 이렇게 관객과 호흡하는 것도 좋은 생각인 듯하다. 절대 빼지 않는 중국사람들이니 3명을 고르는 것은 금방이다.

소림사에 와서 무공시연을 봤으니 다 본 거나 마찬가지다. 달마의 동상을 둘러보고 수련장을 취재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됐다. 4시 30분까지는 '죽어도' 와야 한다고 하니 가야 한다. 10분은 기다려줄 수 있고 그 후에는 책임 못 진다고 10번도 넘게 이야기했다.

아침부터 지금껏 길에서 무공 연습하는 아이들 사진을 찍느라 좀 지체했더니 시간이 채 10분도 안 남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버스가 있는 곳까지 꽤 멀어 보인다. 여기 남겨져 혼자 차타고 갈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뛰었다. 4시 40분에 반드시 출발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 투덜거리면서.

▲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주차장, 모든 공중전화 박스 위 불상
ⓒ 최종명

도착해 보니 거의 다 오긴 했다. 그런데 꼭 늦는 사람이 있다. 결국 5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이다. 다오여우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버스에 타고 보니 없다. 이제 정주로 다시 돌아가 출발지에 내려주기만 하면 되니 굳이 버스에 같이 타지 않아도 되는구나 생각했다. 다시 정주 시내로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다오여우가 있다. 그러고 보니 앞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왔나 보다. 하기야 지치기도 했겠지.

기차역 주변을 돌며 호텔을 찾았다. 2.7광장 옆에 어제보다 좀 싼 호텔을 잡았다. 그리고 맡겨둔 짐을 찾아왔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광장은 명동처럼 번잡했다. 옷 가게는 많은데 식당은 없다. 광장에는 불꽃이 나는 팽이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저녁을 먹을 만한 식당이 눈에 보이질 않는다. 맥도날드만 많다. 다시 길거리에 앉아 양고기와 맥주로 저녁을 해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