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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 산시 2010 4회-2]  영화 <동사서독>의 촬영지 홍스샤

홍스샤는 이름처럼 붉은 암석이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협곡이다. 황토인지 홍암(红岩)인지 이 곁들여 있는 절벽에 지역 특색이 강한 동굴 집인 야오둥(窑洞)이 많다. 협곡 사이로 들어가니 거침 없이 흐르는 강물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한다.

절벽에는 185개나 되는 마애석각(摩崖石刻)이 새겨져 있으며 누워 있는 부처 조각상도 보인다. 석각이 많다는 것은 수많은 문인들이나 정치가들이 다녀간 흔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름 짓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이곳을 혼이 담긴 보물이라고 석각혼보(石刻魂宝)라 부른다.



이 협곡이 처음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때는 중국 북송(北宋)시대 강력한 경쟁왕조 서하(西夏)이다. 이 붉은 홍산(红山)에는 원래 동굴 속에 커다란 샘이 있어서 물이 흘러나와 남쪽으로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지방 출신 서하의 창업 국왕인 이계천(李继迁)은 풍수지리에 따라 물줄기를 막고 암석을 부숴 물길을 바꾼 후 조상을 매장했다고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이 조상을 모시고 번창했던 곳이라는 비석을 세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훼손돼 사라졌다.

또 다른 기록은 1472년 명나라 시대 순무도어사(巡抚都御史) 여자준(余子俊)이다. 이곳에 만리장성의 중건을 위해 파견된 그는 홍스샤 북쪽에 물이 고여 있는 큰 호수 가운데에 도적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이 깊어 접근하기 힘들자 군대를 동원해 암석을 뚫어 부순 후 도랑을 만들었다. 물이 다 빠진 후 습격해 도적들을 소멸시켰다고 한다. 이때 암석을 부숴 만든 협곡을 홍스샤라 했고 호수의 물이 흘러 위시허가 됐으며 관개된 도랑을 광저취(广泽渠)라 불렀다.




동굴 속에는 태극의 괘나 꽃, 동물, 태양과 같은 문양들이 천장에 새겨져 있는데, 사람들이 살던 흔적이다. 도랑이 동굴 속으로 흘러들어 생활용수로 사용했으며 불을 피운 흔적도 보인다. 절벽을 깎아 문을 만들고 통로도 좁아 천혜의 요새라 해도 될 만하다.

좁은 동굴 속이고 바닥에 물이 흐르며 동굴 옆과 서로 통로인 공간이다. 홍스샤를 다녀온 후 최근에 안 사실은 바로 1994년 방영된 영화 <동사서독(東邪西毒)>의 촬영지라는 것이다. 진융(金庸) 원작소설이자 왕자웨이(王家卫)가 감독하고 장궈룽(张国荣)과 량자후이(梁家辉)가 각각 '서독'과 '동사'로 열연했으며 량차오웨이(梁朝伟), 장쉐여우(张学友), 장만위(张曼玉), 린칭샤(林青霞), 류자링(刘嘉玲), 양차이니(杨采妮) 등 이름만 들어도 당대 최고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영화이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인 장궈룽이 기거하는 공간에는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캐릭터를 드러내야 한다. 어두우면서도 약한 자연 조명이 드러나야 하며, 숨 막힐 듯 혼탁한 벽면이거나 길고 암흑 같은 통로가 필요하다면 정말 기가 막힌 곳이다.

게다가 아픈 상처를 잊도록 하려고 연인(장만위)이 '동사'를 통해 보내는 술 대신에 물을 마시는 장면은 동굴 속을 흐르는 물줄기가 제격인데 이 세상 어느 곳에 홍스샤 말고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상의 장소이다. 영화의 탁월한 영상미를 발휘하는 아름다운 사막과 오아시스 같은 느낌도 다 이 부근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정말 <동사서독>의 촬영지가 산시(陕西) 성 위린(榆林)일지는 몰랐다.

그래서 2008년도에 다시 편집하고 새로 더빙한 리덕스(redux) 필름을 봤다. 배우들의 연기야 홍콩영화 중 실로 최상이라 할만할 뿐 아니라, 탁월한 영상미가 바로 홍스샤 동굴 속이구나 하는 것을 바로 느끼게 해줬다.

협곡 사이를 연결하는 돌다리를 건넜다. 돌과 돌 사이에 빈 공간이 있고 그 아래로 강물이 흐르는 모습이 다 보인다. 발을 잘못 디디면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이 빈 공간을 거미가 줄로 얼키설키 이어놨다. 마치 아래를 보지 말고 자신을 보라는 듯, 아니면 다리를 건너는 동물들이 자신의 거미줄에 빠지라는 본능일 지도 모른다.




반대편으로 가면 빠른 유속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홍스샤의 또 다른 이름인 슝스샤(雄石峡) 석각이 훤히 보인다. 석각 위로 몇 마리 새들이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날갯짓 하는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았다가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한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다소 완만해진 물줄기 때문에 조그마한 모래사장이 생겼다. 아직 여름이어서인지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아래쪽으로는 출렁이는 구름다리가 멋지게 걸려 있다. 구름다리 가운데 서면 양쪽 협곡과 세찬 물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풍광을 오랫동안 서서 지켜본다. 어렵게 이 멀리 찾아왔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이니 작은 아쉬움도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어디라 해도 기억에서 사라지지도 않지만 또한 아쉬운 마음이 사라지지도 않는 것을 보니 여행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장궈룽, 즉 장국영이 영화에서 막 살아나올 듯한 협곡을 둘러보느라 열심히 다녔더니 힘겹다. 협곡을 빠져 나와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 나오는 길이 참으로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