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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 산시 2010 4회-1] 달팽아, 니가 만리장성을 알아? [전베이타이 장성]

만리장성만 보면 참 멋지다. 대체로 높은 산 위에 성벽을 쌓고 망루를 세워서 위성에서도 보인다지 않는가. 북쪽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고자 했던 역대정권들의 치열한 생존전략이었으며 수없이 많은 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엄청난 규모의 개발공사이기도 했다.


중국학계가 나서서 만리장성을 동쪽 끝과 서쪽 끝으로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무한정 확대해 '이만리장성'을 만들고 있지만, 명나라 한족정권이 재건한 산하이관(山海关)과 자위관(嘉峪关)에 이르는 장성만으로도 충분히 기나길다. 딱 중간에 전베이타이(镇北台)가 있다.

산시(陕西) 북단에 있는 도시이자 내몽골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위린(榆林)시에 바로 전베이타이가 있다. 시내에서 30분 정도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거리다.



깔끔하게 조성된 국가AAA급 관광지를 들어서니 '천하제일대(天下第一臺)'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나타난다. 허름한 듯 보이는 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씨는 중국 만리장성의 수호자인 고건축가 뤄저원(罗哲文)이 쓴 것이다. 올해 86세인 뤄저원은 중국 만리장성 대부분을 보수하고 연구한 학자이다. 그야말로 만리장성의 산 증인의 필체를 여기서 보다니 반갑다.

수 만리 떨어진 만리장성의 긴 노정에는 수많은 명승지가 있다.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으니 곳곳마다 그 이름이 서로 각각 다르다. 그 기능이나 지형에 따라 다른데 산하이관처럼 관(关)이라 하면 관문일 것이다. 관문은 대체로 요지이니 크고 작은 관청도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산하이관이나 자위관처럼 관청이 남아있기도 하다. 산둥 칭다오(青岛) 해변가에는 서구열강이 들어와 조차로 쓰면서 만리장성의 8개 관문 이름으로 바다관(八大关)이라 이름 짓기도 했다.

관문이란 말 대신에 입구라는 뜻으로 커우(口)라는 지명이 붙은 곳도 아주 많다. 베이징 외곽에 있는 유명한 장성인 구베이커우(古北口)나 아예 허베이(河北) 도시 이름이 된 장자커우(张家口)도 있다. 변방의 요새라는 싸이(塞)라는 지명도 꽤 있는데, 지루싸이(鸡鹿塞)나 가오취에싸이(高阙塞), 쥐옌싸이(居延塞) 등은 대부분 한(汉)나라 이전에 쌓은 장성이다.


요새와 비슷한 보루라는 뜻의 바오(堡)라는 이름이 붙은 장성도 많은데 이는 대부분 명나라 장성이다. 이 바오라는 이름은 주로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많은데 주변지역이 사막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흙담을 높이 쌓고 축성을 해서인지 보루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닐까 싶다.

만리장성 중에서 흔하지 않은 것이 타이(台)라는 이름이다. 베이징 동북 쪽 쓰마타이(司马台)와 이곳 전베이타이가 유명하다. 전베이타이는 높이 4층 규모의 웅장한 정방형 망루로 명나라 후기에 이르러 건설했다. 수많은 장성 중에 3대 절경을 꼽으라면 산하이관과 자위관 그리고 바로 이 전베이타이를 떠올린다. 산하이관이 바다와 잇닿아 있어 자연경관이 아름답다면 자위관은 온통 사막과 초원으로 둘러싸인 가파른 절벽이 멋지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과연 이 전베이타이는 어떤 경관이길래 만리장성을 대표할까 생각했다.



과연 4층 높이이면서도 웅장한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위 하나가 또 나타난다. 가운데 전베이타이 글자와 함께 만리장성 모습을 붉게 새겼다. 바위 위를 무심코 봤는데 갑자기 꿈틀하는 것이 보인다.

처음에는 돌 조각 하나가 바위 위에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움직이는 모습과 가느다란 촉수 2개가 들락거리는 것이 영락없이 달팽이다. 달팽이 종류나 개체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렇게 국가급 관광지 한가운데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누군가 길바닥에서 주워서 올려놓았을 수도 있고 스스로 바닥에서부터 기어올랐을 수도 있다. 도대체 한 평도 채 안 되는 바위 위에 무슨 먹을거리가 있다고 올라와서 꿈틀거리고 있는지.


이 느리디 느린 달팽이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중국인의 특성으로 거론하는 만만디(慢慢地)라는 말이 생각난다. 명나라 시대 대규모 장성 건설 기간만 따져도 120여 년이나 되고 춘추전국시대 전후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으로 따지면 2500년 이상의 역사를 담고 있다. 세우기도 힘들지만 부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굳이 없애야 할 이유도 없으니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가파른 절벽 위에 세운 장성을 볼 때마다 엄청나게 느린 달팽이처럼 여유가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공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을 것이다. 달팽이가 장성의 역사를 알 도리가 없겠지만 느리면서도 끝까지 목적을 달성하는데 치열한 중국인들을 떠오르기에 적합해 보인다.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 달팽이에게 '니가 만리장성을 알아?'하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달팽이 몸짓 뒤로 전베이타이의 거대한 윤곽이 드러나는 듯하다. 1층 기단 부분의 전체 둘레가 320m이며 벽 높이가 10m에 이른다. 남쪽이 76m, 북쪽이 82m, 동쪽과 서쪽이 각각 64m인 사다리꼴 모양이다.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4층의 높이는 4.4m이고 둘레는 35m가 조금 넘는다.


계단을 따라 층층이 올라가니 225㎡ 넓이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사면을 빙 둘러 요철 형 성가퀴(城垛)가 있다. 이 성가퀴에 남녀 한 쌍이 앉아있는데 놀러 나온 모양인지 웃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했다.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긴 했지만, 다소 위험해 보이기는 하다.


얼마 후 관리인이자 가이드가 오더니 내려오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뜻밖이다. 당연히 '위험하니 내려 와라'라고 할 줄 알았는데 문화재를 보호할 줄 모르냐고 야단을 친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른가 보다.

멀리 보이는 곳에 하천이 흐르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의 어머니 강'(我们的母亲河) 위시허(榆溪河)인데 우딩허(无定河)와 합쳐져 흐르다가 옌안(延安) 동쪽 부근에서 황허(黄河)로 흘러간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고향에 있는 강을 '어머니 강' 무친허(母亲河)라고 부른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으로 정겨운 말이다. 황허를 이를 때도 중국인들은 무친허라고 하며 자부심을 드러내는데 우리가 '서울의 젖줄 한강'이라고 하는 말과 비슷한 의미다.




전베이타이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서 양봉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건만 수십 개의 벌통을 두고 벌들과 함께 살고 있다. 1근(500g)에 12위안이니 참 싸다. 야생 잡꽃 꿀이지만, 가짜 같지 않고 선량한 표정과 말투니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다.

위린 시의 젖줄인 위시허에는 홍스샤(红石峡)가 있다. 이 협곡은 만리장성이 지나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베이타이에서 걸어서 20분 가량 걸으면 된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데 마침 아이들이 옆에 다가온다. 머리 감으라고 하는 엄마가 야속하기도 하다. 여행 중에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만나면 늘 고향에 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