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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5회 산시1 세계문화유산 고성의 중국 최초 은행

 

 

산시는 타이항산(太行山) 서쪽에 위치하며 주()나라 무왕의 아들 당숙우(唐叔虞)의 분봉 영토였는데 그의 아들 섭부(燮父)가 진()나라를 세우게 된다. ()나라는 전국시대에 이르러 한(), (), ()로 삼분되기도 한다.

 

위진남북조 시대 선비족인 척발씨가 세운 북위(北魏)와 당나라 이연(李淵)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명청()시대에는 중국의 4대 상방 중 하나인 진상(晉商)이 형성되고 청나라 후기에 이르러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퍄오하오(票號)와 함께 호위 무사집단인 뱌오쥐(鏢局)가 성장하기도 한다.

 

산시 상인들은 중국 최초의 주식회사와 은행(銀行)을 세웠으며 ‘신용을 지키고(守信), 의리를 먼저 중시하고(講義) 이후 이익 취한다(取利)’는 상인철학으로 무장했으며 산시 출신인 관우를 재물 신으로 숭배한다. 지금은 석탄 광산촌이 즐비한 곳으로 중국에서도 가난한 성으로 꼽히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핑야오고성과 북위시대의 경이로운 불교유산인 윈강석굴, 가파른 절벽에 세워진 사원인 시엔궁쓰 등 역사와 문화 유산이 풍부한 곳이다. 이제 산시로의 문화체험을 향해 출발!

 

05 산시 편 1 – 옛 모습 그대로의 아름다운 고성에 남아있는 중국 최초의 은행

 

1)   타이구太谷 칼로 밀가루반죽 베는 솜씨 가히 예술

 

새벽 기차의 창문을 여니 빠르게 맑은 공기가 쉼 없이 들어온다. 사람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조용한데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곤하게 잠을 잔다. 침대 칸인 잉워는 침대에 자리를 잡으면 차표와 침대카드를 교환해야 한다. 그리고 내릴 때 다시 표로 바꿔서 내리게 된다.

 

원래는 타이위엔(太原)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예정에 없이 타이구(太谷)라는 곳에서 내렸다. 타이구에서 내려 버스 타고 가면 훨씬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러 갔더니 목적지인 핑야오로 가는 버스 편은 없어진 지 오래 됐다고 한다. 다시 기차 역으로 갔더니 다행히 1시간 후에 기차가 있다. 표 판매도 30분 지나야 한다니 아침이나 먹고 오라고 한다.

 

역 앞에서 칼로 밀가루 반죽을 잘라 양념소스를 덮은 국수인 다오샤오몐(刀削麵) 한 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칼로 밀가루반죽을 자르는 솜씨가 가히 정교하다.

 

칼로 싹둑싹둑 잘라 삶은 다음 여러 야채와 소스 국물과 함께 먹는데 그 맛이 아주 좋아 이곳 산시를 대표하는 국수 요리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아주 많은 면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국을 대표하는 국수라고 하면 이 다오샤오몐을 빼놓을 수 없다. 기록에 의하면 몽골족이 중원을 장악한 시기에 처음 생겨났다고도 한다.

 

일반 서민들이 길거리에서 늘 먹는 음식이라 타이구 역 앞도 이 국수를 파는 곳이 많다. 한 식당 주인은 직접 국수를 자르고 삶는 과정을 이리저리 설명해준다. 생각보다 맛이 좋아서 한 그릇 다 비웠는데 5위엔이니 한끼 아침으로 싸고 배불리 먹을 만하다.

 

핑야오고성 숙박집(왼쪽), 중국 기차표(오른쪽 위), 고성 모습(오른쪽 아래)

 

아침 기차를 타고 세계문화유산인 핑야오(平遙)고성으로 향했다. 핑야오 역에 내려 삼륜차를 타고 골목을 달렸다. 고성 안에 들어서자 수많은 여관들이 즐비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곳에 숙식을 정했다.

 

핑야오는 마을 전체가 여행자들의 낙원이다.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해 더 아름다운 핑야오는 이미 외국인들이 즐겨 찾아가는 곳이 됐다. 영어로는 하모니라고 하는 민박집 허이창(和義昌)에 주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이탈리아 여학생이 벽에 자기 이름을 적고 있었다.

 

이 민박집은 2층 옛 집을 그대로 개조해 만들었다. 방을 나오면 주위에 온통 똑 같은 집과 지붕이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정말 천 년도 더 지난 고을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집이라 현대식 호텔에 머무는 것보다 훨씬 더 정감 어린 곳이었다.

 

2)   핑야오平遙 세계문화유산 고성에는 유교와 도교가 함께 자리잡고 있다

 

핑야오는 명나라 초기에 형성된 도시이며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다. 청나라 강희제의 서쪽 순행 코스에 꼭 핑야오가 포함되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한 거점이었던 셈인 것이다.

 

고성 안에는 가 볼만 한 곳이 아주 많다. 지도를 놓고 생각을 잘 해야지 동선이 엉키면 다리가 좀 아플 것이다. 자전거를 빌려서 돌아다녀도 나쁘지 않지만 여행지뿐 아니라 골목마다 가게와 집들, 사람들 표정까지 살피려면 걸어 다니는 게 좋다. 사실 길거리가 더 재미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가장 먼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청황먀오(城隍廟)를 찾았다. 청황뎬(城隍殿) 앞에 향초가 피어 오르고 있고 깔끔하게 청소가 된 상태라 조용하면서도 정갈해 보인다. 입구 양 옆에는 쑤징(肅靜)과 후이비(廻避)라는 글자 위에 괴상하게 생긴 동물 얼굴이 섬뜩하다.

 

도교 분위기라기 보다는 훨씬 더 토속적인 색깔이 강해 보인다. 권선징악과 같은 좀더 강렬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봐서 도교 사당이면서 민간 토속신앙까지 내포한 관청 부속의 사당에 더 가까운 듯하다.

 

건물에는 토속신앙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면들이 있다. ()과 더우()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고 지옥의 고문 장면들이 20여 가지나 있다. 다른 방에는 선량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가정생활을 하는 장면도 있다. 서로 대비되는 것은 그만큼 속세에서 잘 해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독서하는 조각상(위쪽 왼), 공자(위쪽 오른), 청황먀오(아래쪽)


청황먀오 바로 건너 쪽에는 유교의 원먀오(文廟)가 있는대 친근하고 익숙한 문화를 접하니 부담이 덜하다. 먼저 들어간 곳은 과거박물관. 남녀 한 쌍이 마주 앉아 책을 보는 돌 조각상이 이곳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박물관에는 과거제도에 대한 다양한 물건들도 구비돼 있다. 벽에는 사람들이 쓴 서명과 함께 그 뒤 쪽에는 급제한 사람들 이름과 연도, 직함들을 적은 팻말이 걸려있다. 청나라 시대 과거와 관련된 문서나 책자, 하사품 등이 전시돼 있어서 중국의 과거제도를 나름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과거박물관은 곧바로 공자의 사당으로 연결된다. 성신문무(聖神文武) 현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공자 초상화가 보이고 그 옆에는 논어(論語)라는 글귀가 써 있다. 다청뎬(大成殿)에는 역시 공자 조각상이 있는데 산둥 취푸(曲阜)에서 본 그것과 비슷하다.

 

사당을 비롯한 건물들이 다 정갈하고 정원도 비교적 잘 가꿔져 있으며 조용하기 그지 없다. 높은 벽을 끼고 돌아 나오는 길에도 휴지하나 없이 깨끗했다. 바위에 새겨진 '()'자가 참으로 부드러운 맛을 풍긴다.

 

3)   핑야오平 핑야오 관청과 풍물이 가득한 거리

 

번성했던 옛 도시 핑야오의 현청에는 재판을 하거나 회의를 하던 관청과 사당, 감옥, 종루 등 많은 건물들이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면적이 25천 평방미터에 이르니 아주 큰 편이다.

 

이문(億門)은 보통 관청 중간을 가로질러 두 번째 있는 문이라는 뜻이다. 별다른 특색은 없지만 번체로 쓰여있는 간판 색이 선명해 인상적이다.

 

이렇게 관청 내에는 상당히 많은 문을 드나들어야 한다. 이곳 저곳 두루 살펴보다가 입구 벽면 원 안에 '()'이라고 쓰여진 곳이 불쑥 나타났다. 바로 당시 현 감옥인데 관광객들이야 재미난 글자처럼 보이지만 죄 지은 이들이라면 다소 끔찍한 문구가 아닐까 싶다.

 

옛날 죄인의 다리에 채웠던 형구는 보기만 해도 몸이 무거워진다. 죄수 복이 걸려있기에 망정이지 그냥 보면 뭐 감옥 같아 보이진 않다. 중국의 옛 감옥을 보는 것도 핑야오에서의 색다른 경험이다.

 

보통 현청은 현 업무를 보는 곳과 감옥, 주거공간 그리고 사당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에는 춰허우먀오(侯廟)라는 재미난 사당이 하나 더 있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을 도운 명 재상 숙하(蕭何)를 모시고 있다. 현청 안을 지키는 신이라는 의미로 야션먀오(衙神廟)라 부르기도 한다. 옆에는 유방의 일등공신들인 한신(韓信)과 장량(張良)의 조각상도 나란히 있다.

 

핑야오 현이 내려다보이는 종루에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사람의 얼굴이 연상되는 장면이 보였다. 건물의 창문과 현판 그리고 동그란 입구가 서로 조화를 이뤄 언뜻 보면 사람 얼굴인데 해학적이기까지 하니 잠시 눈길이 멈추게 된다.

 

핑야오고성 관청 감옥(왼쪽), 고성 낮(오른쪽 위), 고성 밤(오른쪽 아래)

 

거리에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제기를 차며 놀고 있다. 중국의 여느 관광지에 비해 사람을 귀찮게 하는 호객행위도 별로 없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간섭도 하지 않으니 느긋하게 걷기에 좋다. 가게에 들어가 공예품도 보고 가격도 흥정해보고 사진도 찍어도 사람들 모두 여유롭다. 고성 안에 있는 사람들도 너무 착하고 인간적이다. 고성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것이 사람도 포함되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인심 좋은 곳이다.

 

저문 해는 핑야오에 또 다른 정취를 선물한다. 샹송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낮에 걷던 거리를 다시 걸었는데 장례를 치르는 행렬이 갑자기 나타나 당황했다. 서민들의 생활 공간이니 이런 것도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그대로를 멋진 관광지로 승화시킨 점이 핑야오의 매력이다.

 

핑야오에는 누각이 2개 있는데 밤이 되니 더욱 찬란하게 탄생했다. 식당과 가게들도 새로운 옷을 입고 낯선 외국인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검은 곳과 붉은 곳, 그 대비가 바로 핑야오의 밤이다.

 

4)   핑야오平 중국 최초의 은행을 호위하라

 

핑야오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곳은 퍄오하오라 불리는 은행이다. 청나라 중기 이후 100여 년에 걸쳐 핑야오는 전국을 돈으로 주무르던 곳이다. 중국 최초의 은행으로 알려진 리셩창(日升昌)을 비롯한 수많은 퍄오하오 전시관이라 해도 무방하다.

 

역시 가장 잘 유명한 곳은 리셩창. 가장 먼저 생겼으니 '중국 최초의 은행'으로 '산서은행(山西銀行)'이라 불린다.

 

리셩창의 주인은 염직업으로 돈을 벌고 전국적인 은행지점을 갖춘 대부로 성장한 이대전(李大全)이다. 일종의 주식회사 형태로 사업을 했는데 이대전이 은 30만 양을 출자해 최대주주이면서 사장이었다고 한다.

 

웨이셩창(蔚盛長)도 퍄오하오이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듯 돈을 번다는 뜻일 것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붓을 들고 염주를 걸고 앉은 고관대작의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뒷면에는 청나라 말기 서태후와 광서제의 권력다툼에서 희생된 무술변법의 '육군자' 중 한 명인 담사동(譚嗣同)을 비롯해 양계초(), 강유위(康有) 사진이 걸려 있다. 아마도 이 신진 개혁세력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핑야오는 수공업이 번창했고 이를 전국에 팔기 위한 운송업도 발달했으며 공업과 운송업, 은행업이 함께 성행했던 곳이다. 그래서 은행도 지키고 운송도 안전하게 책임지게 될 새로운 사업도 생겨났으니 바로 뱌오쥐이다. 무협지를 좋아하는 분들은 알고 있는 '표국'을 말하는 것이다.

 

최초은행 르셩창(왼쪽), 옛 은행 르셩창 안(오른쪽 위), 무술연습장(오른쪽 아래)

 

뱌오쥐 박물관에는 전국의 뱌오쥐를 다 살펴볼 수 있다. 대장들인 쭝뱌오터우(總鏢頭) 얼굴도 스케치돼 있고 각종 무기들이 등장하고 무술권법도 전시돼 있다. 마당 벽면에 붉은 사각 속 노란 원에 검은 글씨로 쓴 '()'자가 유달리 돋보이는 훈련장도 있다.

 

후이우린(匯武林)이라는 무술관도 있다. 여느 뱌오쥐와 달라 보이지는 않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무술을 연마하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다. 태극무늬가 있는 팔괘장을 비롯해 각 무술 파벌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도 되어 있다. 뒷마당으로 가보니 한가운데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고 팔괘가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무기들도 전시돼 있고 벽에는 무술을 연마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한때 상업과 자본의 대명사이던 퍄오하오와 함께 호위무사들의 무술에 대한 생생한 기록들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핑야오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