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6회 산시 2 하늘 향해 지은 사원에 점 하나 더 찍다

 


1)   핑야오 平遙 펑크 난 자전거 타고 찾아간 1400년 전 사원

 

자전거를 빌려 타고 핑야오고성에서 약 10km 떨어진 솽린쓰(雙林寺)라는 불교사원으로 간다. 길게 뻗은 길, 거의 차가 다니지 않으니 공기도 맑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여유를 즐기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자전거 앞 바퀴가 펑크가 났다. 아무리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아도 속도가 나오지 않아 살펴보니 어느 새 바퀴에 공기가 다 빠져나간 상태이다.

 

펑크가 난 자전거도 굴러가기는 한다. 시간이 더 걸리고 힘도 더 들고 약간 덜커덩거리니 엉덩이가 아프긴 하지만 가로수가 멋지고 바람도 상쾌하다. 서두를 일도 없으니 펑크 난 자전거 여행도 별미이다.

 

솽린쓰는 북제(北齊)시대인 서기 571년에 처음 만들어진 사원이다. 1400여 년이나 된 긴 역사를 지닌 아주 오래된 사원이다. 아직 현대적 감각으로 보수가 안 된 사원이라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된 느낌이다.

 

솽린쓰에서 만난 학생(왼쪽), 철조망으로 보호하는 불상(오른쪽 위), 모조 관음상(오른쪽 아래)

 

톈왕뎬(天王殿) 입구는 쇠창살로 막아두고 있다. 창살에 갇혀 있는 불상은 매우 낡았지만 자태만큼은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명나라 때 한번 개조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창살로 막혀 있어 안의 모습을 자세히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종러우(鐘樓)와 구러우(鼓樓)가 좌우에 배치돼 있으며 다슝바오뎬(大雄寶殿) 동쪽에는 쳰포뎬(千佛殿), 서쪽에는 푸사뎬(菩薩殿)이 나란히 서 있다. 특히, 푸사뎬에는 그 유명한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觀音) 보살상이 있다.

 

역시 창살이 가로막고 있지만 안쪽에 천 개의 손과 눈으로 서민들의 심금을 감싸주는 관음보살상이 보인다. 명나라 때 건축된 유물이라 하는데 나무로 만든 불상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온화한 자태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감동적이다. 창살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없는 사람은 사원 입구에 있는 모조품 관음보살상을 보면 된다.

 

학생들이 아주 많다. 가까이 가서 물어보니 여행전문대학 학생들이 실습을 나온 것이다. 웅성웅성 모여 이 솽린쓰에 대한 역사를 열심히 외우고 있다.

 

솽린쓰를 소개 좀 해달라고 하니 한 학생이 자기가 해보겠다고 한다. 그러자,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재미난 일이 났다는 듯 모여든다. 대학교 1학년이라는 쳰웨이싱(錢衛星)은 숨도 멈추지 않고 열심히 사원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이 친구에게 한국전통문양의 책갈피를 주니 다른 아이들도 자기도 달라고 떼를 쓴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니하오()’와 같이 인사말인데 가장 발음이 좋은 사람에게 주겠다고 했더니 10여 명의 학생들이 한마디씩 한다.

 

이 오래된 사원도 관광객들이 많아지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부디 그 옛날 그대로 분위기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처럼 오래됐으면서도 형태와 색감이 잘 보존된 목조건축물은 흔하지 않다.

 

긴 가로수 길을 따라 펑크 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비록 예상보다 시간도 많이 걸렸고 힘도 들었지만 세련된 맛으로 아직 덧칠하지 않아 인상에 많이 남는다. 솽린쓰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지 모른다.

 

2)   타이위엔 太原 우연하게 마주친 송나라 탐정 적인걸

 

산시 성 수도인 타이위엔 버스터미널 옆에 공원이 하나 있다. 이 탕화이(唐槐) 공원은 당나라 시대 걸출한 정치가이자 재상인 적인걸(狄仁杰)이 살던 곳이다. 뜻밖에 중국 최고의 명탐정이기도 한 역사적 인물과 만났다.

 

적인걸(630~700)은 당나라 고종과 중국의 유일무이한 여제인 무측천 시대의 재상이다. 예리한 추리와 어진 마음을 지녀 명탐정이란 뜻으로 '션탐(神探)'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의 활약을 담은 책이 유럽에 소개돼 '동방의 셜록홈즈'라 불린다. 포청천만큼이나 유명해 <션탄디런제(神探狄仁傑)>라는 드라마로 제작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 서민들의 공원이다. 노래 부르고 얼후(二胡) 등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중국민가인 워아이니사이베이더쉬에(我愛塞北的雪)’라는 노래를 연습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탕화이 공원을 나와 시내에서 가장 큰 호수공원인 잉저(迎澤)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새들이 시끄럽게 재잘대고 꽃과 나무도 풍성하다. 새들이 이리저리 걷고 또 날아오르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게 언제였던가 생각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한 듯하다가도 모질도록 세차기도 하다. 장미나 모란 같은 꽃 이름을 딴 정자들이 곳곳에 있다. 북방민족인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시대의 건축물인 장징러우(藏經樓)가 거대한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급류타기 같은 놀이시설도 있고 박물관들도 보인다. 솜사탕(棉花糖)도 팔고 있다. 호수에서 배를 타고 노는 사람들도 있고 조깅을 하거나 산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탕화이공원(왼쪽 위), 잉저공원(왼쪽 아래), 핸드폰광고 속의 여배우(오른쪽)

 

이 공원 역시 노래연습장이다. 아코디언에 맞춰 중국민가를 부르는 아주머니가 산들바람에 맞춰 손 사위를 하는 율동이 정겹다.

 

호수는 나무와 조화를 이뤄야 아름다운가 보다. 거기에다 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분다면 제 격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가 호수 분위기를 더욱 시원하게 해주고 있다.

 

봉긋한 다리 하나를 넘어 가니 낚시터가 나온다. 낚시터 옆에 ‘1950’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어서 들어갔다. 1950이라 쓰여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 1950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2층 자리에서는 창 밖으로 낚시하는 사람들이 훤히 보인다. 저녁이면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는 공연도 있다고 한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대로를 따라 걸었다. 꽤 산뜻한 거리이다. 버스도, 정류장도, 광고판도 시원시원하다. 중국기업인 리엔샹(聯想)의 핸드폰 브랜드인 'S셔우지(手機)'와 우리나라 LG의 핸드폰 브랜드인 초콜릿(巧克力)’이 서로 대결하듯 나란히 걸려 있다.

 

대만의 인기 자매듀엣인 Twins의 동생으로 샤오S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쉬시디(徐熙娣)가 모델이다. LG는 김태희와 현빈을 모델로 했다.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나오는 폭포가 보인다. 공원 정문 옆에 폭포를 만들어두고 그 물줄기를 따라 아기자기하게 하천으로 물길을 만들어두니 시원한 느낌이다. 시내의 한 호수공원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지만 점점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느낀 하루이기도 했다.

 

3)   다퉁 大同 은은한 색감으로 천 년 동안 이어온 석굴

 

몇 년 전 처음 다퉁에 왔을 때도 비가 왔었다. 다퉁이 중국 최대의 석탄 도시로 유명하지 비가 많은 도시는 아니다. 이날도 보슬비가 조금 내린다.

 

시내에서 1시간 거리에 세계문화유산 윈강(雲岡)석굴이 있다. 서기 470년대 북위시대의 걸작품과 다시 만난다니 마음이 급해진다. 뤄양의 룽먼(龍門)석굴 역시 북위 사람들이 만든 석굴이니 두 곳을 비교해봐도 좋다. 비가 내려 깔끔한 하늘 탓에 석굴을 숨긴 채 서 있는 산 전경이 푸릇푸릇해 보인다.

 

윈강석굴은 북위 사람들이 숭상한 불교예술의 유산이다. 석굴의 호칭을 숫자로 붙였는데 1호 석굴부터 47호 석굴까지 신비하고도 은은한 색채를 담은 아름다운 불상들이 숨어 있다. 입구의 높이가 20m가 훨씬 넘는 석굴도 있지만 아주 앙증맞게 작은 석굴도 있다.

 

3호 석굴은 높이가 25m, 길이도 50m에 이르는 거대한 동굴이다. 10m에 이르는 미륵불이 정면에 자리를 잡고 있고 양 옆에는 각각 6m가 조금 넘는 보살이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인자해 보인다. 이곳을 미륵석굴이라 부른다.

 

석굴 속으로 들어가 보니 자연에서부터 다듬어낸 듯한 천연의 색채들이 은은하기 그지 없다. 얼마나 여러 가지 색감으로 채색했는지 모를 정도로 미묘한 색깔이다. 불상의 의젓하고 인자한 모습도 훌륭하지만 불상이나 벽화에 새긴 이 칼라풀한 느낌은 정말 이 세상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수관음 흉내내는 학생들(왼쪽), 윈강석굴 불상(오른쪽 위), 윈강석굴 노출 불상(오른쪽 아래)

 

어떤 곳은 다소 퇴색돼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지만 섬세한 조각 속에 어우러진 천연의 색감은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은근하게 유혹한다. 1500년 전 예술 창작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3호 석굴에는 미륵보살 좌상이 있다. 대퇴부에 앙증맞게 서 있는 작은 역사(力士)불상이 이채롭다. 미륵을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호받고 있는 것인지 가름하기 어렵다. 넉넉한 엄마 품 안에서 노는 아이 같아 보인다. 여기저기 긁힌 흔적이 있지만 친근한 색감은 여전하다.

 

마주 앉은 불상 중 하나를 누군가 훔쳐 갔나 보다. 머리와 몸통은 모조리 가져가면서 가부좌한 다리부분은 남겨둔 것이다. 아니 가져가기 힘든 상황이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이 동굴을 염탐해 이 아름다운 보물들을 훔쳐갔다고 생각하니 슬프고 안타깝다. 윈강석굴에는 머리, 몸통, , 코만 빼가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둔 불상이 많다. 그래도 그 모습조차 소중한 불상들의 천국이다.

 

산을 바라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동쪽에서 서쪽으로 석굴을 보고 가는데 한 석굴 앞에서 중국 대학생들을 만났다. 5명이 야릇한 동작으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보자마자 천수관음임을 직감했다.

 

중국CCTV에서 방영돼 13억 중국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천수관음 무용을 그대로 따라서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과 청각 장애 무용수 21명이 함께 만드는 환상적인 연기이다. 천수를 뻗는 아름다운 무용, 세상의 모든 수화처럼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멋진 예술을 선보여 화제가 됐었다. 중국 곳곳에서 이를 따라 하는 동작이 유행처럼 번진 것인데 그 모습을 윈강석굴 앞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드디어 윈강석굴을 대표하는 거대한 불상 앞에 섰다. 20호 석굴은 루톈다포(露天大佛)라 부른다. 높이가 13.75m에 이르는 이 석불은 전쟁과 바람으로 인해 석굴 앞이 무너져 외부로 드러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윈강석굴은 뤄양의 룽먼석굴과 둔황(敦煌)의 모가오(莫高)굴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3대 석굴이다. 석굴마다 웅장하고 인자한 불상의 모습은 영롱한 빛을 담고 있고 벽화에는 은은한 채색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치도 흔들리지 않고 '()'의 경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감흥을 준 선비족의 나라 북위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솟아난다.

 

4)   다퉁 大同 하늘 위에 그린 사원 앞에 점 하나 더 찍다

 

북위의 수도였던 다퉁에서 남쪽으로 80km 가량 떨어진 훈위엔(渾源)에 절벽에 깎아 세운 사원인 쉬엔쿵쓰(懸空寺)가 있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거의 2시간이나 걸렸다.

 

중국 오악 중 북악이라 불리는 헝산(恒山) 자락 가파른 절벽에 세운 사원이 쉬엔쿵쓰이다. 헝산에서도 가장 독특한 절경이라 일컬어지는 이 사원은 절벽을 따라 지어졌으니 반 정도는 공중에 붕 떠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하늘 위에 그린 사원이라 일컫기도 한다.

 

오악은 동악(東嶽)인 타이산(泰山), 서악(西嶽)인 화산(華山), 남악(南嶽)인 헝산(衡山), 북악(北嶽)인 헝산(恒山), 중악(中嶽)인 쑹산(嵩山)을 말한다. 남악은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4악을 비롯해, 오악을 합친 절경이라는 황산(黃山)을 올랐으니 중국의 이름난 산은 섭렵한 셈이다.

 

서기 491년 북위는 헝산의 진룽샤(金龍峽) 협곡이 바라보는 곳에 쉬엔쿵쓰를 세웠다. 몇 차례 수건하긴 했지만, 여전히 위태롭고도 불안해 보인다.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사원은 절벽에 바짝 밀착해 절묘하게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다.

 

'장관(壮观)'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친히 쓴 것이라 한다. 이백뿐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장관(壯觀)' 글자 중 '()' '()'자 옆에 점 하나가 더 가일수 돼 있는 것이 보인다.

 

이백이 이 사원의 모습에 감탄한 후 웬일인지 시를 짓지 않고 붓으로 바위에 글자를 썼다. 그런데, 강렬한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점 하나를 더 찍었다고 전해진다. 오랜 세월 흐르며 그 글자는 많이 퇴화됐다. 1990년대에 다시 글자를 복원하면서 점 하나도 같이 조각돼 되살아났다고 한다. 전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이백답다 하겠다.

 

절벽 사이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본다.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도 독특하지만 채 150평방미터에 이르는 좁은 공간에 40여 칸이나 되는 목조건물을 빼곡하게 지었으니 대단하다. 위로 오르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좌우로 돌아다니면서 살펴보니 아주 위험천만해 보인다.

 

하늘 위에 그린 사원(왼쪽), 층층 쌓인 사원(오른쪽 위), 창으로 본 사원(오른쪽 아래)

 

이 사원의 절묘함은 3층으로 구분된 베이러우(北樓) 쪽 건물이다. 제일 아래 1층은 다섯 보살을 둔 우포뎬(五佛殿)이 있고 중간 층에는 관음보살이 있는 관인뎬(觀音殿)이 있다. 제일 위층에는 싼쟈오뎬(殿)이 있다.

 

사원 제일 꼭대기 싼쟈오뎬에는 석가모니, 노자, 공자의 조각상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하늘을 향해 있는 사원답게 종교적 화해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은 북위 시대에 종교투쟁이 격화됐는데 3종교의 합일을 도모하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싼쟈오뎬은 원래 쉬엔쿵거(玄空閣)이라 불렀는데, '()'은 도교를, '()'은 불교를 상징한다. 지금의 '쉬엔쿵쓰(懸空寺)’와 같은 음이기도 하지만 사원이 절벽에 매달린 형상이라 해서 '매달다' 라는 뜻의 '쉬엔()'으로 자연스레 굳어진 것이라 한다.

 

도교, 불교, 유교의 흔적이 나란히 녹아있을 뿐 아니라 불상이나 벽화도 예술적 가치가 높다. 영국의 한 건축학자는 '역학과 미학 그리고 종교가 일체화된 아름다운 융합'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하늘을 향해 그린 듯한 종교적 융합의 산물인 쉬엔쿵쓰, 신비로운 예술품을 내장한 건물들을 긴 나무들이 지탱하고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오르내리면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1500년이나 지났어도 지금껏 제 자리를 지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앞으로도 영원히 멋진 모습을 남았으면 좋겠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