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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서기처(中央书记处)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정치국의 사무를 집행 처리하는 기구이다.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추천으로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통과를 거치며 제1서기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5명의 서기를 두고 있다.

차세대 지도자가 거쳐가는 요직이자 자신의 심복을 앉히는 자리로 평가돼 추천 과정에서 파벌 사이의 치열한 다툼이 있게 마련이다. 서기는 당 정치국 위원인 류윈산 중앙선전부 부장, 리위안차오 중앙조직부 부장과 함께 중앙위원인 허융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와 링지화 중앙판공청 주임,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 맡고 있다. 링지화와 왕후닝은 후진타오와 장쩌민이 각각 후원하는 젊은 지도자들로 치열한 경쟁 관계이다.

시진핑 习近平

중앙서기처 서기 시진핑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국가부주석이다.

류윈산 云山

중앙서기처 서기 류윈산은 당 정치국 위원으로 중앙선전부 부장이다.

리위안차오 李源潮

중앙서기처 서기 리위안차오는 당 정치국 위원으로 중앙조직부 부장이다.

허융 何勇

중앙서기처 서기 허융은 당 중앙위원으로 중앙기율위윈회 부서기이다. 1940년 10월 출생, 허베이(河北) 첸시(迁西) 사람으로 텐진대학에서 정밀측정기계공학을 전공한다. 1958년 입당 후 1968년부터 1983년까지 후베이 성 샤오간(孝感) 시에 있는 국영기업 계량실 기술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공장장에 이른다.

1983년 후베이 성 국방과학기술공업 판공실 부주임으로 발탁돼 1985년 병기공업부를 거쳐 1986년 중앙조직부 부부장 겸 당정외사간부국 국장을 역임한다. 1987년부터 감찰 업무에 능력을 발휘해 감찰부 부부장이 되며 1992년 중기위로 들어가 1997년부터 위원회 부서기와 감찰부 부장을 거친다.

2002년 중앙서기처 서기가 된 이래 지금까지 연임 중이며 허궈창 서기에 이어 중기위 부서기를 맡고 있다.

(사진설명 : 허융, 링지화, 왕후닝)

링지화 计划

중앙서기처 서기 링지화는 중앙판공청 주임이자 중앙기구편제위원회(주임 원자바오) 판공실 부주임, 중앙직속기관공작위원회 서기를 겸임하고 있다.

1956년 10월 출생, 산시(山西) 핑루(平陆) 사람으로 후난대학에서 공상관리를 전공한다. 1973년 고향 생산대에서 지식청년으로 노동했으며 1976년 입당 후에는 1978년 산시 성 윈청(云城) 현 간부로 활동하다가 1979년 공청단 중앙선전부로 옮겨 서기의 비서를 맡는다.

잠시 허베이로 차출된 시기를 빼고 줄곧 15년을 공청단 중앙에서 일했는데 1988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판공실 주임, 1994년 공청단 중앙선전부 부장을 역임한다.

1995년 공청단 제1서기 출신의 후진타오가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서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에 배치된다. 후진타오의 브레인이자 문필가로 정책 조사 및 이론 설계의 기초를 제공한다. 2000년 중앙판공청 부주임 및 조사실 주임으로 승진해 후진타오의 대내외 업무 일정 조정과 회의 준비, 일상 생활 및 휴식까지 챙기는 집사가 된다.

17기 전국대회를 앞두고 장쩌민이 지지하던 왕강(王刚)을 밀어내고 중앙판공청 주임이 된다. 모든 정보의 집중과 분산이 이루어지는 실무 총괄의 자리를 차지하며 곧바로 중앙서기처 서기도 겸임한다. 후진타오의 이론적 토대를 준비한 문필가이자 측근 거리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집사이다.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 왕후닝은 당내 최고의 브레인 기구로 정치 이론과 정책의 초안을 만들어 내는 중앙정책연구실(中央政策研究室) 주임이다.

1955년 10월 출생, 산둥(山东) 라이저우(莱州) 사람으로 상하이 사범대학에서 외국어교육반에서 프랑스어를 청강하면서 푸단대학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했으며 <자본론>의 대가에게 수학한다. 1981년 푸단대학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1984년 입당 후 32세의 나이에 정교수가 된다. 미국 대학 방문 교수를 거쳐 1989년 정치학과 주임 및 법학원 원장을 역임한다.

외국 학술 사조를 소개하는 한편, 일국 양제와 정치 체제 개혁에 관한 정치 이론가로서 명성이 자자하던 때 안정적 정치 기반을 확보하게 된 장쩌민에 의해 1995년 당 중앙정책연구실 정치조 조장으로 발탁된다. 이미 쩡칭훙과 우방궈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며 장쩌민의 '개혁 발전'에 관한 정치 연설문을 작성하고 <3개 대표>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1998년 당내 브레인 기구의 부주임에 이어 2002년 주임으로 승진한다. 장쩌민의 인물이지만 후진타오의 해외 방문 때마다 동행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 받아 2007년 중앙서기처로 들어간다. 당내 최고의 정치 개혁 이론가로서 중국의 미래 계획 수립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링지화와 왕후닝은 공청단과 상하이방 지도자의 스핀닥터(Spin Doctor, 정책 및 홍보 스태프를 뜻함)로서 각 파의 이론적 기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치국 승진에서 동반 탈락하는 등 상호 견제가 극심하다. 최근 후진타오의 공청단은 링지화를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입시켜 차세대 지도자로 부각시키려 한다는 외신 보도가 있지만 상하이방의 동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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