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마음으로 읽고,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어야 한다'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절강고진 ⑧ 사오싱 동진(東晉) 시대인 353년에 문인이자 고관대작 41명이 회계(會稽)의 정자에 모였다. 지금의 사오싱(紹興)이다. 질병 퇴치를 위한 제사를 지내고 음주한 후 너도나도 시심(詩心)을 드러냈다.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가 서문을 썼다.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로 평가되는 난정서(蘭亭序)다. 산둥 린이(臨沂) 출신인 왕희지는 22세에 출사했다. 당시 회계군의 내정을 담당하는 관리였다. 사오싱에 왕희지를 기념해 마을을 조성했다. 서성고리(書聖故里)로 간다. {계속}
붓글씨로 꾸민 마을 보고, 콩 안주에 ‘딸을 위한 술’을 마신다서예가 왕희지의 흔적과 문학가 루쉰의 고향 사오싱을 찾아서 저장 사오싱(紹興)은 서예의 성인으로 예우하는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로 가득한 마을이 있다. 문학가 루쉰(魯迅)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문학과 예술의 도시 사오싱은 상하이에서 2시간, 항저우에서 1시간이면 도착한다. 최근 직항이 생긴 닝보에서도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 대도시와 가까워 접근이 쉽다. 먼저 왕희지가 살았다는 서성고리(書聖故里)로 간다. 4세기 동진 시대 서예가로 유명한 왕희지는 산둥 린이(臨沂) 사람이다. 관리로 근무한 사오싱에서 오래 살았다.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로 평가되는 난정서(蘭亭序)는 서예 초보자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계속)
48 베이징 2 베이징 외곽에 아직 미개발 장성이 많다 5) 베이징 외곽에 아직 미개발 창청이 많다 베이징 외곽은 해발 2천 미터에 이르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아직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은 창청(長城)의 흔적이 많다. 잘 찾으면 미개발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는 창청과 만날 수 있다. 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달려 미윈(密雲)현 신청즈(新城子) 진에 있는 창청을 찾았다. 서서히 산 정상으로 창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 모를 나무에 열매가 열렸고 이방인의 방문에 산새가 놀라 날아가고 꽃도 피어 있다. 수풀을 헤치고 점점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돌들이 무너진 내린 길을 따라 길게 뻗은 창청에 올랐다. 가파른 창청 돌을 딛고 올랐는데 다시 내려갈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오후..
39 저장1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서관에 잠입한 책 도둑저장 성은 춘추전국시대에 오나라와 월나라가 영토 분쟁을 하던 곳이며 삼국시대 손권 정권의 기반이었다.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지금처럼 성의 경계가 만들어졌으며 청나라 강희제에 이르러 저장 성이 됐다.저장은 신안장(新安江)과 쳰탕장(錢塘江)을 비롯 많은 강들이 구비구비 흘러가는 지리적 특성에 빗대어 지어진 이름으로 약칭으로 저(浙)라고 한다.수나라 때 지명인 위항(余杭)의 이름을 딴 항저우는 남송의 수도이었으며 중국 어느 곳보다 애향심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호수인 시후(西湖)가 있으며 샤오싱은 중국 20세기 초 민족주의자이며 문학가인 루쉰이 태어난 고향이다.저장상인들은 수완이 뛰어난데 특히 ‘돈이 있는 곳에 반드시 있다’는 원저우 상인과..
중국 샤오싱(绍兴)은 민족주의자이며 문학가인 루쉰의 고향. 그의 고거가 있는 고향 마을은 잘 꾸며진 문화거리이다. 채 1킬로미터 거리에는 볼거리, 먹거리가 참 많다. 공예품도 예쁘고, 먹거리도 즐겨보면 좋다. 샤오싱 특산 황주 외에도 황제가 먹던 간식으로 마치 수염처럼 가늘다 해서 룽쉬탕(龙须糖)이라는 엿 과자도 있다. 마치 백발처럼 생겨서 민간에서는 인쓰탕(银丝糖)이라고도 한다. 거리마다 이 룽쉬탕을 파는 가게마다 무료 시식을 하기도 하는데, 먹어보니 정말 맛있다. 그래서 1봉지 10위엔 주고 샀다. 공예품 가게 하나가 눈에 반짝거렸는데, 유리 수정으로 만든 노리개, 장식품이 빛나고 있다. 참 보석 같은 거리다.
루쉰은 필명인데 원래 이름은 저우장셔우(周樟寿)이고 나중에 다시 저우슈런(周树人)으로 개명했다. 5·4운동 이후 작품활동을 하면서부터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루쉰이 살던 집도 있지만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도 있다. 그의 스승 집도 있다. 담장 앞에 물이 담긴 조그만 종지 안에 붓 하나가 꽂혀 있다. 옆에는 반질반질한 돌로 된 바위가 있는데 바로 여기에 물을 묻혀 붓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하는 곳. 붓을 들어 이름을 한자로 써봤는데 부드럽게 잘 써진다. 비가 내려서인지 표시가 남지는 않았다. 서옥 안에도 종지와 붓이 놓여 있다. 넓고 평평한 마당벽돌(地坪砖)이 자리잡고 있다. 수경오 선생은 학생들에게 이 장치를 이용해 글 쓰는 서법을 익히도록 훈련시켰다고 한다. 에서 '문을 나서 동쪽으로 반리(半..
중국 샤오싱에 있는 루쉰고거 뒷편에는 '붓으로 그린 풍경'이란 뜻의 비샤펑징위엔(笔下风情园)이 있고 이 지방 결혼 풍속을 보여주는 작은 공간이 있다. 중국에서 옛부터 내려오던 3대 술 중 하나인 황주에는 '딸의 혼인'과 관련된 재미난 유래가 있다. 옆에 붙은 건물로 들어서니 항아리에 뉘얼저우(女儿酒)이라 적혀있다. 뉘얼=딸 바로 항아리에 꽃이나 예쁜 그림을 새긴다고 해 화댜오저우(花雕酒)라고도 부르는 샤오싱의 유명한 황주(黄酒)를 말한다. 항아리마다 꽃을 새겨 조각했는데 이것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동영상을 보고 글을 읽어보자! 옛날 샤오싱에 한 재봉사(裁缝师)가 있었는데 아내가 임신을 하자 아들을 낳으면 축하하려고 항아리에 술을 담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딸이 태어나자 실망해 화가 난 재봉사는 계수..
루쉰은 필명인데 원래 이름은 저우장셔우(周樟寿)이고 나중에 다시 저우슈런(周树人)으로 개명했다. 5·4운동 이후 작품활동을 하면서부터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루쉰이 살던 집도 있지만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도 있다. 그의 스승 집도 있다. 먼저, 조거(祖居)를 찾았다. 약 5백여 미터에 이르는 보행거리 초입이다. 저우자(周家) 라오타이먼(老台门)이라 부른다. 한림원 서길사(庶吉士)를 지낸 그의 할아버지인 주복청(周福清)이 살던 집, '한림(翰林)'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이 대문을 지나면 대청(正厅)인 더셔우탕(德寿堂)이 나온다. 손님들을 접객하는 곳으로 나란히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원래는 닝셔우탕(宁寿堂)이었는데 청나라 도광제(道光帝)의 연호 민닝(旻宁)를 꺼려해 개명했다고 한다. 황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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