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6] 도교와 황건적의 민란 ① ▲ 도교는 노자의 을 종교화했으며 백성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도교사원의 최고 신앙인 삼청전에는 옥청, 상청, 태청이 봉공돼 있다. 이중 태청인 도덕천존은 노자를 우상화하고 있다. 사진은 산서 면산 도교사원 대라궁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지점에 있는 태청 도덕천존의 조각상. ⓒ 최종명 장강은 동쪽으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풍랑에 휩쓸려 영웅은 간 곳 없네.성공과 실패를 허공에 묻겠는가? 청산은 의구하고 석양은 언제나 붉네.백발의 어부와 나무꾼은 은거하며 추월과 춘풍에 젖어가니탁주 한 사발에 주거니 받거니 고금의 온갖 풍상을 웃음 담아 이야기하네. 나관중(羅貫中)은 에서 낭만적인 송나라 곡조인 을 앞세워 영웅의 서사를 암시하고 있다. 120회 마지막..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5] 녹림과 적미, 농민의 야망이 되다 ② ▲ 적미군의 초기 근거지 태산 정상 부근의 석벽 조각. '노신판화상'을 수상한 유명 서예가 라이샤오지(赖少其)의 작품. 약간의 의역을 붙이면 "태양이 환하게 나타나니, 산들이 모두 동요하네. 검을 빼들고 미친 듯 노래하니, 뜻을 세워 크게 나아가리."는 의미이니 참으로 '민란' 정서와 맞다. ⓒ 최종명 에 따르면 신나라의 '법령은 괴로울 정도로 가혹했고, 백성들은 온갖 금지령에 손사래를 쳤으며, 생계를 잇기조차 힘들었다. 노역도 몹시도 고달픈 지경이었으며 논에는 메뚜기조차 가물었으니 부자나 빈자 모두 다를 바 없어 구분조차 힘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왕망이 통치하던 서기 14년, 낭야(琅琊) 군 해곡(海曲, 일조日照) 현성에서 허드렛..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4] 녹림과 적미, 농민의 야망이 되다 ① ▲ 왕망의 고향 한단의 황량몽 사원. 한단지몽 주제의 벽화.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주공의 나라를 흠모해 개혁을 도모했으나 '하룻밤의 꿈'처럼 허무한 실패의 길을 걷고 있었다. ⓒ 최종명 왕망, 주공을 꿈 꾸다 중국 역사에서 칼부림 없이 황제를 찬탈 또는 선위로 역성혁명을 이룬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왕망(王莽)과 무조(武曌)다. 무조는 당나라 시대 7세기경 주周(역사에서 무주武周)를 국호로 통치한 여성 황제 무측천(武則天)이고 왕망은 1세기경 한나라를 앞뒤로 나누며 신(新)나라를 세워 좌지우지했다. 무측천이 수렴청정의 지위를 이용해 양위를 강제해 나라를 세웠고 권력을 잃고 태상황으로 물러난 후에도 황후로서 장례를 치렀다. 이렇듯 여성이..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3] 진승과 오광의 대규모 기층 민란 ② ▲ 진승 민란군은 수도로 진격했으나 려산의 죄수까지 동원한 진의 마지막 장수 장한 부대와 싸워 패퇴했다. 려산은 한나라를 건국한 후 수도로 정한 장안(지금의 서안)에 있는 진시황 능원과 병마용 뒷산이다. 병마용은 지금 '진시황과 무관하다'는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 최종명 왕을 자처하고 망우초 죽을 먹다 진승과 오광이 봉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가담항설(街談巷說)'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거리나 마을마다 번져 말(言)은 말(馬)보다 빨랐다. 진나라에게 핍박 받던 식민지 땅 중원에 회오리 바람이 불었고 초나라를 중심으로 민족주의의 불길로 번지기 시작했다. 전국시대 6국의 열혈 귀족은 농민군을 규합해 떨쳐 일어났으며 진승의 봉기군과 연..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2] 진승과 오광의 대규모 기층 민란 ① 하염없이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기원전 209년 7월, 대규모 범람으로 회수(淮水)는 온통 습지로 변했다. 900여 명의 농민들은 폭우 속에서 계속 더 진군하는 것은 무리였다. 안휘 성 북부 태택향(大澤鄉)에 이르러 푹푹 빠지는 속도로는 북경 밀운(密雲) 근처 어양(漁陽)까지 명령대로 도착하긴 불가능했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했고 호송 무관들의 호령은 이미 저승사자 고함조차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 없다. 더 이상 걸음조차 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몸 하나 가눌 움막 찾아 쉬어가기로 했다. 농민들의 대장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머슴이자 소작농으로 겨우 풀칠이나 하며 연명해 왔지만 현실을 보는 눈만큼은 냉정..
자연재해와 가렴주구가 들끓으면 여지 없이 민초들은 지도자를 찾고 깃발을 들어 항거했다. 비록 실패할지언정 비굴하게 살지 않았던 민란의 역사,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비록 중국 민란이지만 우리의 현실이, 미래가 암울하니 혹시나 '성공하는 민란'의 힌트 하나라도 된다면 기쁘겠다.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 없는 역사라 당시 '인민'의 고통과 함께 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세월호'와 '메르스'로 상징된 나라의 국민과 '대동소이'라는 심정이다. '민란'의 깃발을 높이 들면 '인민은 춤추게 된다'는 역사의 진실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고 싶다. - 기자 말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 기원전 841년 주려왕과 국인의 민란 ▲ 역대 제왕이 귀 막고 입 막고 눈 막고 통치를 하게 되면 늘 민란이 뒤따랐다는..
를 연재하며...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이 침몰하더니 ‘사람’은 사라지고 온갖 변명으로 일관하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짓거리를 두 눈 뜨고 볼 수 없어 소주 잔에 울분까지 섞어 마셨다. 소화 불량에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더니 면역력까지 떨어지자 이번에는 ‘메르스’ 창궐로 국민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으며 ‘4대강’을 저주라도 하듯 40여 년 만에 등장한 극심한 가뭄은 국토를 갈라놓고 노동자, 농민, 서민의 주름살을 깊게 파내고 있다. 자연재해와 가렴주구가 들끓으면 여지 없이 민초들은 지도자를 찾고 깃발을 들어 항거했다. 비록 실패할지언정 비굴하게 살지 않았던 민란의 중국 역사,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를 담아보자고 술김에 뱉은 말로 인해 중국 역사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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