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화청지华清池는 이화원颐和园, 원명원圆明园, 피서산장避暑山庄과 더불어 중국의 4대 황가원림皇家园林이다. 시안에 오면 반드시 봐야 하는 6곳의 관광지 육간六看(병마용兵马俑, 종루钟楼, 성장城墙, 대안탑大雁塔, 공연) 중 하나다. 이번 여행에서 이 육간을 모두 다 봤다. 두 사람의 만남과 죽음 그리고 환생을 노래한 백거이의 시도 화청지 부용호芙蓉湖 앞에 새겨져 있다. 온천 목욕탕은 양귀비 및 황제가 사용하던 곳이 다 다르다. 바깥에는 태자가 사용하던 온천탕도 있다. 양귀비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불행인지 행복인지 그 평가도 다르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하얀 몸을 드러낸 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화청지 뒷산에는 1936년 12월 12일 서안사변西安事变의 현장으로 장제스가 거..
6월 2일부터 6일까지 서안, 낙양, 호현으로의 4박5일 중원문화여행을 떠납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모임 구성원 20여 명을 인솔하고 중국문화를 즐기러 갑니다. 미리 공부를 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중국문화 강의를 했습니다. 병마용, 용의 아들, 문의 신, 명주, 관우 재물신, 4대 미인, "장한가"와 백거이, 서안사변, 장쉐량과 송씨 3자매, 유불선 통합, 황소 민란, 3대 석굴, 일대일로 등에 대해 미리 예습하는 자리였습니다. 현장에서 더욱 실감나는 문화여행을 위한 역사 사전 공부였습니다. 여행 스케줄을 챙겨주는 스페셜투어의 이해연부장도 함께 자리를 해서 여행 준비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행 일정 http://youyue.co.kr/1269
장제스蒋介石의 고향 거리는 평화롭습니다.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시안사변西安事变 (1936.12.12)의 장쉐량张学良은 인생을 되살려봅니다. 평생 돌봐주던 자오이디赵一荻 여사나 은밀한 연인이던 쑹메이링宋美龄과의 만남도 생각해봤습니다. 장제스의 부인이 된 쑹메이링은 106세까지 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장쉐량도 103세까지 장수했습니다. 50년이 넘는 구금생활, 담배와 아편에 술까지 마시던 그가 100세를 넘겨 살았다니 신기합니다. 장씨고향 마을 가운데에는 송씨 3자매 (쑹아이링宋霭龄, 쑹칭링宋庆龄, 쑹메이링宋美龄) 조각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공자 75대손 쿵샹시孔祥熙, 둘째는 쑹칭링은 국부인 쑨원孙文, 막내는 장제스랑 결혼했으니 대단한 집안입니다. 1997년에 방영된 영화 는 "돈과 나라와 권력을 각각 사랑..
1936년 '쌍십이사변'이라고 불리는 12월 12일 새벽, 장쉐량은 서북군 양후청과 공모해 시안사변을 일으켰다. 장쉐량은 당 현종과 양귀비(양옥환)가 놀았다는 화청지 뒤쪽 얕은 산자락에 기거하던 장제스를 체포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시안사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장제스의 독려로 서북군과 동북군은 마오쩌둥의 연안 홍군을 향해 진격했을 것이며 산베이(섬서성 북쪽) 일대는 포화가 난무했을 것이다. 대장정을 거쳐 안정적인 근거지를 확보한 공산당은 엄청난 피해를 입은 후 아마 다시 감숙성이나 내몽골로 쫓겨났을 것이다. 제2차 국공합작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며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중국공략은 훨씬 손쉽게 진행됐을 것이 분명하다. 정말 장쉐량과 양후청의 ‘기습’은 ‘신의 한 수’라 할만했다. 적어도 당시 인민들의..
#중국문화여행 설두산2 장개석가 가마 타고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등산대회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길 중간에 민국시대 옷차림의 아가씨와 를 붓글씨로 쓰고 기념사진을 찍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사진은 현지 언론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장개석와 송미령의 별장 묘고대妙高台 근처의 높이 186미터의 천장암千丈岩폭포를 케이블카를 타고 찍기도 했습니다. 설두산의 미륵보살 성지 설두사雪窦寺를 들렀습니다. 높이 33미터의 미륵보살이 웅장한 자태, 배 불룩하게 앉은 모습이 멀리서도 보입니다. 설두사의 창건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까지 역사가 거슬러올라가나 당나라 시대 본격적으로 건축됐으며 1932년 민국 시대에 이르러 중국 5대 명산의 불교사찰로 꼽히게 됩니다. 오등회원五镫會元 편액이 걸린 작은 사당에는 문수보살의 성..
5월28일, 짱솨이푸(张帅府)를 찾았습니다. 장수부라 부르는 곳이 바로 장작림과 그의 본처 아들인 장학량의 고거입니다. 청나라말기 지방 군벌이 경쟁하던 시기 동북에는 북양정부 원세개 라인이던 장작림이 있었습니다. 장학량은 장개석을 체포한 '서안사변'의 주인공으로 세계 역사에 잘 알려진 인물로 세계사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인물입니다. 참고 서안사변의 두 주연배우 장개석과 장학량 http://blog.daum.net/youyue/3855405 그의 옛집을 보면서 장학량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1901년에 태어나 2001년에 유명을 달리한 장학량. 심양에 가면 꼭 보려던 장수부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보냈던지 어두워지면서 천둥번개 치고 폭풍우가 쏟아지고 도시가 난리가 났습니다. 택시를 못잡아 버스 두번 갈..
서안에는 중국 역사 상 유래가 없는 독특한 사건인 의 고장이다. 국민당의 장개석이 모택동 군대를 압박하던 시기에 발생한 은 일명 '12.12사변'(双十二事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936년 12월12일, 동북군벌인 장학량이 서북군벌인 양호성 군대와 함께, 에 있던 장개석 공관을 습격해 체포한 사건이다. 당시, 장개석은 장학량과 양호성을 압박해 공산당 홍군 토벌에 나설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장개석은 반일투쟁을 지양하고 오로지 홍군 토벌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나 장학량과 양호성은 선 반일투쟁을 주장하고 있었다. 민족주의자들인 두 군벌은 의기투합하고 경계에 유리한 의 '오간청'에 머물던 장개석 공관으로 새벽2시 100여명의 군사와 함께 직접 작전에 나섰던 것이다. 는 유명한 온천지이면서, 양귀비와 당 현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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