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1] 수나라 민란 장백산과 와강채 ② ▲ 하북 지역에서 민란을 일으킨 두건덕의 고향은 고성으로 서커스로 유명한 오교 부근이다. 사진은 오교의 시장 모습. ⓒ 최종명 두건덕(窦建德)은 장남(漳南, 하북 고성故城)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약속을 천금처럼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빈곤한 동네에 살며 사람들이 부모 상을 당하면 밭을 갈다가도 즉시 달려가 장례를 도왔으며 필요한 물품을 내주기도 해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이런 성품 덕분에 마을 이장을 하기도 했는데 두건덕의 부모 장례식에 천여 명이나 찾아와 예물을 주려고 했으나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생각해 모두 사절했다고 에 기록돼 있다. 오늘날에도 본받아야 할 인품이다. 고구려 침공에 대한 전국적 반발이 거세지고 홍수가 발..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0] 수나라 민란 장백산과 와강채 ① ▲ 중국은 그냥 산이라고 하는 것도 산맥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장백산은 협의로는 백두산이지만 백두산을 포함한 기나긴 산맥을 광의로 장백산이라 부르는 것일 뿐이다. 산동의 장백산은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계획으로 인해 발발한 민란의 근거지이다. ⓒ 최종명 백두산, 중국은 장백산(长白山)이라 부른다. 장백산이라 불린 것은 12세기경 여진족의 금나라가 중원을 장악하고 있을 때부터였다. 북위 때에는 도태산(徒太山)이었고 당나라는 태백산(太白山)이라 불렀다. 서안 남쪽 진령산맥(秦岭山脉)의 주봉을 태백산이라 한다. 우리나라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과 이름이 같다. 당나라 시대에는 지금의 백두산이 태백산이기도 했다. 산 이름만 놓고 보면 역사 이야..
중국 영토 '장백산' 정문에 도착한 후 우리는 여전히 천지의 날씨를 몰랐습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를 과연 볼 수 있을까. 차량을 이용 천지 간판이 보이는 입구에 도착하니 짚 차가 운영 중. 다행입니다. 해발 2749미터(최창흡교수님자료근거)를 오르는 짚 차는 무서웠습니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니 깊은 계곡 아래로 떨어질까 말입니다. 날씨는 오락가락, 비가 올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모두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짚 차에서 내리니 온통 주위가 안개이고 게다가 눈도 아직 녹지 않았고 날씨는 영하 10도가 조금 안되는 정도 같습니다. 천지를 향해 걸어오르니 갑자기 날씨가 맑아지는 게 아닙니까. 이 무슨 덕이란 말인가요. 천지는 아직 ..
'백두산박사님'으로 통하는 연변과기대 최창흡 교수님께서 발굴하신 백두산 가는 길. 기존 관광객들이 안도현과 이도백하를 거쳐 가는 코스 대신에 용정, 화룡, 남평, 숭선, 광평을 거쳐 가는 코스는 두만강 바로 옆 비포장 군사도로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약6시간) 바로 코 앞에서 북한 땅을 볼 수 있습니다. 백두산 옆 발원지에서 시작한 두만강 줄기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셈이 됩니다. 점점 좁아지는 물줄기를 따라 적막한 도로이지만 우리 일행은 교수님들의 백두산과 북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함경북도 무산 시를 멀리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 숭선에서 먹은 아침은 꿀맛입니다. 아침을 먹은 식당 바로 건너편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중국발품취재36] 백두산과 6월 1일 오후 우리는 옌볜(延边) 과학기술대학을 방문했다. 15년 전 척박한 조선족 동포사회에 교육사업의 기치를 든 김진명 설립총장은 뜻밖에도 미국시민권을 지닌 한국인. 김 총장은 외국인 최초로 합작형태이긴 하지만 독립적인 교육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외국계 대학을 설립했던 것이다. 그의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보고 듣자니 선견지명을 지닌 애국자가 따로 없다는 존경이 우러난다.게다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살아생전 합의한 평양과학기술대학 협정서를 보여주며 곧 평양에도 우리나라 교수진들이 진출해 북한 동포학생들 교육을 하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경제적으로 선진국 수준의 남한과 개혁개방 단계에 있는 북한, 그리고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동포사회의 고향이기도 한 옌볜을 잇는 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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