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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수향의 아름다운 반영

[최종명의 중국 산책] 서당고진과 동리고진

 

여행은 떠났다가 돌아오는 과정이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지만 가고 싶은 여행지로의 출발은 언제나 흥분된다. 16년 동안 400개 도시를 찾아다녔어도 공항에 가면 늘 콧노래를 부른다. 처음 가는 도시는 언제나 새로운 세상이고 호기심의 대상이다. 한국보다 96배 넓은 땅 중국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역사와 문화가 살아숨쉬고 있다. 사람의 향기가 샘솟고 풍광이 예술처럼 예쁜 마을로 간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공간이라면 최고의 여행이 된다. 강남 수향으로 간다.

 

상하이에서 버스를 타고 가며 귀여운 린쥔제의 강남江南을 듣고 또 듣는다. 바람도 불고 비도 내리면 노래처럼 나그네의 그리움은 깊어질는지, 여행의 인연은 무얼까 생각해본다. 여행은 유행가에 심쿵하는 심장박동임에 분명하다. 고작 1시간 반 거리에 강남 수향 서당고진西塘古이 있다. 6대 수향은 저마다의 개성과 역사문화를 간직한 마을이다. 장쑤에 셋, 저장에 셋이 있는데 모두 아름답기 그지 없다. 저장 자산嘉善 현에 위치하며 영화 미션임파셔블3’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잔잔한 수로와 돌다리, 한가로운 배, 전통가옥과 만난다. 마을 초입부터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물과 더불어 사는 마을은 아치형 모양의 석공교를 건너거나 배를 이용해 이동한다. 검은색 덮개가 있는 오봉선은 언제나 떠날 준비 태세다. 비가 자주 내리는 강남 지방에 흔히 볼 수 있다. 하얀 담장과 검은 기와의 대비가 인상적인 수향의 전통 가옥을 분장대와黛瓦라 한다. 중국 전역을 유람하며 다니며 뛰어난 중국 화가의 작품을 많이 만난다. 강남 수향 산수화는 우관중冠中이 독보적이다.

 

수향에서 태어난 그는 전국을 돌며 많은 자연을 담았지만 그래도 수향 그림이 최고다. 오봉선 몇 척이 물길 따라 저어가고 봉긋한 석공교를 넘어가는 인파, 검은 기와는 햇살에 더욱 빛나고 담장은 맑은 물빛처럼 화사하다. 우관중 그림을 보노라면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뻥 뚤린다. 그의 그림은 고가이지만 식당의 벽면이나 거리의 캐릭터 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더 친근하다. 얼마전 베이징 798예술구에서 열린 전시회를 찾아 매력적인 수묵화로 만든 노트를 사기도 했다. 애지중지하는 노트 속 인상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니 어찌 감동이 아니겠는가?



 

수향의 또 다른 별미는 실제 모습보다 더 수묵화 같은 반영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수로 따라 양 옆으로 자리 잡은 가옥이 고풍스럽다. 어디에서 봐도, 어디를 봐도 물 위를 수놓는 데칼코마니다. 환수교环秀桥 위로 오르면 반영은 점점 좁아들고 시야는 마을 전체를 조망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두 저택 사이의 좁은 골목을 롱당弄堂이라 부른다. 바닥에 남은 물기와 담장 아래 푸른 이끼가 푸릇한 석피롱石皮弄를 바라보고 있는데 강아지가 뛰어나온다. 허전한 골목이어도 좋지만 뜻밖의 견폐犬吠덕분에 유쾌한 추억이 생겼다.

 

서당에서 가장 번화한 서가에는 옛집을 개조한 객잔이 많다. 집마다 홍등을 걸어 낮에도 운치 만점이다. 젊은 사람 감성에 맞는 술향이 눈과 코를 사로잡는다. 딸을 위해 빚은 술 여아홍女儿红은 찹쌀을 원료로 발효해 양조한 황주다. 소흥이 가장 유명하지만 서당에서 만든 황주도 군침이 돈다. 복숭아, 계화, 장미로 담근 술에서는 활짝 피어난 꽃이 연상된다. 치에팅화카이且听花开 술병이 아니더라도 멈추게 된다.


 

자그마한 문을 빠져나와 영녕교永宁桥를 건넌다. 미션임파셔블3에서 주인공 탐크루즈가 뛰어가는 장면이 촬영된 연우장랑烟雨长廊을 걷는다. 안개비와 기나긴 복도을 합친 말에는 서당고진의 따뜻한 인간미가 숨어 있다. 명나라 숭정제 시대 마음씨 착한 주인이 있었다. 어느날 가게 문을 닫으려다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거지를 발견한다. 안으로 들어와 쉬라는데도 한사코 밖에 머무른다. 애처로워 보였던 주인은 할 수 없이 대나무 발을 가져와 처마 위에 걸었다. 차양을 쳐 비를 피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다음날 문을 여니 거지는 흔적도 없이 떠나버렸다. 다만 기둥에 새긴 글자만이 생생하게 남겼다.

 

복도의 차양 덕분에 하루밤 비와 바람을 피했네. 廊棚一夜遮

선의를 베풀고 덕을 쌓은 사람에게 행운이 오리라. 善人家好运来



 

작은 은혜에도 복을 기원하는 거지의 마음이 주인에게 전달됐다. 나무와 기와를 구입하고 사람을 불러 차양을 물길까지 넓혔다. 비는 물론이고 햇살도 피하게 되니 가게 앞에 머무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가게 주인은 모두 점점 자기 앞을 넓게 차양을 설치하게 돼 지금의 긴 복도가 생겼다. 연우장랑을 걸으면 안개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가슴을 적시는 감동이 떠오른다. 혹시라도 눈물이 흐른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수향의 야경 때문에 만사를 잊기 때문이다.

 

대낮의 반영보다 더욱 짙어가는 서당고진의 밤은 낭만 그 자체다. 오봉선은 불을 밝히고 멀리서도 석공교는 휘황찬란하다. 객잔에 걸린 홍등은 물 속 깊이 스며들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여행객은 술잔을 기울이며 오손도손 속삭인다.


살기 위해 마을 이름 바꾼 동리고진

 

서당고진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동리고진同里古을 찾아간다. 장쑤 쑤저우 남부 우장吴江에 위치한다. 중국에서 세번째로 큰 담수호인 태호가 가깝다. 가로와 세로로 흐르는 수로를 따라 크고 작은 섬이 무려 72개다. 다리도 49개나 되니 이름을 외우기도 힘들다. 다리만 건너도 하루가 다 지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재미난 풍습인 주삼교走三만 둘러봐도 좋다. 동리삼교인 태평교太平, 길리교吉利, 장경교长庆桥는 서로 거리가 가깝기도 하지만 모두 인생의 덕담을 담고 있다.




신랑신부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혼례 후 차례로 건넌다. 사람들에게 결혼사탕인 희당喜糖을 나눠주면서 다리 위에서 축복을 기원한다. 정월 대보름인 원소절元宵 밤에 다리를 건너면 어린 아이는 똑똑해져서 공부를 잘하게 되고 아픈 사람은 만병이 사라지며 젊은이는 사업이 번창하며 노인은 혈색이 돌아 늙지 않는다는 속담이 전해온다. 이렇듯 영험하니 소문 듣고 찾아온 여행자에게도 조금이나마 나눠줄 지 모른다. 차례로 다리를 건너는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동리라는 마을 이름이 특이하다. 기원전부터 살았던 마을의 원래 이름은 부토富土였다. 이름이 동리로 바뀌는데 일본의 후지산과 아무 관련이 없다. 수 양제 시대에 전국적으로 재난이 발생해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나라 창고가 텅 비게 되자 황제는 부토의 각 집마다 세 말의 곡식을 바치라는 어명을 내렸다. 순식간에 원망의 소리가 넘쳤다. 마침 수해로 흉년이 들어 먹고 죽을 곡식 한 톨 없는 상황이니 참담했다.

 

이때 마을의 서생이 탁자하는 개명改名의 계책을 내놓았다. 먼저 부()에서 지붕을 본뜬 갓머리() 위 꼭지를 떼어버렸다. 민갓머리()를 길게 늘리고 일(), ()를 합해 동()을 만들고 부에서 남은 전()과 토()를 위 아래로 붙이니 리()가 됐다. 집집마다 한순간에 부토가 동리를 바뀌자 독촉하려 온 최량관催粮官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갔다고 구전된다. 가족과 마을을 살리고자 했던 기발한 지혜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일까? 아마도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남보다 더 깊지 않을는지.




장경교 위에 서면 왼쪽이 길리교이고 정면이 태평교다. 뱃사공이 가마우지 일곱 마리를 태우고 낚시 중이다. 가마우지는 주인을 위해 수로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낚아챈다. 비록 목에 걸려 곧바로 삼키지 못하는 운명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적절한 보상이 따른다. 배를 따라 걸어가서 다리를 건너 뒤돌아보니 멀리 길리교까지 수로가 한꺼번에 보인다. 나뭇가지가 수로를 향해 뿌리를 뻗어내린 듯 착각이 든다. 물이 너무 선명해 어디부터 반영인지 분간이 어렵다. 물구나무 서서 봐도 잔잔한 나무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남 수향을 상징하는 유지산油纸伞 파는 가게가 보인다. 살포시 이슬비 내리는 수로에 늘씬한 몸매를 감싼 치파오旗袍를 떠올려 본다. 한 손에는 비단결보다 보드라운 우산을 들고 등장하면 수향의 풍광은 한층 고급스러워진다.  혹시라도 그런 행운을 기대했건만 속절없이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미리 예약한 동리고진의 객잔은 학교를 개조했다. 20세기 초 여성교육 전문학교인 여칙여학丽则女学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시대에는 강탈 당해 군영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신중국 정부가 건국한 이후에는 초등학교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옛날 교육기관으로의 역사적 가치도 여전하며 고풍스럽기도 하다. 국가급문물로 보호할만큼 인상적인 유적지 옆에 객잔을 깔끔하게 꾸몄다. 중국에서 숙박 시설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천년고진이 주는 감성을 바탕으로 여행자의 구미에 맞도록 안락하게 꾸미면 일석이조가 다름 아니다.

 

많은 강남 수향 중에 서당고진과 동리고진을 여행지로 선정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냥 자연만을 보는 여행이 아니라 휴머니즘이 있고 이야기가 남다른 까닭이다. 여행은 인문과 풍광이 어우러질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최종명 중국문화 작가 및 강사

崔钟名 中国文化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