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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66] 후난 창사의 세계의 창과 천년학부

중국 후난(湖南)성 창사(长沙)는 진시황이 시행한 중앙집권적인 군현(郡县)제도에 의해 36개 군의 하나이다. 당시 창사 군의 샹현(湘县)에 관공서가 있었다 하여 지금도 후난 성의 약칭을 샹(湘)이라 하고 후난 요리를 샹차이(湘菜)라 한다. 샹차이는 독특한 향이 나는 샹차이(香菜)와 발음과 성조가 같아서 잘못 들으면 오해를 살 수 있다. 하지만, 후난 요리는 매운 듯하면서도 담백해서 어쩌면 우리나라 전통요리와 꽤 맛이 비슷하고 맛 있는 요리이니 샹차이를 먹고 싶을 때는 발음에 주의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8월 25일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정말 대륙의 여름은 뜨겁다. 날씨를 보니 38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비록 창사가 3대 찜통(火炉)도시는 아니지만 거의 버금가는 더위다. 1년 중 섭씨 35도 이상인 날이 20일 이상이면 찜통 도시라 한다. 예부터 찜통 도시는 충칭(重庆), 우한(武汉), 난징(南京)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한까지 직선거리로 불과 300킬로미터이니 덥긴 덥다.

세계적 건축물과 놀이공원 '세계의 창'

창사 시내 동북쪽에는 ‘세계의 창(世界之窗)’이라는 놀이공원이 있다. 우리나라 에버랜드와도 비슷한데 원래는 세계 각국의 유명 건축물을 미니어처로 세우고 그 전통문화와 민속품들을 전시하면서 놀이공원을 접목한 형태이다. 마침 매우 더운 날씨여서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런데, 넓기는 꽤 넓다. 그리고 다양하며 때로는 조잡하기도 하다.

입장료는 80위엔으로 좀 비싼 편이다. 이 놀이공원은 홍콩 쭝뤼(中旅)그룹과 후난방송(湖南广播电视)이 합작해 조성한 것이다. 션전에도 똑 같은 이름의 '세계의 창'(世界之窗) 공원이 있는데 그것 역시 쭝뤼가 관여된 곳이다.

  
후난 창사에 있는 세계건축물 전시장 및 놀이공원이 '세계의 창' 전경, 가운데 우뚝 솟은 건물은 알렉산드리아 등탑
ⓒ 최종명
세계의창

멀리서 봐도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렉산드리아 등탑(亚历山大灯塔)을 비롯해 독일 백설공주 성곽(新天鹅城堡)과 하이델베르그 성문(海德堡 城门), 네덜란드 풍차(荷兰 风车)와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海牙 国际法庭), 이탈리아 산마르코 광장(圣马可 广场), 시드니 오페라하우스(悉尼歌剧院), 인도네시아 발리의 음양문(印尼巴厘 阴阳门) 등 세계 각국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일본식 정원도 있고 중국의 천수관음 동상도 있으며 우리나라 정자와 종도 아주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세계의 창'에는 많은 문화시설 및 놀이기구가 있다. 4D입체영화(星空影城), 아폴로비행선(阿波罗飞船), 삼바애드벌룬(桑巴气球), 회전목마(旋转木马), 타임베틀(时空穿梭机), 수퍼UFO(超级UFO) 등 다양한 놀이가 있다. 그 중에서도 백설공주 성곽 아래에 있는 아폴로비행선을 타려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창사의 '세계의 창'에 있는 놀이시설인 아폴로비행선, 멀리 백설공주 성곽이 보인다.
ⓒ 최종명
창사

재미있는 곳은 밍씽멍꽁창(明星梦工厂). 이름하여 ‘스타의 꿈을 만들어주는 공장’이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꽤 몰려있어서 들어가 보니 노래방 반주 화면 위에 영상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담아 그것을 영상CD로 구워주는 서비스였다.

이곳에서는 매달 청소년들을 위한 이벤트를 벌린다고 한다. 당시 8월에는 칠석(七石) 칭런제(情人节)가 얼마 전이었기에 곳곳에 행사를 했던 포스터가 걸려 있기도 했다. 한여름 내내 포쉐이제(泼水节)를 하기도 한다. 이것은 윈난(云南)의 시솽반나(西双版纳)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인 따이족(傣族)의 전통 문화행사로 바가지로 물을 서로 끼얹는 놀이이기도 하다. 아친하이(爱琴海)라는 호수에서 매일 밤에 벌어진다고 한다. 재미있는 놀이를 못 봐서 아쉬웠다.

  
창사 '세계의 창'에 있는 인도네시아 음양문 사이로 천수관음 동상과 물 퍼붓기 놀이를 하는 아친하이 호수도 보인다.
ⓒ 최종명
창사

‘세계의 창’에는 곳곳에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다른 간판에는 없는데 유독 샹핀푸우(商品服务)라는 가게 간판에만 한글이 써 있는 것이 보였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인 것인지, 아니면 물건을 많이 산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애써 한글 서비스를 할 바에야 좀 잘 하면 좋은데, 그만 ‘상품시비스’라고 써놓았다. 가로 획 하나가 지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곳에 다 똑 같이 쓰여 있는 것으로 봐서 처음부터 모르고 쓴 듯하다.

한글이 잘못 써 있어서 약간 씁쓸했는데 그 옆에 커다란 포스터가 낯익어 눈길을 끌었다. 바로 드라마 <풀하우스>의 비와 송혜교 사진이 보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07년 2월에 후난TV에서 <낭만만우(浪漫满屋>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는데 그때 기자회견을 하러 이곳 창사에 왔던 것인데 그때 사진을 커다랗게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드라마와 참 인연이 많은 듯하다. 2004년도에 <풀하우스> 드라마 세트장에서 비와 송혜교를 인터뷰하는데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다시 그들을 사진으로나마 보니 참 기뻤다. 그래서, 그들이 후난에 와서 어떻게 기자회견을 했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재미있는 것은 2004년 인터뷰 때 두 스타에 대해 느꼈던 인상이 3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창사 '세계의 창'에 있는 안내표지판의 한글 '시비스'
ⓒ 최종명
창사

후난TV는 <대장금>을 방영했고 중국 내에서도 드라마 제작 능력이 탁월할 뿐 아니라 교양프로그램에서도 시청률이 꽤 높은 권위 있는 매체이다. 그 자리에서 답변한 두 사람을 비교해보자.

송혜교씨는 ‘2004년에 방송됐었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행복하고요. 지금 그 장면을 보니까 많이 어색하고 지금 제가 봐도 귀여운 거 같아요’라며 귀엽고도 다정하게 심정을 밝히고 있다.

시청률에 대해 묻는 질문에 비는 ‘중국에서 인터넷 사이트나 DVD로 많이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그 보답으로 여기까지 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이고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는 것이고, 뭐 시청률이 잘나오면 좋겠죠’라고 했다. 참 이야기 못하는 것 같다. 인터넷과 DVD를 거론하는 것은 불법으로 본 많은 중국사람들에게 감사한다는 이야기이고 후난TV를 통해 방영되는 것은 별 관심이 없다는 투다.

세계적인 스타인 비에게 쏟아지는 질문에 좀더 인상적인 답변을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니컬한 것은 좋지만 별로 스타답지 못해 보인다. 이왕 엄청난 팬들에 둘러싸여 하는 기자회견이라면 말이다. 그에 비해 늘 웃으며 성실하게 답변하고 사람을 배려하는 말투와 태도가 자연스러운 송혜교야말로 스타이기 이전에 ‘참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출구 부근에는 중국의 4대 서원 중 하나인 악록서원 모형건물이 있다. 입구로 들어섰는데 볼 게 없다. 다음으로 가 보려는 곳이라 미리 눈 여겨 볼까 해서였다. 진짜 서원을 보러 빨리 가는 것이 낫지 싶다.

천년학부 후난대학의 악록서원

밖으로 나와서 좀 걸었다. 생수도 사서 마셨다. 혼이 다 빠질 정도로 덥다. 악록서원은 창사 시내를 흐르는 샹장(湘江) 서편에 있다. 그러니 ‘세계의 창’에서는 서남쪽 방향이다. 택시를 탔다. 30분만에 후난대학 부근에 세워준다. 그렇다. 악록서원은 후난대학 안에 있다. 마침 신입생들이 막 입학하는지 왁자지껄하다. 중국대학은 9월에 학기가 시작되니 8월말이라면 신입생들은 매우 바쁘다.

대학 입구에는 ‘악록서원(岳麓书院) 창건(创建) 1020년’과 ‘후난대학 정명(定名) 70주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조형물이 있다. 악록서원은 북송 시대인 서기 976년 설립돼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후난대학은 1926년에 그 이름으로 정해졌다. 1997년에 조성된 이 기념 조형물이 후난대학을 들어서는 동팡홍(东方红) 광장에 오뚝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후난대학 입구에 있는 악록서원 창건 1020년이 됐다는 조형물
ⓒ 최종명
후난대학

빨간색 천으로 현수막 하나가 인상적이다. “천년학부는 전국 각지에서 온 신입생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千年学府热烈欢迎来自全国各地的新同学)”라는 문구가 높이 휘날리는 것을 보노라니 정말 후난대학 신입생들에게는 대단한 자부심이 되리라 여겨진다.

천 년이 지난 서원이 있는 곳, 후난대학은 '천년학부'(千年学府)'라는 빛나는 이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에는 후난에서 태어난 마오쩌둥(毛泽东) 동상이 거대한 크기로 우뚝 서 있다. 또한 광장 한 옆에서는 선배들이 각 학과별로 나와서 신입생들을 도와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 ‘岳麓书院’이라는 곳이 있어서 물어봤더니 악록서원은 현재에도 학생도 모집하고 수업도 하는 하나의 학과였다.

중국의 4대 서원은 후난 창사의 악록서원, 장씨(江西) 루산(庐山)에 있는 백록동(白鹿洞)서원, 허난(河南) 등펑(登封)에 있는 숭양(嵩阳)서원, 그리고 역시 옛날 난징(南京)이라 불렸던 허난(河南) 상츄(商丘)의 응천(应天)서원이 있다. 응천서원은 휴양(睢阳)서원 또는 남경(南京)서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후난대학 내에 있는 서원 입구로 찾아갔다. 서원 정문을 터우먼(头门) 또는 첸먼(前门)이라 부른다. 정문 현판에는 ‘千年学府’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천 년 이상 흐른 최근에 붙인 것일 듯하다.

  
악록서원의 대문
ⓒ 최종명
후난대학

이 문을 지나면 바로 앞에 계단이 있고 그 위에 혁희대(赫曦台)라는 곳이 있다. ‘혁희’라는 말은 ‘아침 햇살이 떠오르다’는 뜻이니 이곳에서 학자로서의 희망을 꿈 꾸는, 학구적인 의지가 담긴 곳이라 생각된다. 양 옆 벽에는 청나라 시대에 서원 원장이 썼다는 글자가 있다. 왼편에는 ‘복(福)’ 자, 오른편에는 ‘수(壽)’ 자가 있다.

오히려 따먼(大门)에 있는 ‘岳麓书院’이라는 현판이 훨씬 인상적이다. 976년 송 태조가 세운 서원을 송 진종(真宗)시대인 1012년에 서원을 확장하면서 황제가 내린 액자가 그대로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하니 아마도 그 당시의 필체라 보여진다. 천 년에 걸맞게 그 글씨체가 금빛 찬란해 보인다.

다시 얼먼(二门)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면 본 건물인 강당(讲堂)이 나타난다. 이곳은 학생들을 교육하던 곳으로 중앙에서 의자가 나란히 두 개가 놓여 있는데 남송 시대의 사상가이던 주희(朱熹)와 당시 서원 주교이던 장식(张栻)이 함께 강연을 하던 자리라고 한다.

양쪽 벽에는 충(忠), 효(孝), 염(廉), 절(節)이라고 쓴 네 개의 글자가 각각 쓰여 있다. 이것은 주희가 친히 쓴 글자이다. 그래서 이 강의 장소를 ‘충효염절당(忠孝廉節堂)’이라 부르기도 한다.

  
악록서원 강당 벽에 주희가 쓴 4개의 글자 중 효(孝)와 절(節)
ⓒ 최종명
주희

곳곳에는 서원 원장 등이 쓴 교훈이나 하사한 글들이 적혀 있는데 천장 쪽 중앙에 걸려 있는 편액들인 ‘학달성천(學達性天)과 ‘도남정맥(道南正脈)’은 각각 청나라 강희제와 건륭제가 직접 써 하사한 것이라 한다. ‘학문을 닦아서 천성을 이해하라’, 그리고 ‘이곳에서 이루어진 도가 남방에서 가장 정통하다’는 뜻이니 주희와 장식이 주도한 주장학(朱张学)의 위상을 인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강당 처마 바로 밑에 걸려 있는 ‘실사구시(实事求是)’을 누가 쓴 것인지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는 듯하다.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일부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부한 마오쩌둥이 쓴 것이라는 오해를 낳고 있는 듯하다. 많은 자료를 근거로 마오쩌둥이 이곳에 오기 전인 1917년 당시 교장이었으며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한 빈보정(宾步程)이 서원의 교훈으로 썼다는 것이 정설이다.

강당 뒤편에는 도서관 기능을 지닌 위슈러우(御书楼)가 있다. 왼편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옆으로 바이췐쉔(百泉轩)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곳은 악록서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주변 나무와 하늘과 구름, 그리고 건물이 모두 연못 수면 속으로 들어와 있고 물 속을 휘젓고 다니는 물고기들과 어울려 한 폭의 신비한 산수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연못 주위를 한 바퀴 다 빙 둘러 봐도 어디라도 다 그림이고 감탄이다.

  
악록서원 바이췐쉔 앞 연못과 수면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
ⓒ 최종명
악록서원

새파란 색감이 하늘인지 물살인지 헤아려보면서 잠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반대편 바이췐쉔 앞에서 사람들 오가는 모습도 보고, 역시 걸터앉아서 이 환상적인 조화를 감상하고 있는 사람도 보고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악록서원의 학생들도 이곳에서 잡다한 생각을 지워냈을까. 어쩌면 유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시인이 되지는 않았을까.

  
천년학부 후난대학 악록서원에 있는 유학자들을 모신 사당 현판 글씨들
ⓒ 최종명
후난대학

강당 오른편으로는 유학자들을 모신 아담한 사당 몇 채가 있다. 글씨와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특히, 숭도사(崇道祠), 육군자당(六君子堂),선산사(船山祠), 신제사(慎齐祠), 사잠정(四箴亭), 염계사(濂溪祠) 등 유학자들의 사당답게 이름이 어렵긴 하지만 현판의 한자들 글씨체가 너무 예쁘다.

다 일일이 유학자들을 살펴보기는 어려웠지만 나름대로 사당을 마련할 정도로 중국에서는 유명한 학자들로 존경받고 있다.

숭도사는 주장사(朱张祠)라고도 불리는데, 역시 주희와 장식의 사당이다. 사당 안에는 두 사람의 전신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고 그 위에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양대 산맥답게 ‘사문정맥(斯文正脉)’이라고 편액이 걸려 있다.

‘사문’이란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말로서 이후 문인(文人)이나 문화(文化)를 지칭한다. 따라서, ‘문화의 바른 맥’을 잇는 학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서로 좌우에서 마주 보는 각도로 학자의 풍모가 가득 풍기는 모습이 정갈해 보인다.

육군자당에는 주동(朱洞), 이윤칙(李允则), 주식(周式), 류공(刘珙), 진강(陈钢), 양무원(杨茂元) 등 송나라 시대 유학자들의 초상화와 업적들이 적혀 있다.

염계사에는 주돈이(周敦颐)의 사당이다. 주돈이는 북송시대 사상가로서 정호(程颢), 정이(程颐), 장재(张载) 및 주희(朱熹) 다섯 사람과 함께 ‘공맹주정장주(孔孟周程张朱)’라는 유교 성리학의 정맥을 잇는 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선산사는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사상가인 왕부지(王夫之)의 사당이다.

비록 근대와 신중국에 이르러 선각 유학자들에 대한 제사라는 형식이 많이 그 의미가 퇴색했고 특히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거의 유명무실했던 이 사당들에 새롭게 현판을 세우고 관리하는 것도 최근 중국의 변화된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듯하다.

공자 사당인 문묘(文庙)도 있다. 본당인 대성전(大成殿)에는 중앙에는 당나라 시대의 유명화가로서 ‘시성(诗圣)’이라 불린 두보(杜甫)와 견주어 ‘화성(画圣)’이라 불린 오도자(吴道子)가 그린 공자의 행교도(行教图)가 있다. 양손을 모아 가슴 부근까지 올리고 긴 수염과 두건을 쓰고 도포를 날리며 서 있는 모습이 정말 만세의 사표처럼 보인다.

  
만세사표 편액과 공자 행교도가 있는 문묘 대성전
ⓒ 최종명
악록서원

그래서, 청나라 강희제는 만세사표(萬世師表)를, 가칭(嘉庆)제는 ‘성집대성(聖集大成)’이라는 편액을 헌정했으니 대성전 안에 각각 걸려 있다. 양쪽 옆에는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로 이어지는 4명의 현자(賢子)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문묘 밖에는 엄청나게 큰 거목이 건물 지붕을 타고 넘어갈 듯 높이 자라 있다. 정말 천 년을 지켜 왔음직할 정도다. 다시 대성문을 통해 출구로 나오는 곳에 공자의 행교상(行教像) 조각되어 서 있다.

햇살에 비친 나무처럼 공자 조각상도 노랑색과 자주색 벽 속에 그늘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햇살 바른 곳에 공자의 조각상이 이렇게 서 있을 줄 미처 몰랐다. 게다가 야외에 공자의 조각상을 본 기억이 없어서인지 아주 특이한 느낌이 들었다. 저 맑은 그늘이 오늘날 중국사람들에게 스며든 긍정적인 장점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악록서원을 나왔다. 서원에서 정말 온갖 한문과의 씨름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예쁜 폰트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더위 속에서 줄곧 지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후난대학도 떠나 숙소로 돌아왔다. 너무 더워서 입맛이 거의 떨어져서 걱정이다. 아무래도 하이난다오에서 좋고 비싼 음식을 많이 먹었던 것이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빨리 정상회복이 되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