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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65] 하이난다오 싼야만과 야룽만

8월 20일,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다. 츙하이(琼海)에서 싼야(三亚)까지 약 3시간 걸린다니 1시간 정도 PC방에 들렀다. 그런데 1시간에 3위엔을 주고 컴퓨터를 켜니 윈도 OS에서 ‘입력언어 추가’를 분명히 체크하고 차오셴위(朝鲜语)를 눌렀는데도 한글 입력이 안 된다. 5분 정도 아무리 애써 봐도 이상하게 그 설정이 취소된다.
 
직원에게 물으니 자기는 모르겠다고 한다. 컴퓨터 사용을 전혀 못했으니 돈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그렇게 못하겠다고 한다. 이거 참 아침부터 성질 돋우고 있네. 다시 5분 동안 말다툼 끝에 겨우 1위엔을 돌려받았다. 이럭저럭 자꾸 목청 높아지는 중국어만 배우게 되는 듯하다. 다른 PC방을 찾느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고생한 값으로 치면 정말 별로 기분 좋은 하루가 되기에는 이미 틀렸다.
 
아열대 해안에 와서 이 무슨 난리란 말인가. 다른 PC방은 다행히 잘 된다. 한국 여행사 통해 미리 예약한 호텔을 체크했다. 정확히 말해 호텔이름을 확인했다. 호텔을 찾아가야 하니 그 호텔의 중국이름을 알아야 했던 것이다. H리조트라고 하면 중국에서 어떻게 찾아가라는 말인가. 하여간, 처음 예약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이난다오에 오니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다.
 
버스를 타고 싼야 터미널에 내렸다. 택시를 타고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가깝다고 한다. 해변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갔으니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바다가 보이자마자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환상적인 아열대 해안의 모습이라는 감탄이 새어 나왔다. 역시 휴양지로 조성된 해변이라 뭔가 다른 느낌이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서니 깨끗함과 산뜻함이 너무도 반갑다. 중국 항공사가 운영하는 호텔이고 450위엔(약 5만8천원) 숙박비치고는 상대적으로 고급이다. 아무래도 오랜 여행 도중 곳곳에서는 맛보기 힘들던 환경이라 너무 당황한 것이 아닐까. 하여간, 하이난다오에서는 나도 휴가다.
 
피로를 풀 겸 내내 잤다.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문제는 싼야에서 호텔이나 리조트에 묵으면 저렴한 식당 찾으러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호텔 식당으로 갔다. 그래 이참에 원창(文昌)에서 먹지 못한 닭고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그나마 싼 중국 술인 하이커우따취(海口大曲) 한 병도. 알코올도수 38도, 500mm이니 칼로 벤 모습이 바이잔(白斩) 원창지(文昌鸡)에 바이쥬(白酒) 한잔.
 
10분 기다리니 드디어 원창지가 등장했다. 왜 바이잔일까? 바이(白)와 벤다는 뜻의 잔(斩)에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닭고기의 닉네임인 바이잔은 가장 맛있게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우며 신선한 육질 그대로 살려서 먹으면서 닭고기 국물에 익힌 밥과 함께 먹어야 맛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떤 닭을 쓰느냐가 관건이겠는데...
 
  
하이난다오 특산 닭고기 요리인 원창지
ⓒ 최종명
하이난다오
 
향을 내거나 없애기 위해 생강(姜丝), 마늘(蒜泥), 식초(白醋), 설탕(白糖), 소금(精盐), 간장(老抽) 등을 함께 넣고 불에 쪄서 요리하지만 무엇보다도 원재료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원창지는 막 알을 낳으려 하는 어린 암탉이 그 맛으로 최고라고 한다.
 
결국, 어떤 닭을 쓰느냐가 관건이겠는데 바로 원창이야말로 좋은 닭이 많기 때문에 유명하다는 것이다. 원창에는 지형적으로 용수나무가 많이 자라는데 그것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 쑥과 같은 푸른 풀들이 많이 번식하는데 닭의 성장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것이 특산 요리가 된 이유인 것이다.
 
다음날 8월 21일 아침, 호텔 뷔페 식당에 우리나라 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한국 관광객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호텔 내 풀장 앞에서 잠시 앉았다. 야자수나무가 수면에 비친 모습도 아름답다.
 
  
싼야만 호텔의 풀장 수면에 비친 야자수 나무
ⓒ 최종명
싼야
 
싼야만(三亚湾)의 모래사장으로 나섰다. 날씨가 아주 쾌청하다. 멋진 피서지이며 사시사철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은 환상적이다. 싼야만은 야자수 수풀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20리에 이르는 긴 해변이다. 동쪽으로는 따둥하이(大东海) 해변이 이어지고 더 가면 야룽만(亚龙湾)이 있다.
 
  
싼야만 해변을 걷는 사람들
ⓒ 최종명
싼야
 
싼야만 해변은 정말 다시 봐도 구름과 하늘, 해변 모래와 파도가 일품이다. 신선한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를 따라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여유롭다. 신발을 벗어들고 긴 모랫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다. 우산을 들고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도 있다. 나도 신발을 벗어 놓고 얕고 시원한 바다 속으로 20여 미터 들어갔다. 찰랑찰랑 허벅지까지 물이 차오르지만 물이 차가울 정도는 아니다. 바다 속에서 바라보니 야자수 나무도 정말 길게 뻗어 있다.
 
이거 오랜 발품취재 중에 얻은 꿀맛 같은 휴가의 시작
 
  
싼야만 해변의 야자수 나무
ⓒ 최종명
하이난다오
 
다시 호텔로 들어가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사촌 동생이 전화를 했다. 이미 야룽만 호텔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사흘 동안 동생 가족이랑 휴가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거 오랜 발품취재 중에 얻은 꿀맛 같은 휴가의 시작인 것이다.
 
싼야만에서 버스를 탔다. 따둥하이를 지나 야룽만까지는 의외로 1시간 30분 정도나 걸렸다. 싼야만이나 따둥하이에 비해 세계적인 특급호텔들이 다 몰려 있는 야룽만에 이르니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마치 특별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별장 마을 분위기가 난다. 거리에는 일반인들이 거의 없기도 하고 호텔 앞마다 입구가 마치 요새처럼 꾸며져 있다.
 
완하오(万豪), 카이라이(凯莱), 씨라이덩(喜来登), 자르(假日)라는 이름만 봐서는 영어로 호텔 이름이 무엇인지 상당히 어렵다. 차례로 메리어트(Marriott), 글로리아(Gloria), 쉐라톤(Sheraton), 홀리데이인(Holiday Inn)이다.
 
대부분 유명한 호텔들인데 그 옆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중국이름이 쓰여 있다. 마침 찾던 호텔 정문 앞에 버스가 막 정차했다. 큰 배낭을 메고 입구로 들어서니 좀 이상해 보였나 보다. 예약했다고 하니 통과를 해주긴 했지만 고급 휴양지에 온 모습치고는 꽤 낯설어 보일 것이었다.
 
  
싼야시 야룽만 해변
ⓒ 최종명
싼야
 
여름휴가를 즐기러 온 한국 사람들이 꽤 여럿 보인다. 서양사람들도 많고 중국사람들도 많다. 얼핏 봐서 전혀 국적을 알기 힘든 곳이다. 넓고 시원한 로비에서 체크인을 했다. 직원은 영어로 말하는데 중국어로 말하니 다시 여권을 본다. 체크인 후 사촌 동생들 가족을 만났다. 이미 야외 풀장에서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있다. 딸 하나 아들 둘을 둔 복 많은 동생이다.
 
야룽만에 늘어선 특급호텔 여름휴가 패키지는 생각보다 비용이 싸서 놀랐다. 호텔 시설도 최상급이고 호텔 내 식당과 각종 시설도 거의 무료로 이용하고 가족이 편하게 여름휴가를 즐기는 데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좀 심하게 이야기해서 제주도 특급호텔에서 3일 정도 휴가를 보내는 것에 비해서도 그다지 비싸 보이지 않는다.
 
  
하이난다오로 여름휴가를 온 사촌동생과 조카들
ⓒ 최종명
하이난다오
 
바닷가도 한적하다. 아이들이 놀기에 모래사장도 좋고 바닷물도 따뜻하고 깊지도 않다. 아이들은 실외 풀에서 노는 게 더 즐거운가 보다.
 
저녁에는 호텔 로비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듯한 느낌의 노래를 부른다. 북유럽 가수 아바(ABBA)의 댄싱퀸 선율이 어두운 로비, 낮은 조명에 분위기를 더욱 아주 낭만적으로 만든다. 노래에 흥이 났는지 엄마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아이가 나타났다.
 
  
야룽만 호텔 로비에서 조카들
ⓒ 최종명
야룽만
처음에는 남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자아이다. 로비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여러 나라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스스럼 없이 중국사람들은 흥을 내며 춤을 출 줄 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다지 낯을 많이 가리는 듯하다. 밤하늘도 보고 야자수 그림자 속에 어린 이국적인 냄새를 안주 삼아 동생이랑 로비에서 맥주를 마셨다. 아이들은 낮에 종일 수영을 했으니 이미 잠이 든 틈을 어른들은 조용히 즐겼다.
 
호텔 룸에 들어서니 정말 여행 중에서 맛본 최고의 안락한 침대다. 비록 인터넷 요금이 비싼 것이 흠이긴 해도 호텔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이 안에서 다 해결이 가능하다.
 
그래서, 다음날 저녁에는 이곳 해산물 요리를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차로 픽업을 해준다. 20여 분 거리에 있는 한 야외 식당에 도착해 수조에 있는 물고기와 조개, 소라, 새우 등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중국의 향료가 처음 중국을 온 아이들에게 맞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모두 맛있게 잘 먹는다. 그만큼 중국 남방의 해산물 요리는 이미 세계인의 입맛을 터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본 대나무 장대 춤의 흥겨운 놀이판. 정말 신나는 한판 놀이마당
 
  
하이난다오 야룽만에서 먹은 해산물요리들
ⓒ 최종명
하이난다오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사를 보고 있는데 소수민족의 대나무 장대 춤인 주깐(竹竿) 무용이라는 뱀부(bamboo) 댄스를 보게 됐다. 이 춤은 중국소수민족 중에서도 특히 이(彝)족들이 즐겨 춘다고 하는데 한여름 아열대 해변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호텔에서 보니 색다르다. 처음 본 대나무 장대 춤의 흥겨운 놀이판. 정말 신나는 한판 놀이마당이다.
 
  
호텔 마당에서 벌어진 공연 중 대나무 춤인 주깐무용, 뱀부 댄스
ⓒ 최종명
하이난다오
 
공연에서는 외국 가수들이 팝송 몇 곡을 부르는데 밤바다의 정취에 더해 분위기가 아주 여유롭기도 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나 'Take Me Home Country Road', 'Top of the world'와 같은 노래들은 발품취재를 하면서 쉽게 느낄 수 없다. 역시 느긋한 마음으로 휴가를 즐기는 셈이다.
 
갑자기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춘다. 서양남자와 동양여자가 멋진 듀엣 춤을 추는데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누구나 서로 어울려 밤바다 파도 소리도 파묻고 즐겁게 즐기는 모습이야말로 휴가 그 자체가 아닐까.
 
3박 4일 내내 먹고 자고, 또 바다와 풀장에서 수영하면서 푹 쉰 셈이다. 헤어질 시간이다. 로비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동생 가족들이 타고 온 여행사 차량을 얻어 타고 공항으로 함께 갔다. 다음 행선지로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 남방의 섬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내륙으로 가는 것이 힘에 겨웠다. 들어올 때 너무 고생해서일까. 휴가가 길어서일까. 후유증이라 봐야 할 것이다.
 
동생들이 먼저 한국으로 떠났다. 아이들과 며칠 꽤 정들었는데 헤어지기 섭섭하다. 8월 24일 중국 대륙 중원 한복판의 후난(湖南) 성 창사(长沙) 행 비행기는 밤 10시 출발이다. 싼야 펑황(凤凰) 공항(机场)에서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싼야 펑황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원고 쓰면서 차 마시고 컵라면 먹고
ⓒ 최종명
싼야
 
국제선 청사 옆에 작은 카페에서 차 한잔을 주문하고 본격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오랜만에 취재 이야기를 썼다. PDA에 간이 키보드를 연결하고 열심히 글을 썼다. 뜨거운 물을 계속 가져다주는 직원이 고맙다. 저녁도 해결했다. 마침 우리나라 컵라면이 있어서 오랜만에 맛을 봤다.
 
어느덧 비행기 탑승할 시간이다. 이미 동생가족은 인천공항에 내렸겠지. 국내선은 국제선 옆으로 5분 정도 또 걸어가야 한다. 국제선에 비해 국내선 청사는 중국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정말 중국도 이제는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비행기 이륙, 이제 다시 중원 땅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