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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쿵푸팬더>가 대박이다. 우리나라 관중 2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 중국 스촨 지역에서 상영이 금지됐다는 보도를 보고 영화가 보고 싶었다.


<쿵푸팬더>에 대해 중국언론의 시기와 질투가 예사롭지 않다. 인민일보는 최근 23일 문화면 기사 <쿵푸팬더(功夫熊猫)와 문화침략(文化侵略)>에서 중국 고유의 '문화 원형(原料)을 약탈해서 우리(중국)의 문화 보루(壁垒)를 넘어 문화식민(文化殖民)를 도모한다'고 흥분하고 있다. 자신들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인 쿵푸와 팬더의 매력을 빼앗아 간 것을 '1840년 이후의 굴육적인 아픔(1840那以后的屈辱的痛)'이라고까지 한다. 바로 아편으로 인해 발발한 영국과의 전쟁 이후 '세계의 문화 중심인 중국이 중화 사상에 입각한 창의적인 감각을 서양인들에게 탈취 당했다'는 감정을 중앙 관영 신문사가 토로할 정도로 대단한 영화란 말인가.

중국공산당 충칭(重庆) 시 선전부가 주관하는 화룽왕(华龙网) 역시 <왜 쿵푸팬더는 우리를 분노케 하는가?(为什么让我们愤怒?)> 기사에서 '5천년이 넘는 중국역사와 겨우 몇백년 정도인 미국역사'를 비교하더니 중국의 문화산업과 제작감독에 화살을 던지며 개탄하기조차 했다.

중국의 관영 및 당 기관지의 입장이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개봉한 <쿵푸팬더>에 대해 어떤 문화산업 또는 중화주의에 관한 방어벽을 쳐보려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난 19일을 전후해 중국에서 영화가 개봉된 이후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게, 반응이 아주 뜨겁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6월 23일 인민일보 기사 <쿵푸팬더와 문화침략>


중국 대륙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언론매체 중 하나인 광저우의 남방도시보(南方都市报)는 지난 21일, 첫 개봉한 영화관에서의 관객 반응을 전하는 <영화 쿵푸팬더 박수갈채 스무차례>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관객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만족도에서 5점 만점에 4.41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63.83%가 '팬더가 매력적인 중국문화 소재', 약20%가 '청룽(成龙)의 더빙이 인상적'이었다는 결과와 함께 관객들이 무려 20여 차례나 웃음과 박수가 이어졌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달콤한웃음(甜笑),바보같은웃음(傻笑), 미친듯웃음(狂笑), 폭소(爆笑), 미소(微笑) 등으로 웃음의 성격에 맞게 영화의 상세한 줄거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나는 중국의 문화 소재인 쿵푸와 팬더를 직접 중국 현지에서 봤기에 과연 헐리웃 문화자본이 어떻게 스토리와 이미지를 그려냈을 지 궁금해 어제 저녁 영화를 봤다. 왜 헐리웃 애니메이션 하나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브라질, 일본, 독일 등으로 개봉을 늘려가며 열광을 몰고 다닐까. 게다가 베이징 올림픽을 코 앞에 두고 중국의 대표적인 상징이기도 한 문화코드를 소재로 한 전략은 어떤 것인가도 주의 깊게 볼 요량으로.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서서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미의 요소를 가득 담았다. 그런데, 그 웃기는 요소들의 해학이 다분히 익숙해보였다. 특히, 주인공 팬더 '포'가 '용의 전사'를 뽑는 무술대회를 들어가려고 애쓰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장면이나 궁전 용과 함께 있던 비문의 '공백'은 굉장히 '한국적 해학'이 느껴졌다. 아마도 스토리 감독이 한국인이라는 것과 무관해보이지 않았다. 물론 다소 선입견이겠지만 역시 한류의 힘은 '이야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쿵푸팬더> 스토리 감독인 제니퍼 유 넬슨의 크레딧 극장 촬영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헐리웃 자본이 만든 중국 문화 소재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쿵푸를 하는 팬더를 비롯 '무적의 5인방'과 사부들, '포'의 아버지를 빼고 간혹 거위 몇마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왜 전부 돼지와 토끼 뿐일까. 내가 아는 한 영화 매니아는 이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로 설명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서민들은 오로지 두 체제 속에서 살고 있고 강한 이미지(쿵푸)로 무장한 강대국을 동물들에게 주워담은 것은 아닐까.

힘센 영웅, 권선징악, 정의와 불의로 편 가르고 인간적인 감동보다는 오락만 숨어있는 헐리웃 영화의 전형적인 구조이다. 이는 문화제국주의와 전혀 다르지 않고 자본을 동원한 '문화침략'이라 비판하는 것은 이미 식상할 정도이다. 관객들에게 박수를 치고 웃고 때로는 슬픈 느낌까지 불러일으키는 뛰어난 제작 시스템에 놀랍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표범 '타이렁'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호랑이, 학, 뱀, 원숭이, 사마귀 5인방은 쿵푸의 권법들로부터 만들어낸 캐릭터이겠지만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독일 등 선진 강국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것은 너무 지나친 연상일까. 실력이 모자라지만 꿈 속에서라도 쿵푸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평범한 팬더는 일약 '용의 전사'로 지명 받는 '웃기는' 시추에이션을 만들어냈다. 너무나도 완벽한 코미디 주인공으로 부활한 중국의 국보 팬더는 계단도 힘에 겨워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데도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을 연상하는 경연장에서 로켓포를 타고 날아올라 하늘에서 '우연하게' 떨어져 '전사'로 지명 받는다. 베이징 올림픽을 영화 마케팅과 타이밍을 맞춘 듯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영화 <쿵푸팬더>의 장면들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이 나는 아주 익숙했다. '제이드 궁전'을 오르는 계단은 태산의 남천문을 오르는 '십팔반(十八盘)'과 닮았으며, 산 위에서 바라본 멋진 봉우리는 황산의 북해 운무를 연상시킨다. 궁전 안은 베이징 고궁의 태화전 안을 비추고 있고 안과 밖에 있는 돌기둥에 새겨진, 하늘로 오르는 듯한 용문양들은 황제의 지위를 의미하는 '두마리 용이 구슬을 가지고 논다’는 '이용희주(二龙戏
珠)'이기도 하다. 금동사자상도 잘 배치돼 있고 소림사에 가면 볼 수 있는 훈련장도 비슷했다. '타이렁'과 5인방이 대결하는 구름다리의 뒷 배경으로 나오는 수많은 돌 봉우리는 윈난 쿤밍에 있는 석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도 했다.

이렇게 중국의 쿵푸 권법, 팬더 외에도 자연과 건축물, 갑옷이나 소품, 길거리들에 대해 아주 많이 연구했다는 느낌이다. 무려 4년 반을 준비한 프로젝트답게 그 디테일 곳곳에 '중국적'인 문화가 많이 묻어있다. 궁궐 어디에선가 잠깐 등장하는 태극문양도 빼놓을 수 없는 눈길을 끌었다. 예전에 베이징에서 만난 한 박사과정 학생은 나에게 '너희 나라 국기에 우리(중국)의 태극이 있지 않은가?' 반문하면서 말한 논리가 생각났다. 그래서, 중국의 지방정권 또는 속국이라는 이야기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황산 북해 운무, 태산 십팔반, 이용희주, 소림무공모형, 쿤밍 석림, 고궁 금동사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머리 속이 복잡했다. 전형적인 헐리웃 매카니즘을 느끼면서도 왜 중국사람들은 자신들의 것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을 질시와 의혹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중화'라는 틀 속에 가둘 수 없어서일까. 이 대목에서 이번 스촨 지역 영화 상영금지조치를 이끈 자오반디(赵半狄)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팬더 예술가를 자임하면서 스촨 지역 지진발생지에서 팬더인형을 머리에 쓰고 다니면서 유명해졌다. <쿵푸팬더>의 중국 상영을 앞둔 시점에서 그는 6월 15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헐리웃 배우 샤론스톤의 인과응보(티베트 시위와 연관해 스촨 지진 발생을 표현) 발언과 관련해 <쿵푸팬더>를 '꺼져버려(滚蛋)!'라고 하면서 '헐리웃(好莱坞)을 문화 강도'로 지칭한다. 6월 18일에는 <나는 왜 <쿵푸팬더>를 배척하는가?(我为什么抵制《功夫熊猫》?>라는 제목의 글에서 '팬더는 스촨 및 중국 것(熊猫是中国的)이고, 미국이 악의적으로 묘사하고 조롱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영화로 한몫 보도록 놔 두는 것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는 인터넷을 통해 공분을 일으켰고 각 언론매체까지 이를 보도하는 분위기로 확산되자 영화 심의를 주관하는 국가광전총국영화국(国家广电总局电影局)이 스촨 지역의 상영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자오반디와 쿵푸팬더를 합성한 베이징 징바오(竞报) 보도사진


스촨 영화 상영 금지조치는 곧바로 해제됐다. 여러 논란으로 인해 스촨 청두(成都)의 극장마다 개봉일 기준 사상 최고의 관객동원이 이뤄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오반디의 샤론스톤과 헐리웃을 동일시하는 논리도 무리이고, 팬더와 쿵푸가 중국적인 것이기에 안된다는 논리는  <쿵푸와 팬더는 전 세계의 것(功夫和熊猫是属于全世界)>이며 오히려 '세계에서 호평 받고 있는 영화인데 자오반디의 말은 아주 이상한(非常奇怪) 생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오히려 중국의 문화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으며 반드시 중국의 문화 원형이나 코드를 잘 활용해야 한다(而要开发中国的文化产品,就必须运用中国的一些文化元素和符号)는 징바오(竟报)의 기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일까. 자오반디는 자신의 블로그 글에서 팬더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스위스 투자자까지 소개하는 것으로 봐서 '중국적인 팬더 영화'를 만들 계획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 과연 어떤 영화가 될 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팬더는 중국의 것이지만 중국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문화 원형이란 저작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더이상 소재를 논란의 대상으로 하지 말고 그 속에 숨은 영화의 미학이나 산업의 정치경제적 해석과 관련한 뜨거운 논쟁 기사를 보고 싶다. 그래서 <쿵푸팬더>가 누구의 것인지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팬더 '포'와 표범 '타이렁'의 마지막 대결 장면에서 땅이 '7.8의 지진'이 난 듯 갈라지고 건물이 부서지는 장면을 보면서 스촨 지진으로 재해를 입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헐리웃은 진정 온 천하를 박살내고 있었다. 웃음으로, 아니 그 속에 담긴 힘과 자본의 논리로 말이다. 중국 사람들이 유치한 논리보다는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치열한 고민이 없다면 문화의 시대에 국보 '팬더'를 잃고 그저 영화 속 '돼지'이거나 '토끼'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