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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가 유행이다. 중국 야사인 <삼국연의()>를 포함하는 대명사 ‘삼국지’가 중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 동안 참았던 봇물이 터지듯 쏟아지는 것을 보니 정말 중국을 대표해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문화콘텐츠의 원형인가 보다.

 

류더화()와 홍진바오(洪金가 출연한 ‘용의 부활(见龙卸甲)’에 이어 우위선(宇森) 감독, 량자오웨이(梁朝)와 진청우(金城武), 장전()이 출연한 ‘적벽(赤壁)’이 스크린을 찾아오고 있다. 이어 대형 역사 드라마 ‘삼국’도 캐스팅이 끝난 상태이다.

 

어린 시절 만화와 소설로 밤을 지새며 읽고 꿈으로 재 탄생하던 동화 같은 이야기가 직접 문화산업의 수백 억대 자본이 투자돼 화려하게 나타나니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용의 부활’에서 조명된 촉의 오호장군 조운의 이야기는 진부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오우삼 감독의 ‘적벽’도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곧 본 후 영화이야기를 쓸 예정) 왜 ‘삼국지’답지 않을 것 같은 예감도 없지 않다.



영화의 플롯이 재미있어야 하니 ‘삼국지’만큼 좋은 소재, 스토리라인은 없을 것이다. 다만, ‘삼국지’를 읽거나 보고 머리 속에 담아둔 인상과 기억이 어쩌면 ‘삼국지’ 영화의 한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넘치는 지략과 황홀한 전투, 천하를 삼분해가는 전략과 술수 그리고 민중에 대한 사랑까지도 다 하나의 그릇에 담는다는 것이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 대목에서 중국 최초의 영화 ‘정군산(定)이 관심을 끈다. 100백 중국 영화사의 첫 테이프를 끊은 영화가 바로 ‘삼국지’의 오호장군 황충()이 그 주인공이었던 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라 할만하다.

 

‘정군산’은 산시(西) 성 한중() 시에 있는 산으로 삼국시대 황충과 하우연(夏侯)이 전투를 벌인 장소이다. 또한, 제갈량(葛亮)이 사망한 오장원(五丈原)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영화 ‘정군산’은1905년 상영됐다. 당시는 서구 8대 열강이 세상을 좌우하고 있었으며 서릿발 같던 서태후도 수렴청정을 하고 있긴 했지만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시대이다. 당시 베이징 천안문 남쪽 서민들의 문화거리이던 천교(天) 광장에 서양식 영화관이 생겨 서양문물과 함께 서양영화로 넘쳐나고 있었다. 천교 광장은 명나라 시대 이래 서민들의 풍물이 넘치는 곳으로 ‘팔대괴’라는 8가지 종류의 기예꾼들이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당시 일본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와서 사진관(丰泰照相)을 운영하던 임경태()는 영화관을 만들고 싶어했으며 중국인들의 삶이 깃든 사진과 영화를 만들어 기록하고 싶어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는 당시 유명한 경극배우인 담흠배(谭鑫)의 연기를 보고 이 경극을 서양식 영화로 만들고 싶은 생각을 했다.

 

임경태는 첸먼() 외곽의 다스란(大栅栏)에 다관러우(观楼) 영화관을 설립하게 되고, 제자이며 촬영사인 류중륜()과 함께 3일을 꼬박 영화 ‘정군산’을 촬영하게 된다. 경극배우 담흠배는 최초의 중국영화배우가 됐으며, 임경태와 류중륜 역시 최초의 제작사 및 배급사, 그리고 촬영감독이 된 것이다.

 

영화는 삼국시대 촉나라 오호장군 노장 황충은 노익장을 과시하지만 위나라 장수 장합()은 정군산으로 패주한다. 정군산에는 하후연이 지키고 있었는데 쉽게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라 제갈량은 황충을 경시한다. 이에 황충은 결연한 의지로 종군을 자임하고 정군산을 공략한다. 양군은 각각 장수를 체포하게 되자 서로 포로 교환을 하기로 하는데 이때 황충이 위나라 장수를 활로 쏜 후 유인전술을 써서 하후연을 죽이게 된다.



 경극 장면 중 ‘종군(请缨)’, ‘칼춤(舞刀)’, ‘교전(交)’의 3편이 담긴 ‘정군산’은 일반인들을 위해 무료로 상영됐고 관객들은 ‘정군산’에 나오는 노래를 제창하며 감동의 물결이었다 한다.


'정군산'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후안 감독의 '서양경(西洋镜, Shadow Magic)과 2005년 '정군산'이다. 두 영화는 각각 미국과 중국 자본으로 제작됐으며 중국 영화의 태동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정부는 2005년 ‘중국영화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해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우표 도안은 당연히 ‘정군산’, 배우 담흠배가 주연한 황충의 사진이다.

경극의 소재는 ‘삼국지’는 물론이고 ‘수호지’, ‘손오공’과 같은 소설도 있지만 역사와 신화 속에 나오는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중국 최초의 영화를 제작한 임경태는 담흠배와 만나 ‘삼국지’를 담게 된 것은 우연이겠지만 100년을 넘긴 중국 영화 산업이 ‘삼국지’를 가져오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닌 소재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나 문화로부터 찾아온 원형도 중요하지만, 스토리와 엄청난 물량만으로 세계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좀더 탄탄한 준비와 감동, 리얼리티가 풍부한 영화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