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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5호선 지하철을 타고 둥쓰(东四)역에 내렸다. 후배(사회과학원박사과정, 중국당대철학전공)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낮부터 시내를 돌다가 한 서점을 찾아가는 길이다. 장기판 대국이 벌어지는 지하철을 나와 룽푸쓰제(隆福寺街)를 지나야 한다.

후배 왈, 이 거리에는 패션 의류가게들이 즐비한데, 일반적인 여성의류가 아니라 약간 야하고 튀는 의상이면서 저렴한 옷을 선호하는 패션걸들이 주로 오는 곳이라고 한다. 꽤 의미심장한 뉘앙스이다. 굳이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마치 '나가요걸'들이 자주 온다는 뜻인가? 하여간 골목 거리를 들어서니 옷가게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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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왕푸징다제(王府井大街) 북쪽 길인 메이슈관둥제(美术馆东街)에 이르는 좁은 골목길이다. 해가 저물어 서서히 가게 조명이 빛나기 시작한다. 하늘의 달이 반짝거리고 다소 어두운 길인데, 마침 날씨가 쌀쌀해 지나다니는 패션걸들은 별로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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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옷가게 옆에 미용실 간판에 한글이 써 있어서 놀랐다. 아마 이런 곳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올 것 같지 않은데 왜 그럴까. 아마도 한국의 미용이 인기가 있으니 중국어 옆에 함께 썼거나 조선족이 경영하거나 그럴 듯 싶다. '욱태기'라는 이름도 낯설기 그지 없다. 이름 같지도 않고 무슨 뜻인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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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후배가 말한 것처럼 'Juicy' '백화점(百货店)'와 같은 문구들이 붙은 것이 패션을 팔기 위해 고급스럽다는 상술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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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리우(保利屋)이라는 옷가게 창으로 마네킹에 걸린 옷들이 고급스러워 보인다. 인롄(银联) 은행카드도 사용이 가능한 집이라는 마크가 붙어있기도 하고 유럽명품(欧洲名品)이라는 포스터도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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퍄오량뉴뉴(漂亮妞妞)가 유독 새하얗게 밝다. 퍄오량은 '예쁘다' '아름답다'는 말이고 뉴뉴는 우리식 느낌으로 계집애 정도일 것이다. 마네킹마다 조명을 쏘고 제법 멋지게 차린 가게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가게 안에서 문신(纹身)도 함께 해주는 곳인데, 중국의 젊은 애들 사이에 문신하는 것이 유행이다.

최근에는 좀 뜸한 듯한데 한때는 아주 공부만 열심히 하는 푸다오(辅导)가 문신을 하겠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을 정도이다. 이상한 눈으로 볼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젊은이들의 문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여간 패션걸들의 거리이다 보니 이런 유행의 산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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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상뉘좡(世上女装)이라 쓰인 가게이다. 스상은 시대풍조라는 의미로 유행과는 약간 의미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비슷하다. 뉘좡이야 여성 의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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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중간에 양고기꼬치인 양뤄촬(羊肉串)을 파는 가게가 있다. 조명까지 반짝거리는 이 표지는 중국 전역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서민적 분위기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값 싸고 질리지 않게 먹으면서도 안주도 되는 먹거리가 또 있을까. 이 표시는 ''로서 꼬치라는 뜻에 가깝다. 한무더기로 묶거나 꿰다는 의미로 쓰인다. 상형으로 보면 입과 입을 줄로 이은 듯한 형상이니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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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루(欧璐)라는 가게. 어우는 유럽을 뜻하는 말이고 루는 '옥(玉)'을 뜻하니 '유럽풍의 옥'과 같은 옷을 판다는 브랜딩일 듯하다. 붉은 천으로 배경을 하니 마네킹들이 입은 옷의 때깔이 죽은 느낌이다. 멋지게 구성해놓고 전체적으로 붉은 색조를 유지하는 것이 눈에 걸린다. 그런데, 이곳의 컨셉이 패션걸이라고 하면 이해가 가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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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가게가 또 있다. 이곳은 문신만 전문으로 하는 가게 창문에 온통 문신사진이 잔뜩이다. 이 가게는 골목 안쪽의 약간 후미진 곳에 있었는데 불빛에 비친 가게 모습이 꽤 섬찟해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문신 가게인 줄 알고는 느낌이 오싹해진다. 온몸에 문신을 새겨넣은 그림도 많았는데 영 눈에 담기가 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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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벽에 붙은 영화포스터들이다. 이번 달 영화 상영(本月电影安排) 작품들이라는 글이 써 있다.1954년에 처음 설립된 이 둥쓰궁런원화궁(东四工人文化宫)은 지금은 현대식 극장이며 종합오락시설로 변모했다. 영화 스크린이 3개이며 좌석이 600석이 넘는다.

최근에 중국 대도시에 이런 극장들이 많이 생겨나는데, 재미있는 것은 극장 안에 귀빈석과 연인을 위한 특별석도 함께 있다는 점이다. 이 극장에도 있다고 그런 귀빈석, 특별석이 있다고 한다. 이곳은 시설이 좋다고 하고 시내 중심이며 바로 부근에 왕푸징이고 미술관과 서점 등이 있으니 꽤 잘 나가는 극장일 듯하다. 다음에는 여기서 영화 보고 미술관과 서점을 거쳐 부근 까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문화를 소일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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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길거리 먹거리도 많다. 1근에 15위엔 하는 마라화셩(麻辣花生)을 판다. 마라는 '쓰촨식으로 아주 맵다'는 뜻이고 화셩은 땅콩이다. 땅콩을 맵게 볶은 것이다. 중국 식당들에 가면 간혹 정식 요리가 나오기 전에 쳰차이(前菜)의 하나로 이것이 나오기도 하는데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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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어둠 속에서도 식당들은 환하게 밝다. 라오베이징(老北京)의 유명먹거리인 루주화샤오(卤煮火烧)를 판다는 것에 눈길이 끈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기간에 쓴 라오베이징 먹거리 중에 하나로 취재했던 기억이 난다. (중국발품취재-올림픽아웃사이드 참조) 그 옆에는 한국식 톄반(铁板) 카오러우(烤肉)와 양고기와 닭고기, 오징어 꼬치(鱿鱼串)를 판다. 참새고기(麻雀串)도 있다. 냄새 나는 처우더우푸(臭豆腐) 쌀국수인 궈챠오미셴(过桥米线), 파전과 비슷한 샤오총졘빙(小葱煎饼), 볶음면인 여우쓰차오몐(油丝炒面), 단단몐(担担面)도 있다.

배가 고파졌다. 서점에서 책 사고 커피 마시기 전에 간단한 요기를 하러 샤오츠(小吃) 파는 곳을 들어갔다. 한 공간안에 몇 개의 코너가 이어져 있는 종합식당에는 미리 음식카드를 사야 한다. 50위엔 카드를 하나 사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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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요리와 간식거리가 잔뜩 많다. 이렇게 생긴 코너가 좌우로 해서 7개 정도가 함께 몰려 있다. 고민 끝에 단단몐(担担面)과 차오몐(炒面)을 하나씩 시켰다. 단단몐은 기대한 것에 비해 별로, 차오몐은 그런래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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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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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몐

단단몐에 실패를 해서, 뭐 맛 있는 것이 없을까 찾는데 참 독특하게 생긴 떡이 보였다. 1개에 2.5위엔 짜리 2개를 샀다. 궈랴오녠가오(果料年糕)라고 했는데 녠가오는 떡이고 궈랴오는 과일로 만든 고물이라고 하면 될 듯하다. 깨가 뿌려져 있고 연두색 고물과 떡 사이에 단팥이 있어서 좀 단 편이었는데 맛은 괜찮았다. 아쉬운 면이 있었으나 배를 채웠으니 이제 서점에서 책도 좀 사고 커피도 한잔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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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6~7백미터나 될까. 이곳을 찾는 젊은 여성들을 우리가 그저 '패션걸'이라고 불렀는데 '일반적인 패션과는 좀 다르게 튀는 여성'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어둡지만 재미나고 독특한 이름의 옷가게들을 보고 오면서 나름대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