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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가면 늘, 자주, 그러니까 도착하는 날 저녁에 먹고 한국으로 되돌아오기 전날 저녁에 먹는 훠궈(火锅).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지랄하게 매운(麻辣)' 마라훠궈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은데, 그 맛이 현지만큼만 하지 않아서 아쉽다.

지난 연말, 중국 관련 모임에서 먹은 훠궈이다. 서울 대방동에 조선족동포가 운영하는 '동북미식성'이란 곳인데, 다소 실망이다. 역시 고기 색깔도 다르고, 가장 중요한 국물 맛이 기대와 어긋난다.    



훠궈는 중국에서 그 기원이 지금으로부터 1700~19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들을 참조하면 중국역사에서 동한(东汉)시대와 위 촉 오의 삼국시대 즈음이다. <위서(魏书)>에 위문제(魏文帝)인 조비(曹丕)가 집권하던 시기에 먹었다는 기록도 있고, 일설에는 제갈량(诸葛亮)이 소년 시절, 유랑할 때 평민들이 즐겨 먹는 것을 봤으며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동하는 병사들이 배탈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먹게 했다는 유래도 있다. 사실, 조조(曹操) 군대가 적벽전쟁에서 패배한 이유가 전염병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에 더 가까우니 이런 정황이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듯하다.

하여간, 훠궈는 긴 역사를 지닌 것만큼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이어왔다. 사실, 큰 솥에 재료를 넣고 국물을 끓인 후 고기와 야채 등 산이니 들에서 나오는 갖가지 먹거리를 집어넣어 푹 삶아 먹는 방식이니 아주 간단한 요리 방식이니 말이다. 그래서, 숱하게 많은 이름으로, 지방마다 저마다의 훠궈가 있다. 충칭(重庆), 광둥(广东), 쓰촨(四川)은 물론이고 홍콩(香港), 항저우(杭州), 상하이(上海), 윈난(云南), 후난(湖南), 후베이(湖北) 등 온갖 지방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오늘날의 독특한 매운 맛을 자랑하는훠궈는 단연 충칭 지방의 훠궈를 말한다. 거의 대명사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매운 맛과 맵지 않는 맛으로 솥을 반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갖가지 약재로 국물을 만든 위엔양궈(鸳鸯锅)가 대표적이다. '원양' 한쌍처럼 한몸처럼 구성됐으니 이름 또한 아주 적절하다. 이것이 삼국시대 위문제 조비가 기록으로 전한 오숙부(五熟釜)와 같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훠궈는 기록 등으로 볼 때 한족들이 영토이던 중원지방의 음식이 아니다. 아마도 쓰촨을 비롯해 장강 이남에 광범위하게 번져 있던 월족(越族)이나 강족(羌族) 또는 저족(氐族)이 만들어 먹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기록에는 없는 이야기이지만 소수민족들이 점점 한족화하듯이 역사에서 이 훠궈도 자연스레 한족화한 것이 아니었을까. 중국사람들이 이 훠궈에 대해 제갈량을 엮어 신비롭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마도, 마치 훠궈처럼 모든 것을 '한족의 것'으로 함께 삶자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최근에 베이징에 가면 자주 가는 훠궈 식당이다. 이제 환율이 거의 피부로 느끼기에 '2배 이상'이니 비싼 곳을 가기가 부담스러워 조용히 찾아, 새로 단골이 된 곳이다. 이 식당의 벽면에 잔뜩 새겨진, 그러면서도 정말 중국적인 모습이 멋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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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하면 벽면 왼편에 있는 솥이 초기 훠궈의 솥 모습이다. 바로 동으로 만들어진 동정(铜鼎)인 것이다. 솥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바로 '파촉풍정(巴蜀风情)'이란 문구이다. 충칭 또는 쓰촨 지방의 훠궈라는 뜻이다.

'촉'이야 삼국시대 유비의 바로 그 촉나라이니 알기 쉽지만 '파'는 무엇일까. 바로 한족들이 이 지방에 침입하기 전부터 살아오던 파저(巴氏) 또는 파저족이란 뜻이다. 중국 역사에서 촉한(蜀汉)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가 열리는데 그 사이에
 중국 한족이 이야기하는 다섯 오랑캐(五胡), 즉 흉노(匈奴), 선비(鲜卑), 갈(羯), 강(羌)과 함께 파저(巴氐)족이 두루 왕조를 세워 중원을 넘보던 시대가 있었다. 주로 중원의 서북 방면의 흐름이었는데 이때 간쑤(甘肃)와 쓰촨북부에서 힘을 길러온 이웅(李雄)이 대(大成)을 건국했는데, 그는 바로 파저족이었다. 원래 한족이 쓰촨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파인(巴人)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던 고향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쓰촨은 유비의 촉나라가 진입하기 전에는 중북부 지방에는 강족이나 저족, 서부 지방은 티베트민족 장족(藏族)들의 근거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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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에는 정말 양고기가 궁합이 잘 맞는다. 아마도 양고기야말로 서북지방에서 살아오던 민족들의 오랜 먹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위엔양훠궈에 들어가지 못할 재료는 없다. 고기는 물론이고 야채와 버섯, 때로는 물고기도 서슴없이 풍덩 들어간다.

가장 인상적으로 먹었던 기억이 미꾸라지와 돼지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혐오(?)라 해서 먹기 힘든 것이긴 해도, 겨울철 영양과 보신으로 훠궈 속에 미꾸라지를 비롯해서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보통 좀 큰 훠궈 식당에 가면 주문이 가능한 재료가 150에서 200여가지가 넘는다. 신기한 입맛과 눈맛에 대해 호기심이 넘치면, 중국어를 약간 배워서 가야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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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외국인들도 많이 먹고 꽤 유명해져서 그 신기한 것들을 많이 만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찾아보면 많다. 물론 평범하게 먹으려면 패키지된 것을 주문할 수도 있으니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훠궈를 먹는 가장 흥미로운 방법은 뷔페식 훠궈 식당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베이징 짠란중신(展览中心) 부근에 뷔페 훠궈가 있었는데, 입장료(당시에 45위엔)만 내면 마음껏 무한대로 먹는 곳이 있었다. 중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눈이 휘둥그레 할 정도로 별의별 신기한 것들이 많다. 중국어 공부하기에도 이만한 소재가 없을 것이다.

다음에 베이징 가면 뷔페식 훠궈 식당을 하나 찾아볼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훠궈 식당들이 너무나 유치하게 맛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껏해야 고기와 야채 몇가지만 제공되는 것도 불만이다. 진정한 맛을 담고 있으며, 재료가 무한한 훠궈. 이것이 진정 마라훠궈(麻辣火锅)의 맛이다. 똑 쏘는, 그래서 혀끝을 마비시켜 대마초처럼 오랫동안 그 자극을 담고 있는 훠궈야말로 진정 겨울철에 먹기에 안성마춤이 아닐까. 훠궈 속에 담긴 뜻도 곱씹어가면서 먹는다면 더 흥미로울 지도 모르겠다.

아 정말, 우리나라에 있는, 맛 있는 훠궈 집 좀 소개해주세요. 이 겨울 가기 전에 한번 가게요.

원래의 <겨울에 먹는 훠궈, 그 유래를 생각하며 먹자> 제목이 좀 밋밋해 <겨울에 먹는 훠궈, 제갈량이 처음 발견했다?>로 바꿨습니다. 널리 양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