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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사를 쓴 기자는 상대하기도 싫은 인간입니다"
(제목 변경 13:43)

우리 언론이 중국 관련 보도를 하는 것을 보면 가끔 화가 많이 난다. 하지만, 참고 있다. 매번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그러다 한두 번 참다보니 이제 좀 만성이 됐다. 중국 현지에 주재 특파원을 둔 언론사의 경우는 덜한 편이지만 소위 인터넷 언론을 자처하는 매체들의 '무책임한 보도'는 좀 심각해보인다.

사실, 중국은 우리 언론이나 블로거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사건 사고가 많다. 그래서 보도하고 싶은 유혹이 그만큼 클 수도 있다. 하지만, 뉴스의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그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보도하는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독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얼마전 기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 중국관련 포럼 한 회원이 <어처구니없는 중국 PC방 관련 기사>가 있다고 제보했다. 그리고 "기사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냉철한 현장중심의 조사 꼭 필요합니다. 요즘 시대가 그렇습니다..쩝쩝.."하면서 개탄했다. 정말 웃기는 에피소드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언론의 중국 뉴스 보도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난 경우라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국민일보의 쿠키뉴스는 지난 3월 17일,  <
中 PC방에 ‘여성 도우미’ 등장… ‘뭘 도와줄까’ 궁금>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내용도 아주 선정적이며 나름대로 우리나라 네티즌 멘트까지 담아 염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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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의 중국 PC방 관련 기사


"중국에 ‘여성 도우미’가 동원된 인터넷 카페가 등장해 화제와 함께 논란이 일고 있다."

"보도에 나온 사진을 보면 2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들이 치마 길이가 매우 짧은 ‘메이드복’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테이블마다 남자 손님 옆에 앉아 같이 컴퓨터를 하고 있다."

"이 인터넷 카페에 대한 소식을 접한 국내 네티즌들은 “어이가 없다”, “PC방에 여자를 동석시켜서 뭘 하겠다는거냐”, “VIP룸, 럭셔리룸을 만들어놓은 의도가 의심스럽다” 등 대부분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게임쇼 도우미가 상하이 PC방 '타락'한 미녀 도우미로 변신

과연 이 기사는 사실일까? 이 기사는
보쉰왕(博讯网)이라는 중국 (인터넷) 매체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기사였는데, 마치 상하이(上海)에 정말 이런 인터넷 까페가 등장해 성행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사실무근이며 유언비어로 판명이 났다.

보쉰왕은 중국의 인터넷 신문 중 하나다. 그렇지만 그 본사가 있는 곳은 미국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어권 인터넷 신문(영문 서비스도 있음)을 만들어 서비스를 하고 있는 매체이다. 상당부분 중국 타 매체를 출처로 한 카피기사가 많고(협약돼 있는 지는 확인하지 않았음), 자체 기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보쉰왕에서 해당 기사를 검색하거나 일일이 찾아 봤는데, 문제의 기사 출처를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쿠키뉴스가 인용한 보쉰왕은 나름대로 외부 블로거들이 기사를 보내거나 인터넷 기자(?)들이 뉴스를 생산하는 체제이므로 어떤 경로로 기사가 보도된 것인지 면밀하게 확인해봐야 하며 인용할 경우에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보도에 나온 사진을 보면'이라고 쿠키뉴스는 보도하면서, 물론 사진이 함께 게재되지는 않았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서비스 등급에 따라 개인룸 40개, VIP룸 50개, 럭셔리룸 100개 등으로 이뤄진 초대형 인터넷 카페"라고 했으니 우리 네티즌도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했을 것이다.

보쉰왕 어디에도 본래 기사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쿠키뉴스가 보쉰왕을 인용한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런 기사를 쓴 것일까.

제보한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다. 이미 많은 중국 네티즌들이 퍼날라서인지 관련 기사 사진으로 짐작되는 사진이 꽤 많이 검색되고 있는데, 사실은 타이완(台湾)에서 거행됐던 게임쇼 관련 행사 사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사진들이 "상하이 PC방"의 탈을 쓰고 사진들이 여과 없이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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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쉰왕 보도인 것으로 알려진 '상하이 PC방 미녀 도우미'
관련 기사 사진으로 판단됨 (출처 : 汽车之家)

상하이 PC방 미녀 도우미 놀랍다(上海网吧惊现美女作陪)는 제목으로 여전히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도 많이 퍼져있는데 정말 사진만 봐서는 기사 내용 그대로 현장사진으로 믿게 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 행사가 이미 2006년에 타이완에서 치뤄진 게임쇼(한국이 주관에 참여했거나 또는 많은 한국 게임업체들도 참관했었던 것을 알려짐)에 등장한 한 게임업체의 부스도우미들이었다는 것이다. 타이완의 행사 도우미가 상하이 '불법 타락'한 PC방 도우미로 바뀐 것이다.

중국 네티즌들도 오보를 많이 지적하고 있다. 멍후이톈탕(梦回天堂)이란 회원은 '이건 한국이 주관한 게임전시회의 중국 쪽 홍보현장으로 당시 부스도우미들이 게임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지난 일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뭔 이딴 글을 올리냐!(这是韩国主办商魔兽游戏发布在中国的宣传现场,所以当时找她们来是介绍游戏的,几年前事,自己都没搞清楚,乱发什么帖~!)라고 한다.

쿠키뉴스를 다시 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상하이에 이런 PC방이 등장했다면, (사실 중국 문화부나 상하이 시 정부의 기존 PC방 정책을 봐서 현실적으로 이런 형태의 PC방이 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뉴스 자체도 굉장한 파급력이 있을 것이고 최소한 상하이에서는 사회적 문제가 됐을 것이다. 즉 사건 뉴스에 가깝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말 이런 PC방이 생겼다면, 상하이 어디에 있는 지 밝혔을 것이다. 보쉰왕을 인용했다는 쿠키뉴스 기사 어디에도 팩트(Fact)란 것이 없다. 팩트 비슷한 것이라고는 오로지 '상하이'란 것밖에는 없다. 중국에 대해, 아니 중국어를 단 1달만 배웠다고 한다면, 아니 뉴스가 무엇인지 기초를 안다면 상식적으로 쓸 수 없는 기사다. 그것을 "갖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쿠키뉴스는 아무런 게이트키핑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는 것은 수준이하라 말할 수 밖에 없다.

쿠키뉴스는 <쿠키톡톡>, <쿠키지구촌> 등 코너를 통해 중국을 포함한 해외 뉴스를 아주 빠르게 생산하는 듯하다. 포럼 회원이 지적한 것처럼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말이다. 쿠키뉴스는 해당 출처를 재확인하고 오보인 것이 확인되면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제보자의 지인이 쿠키뉴스 기사를 보고 상하이에 정말 미녀 도우미가 나오는 PC방이 있는 지 물어와서 알게 됐다고 한다. 상하이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상하이에 미녀 도우미 PC방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다.

제보자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한테 이런 기사를 쓴 기자는 그야말로..참 상대하기도 싫은 인간입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으면서도 저린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해외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취재하는 기사의 경우 면밀하게 점검해 잘못된 관점을 유포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아무리 구미에 당기는 보도라 하더라도 '책임도 따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결국, 이런 오보는 우리에게 나쁜 선례가 돼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사건사고들이 무분별하게 중국 인터넷 매체에 보도되는 경우도 많다. 서로 오해의 골이 깊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데, 적어도 우리는 제대로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